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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어렵고 낯설고 막막해도, 재밌습니다

  • 17시간 전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시간 전



솔직히 말하면 공부는 나와 잘 맞지 않다. 공부하는 길을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학부 때 접한 사회학이었다. 처음으로 공부에 흥미를 느꼈고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만큼 대학원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막상 대학원에 와서 마주한 어려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지난 학기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고 막막하다. 그럼에도 재밌다. 무엇이 그렇게 어렵냐면 텍스트 읽는 것부터 답이 없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전체적인 맥락도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문제는 수업을 들으면 오히려 더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의 에너지를 수업 시간에 다 쏟아부어도 '이해했다'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도 감을 못 잡았다. 모든 것이 처음 하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학부 때의 나는 매 수업마다 질문하는 학생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궁금하면 물어봤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원에 와서는 내가 잘하던 것조차 못 하게 되니 나 스스로도 낯설어졌다. 수업 역시 사회학 특성상 발제와 토론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왜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싶었고, 내가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럼에도 지금의 생활이 재밌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하는 순간이 좋고, 학회에 가서 다른 연구자들의 발표를 듣는 것도 새롭다. 그들과 연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직접 연구를 해보는 과정이 재밌다. 여전히 학위논문 주제를 정하는 일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어떤 주제가 연구할 만한 것인지,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연구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은 어렵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묘하게 내가 한 명의 연구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궁금한 주제가 생기면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쓸 만한 데이터가 있는지 코드북을 뒤져본다. 할 줄도 모르는 통계를 AI의 힘을 빌려 일단 돌려보기도 한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금은 꽤 즐겁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질문을 들으며 내가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어려움이 아직까지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채워가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이런 마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내려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에서 MJ의 대사 중 "실망할 거라고 기대하면, 진짜로 실망할 일은 없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나 자신을 아무것도 없는 '0'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지금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만큼 앞으로 하나씩 배우고 채워가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잘 모르겠어도 일단 해보려고 한다. 해보지 않으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시 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대학원생이 되면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자는 자신의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학기를 보내고 오히려 정반대였다. 연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기말 보고서 발표 때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는 엉망이었다. 대충 준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발표가 끝난 뒤 교수님께서는 모르는 것을 절대 혼자 붙잡고 있지 말라고 하셨다. 혼자 고민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묻고, 교수님께도 계속 질문하며 도움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만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연구 주제는 어떻게 잡아요?", "방학 때는 뭐 해요?", "이런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이나 논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어요?", "논문은 어디에서 찾아요?"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질문도 많고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도 많다. 그래도 일단 물어봤다.


신기하게도 하나를 물어보면 하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연구 주제에 관해 물어봤다가 논문을 읽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연구 이야기를 하다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기 차인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랩실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아 자칫 혼자 고립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학기를 보내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모르는 것을 묻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는 것뿐이다. 모르겠으면 일단 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물어본다. 대학원 생활을 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나씩 부딪쳐보는 편이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이유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하고 싶어서였다. 적지 않은 등록금과 취업 준비에 대한 압박이 있는 시기에 2년을 더 공부하는 것은 분명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럼에도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이 정도는 투자해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패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떤가. 해보고 후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학기를 마쳤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고 막막하다.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르면서 일단 해보고, 실패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일을 반복할 것 같다. 다음 학기의 목표는 수업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다. 질문하는 건 그만큼 수업을 이해하고 나름의 생각을 해봤다는 뜻일 테니까. 


개강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다음 학기가 기대된다. 방학 동안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가지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면 지난 학기보다는 조금 더 많이 이해하고, 조금 더 많이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대학원 생활이 지금보다 더 재밌어질 것 같다.





글. 이동현(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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