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먹] 정당 활동가였던 내가 정당정치 연구를 한다는 것은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3일 전
- 4분 분량

‘섬’을 떠나기까지
2024년 2월, 나는 7년 간 이어오던 정당 활동을 그만두었다. 18세 참정권 운동을 계기로 정당과 인연을 맺은 스무 살부터(어쩌면 열아홉 살부터) 지금까지, 이십 대의 전부를 쏟아부은 정당에서 나는 스스로 벗어나기를 선택했다. 벗어남의 순간은 요란했다.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예약메일로 걸어둔 당직 사직서는 기자회견 시작 시간에 맞추어 경남도당으로 보내졌다. 기사가 많이 났다. 시끌시끌하게 7년 간의 제도권 정치인, 혹은 정당 활동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대학원으로 돌아왔다.
내가 벗어남을 선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연구자로서 내가 소속된 정당의 정치적 선택과 행보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소속 정당은 위성정당을 또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2020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2024년에도 명분은 ‘국민의힘이 의석을 가져가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은 점차 극우화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든 정치세력이 상대 정치세력을 저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만든 제도를 너무나 손쉽게 파훼하려는 것에는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위성이 있을 곳은 우주이지 정치권이 아니지 않나.
또한 갈수록 후퇴하는 당내 민주주의 문제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당 주류에 속한 인물들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개 비판하였던 적이 있다. 그 이후 우리는 여러 불이익을 받으며 주변화되었다. 당의 행보와 노선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었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관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기 여의도에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고, 건강한 토론과 경쟁 대신 ‘수박’몰이와 악마화가 일상이 되어 있었다. 또한 청년 그룹 내에서의 갈등과 배제는 내가 이 공론장 내에서 무언가를 계속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하게 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당의 선택에 군말 없이 동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선거전략’의 일환으로서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또 당에서 어떤 난타전이 벌어지든 내 미래를 위해서 입과 귀를 닫고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의자를 나르다 보면 보좌진이든, 당직자든, 선출직 지방의원이든 뭐든 무난히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곳에 계속 있었다면 나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제도권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에서의 다원주의,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의 나는 양심상 차마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학문 프라이드’에 취한 석사과정생의 급발진(?)이거나 정치인으로서 ‘감 없는’ 행동이었을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것이 설령 급발진이고 ‘감 없는’ 행동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부조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문적 양심과 신념 때문인 것도 있지만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쓰는 글과 내 연구에 배치되는 삶을 살지는 않아야지, 하는 생각. 그 생각은 나로 하여금 7년 간의 정당 생활을 과감히 정리할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20대의 전부를 갈아 넣은 여의도라는 ‘섬’을 떠났다.

‘섬’이 내게 남긴 것: ‘돕는 연구’라는 나의 정치
활동을 그만둔 뒤 눈앞에 닥친 가장 시급한 일은 학위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 했다. 논문 작업을 좀 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두고 온 것들’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찝찝했다. 심지어 논문 주제는 ‘청년 정당 활동가’에 관한 것이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새벽까지도 책상 앞에 앉아 있자면 누구는 당에서, 누구는 의회에서 ‘1인분’을 하고 있을텐데 나는 지금 뭘 위해서 이걸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늘 떠다녔다.
일단 무엇을 위해 이 일(논문 쓰기)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당 활동을 했고, 어떤 것들을 이뤘고 또 이루지 못했는지, 왜 그러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운동을 통해서 제도권 정치와 인연을 맺은 이후, 나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정치가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경우 성과를 거두었고 효능감을 얻었지만 동시에 구성원들과 갈등하기도 했고 현실에 순응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기도 했으며 주변화를 겪기도 했다. 이 일들은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돌아보면 그것은 내게 피로감과 섭섭함을 가장 많이 남겼던 것 같다. 좋았던 시간도 분명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나의 말과 행동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고, ‘무슨 의도가 있을거야’라며 늘 남을 의심하고 분석하듯 보아야 했던 시간들. 상대편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내 일이 되어버린 시간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증오해야 했던 시간들이 가슴 속에 얹힌 것처럼 내려가지 않고 쌓여 있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논문을 통해 나의 7년을 정리하고 한 챕터를 넘기는 계기로 삼아보자’그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한결 편해졌다. 청년 정당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들으며 나의 정당 활동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정당은 달라도, 출신 지역은 달라도, 다들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었다. 나와 인터뷰 했던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정말 좋은 세상 한 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인터뷰 내내 둘이서 소위 ‘앓는 소리’를 주고받다가 그 말을 들으니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도전하고 살아가는 동료들이 있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뭐라도 해보려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이르러 나는 드디어 내 연구의 이유를 찾았다. 내 연구의 이유는 지금도 정당에서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정치의 한 방식이다.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미움도, 슬픔도, 섭섭함도, 피로감도 다 지난 챕터에 끼워두고 이제는 그들 모두가 잘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한 지 어느덧 1년 조금 더 지났다.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머리를 싸매고 힘들어하기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풀리지 않는 일들에 답답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좋아하는 신해철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고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읽고 글을 쓴다. 막막한 길이라도 꾸준히 걷다 보면 나의 연구가 내 옛 동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글. 김민재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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