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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sinzine


우리는 왜 게임을 하게 되었나
게임을 전공하건 그렇지 않건, 석사과정이건 박사 수료생이건 졸업생이건 우리 주변의 많은 연구자들은 게임을 한다. 그러한 연구자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눴다.
7월 11일


[영주먹] 현장 연구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의 어려움
인류학에서 현장 연구(필드워크)란, 현장에 들어가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인류학 공부를 마음먹은 이유도 현장연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자의 몸이 지식 생산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작년 말 다녀온 짧은 현장연구는 어색하고도 불편한 기운을 온몸으로 견디는 시간이었으며, 견디는 만큼 우연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연구 현장은 강화도 북부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위치한 양사면의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땅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 종일 새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동네다. 북한과 가까운지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고, 군인들을 드물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검문 과정을 거쳐 엄중한 경고 문구와 출입 시간이 써진 통행증을 받은 후에야 민간인 통제구역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7월 10일


[별일없] 어떤 평범한 상실의 시간
일상의 변화 올해 초, 아빠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자연스런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온몸으로 전이된 암의 증상이었다. 나는 암 중에서도 예후가 안 좋기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설명을 찾아보는 걸 시작으로, 우리 가족에게 닥친 갑작스런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 빼고는 모두 지방에서 사는 덕에,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 위해 아빠는 힘든 몸을 이끌고 여러 차례 서울의 병원을 오갔다. 체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이 서울을 오간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절감했다. 더욱이 서울을 오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 말고는 서울의 지리조차 잘 알지 못하니 자연스레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몫이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의사는 환자를 말 그대로 사물로 취급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었고, 나는 의사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화내며 들이박고 싶은 충동을 부단히 삼켜야 했다. 그렇게 내 일상도 달라졌다. 지금 아빠는 여러 번의
7월 10일
![[이불밖] 교생실습 후기: 학급 정치에 관한 몇 가지 생각](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1c3218af30074e2899cc02118a5f7b1b~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1c3218af30074e2899cc02118a5f7b1b~mv2.webp)
![[이불밖] 교생실습 후기: 학급 정치에 관한 몇 가지 생각](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1c3218af30074e2899cc02118a5f7b1b~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1c3218af30074e2899cc02118a5f7b1b~mv2.webp)
[이불밖] 교생실습 후기: 학급 정치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나는 서울의 모 교육대학원에서 교원양성과정을 밟고 있는 교사 지망생이다. 지난 5월 대학원 근처의 한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마쳤으며, 그 과정에서 고민거리가 조금 생겼기에 이곳에 나눠보고자 한다. 이 고민이 부분적으로는 내 성격적인 특징에서 비롯되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분석적, 실천적 쟁점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최대한 정리하여 제시해 보겠다. 그러나 일단은 내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잠깐 풀어볼까 한다. 1) “...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약 11년 전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2학기 부회장으로 뽑힌 내 친구가 말한 당선 소감이다. 우리 반은 후보로 지원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투표할 수 있었는데, 상냥하고 모범적인 인상으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던 내 친구가 본인의 의사와 무
6월 25일
![[하...] 이성애는 정말 비극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제인 워드의 『이성애의 비극』을 읽고](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7d68f5f5f06a46ecbcafcfcc3b34a3f6~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7d68f5f5f06a46ecbcafcfcc3b34a3f6~mv2.webp)
![[하...] 이성애는 정말 비극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제인 워드의 『이성애의 비극』을 읽고](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7d68f5f5f06a46ecbcafcfcc3b34a3f6~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7d68f5f5f06a46ecbcafcfcc3b34a3f6~mv2.webp)
[하...] 이성애는 정말 비극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제인 워드의 『이성애의 비극』을 읽고
이성애자 남성은 지루하다고 일침을 놓으면서 이성애자 여성을 적극적으로 걱정해주는 레즈비언 사회학자 교수라니. 이 콘셉팅 기획력 하나만으로도 내한한 제인 워드를 보러 갈 이유는 충분했다. 제인 워드는 여성혐오로 범벅된 이 구조 내에서 남성이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며, 이성애자 여성은 이러한 비극을 견디면서 살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제인 워드는 이성애의 발명 역사를 살펴보고, 픽업 아티스트 산업에 남성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와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대안으로 내세운 ‘깊은 이성애’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이성애의 비극을 오래전부터 생생하게 겪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제인 워드의 사유를 경유하여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되 나의 관점에서 이성애의 비극이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고민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다. (제인 워드의 비판적 이성애 연구와는 조금 다른 나의 경험과 고민이
6월 25일
![[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webp)
![[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jpg/v1/fill/w_357,h_268,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webp)
[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
“우리는 무엇을 더 했어야 했을까.” 작년에 방영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가 남기는 말이다. 동급생을 살해한 13세 남자 아이는 어쩌다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이의 범행을 뒤쫓던 형사, 심리분석가, 아버지 모두 끝내 답을 찾지 못한다. 남성성의 왜곡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는 심리학의 관행도 이 사건 앞에서 무너진다. 무엇을 어떻게 더 했어야 참극을 예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는 그저 잘못만 인정하고 만다. 작품에서 끝내 범행의 동기와 도구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이 공감했다. 그 난감함이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이 처한 처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작품 속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여태 잊지 못한다. 그는 사업이 잘 되어 일이 몰려들던 순간에 기뻤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며 후회한다. 더 잘 벌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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