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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동향] 이렇게 박새가 되는 걸까

  • 7시간 전
  • 5분 분량



변절자가 된 사연


사회학 외길로 석사 입학한 지도 벌써 2년 차. 졸업 논문을 미루느라 5학기를 바라보는 와중에도, 새에 대한 원고를 청탁받고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컴퓨터 앞에 앉은 나다. 오늘은 반드시 논문 한 줄이라도 쓰리라 결심하고 간 도서관에서 조류학 관련 책만 한 아름 들고 나오며 전공을 바꿔야 하나 자괴감을 느낀 날이 많았다. 이 글은 내가 어쩌다 변절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주저리다. 어쩌다 인간 군상에 대한 관심에서 돌이켜 새들의 군상에 심장이 뛰어버리게 되고야 만 것인지…!!

석사 입학 이래 최고의 성취는 새를 알게 된 일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나는 가끔 나를 탐조의 세계로 입문 시켜준 우리 연구실의 동료 선생님 A를 만나기 위해 이 대학원에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나의 석사 생활은 아주 충분했으니까. 시초는 SF 소설을 읽고 모여 함께 탐조를 하러가는 일명 ‘SF 더하기 탐조’ 세미나였다. 정동 연구, 동물-인간관계 연구자로 구성된 이 모임은 “SF 소설을 통해 다른 세계-짓기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높이고, 탐조를 통해 이 땅에 거주하는 비인간을 알아차리는 기술을 연마한다”는 다소 화려한 취지로 꾸려졌지만, 활동은 단순소박했다. 한강, 남산, 고궁 등 서울 이곳저곳에서 쌍안경을 들고 모여 새를 관찰하고 지칠 때 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소설책에 대해 떠드는, 한 달에 한 번의 모임이 내 석사 생활에 얼마나 환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 함께 탐조하는 동료들과 맞춘 새 티셔츠 자랑


할미새가 저한테 먼저 꼬리쳤다구욧!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 쌍안경으로 새를 관찰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냇가 근방에서 하얗고 조그만 새가 콩콩 뛰어다니다면서 위아래로 꼬리를 흔들던 모습. 마주침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 귀여운 꼬리 떨기는 아직도 나에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생애 처음 본 그 새의 이름은 백할미새. 나를 그 새에게로 인도한 A쌤은 그 새가 백할미새인지 알락할미새인지 헷갈려했지만, 무엇이되었든 모든 이름이 생소했던 나에게는 그 헷갈림조차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그 날 이후로 나는 바로 쌍안경과 새도감을 구입해버렸고, 그 길로 출구는 없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백할미새를 만났을 때, 나는 새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또르르르 울새의 울음소리로 봄을 느끼고, 시끄럽게 울어대며 활공하는 파랑새를 보며 여름을, 도요새 무리를 찾아다니며 가을을, 허구한 날 천변에 나가 오리 떼를 관찰하며 겨울을 느끼는 어엿한 탐조인이 되었다. 새를 알게 된 이래로 사계절의 생존이 용이해졌다. 계절마다 돌아올 새들을 기다리며 덧없다고 느껴졌던 시간에 질서가 생기고 변화무쌍해졌다.


▲ 내가 찍은 백할미새 사진모음 - 하천가에서 보이는 겨울철새. 위아래로 까딱까딱 꼬리를 흔드는 게 특징이다.


새 보기의 매력


탐조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도시가 자연과 분리된 공간이라는 생각을 넘어 야생으로서의 도시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어떤 다른 생물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나에게 새란 까치, 까마귀, 비둘기, 참새밖에 없었고,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본 적 없었다. 탐조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직박구리였다. 삐죽삐죽한 머리에 갈색 볼터치를 한, 비둘기보다 조금 작은 이 새가 이토록 흔하게 주변에서, 그것도 아주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박새, 물까치, 딱새, 동박새, 곤줄박이, 오색딱따구리 등 생소했던 야생조류들이 사실 도시 곳곳에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내 방 창문을 통해 일상적으로 관찰하며 알게 되었다.


▲ 방구석 탐조 – 내 방 창문 앞에 찾아온 새들 (왼쪽에서부터 직박구리, 동박새, 오색딱따구리, 상모솔새)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던 이 존재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작은 기척과 소리에 민감해져야 한다. 각 새들의 형태적 특성, 서식지, 이주 시기, 관찰빈도 역시 종합적으로 암기해야 한다. 그 일이 한 번도 막막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평소에 도감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조우(영어로는 encounter라고 읽고 한자로는 내맘대로 鳥遇라고 써버린다, 하하)하는 순간에 그 정보는 결코 잊힐 수 없는 지식으로 체화된다. 탐조인이 된다는 것은 새에게 반응하는 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누가 나에게 탐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광학장비라고 답할 것이다. 쌍안경, 고배율 카메라, 필드스코프 등 광학장비들은 가까이, 자세히 보게 함으로써 동시에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게 해준다. 따라서 사람들은 새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멀찍이 두고 서서 새들의 모습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탐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래서인지 탐조 관련 정보가 유통되는 주요 통로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쌍안경 카페이기도 하다. 나 역시 새를 보면서 장비에 대한 욕심이 생겨 탐조가 비싼 취미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흑흑)

새를 보는 데에 있어 어떤 광학장비를 사용하는가는 탐조의 태도와 동기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탐조인은 고성능의 카메라만 들고 탐조를 하고, 어떤 탐조인은 아예 사진을 찍지 않고 쌍안경으로만 관찰한다. 사실 탐조를 처음 시작할 때 새를 본 찰나의 순간에 동정―새의 종류를 구별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탐조인들이 처음 새를 보기 시작할 때 동시에 새를 찍는 일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새를 보았는지 기록∙공유하다 보면 더 희귀한 새를, 더 멋지게 찍은 사진을 보며 자연스레 카메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 봄섬탐조에 갔을 때 고성능 카메라로 담은 제비물떼새(좌)와 큰유리새(우). 마치 달력 사진처럼 예쁘고 선명하게 찍혔다.


