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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민이 둘이 되어도 좋은 이유: 문화연구포럼 라운드 테이블 후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b11cd32e704a4d02b6dc01862f7bed5e~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b11cd32e704a4d02b6dc01862f7bed5e~mv2.webp)
![[하...] 고민이 둘이 되어도 좋은 이유: 문화연구포럼 라운드 테이블 후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b11cd32e704a4d02b6dc01862f7bed5e~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b11cd32e704a4d02b6dc01862f7bed5e~mv2.webp)
[하...] 고민이 둘이 되어도 좋은 이유: 문화연구포럼 라운드 테이블 후기
학교는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8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지금껏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석사과정에 들어오고부터는 학교가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이상 앞으로 학교는 배움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일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학교와 나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여러 가지 고민이 증폭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건 학교를 떠나지 않는 일이 될까? 계속 공부하면 학교 안팎에서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될까? 우연히 이런 고민을 환기할 기회를 가지게 된 건 지난 1월에 열린 문화연구포럼에서였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는 기획 세션이었던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지난해에 결성된 신문연의 ‘비판적 청소년 연구’ 분과에서 기획에 도움을 주셔서 ‘학교, 정상성의 재생산’이라는 주제로 대담이 꾸려졌다. 이번 라운드 테이블에 독특한 점이 있다면, 패널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5일 전3분 분량


[최애동향] 나.키.소(나의 키보드를 소개합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장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구자에게 도구란 무엇일까?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여러 방법론일까? 아니면 (문득 이론을 도구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지도교수님의 목소리가 맴도는데) 여전히 현상을 바라보고 기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론’이 연구자에게는 가장 큰 도구이자 무기인 것일까? 연구자마다 각자의 해답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도구란, 연구자도 일련의 과정을 거쳐 결국 ‘글’이라는 생산물을 내야 하는 생산자라는 입장에서, 글의 생산을 보조하는 ‘키보드’인 것 같다. 그렇다. 사실 이 글은 나의 키보드를 자랑하는 글이다. 처음 키보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석사논문을 작성할 때였다. 시험기간엔 뉴스마저 재밌게 느껴지듯이 논문을 쓸 때도 딴짓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딴짓의 첫 시작은 책상 정리였다. 으레 논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5일 전2분 분량


자기만의 방, 그리고 '우리'의 방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 공간이 필요하다. 이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때로 그렇지 않기도 하다. ‘랩실’이 존재하지 않는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연구 공간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논문이 도서관에서, 기숙사에서, 혹은 (스터디) 카페 안에서 쓰여 왔다. 워낙 노트북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글을 쓰는 일이 익숙하다 보니, 더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 공간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는 어떤 연구 공간을 필요로 할까? 새 학기를 앞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이번 대담에서는 ‘연구 공간’을 주제로 가벼운 수다를 떨었다. 각자가 거쳐 온 연구 공간의 역사부터, 공들인 데스크테리어 자랑, 연구 공간 없는 설움과 막상 연구 공간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운용하는 데 있어 겪은 어려움 등을 나눴다. 이 수다는 단지 공간에 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서로가 어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5일 전9분 분량
![[영주먹] AI 시대의 (학술) 번역?](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3d2773fba0604a18807cc6bcb4d0c418~mv2.pn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3d2773fba0604a18807cc6bcb4d0c418~mv2.webp)
![[영주먹] AI 시대의 (학술) 번역?](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3d2773fba0604a18807cc6bcb4d0c418~mv2.pn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3d2773fba0604a18807cc6bcb4d0c418~mv2.webp)
[영주먹] AI 시대의 (학술) 번역?
