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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sinzine
![[이편영시] 전일제 대학원생의 갓생 살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14190b4396e4684a5f2c386b4e4a171~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414190b4396e4684a5f2c386b4e4a171~mv2.webp)
![[이편영시] 전일제 대학원생의 갓생 살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14190b4396e4684a5f2c386b4e4a171~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414190b4396e4684a5f2c386b4e4a171~mv2.webp)
[이편영시] 전일제 대학원생의 갓생 살기
새로운 학기의 소회를 물어보는 승호쌤의 편지를 받은 지 넉 달이 지났네요. 아마 학기의 초중반쯤에 답해야 할 질문이었을 텐데, 이제야 답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가 얼마나 정신없는 학기를 보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저의 박사과정 두 번째 학기는 다행히도 끝이 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게 무슨 말인지는 곧바로 설명드릴게요. “잘 지냈어?”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지 고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몇 번 있어요. 그 질문은 너의 안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의례적인 구절이라고 말이에요. 나의 ‘진짜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나 잘 못 지냈어”라는 말을 입에 머금고 상대방에게 회한의 심정을 담은 눈빛을 보내려 한다면, 그건 사회성이 없는 사람인 거라고요. 마찬가지로,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들과 이맘때쯤 대화를 하게 되면 “이번 학기는 어땠
7월 25일
![[영주먹] 여전히 모르겠는 대학원 입문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aafa4c4318394a6d81ecc5dfc7dc8f7c~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aafa4c4318394a6d81ecc5dfc7dc8f7c~mv2.webp)
![[영주먹] 여전히 모르겠는 대학원 입문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aafa4c4318394a6d81ecc5dfc7dc8f7c~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aafa4c4318394a6d81ecc5dfc7dc8f7c~mv2.webp)
[영주먹] 여전히 모르겠는 대학원 입문기
대학을 졸업하며, 나는 대학생이 아닌 대학(원)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보낸 지난 몇 개월은 붙잡을 정신도 없이 금방 지나가 버렸고, 나는 한 학기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석사 1학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론 이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나는 당장 한 달 조금 뒤에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 학기의 마무리를 맞이하여, 개인적인 푸념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또 공감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혹은 이전의 나처럼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간단한 소회를 적어 보고자 한다. 먼저 대학원에서 보낸 반 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 탓일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대학원생이라기보다는 학부의 심화된 연장쯤으로 자각하는 것 같다. 아무렴, 지난 한 학기는 누가 가속이라도 거는 듯 빠르게 흘러갔다. 많은 무언가를 해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흐른 게 아니라, 할 일에 허덕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금방 갔다.
7월 25일


게임 연구하고 토론할 파티원 구합니다
‘게임을 연구한다’는 말은 사실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연구 분석 대상으로서 텍스트와 미디어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게임 또한 오래전부터 영화와 음악, 웹툰, 유튜브와 같은 문화적 텍스트/미디어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연구자들이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게임을 가져왔을 때 그 장벽과 난관은 작지 않다. 게임 연구자들은 게임이라는 대상을 기존 학문의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어려움에 처했다. 게임 연구에 대해 서로 다른 상위 분과의 언어가 요구하는 규칙은 각자 다르고, ‘연구대상으로서 게임’은 현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식의 비전공 연구자들의 선입견도 여전히 유지된다. 학제적 연구가 늘 그러하듯 국내 게임 연구자들 또한 혼자서 ‘솔플’로 연구를 해야 하고, 자기 분과에서 누가 게임을 연구하는지 발품을 팔지 않으면 서로를 알 수 없다. 연구참여자를 구하거나 함께 토론할 동료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게임
7월 25일


우리는 왜 게임을 하게 되었나
게임을 전공하건 그렇지 않건, 석사과정이건 박사 수료생이건 졸업생이건 우리 주변의 많은 연구자들은 게임을 한다. 그러한 연구자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눴다.
7월 11일


[영주먹] 현장 연구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의 어려움
인류학에서 현장 연구(필드워크)란, 현장에 들어가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인류학 공부를 마음먹은 이유도 현장연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자의 몸이 지식 생산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작년 말 다녀온 짧은 현장연구는 어색하고도 불편한 기운을 온몸으로 견디는 시간이었으며, 견디는 만큼 우연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연구 현장은 강화도 북부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위치한 양사면의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땅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 종일 새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동네다. 북한과 가까운지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고, 군인들을 드물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검문 과정을 거쳐 엄중한 경고 문구와 출입 시간이 써진 통행증을 받은 후에야 민간인 통제구역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7월 10일


[별일없] 어떤 평범한 상실의 시간
일상의 변화 올해 초, 아빠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자연스런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온몸으로 전이된 암의 증상이었다. 나는 암 중에서도 예후가 안 좋기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설명을 찾아보는 걸 시작으로, 우리 가족에게 닥친 갑작스런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 빼고는 모두 지방에서 사는 덕에,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 위해 아빠는 힘든 몸을 이끌고 여러 차례 서울의 병원을 오갔다. 체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이 서울을 오간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절감했다. 더욱이 서울을 오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 말고는 서울의 지리조차 잘 알지 못하니 자연스레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몫이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의사는 환자를 말 그대로 사물로 취급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었고, 나는 의사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화내며 들이박고 싶은 충동을 부단히 삼켜야 했다. 그렇게 내 일상도 달라졌다. 지금 아빠는 여러 번의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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