그러나 내가 카메라를 탐조의 주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사진 찍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내가 탐조를 시작하고 좋아하게 된 동기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였다. 현대 탐조는 서구의 자연사 연구와 조류 표본 수집의 전통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희귀한 새를 찾아 기록하고 수집하던 순수한 호기심과 경탄이, 한편으로는 근대 박물관학과 식민의 역사 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여전히 탐조 최대 시장은 서구권 국가들이 압도적이고, 미국에서는 매년 누가 더 많은 종의 새를 보는지 경쟁하는 Big Year 문화가 있기도 하다. ―이를 자세히 다룬 <Listers>라는 골때리는 북미 탐조 다큐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강추!) 나는 더 많은, 더 희귀한 새의 사진을 촬영하려는(Shooting) 욕망이 새를 사냥해서(Shooting) 수집하던 지난 세기의 욕망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물론 오늘날 새를 촬영하는 모든 사람들의 동기가 그렇다고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많은 새들이 빠르게 멸종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새를 기록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새를 만나는 일이 어느 순간 대상을 수집하려는 욕망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할 뿐이다.


▲ 새를 촬영하기 위해 모여있는 탐조인들. 탐조인들은 쌍안경 + 대포카메라 조합을 통해 서로를 알아본다


탐조는 존버다


아마 비탐조인들이 보기에 탐조인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신기한 새들을 찾아다니는 포켓몬 헌터(?) 같겠지만 ―일부 사실이다^^ , 내가 느끼기에, 못 보던 새를 만나서(이걸 ‘종추’라고 부른다. ‘종 추가’의 준말) 도파민이 터지는 순간은 탐조 생활의 1할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할은 새를 공부하고, 기다리고, 헤매고, 허탕치고, 실망하고, 지루해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도파민 가성비 취미를 찾는 사람은 탐조를 거르는 편이 좋다. 이것이 주변인들이 나의 탐조 취미를 흥미로워하면서 탐조 여정에 동행하고자 할 때마다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지 못하는 이유다. 새들은 몹시 잽싸고, 쌍안경 조작은 낯설고, 몇 시간 동안 새들의 기척만 들을 뿐 단 한 마리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면 피로와 실망감만이 누적되기 마련이다.

나는 초기 1년간 인적 네트워크 없이 혼자서 동네 탐조에 맨땅에 헤딩을 한 끝에, 탐조력은 곧 정보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탐조 고수일수록 언제 어디서 어떤 새가 나타났는지 정보를 전해 듣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새들의 습성에 대한 사전 지식으로 빠르게 새들을 찾아낸다. 그래서 탐조 초보일 때는 이런 고수님들과 탐조를 함께 다니는 것이 탐조력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통한 탐조 고수라도 목표종을 원한다고 다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복(鳥副)’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인기 탐조 굿즈 중에는 종추를 기원하는 종추부적이 있을 정도다.) 내가 새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새가 나를 만나러 와 준다. 탐조에는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경험보다, 그 반대의 경험; 바라는 것이 유예되고 답보 상태에 있는 경험이 훨씬 많다. 수많은 기다림과 좌절 속에서 탐조는 나에게 인내와 겸손을 가르쳐준다.


▲ 새의 외형적 특징을 암기하기 위한 드로잉 새도감. 34종을 그린 뒤 무기한 중단 상태에 있다… 표지(좌)와 박새과 드로잉(우)


매일 새 한 마리씩 그리기


탐조 초기의 나는 최대한 많은 종의 새를 동정할 수 있는 새박사가 되자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동정 마스터의 가장 첫 번째 관문은 박새과였다.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새들 중 하나인데, 박새, 쇠박새, 진박새 박새과 삼총사를 구분하는 일이 왕초보인 나에겐 어려웠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바로 매일 최소 한 종 이상씩 새를 그리는 일이었다. 이미 만나보았지만 동정이 헷갈리는 종부터 시작해서, 꼭 만나보고 싶은 목표종까지.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냥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던 새의 특징을 구석구석 알게 된다. 나만의 새 그림 도감 만들기 프로젝트는 작심 삼십 일에 그치게 되었으나, 요즘도 심신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만나고 싶은 새를 정성 들여 그린다. 내가 그린 새들을 실제로 만나 그 특징들을 확인하게 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박새가 되어버려…


최근에 일본 박새의 단어, 문법 체계를 증명함으로써 그간 인간만이 언어를 구사한다는 학계의 편견을 깨부순 스즈키 도시타카의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를 읽었다. 나도 스즈키상처럼 야생조류 연구를 했더라면 지금쯤 마음껏 탐조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스즈키상은 자신의 인생을 바쳐 박새를 연구한 탓에 생김새가 박새와 닮게 되었다. 나도 조류상이 되어버려도 괜찮으니 조류연구 하고싶다 엉엉. 나 이렇게 사회학 박사는 못 되고 박새가 되어버리는 걸까?

사실 탐조에 대해서 할 말이 더 많은데 (무려 챕터 네 개가 더 있었다.. 탐조인들에 대한 얘기나 재미난 탐조썰도 많음ㅠㅠ)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이미 지면의 취지에서 좀 벗어나버린 것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덕질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다들 탐조 조심하세요.. 박새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 새로 점령당한 나의 인스타 피드



글. 백소현(신문연 회원)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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