작년에 운 좋게 책 한 권을 번역할 기회가 생겼다. 각주를 포함해 약 500쪽에 이르는 분량이라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AI를 활용하면서 노동 부담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작업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초벌 번역을 AI에 맡긴 뒤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며 어색한 문장이나 오류를 인간이 교정한다. 혹자는 AI 번역의 신뢰성을 문제 삼을지도 모르나, 초보 번역자인 내 입장에서 AI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엑셀을 사용하면서 함수를 쓰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생성형 AI는 언어에 특화된 모델이기에 복잡한 문장 구조를 분석하여 다른 언어로 재조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초벌 번역을 AI에 맡기면 외국어 단어를 잘못 읽거나 복잡한 구문을 부분적으로 누락하는 인간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여하튼 그렇게 난 AI를 조수 삼아 9개월만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고, 올해 또 다른 책들을 번역하려고 계속 작업 중에 있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20일3분 분량
![[영주먹] 지식, 지식, 지식을 만듭시다: 생산적인 일로서의 지식 만들기에 대하여](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ca0f36418374201bb3c8d72a643eff0~mv2.pn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ca0f36418374201bb3c8d72a643eff0~mv2.webp)
![[영주먹] 지식, 지식, 지식을 만듭시다: 생산적인 일로서의 지식 만들기에 대하여](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ca0f36418374201bb3c8d72a643eff0~mv2.pn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2ca0f36418374201bb3c8d72a643eff0~mv2.webp)
[영주먹] 지식, 지식, 지식을 만듭시다: 생산적인 일로서의 지식 만들기에 대하여
어릴 때 선생님이 장래희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될래요!" 대신 "더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요!"고 말하고 "CEO가 되고 싶습니다." 대신 "저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라는 소리다. 대학원에 입학한지 어언 n년.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장래에 교수가 되는 거냐고 물어본다. "아니 애초에 박사 따도 교수 되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요...." 부터 시작해서 연구원이 될 수도, 강사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나에게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학위 보유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고 지식노동으로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자리는 바늘구멍 같은 지금, 장래 희망하는 직업을 명명한다 한들 구체적인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 선생님의 가르침과 같이 ‘교수’, ‘연구원’, ‘강사’ 등등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20일4분 분량


그저 연구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지난 탁상공론에서 언급했던 ‘대명절’을 맞아 시작했던 우리의 연구재단 지원사업 살풀이는, 어느덧 학술제도의 틀과 협상해야 하는 연구자의 삶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었다. 각종 지원사업과 제도가 구성하는 프레임 속에서 연구자 개인의 삶, 생애주기, 감정, 관계, 그리고 연구 속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지금 당장 빠르게 쓸 수 있는 논문 주제를 선택하면서, 경쟁하는 동료의 좋은 소식을 선뜻 축하해 주지 못하면서, 나의 학술적 농도가 축적되기보다는 소진되는 느낌을 겪으면서, 혹은 남들보다 느린 연구자로 사는 불안감을 겪으면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특정한 방식의 ‘연구자 되기’를 요구받게 되는 걸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연구자의 생애 모델은 불가능한 것일까. 서로 다른 속도, 서로 다른 소속(나아가 소속 없는 독립연구자까지도), 다양한 연구의 가치가 고루 존중받는 학문 생태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장기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20일9분 분량
![[별일없] 내 연구 과정의 목격자가 되어줘: AI가 아닌 동료에게 내 연구 입력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3255e138af06480fac08a08921b24ea0~mv2.pn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3255e138af06480fac08a08921b24ea0~mv2.webp)
![[별일없] 내 연구 과정의 목격자가 되어줘: AI가 아닌 동료에게 내 연구 입력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3255e138af06480fac08a08921b24ea0~mv2.pn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3255e138af06480fac08a08921b24ea0~mv2.webp)
[별일없] 내 연구 과정의 목격자가 되어줘: AI가 아닌 동료에게 내 연구 입력하기
