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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sinzine
![[하...] 함께할 닉네임을 입력하세요: <게임 토크 클럽> 운영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7d71d4e18ac943228c14fa1bd0e1f442~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7d71d4e18ac943228c14fa1bd0e1f442~mv2.webp)
![[하...] 함께할 닉네임을 입력하세요: <게임 토크 클럽> 운영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7d71d4e18ac943228c14fa1bd0e1f442~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7d71d4e18ac943228c14fa1bd0e1f442~mv2.webp)
[하...] 함께할 닉네임을 입력하세요: <게임 토크 클럽> 운영기
모임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독서 모임, 영화 모임, 운동 모임… 세미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동안 젠더, 퀴어, 장애, 노동, 방법론 등 온갖 주제로 세미나에 참여해왔다. 세미나에서 만난 동료들과 또 다른 세미나를 여는 재미가 있었고, 비슷한 결의 다른 전공, 다른 학교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재미에 직접 세미나를 기획해 이끌어보기도 했었다. 세미나의 큰 틀은 대부분 비슷하다. 함께 책이나 논문을 읽고, 필요하면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그러다 친해지면 끝날 때마다 함께 모였단 핑계로 술을 마셨다. 공부든 자기개발이든 시작은 제법 거창했지만, 세미나 끝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건 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세미나는 지식을 얻는 자리라기보다 관심사가 겹치는 새로운 사람을 얻는 자리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세미나 장소가 학교 바깥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종종 불편함을 느꼈다. 학교 바깥인데도 사람들은
10월 2일
![[영주먹] 지역에서 공부한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8343cf84c3fa436ba226a237d88c2848~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8343cf84c3fa436ba226a237d88c2848~mv2.webp)
![[영주먹] 지역에서 공부한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8343cf84c3fa436ba226a237d88c2848~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8343cf84c3fa436ba226a237d88c2848~mv2.webp)
[영주먹] 지역에서 공부한다는 것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대학원생임을 밝히게 될 때가 있다. 대개는 “그냥 공부하고 있어요” 정도로 이야기하는데 집요하게 그 공부가 취업 준비인지, 학업인지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레 학교와 전공까지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마다 나는 의기소침해진 나를 발견한다. 왜 나는 내가 대학원생임을 밝히는 것에 위축되거나 불편함을 느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고 하나둘 가정을 꾸려가는 친구들과 달리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이라는 점, 석사에서 박사과정으로 넘어왔음에도 그럴듯한 실적 하나 없다는 점은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대학원생임이 드러나면 ‘똑똑한 사람’이라거나 ‘교수님의 노예’, ‘부잣집 딸내미’ 등으로 재단되어버리는 것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실제로 모두 들어본 말이자 모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충
10월 2일


나의 동물 가족을 소개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이 참 많다. 연구자 동료 중에도 마찬가지다.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탁상공론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연구자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연구자들은 동물과 함께 살면서 무엇을 느낄까? 그들은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어떤 결심이 필요했을까? 또한 연구자라는 직업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형식 속에서 동물을 기를 때 발생하는 유리한 점이나 불리한 점이 있을까? 다만 막상 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모아놓고 보니,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가득 찼다(그래서 이번 편만큼은 ‘연구’라는 키워드를 내려놓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참여자들은 각자 자신의 강아지, 고양이를 소개하고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왔는지에 관해 들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어쩔 수
10월 2일
![[별일없] 인터뷰가 나를 살아있게 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85587a53bb54924972f038e870ac6f0~mv2.pn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485587a53bb54924972f038e870ac6f0~mv2.webp)
![[별일없] 인터뷰가 나를 살아있게 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485587a53bb54924972f038e870ac6f0~mv2.pn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485587a53bb54924972f038e870ac6f0~mv2.webp)
[별일없] 인터뷰가 나를 살아있게 해
몇 달간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일은 많았지만 하기 힘들었고, 날은 너무 더웠고, 몸이 어쩐지 아파지기도 했다. 이 기간에는 정말 필수적인 소통 이외에는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태어나길 Introvert(내향적)하게 태어난 건 어쩔 수 없나 고민도 많이 했다. 이런 상태와 성질머리로 스스로 질적 연구자라고 해도 되는 것인지 회의도 들었다. 다행히 나름의 계기가 생겨 나는 여러모로 회복 중이다. 이 회복에는 수면 패턴의 회복이나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따위의 도움도 있었지만, 8월 말부터 새 연구를 위해 하기 시작한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인터뷰도 원래는 7월부터 시작해서 방학 내에 끝내기로 했었는데, 그땐 시작할 마음이 왜 그리 안 나던지.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전국 이곳저곳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꽤나 무리라고 생각할 법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내가 이래서 인터뷰를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을
9월 19일


[최애동향] 기아 없이는 못 살아
1.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19년 차 팬이다. 200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무등구장에서 개막전을 본 뒤로 팬이 되었다. 당시 기아는 9번 우승에 빛나는 해태 시절을 뒤로한 채 두 번이나 꼴찌(2005년, 2007년)를 기록했던 하위권 팀이었고, 그에 걸맞게 그 경기에서도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그래도 저점매수(?)에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바로 다음 해 기아는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인 결과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록 우승한 다음 해부터 고꾸라지는 징크스가 있긴 하지만(2010년 16연패, 2024년 우승 뒤 2025년 8위), 그래도 (새천년 들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팀의 팬들을 생각하면) 7~8년 주기로 한 번씩 우승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아, “김도영 보유 구단”이라는 자부심도 덧붙이고 싶다.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 아직도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2009
9월 17일


[영주먹] 방학에서 무엇을 내쫓을 것인가?
박사 과정 내내 나의 관심사 한편에 내려앉은 단어는 ‘부유(suspension/悬浮)’였다. 부유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중 담론에서 널리 사용된 단어로, 인류학자 샹뱌오(项飚)는 이를 공중에 떠 있으려고 계속해서 날개를 펄럭이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마모되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벌새의 이미지에 빗대어 설명하였다(Xiang, 2021). 모빌리티 연구자인 나에게, 샹뱌오가 말한, 지금 여기의 조건을 바꾸지는 않은 채 끝없이 움직이는 상태 내지는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기업가적 에너지와 정치적 체념의 공존은 줄곧 관심을 끌었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현상과 감각에 관한 관심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둥둥 떠다니는 (그러나 몸에 온전히 힘을 뺀 채로 떠다니는 것도 아닌) 감각에 관한 관심은 단순히 내 연구 관심사 때문만은 아니고 요즘 나의 생활과도 깊게 관련이 있다. 돌이켜보면 부유의 감각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박사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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