최근 동료들끼리 시작한 세미나가 있다. 매주 한 번씩 모여 일주일 동안 해온 작업을 공유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는 연구 주제와 관련된 논문 1편을 읽고 정리해오고, 누군가는 작업 중인 글에 몇 단락을 더 추가해온다. 혹은 자신이 준비 중인 강의안을 가져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세미나의 원형은 내가 박사과정을 보낸 학교의 수업 중 하나인 ‘논문세미나’이다. 수강생은 각자 학위논문 작성에 필요한 논문을 읽고 발제하고 서로의 발제문에 토론을 한다. 정해진 주제가 있는 게 아니고 각자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구관심사를 바탕으로 발제를 하다보니, 논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인식론적 관점과 이론적 틀 그리고 구체적 연구 대상까지 서로 일치하는 게 없다. 그래서 다른 이의 연구 내용을 듣고 토론하는 게 직접적으로는 내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 동안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건 동료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7일4분 분량


[이편영시] 나의 학술토론 추구미
노릇하기란 참 어렵다. 우빈의 고민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좋은 토론자 노릇을 하기는 왜 어려울까? 그건 ‘좋은 토론자‘란 무엇인지, 또 ‘좋은 토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거야. 게다가 학자들은 실제로 자신이 평생 하고 살아가게 될 대부분의 일들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상태로 직업을 갖게 되잖아. 교수법을 배운 적 없이 강의자가 되고,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 제작 기술이나 구두 발표의 구조를 짜는 법을 아무도 가르치지 않지만 평생 그런 발표를 하며 살아야 하고, 실제 직업 세계에 가면 펀딩을 요령 있게 따내는 일이 너무 중요한데 그런 건 그 누구도 가르치거나 집단적으로 그 역량 강화를 고민하지 않아. 이렇게 암묵지로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일이 ‘토론하기‘일 거야. 우리는 보통 먼저 학계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강의 감을 잡고, 우연한 기회를 얻어 바로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7일5분 분량


연구재단 지원사업 N년차, 살풀이 하러 왔습니다
1990년대 '학진 체제'의 부상이 많은 비판적 사회과학자들에게 우려를 불러일으킨 이후, 그 후신인 한국연구재단의 각종 지원사업들은 오늘날 다수의 연구자들에게 거의 필수적인 제도로 자리잡고 있다. 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 A · B유형, 최근 신설된 석 · 박사과정 연구장려금, BK연구생 장학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업들은 인문사회 분야 박사학위자들과 대학원생이 무급이나 저임금의 학술노동 대신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수많은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이 제한된 과제수를 두고 '닥터피쉬'처럼 몰려들며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인문사회 학술생태계가 위기라는데, 한 줌도 남지 않은 내 동료가 잠정적 경쟁자가 되는 순간은 너무나 자주 온다. 웹툰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 작가 듀선생은 최근 이렇게 닥터피쉬들이 모여드는 연구재단 사업 신청 기간을 '대명절'이라 불렀다. 우리는 바로 이 대명절을 앞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월 7일8분 분량
![[논뒤사] 웹소설 연구자 이재희의 감정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e79c17bc16a7404d80d2861993587a30~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e79c17bc16a7404d80d2861993587a30~mv2.webp)
![[논뒤사] 웹소설 연구자 이재희의 감정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e79c17bc16a7404d80d2861993587a30~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e79c17bc16a7404d80d2861993587a30~mv2.webp)
[논뒤사] 웹소설 연구자 이재희의 감정들
재희는 봄 학기 수업에서 만난 학생이었다. 연구방법을 다루는 수업이었고, 학기 둘째 주에 처음 어떤 주제로 이번 학기 연구할지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주 완성된 논문 초고를 발표하면서 마무리하는 수업이었다. 재희의 연구 소재는 웹소설이었고, 나는 단 한 번도 웹소설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피드백 주는 일에 약간의 막막함을 겪기도 했다. 웹소설 독자 연구참여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쩐지 괜한 열정과 오지랖에 불타 그 시기에 누군가가 웹소설을 읽는다는 말만 들으면 인터뷰에 연결해 줄 수 있는지를 묻고 다녔던 일도 생각난다. 많이 연구되지 않은 소재와 주제, 접근 방식에 초기 경력 연구자가 겪는 어려움까지 겹칠 것이 객관적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연구가 잘 굴러가게 될지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재희는 학기가 끝나고 더운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학술지 게재 심사에 통과했다는 기쁜 소식을 공유해 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1월 24일6분 분량
![[이편영시] 좋은 토론자가 되고 싶어요](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93f32c80cec462f9bffceca2d386e48~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493f32c80cec462f9bffceca2d386e48~mv2.webp)
![[이편영시] 좋은 토론자가 되고 싶어요](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93f32c80cec462f9bffceca2d386e48~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493f32c80cec462f9bffceca2d386e48~mv2.webp)
[이편영시] 좋은 토론자가 되고 싶어요
어쩌다 보니 기세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서우빈이 되어버렸는데요. 같이 박사과정 1학기를 마친 지금 시점에서 한 학기를 ‘기세’있게 보냈냐하면 ‘아닌데요ㅠㅠ(눈물줄줄)’를 강력히 외쳐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1학기를 회고해보자면 선우가 더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큼 학술장 안에서 더 좋은 ‘토론자’가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한 학기였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헤맬 때 쉽게(?) 기댈 수 있는 나의 센빠이 선기쌤께 편지를 빙자한 ‘좋은 토론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썰’을 풀고 그 답을 내놓으라고 닦달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써보려고 합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최근에 한 학회에서 겪었던 일 때문이었는데요. 상황은 한 석사과정생의 발표에, 박사수료 이상으로 보이는 분이 토론을 맡은 순간이었습니다. 토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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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3분 분량
![[하...] 종교라는 이야기, 이야기라는 종교: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503b7038fed24fbdbcd36dfac9990de3~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503b7038fed24fbdbcd36dfac9990de3~mv2.webp)
![[하...] 종교라는 이야기, 이야기라는 종교: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503b7038fed24fbdbcd36dfac9990de3~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503b7038fed24fbdbcd36dfac9990de3~mv2.webp)
[하...] 종교라는 이야기, 이야기라는 종교: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와 연극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맹세코 청룡영화제 무대를 보고 박정민에게 입덕하여 연극까지 보러 간 것은 아니다. 다만 청룡영화제 무대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게, 그 무대가 워낙 화제가 된 덕분인지 내 SNS 타임라인에 박정민이 계속 흘러 들어왔고 그러다가 연극 소식까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평받은 소설과 호평받은 영화, 그리고 브로드웨이에서 역시나 호평받은 연극까지. 한 이야기가 세 가지 버전으로 각색되고, 그렇게 여러 배우가 한 인물을 거쳐 가게 되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그 과정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표를 예매했다. 마침 20% 할인까지 했으니까. 같이 보러 가는 친구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해서,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영화도 한 번 더 같이 봤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이야기는 새삼 참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구나, 생각했지만 연극은 그러한 끔찍함이 더욱 생생하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1월 9일4분 분량
![[이편영시] 더 좋은 독자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webp)
![[이편영시] 더 좋은 독자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webp)
[이편영시] 더 좋은 독자되기
신진 1호가 나왔을 때… ‘이 편지는 영국이 시작되어’라는 코너명을 기억하시나요? 아쉽게도 답장을 받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영국에서 출발해서 그런지(아님) 한국으로 오면서 어디선가 사라졌나 봐요. 편지는 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카카오톡에 1이 사라지느니 마느니 하지만, 우체통에 넣고 기다리던 시절에는 집배원이 자루에 우편을 쏟아 내다가 흘리거나, 잘 담겨도 하필이면 자루에 난 구멍 때문에 길 위에 떨어지거나, 분류원이 악필로 쓰인 주소를 잘못 봐서 수취인 불명으로 분류되거나… 다 쓰기도 어렵네요. 아무튼 제 손에서 떠난 편지가 어떻게 될지는 세상의 몫인 거죠. 하지만 계속 개점휴업일 수는 없으니 다시 릴레이를 시작해 보고자, 이번에는 우빈쌤에게 편지를 써요. 우빈쌤도 받아 보시지 못한다면 아마 저는 이편영시의 고정 필자가 되겠죠. “김선우의 수취인 불명”... 후후. 신진이 어느덧 21호에 이르렀고 첫 편지를 썼을 때 석사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1월 9일3분 분량


웹진 만들어보니 참 좋더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은 매년 초, 워크숍을 통해 그해의 업무를 나누어 담당한다. 2025년에서는 신규 사업으로 웹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김선기 , 김선우 와 김지수 그리고 조윤희 가 웹진 편집위원에 자원하게 된다. 사실 웹진을 시작하자고 했을 때 각자가 내심 그리고 있던 상은 서로 조금씩 달랐다. 반년에 한 번씩 묵직한 문제의식으로 연결되는 기획을 던져볼까, 아니면 매주 하나의 글만 실어볼까? 혹은 한 달에 한 번은 어때? 3월 29일 0호를 발간하기까지 서로 의견을 조정해 나가고 하나의 ‘추구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발행주기, 글의 길이, 글의 톤과 주제 등등. 웹진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많은 사전 설정에 대한 합의를 필요로 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글이 실리게 되는 21호까지 오게 되었다. 신진 편집위원들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지난 1년을 돌아보기로 했다. 신진 최초 실명(!) 탁상공론을 통해 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1월 9일7분 분량
![[하...] <신진> 편집의 시간들이 내게 준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pn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webp)
![[하...] <신진> 편집의 시간들이 내게 준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pn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webp)
[하...] <신진> 편집의 시간들이 내게 준 것
올해 4월, 네 명의 편집위원과 함께 시작한 신문연의 웹진 레터 <신진Sinzine> 이 어느덧 한 해의 작 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처음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던 건 단체만의 고유한 의제가 깃들거나 시의적인 주제를 다루는 글을 평소보다는 자주, 그러나 무겁지는 않은 톤으로 다룰 수 있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서였다. 다들 너무 바쁘다 보니 과연 격주에 레터를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냥 해보지 뭐, 몇 번 하고 안 되겠으면 무르자”로 시작했던 레터가 기어이 20호를 내는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창간호 이후 1년이 약간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평소에 교류하던 인적 풀보다 훨씬 다양한 필자와 참여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글을 실어 왔다. <신진>의 한 해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나 앞으로의 편집과 기획 방향에 대한 의견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다루기엔 지면이 협소해 곧 준비할 기획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글에서는 한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25년 12월 24일4분 분량


대학 시간강사의 기쁨과 슬픔
이른바 ‘초보 강사들의 탁상공론’을 진행하다 보니, 비정규 강사들의 경우 바로 옆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강사하고도 연결될 수 있는 경로가 없고, 강의, 즉 자신의 노동과 관련한 고민은 매우 많지만 그걸 막상 동료 강사들과 나눌 수 있는 경험은 과소함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번에 재계약 됐어요?” “채점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AI 때문에 큰일이다” 정도의 스몰토크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고민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철학적인 부분까지 나눌 수 있는 경험을 나누는 일은 대학원생 단위에서도, 강사 단위에서도, 아마 학계의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모자랄 것이다. 2부에서 소개할 고민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의 생성형 AI 사용과 관련하여 강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우 긴급한 고민, 둘째는 전임이 아닌 비전임 강사로서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과 아쉬움에 관한 고민, 셋째는 전달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25년 12월 13일11분 분량
![[영주먹] 제주에서 사회학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b0891456a9af49e4a57c3aebd223530a~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b0891456a9af49e4a57c3aebd223530a~mv2.webp)
![[영주먹] 제주에서 사회학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b0891456a9af49e4a57c3aebd223530a~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b0891456a9af49e4a57c3aebd223530a~mv2.webp)
[영주먹] 제주에서 사회학하기
제주에서 사회학을 한다는 건 여러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일이다. 부분적으로 이는 제주가 서울과 물리적으로 단절된 섬이자 관광지라는 이유로 인해 발생한다. 제주에서 학술행사를 기획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 중 하나는 육지에서 오신 손님들의 숙소와 식당 예약이다. 공항에서 행사장과 뒤풀이 장소까지 동선을 체크하고 이동수단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행사 다음 날에 ‘투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러다 보니 여행사가 하는 일이랑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느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행사로 연을 맺게 된 분들에게는 뭔가 맛집이라도 알려드려야 하진 않을까 하는 책임감도 들고. 이미 많은 ‘신진’ 연구자들이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제주에서의 학문하기 역시 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제주’ 연구자가 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제주의 ‘현장’을 연구하고 육지 연구자들에게 제주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25년 11월 14일3분 분량
![[뭘까저건]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과 실존주의적 지식인](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630abd65e10422b93e8e146fb6a87f8~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630abd65e10422b93e8e146fb6a87f8~mv2.webp)
![[뭘까저건]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과 실존주의적 지식인](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630abd65e10422b93e8e146fb6a87f8~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2630abd65e10422b93e8e146fb6a87f8~mv2.webp)
[뭘까저건]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과 실존주의적 지식인
‘바로 그때, 수 많은 모순들이 응축되어 있었다.’ 더 이상 종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새로운 인식론적 혁신이 발아하는 순간에 대한 학술세계의 설명, 왜 그것은 다름아닌 그때에 그와 같은 모습으로 출현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관한 학술적 응답은 주로 모순들의 응축으로 갈음된다. 이른바 학술적 혁신의 빅뱅(Big Bang) 이론이다. 특정한 시점에 여러 모순들이 동시적으로 발생할 때, 인식론적 혁신은 발생한다고 우리는 가정한다. 영국 신좌파와 문화연구의 등장에 관한 지난 역사쓰기 작업은 중첩된 모순들이 혁신을 이끌었다는 빅뱅이론의 대표적 예다. 미국 중심의 문화연구자들로 구성된 ‘Cultural Studies Association’에서 발행하는 저널 <Lateral>은 2019년부터 ‘Years in Cultural Studies’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기획을 진행중인데, 해당 기획에서는 문화연구라는 학술 프로젝트와 관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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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4분 분량
![[하...] 대학원에 온 죄를 고백합니다 (feat. 대학원생 생존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8ad6fffe9d64e76bad2978088e26526~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8ad6fffe9d64e76bad2978088e26526~mv2.webp)
![[하...] 대학원에 온 죄를 고백합니다 (feat. 대학원생 생존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8ad6fffe9d64e76bad2978088e26526~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28ad6fffe9d64e76bad2978088e26526~mv2.webp)
[하...] 대학원에 온 죄를 고백합니다 (feat. 대학원생 생존기)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그러나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원에 왔으니 죄를 찾아보자면 학부생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열심히 세상을 돌아다닌 죄 정도가 있겠다. 그 덕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대학원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죄는 대학원에 온 것 그 자체가 아닐까? 그 죄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결혼도 취직도 하지 않은 비생산청년으로 남아있다. 학석사연계를 통해 대학원에 발을 들였을 당시에는 나의 대학원 생활이 이리 길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공부가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면 석사 학위는 학부에서 공부하며 가지게 된 개발협력 전문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석사 수준의 학력’을 충족시키는 스펙 정도로 생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부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늪 같은 것이었고 연구란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다 쥘 수 없는 아득한 세계였다. 결국 이 업계에 몸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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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4분 분량
![[뭘까저건] 우리에겐 새로운 팬덤 언어가 필요하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7f89b30b0ad408fb143f96494916dcf~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67f89b30b0ad408fb143f96494916dcf~mv2.webp)
![[뭘까저건] 우리에겐 새로운 팬덤 언어가 필요하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7f89b30b0ad408fb143f96494916dcf~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7f89b30b0ad408fb143f96494916dcf~mv2.webp)
[뭘까저건] 우리에겐 새로운 팬덤 언어가 필요하다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그날은 ‘재현에서 대상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날이었고, 누군가 쪽글에 여성 아이돌의 의상과 ‘팬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팬이자 팬덤 연구자였던 나는 이내 손을 번쩍 들고 그건 팬보다는 대중의 욕망에 가까운 것 같다며, ‘대중’과 ‘팬덤’의 욕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감사하게도(?) 동료 몇몇이 나의 논의에 공감해주며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을 마무리하던 선생님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실 일반 ‘머글’들은 대중과 팬덤을 잘 구분하진 않아요.”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았다. 내가 ‘당사자성’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서 쪽글에 나온 ‘욕망’은 팬덤보다는 일반 대중의 것에 가까웠기에 이것은 중요한 차이이자, 팬덤 연구가 말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묘한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예컨대, 팬이 아닌 누군가가 팬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건 팬덤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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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1일4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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