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동향] 기아 없이는 못 살아

1.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19년 차 팬이다. 200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무등구장에서 개막전을 본 뒤로 팬이 되었다. 당시 기아는 9번 우승에 빛나는 해태 시절을 뒤로한 채 두 번이나 꼴찌(2005년, 2007년)를 기록했던 하위권 팀이었고, 그에 걸맞게 그 경기에서도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그래도 저점매수(?)에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바로 다음 해 기아는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인 결과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록 우승한 다음 해부터 고꾸라지는 징크스가 있긴 하지만(2010년 16연패, 2024년 우승 뒤 2025년 8위), 그래도 (새천년 들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팀의 팬들을 생각하면) 7~8년 주기로 한 번씩 우승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아, “김도영 보유 구단”이라는 자부심도 덧붙이고 싶다.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
아직도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2009년 8월 뜨거웠던 광주의 여름이다. 그달 기아는 24경기에서 20승(!) 4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두었다. 당시에는 저녁 시간만 되면 길거리에 있는 거의 모든 식당에서 기아 경기를 틀어놓았는데, 이는 아마 수도권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역만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WBC 이후로 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데다가, 한때 잘 나가던 해태 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기아가 야구를 잘했으니 그 응원 열기가 오죽했을까. 그때에는 지고 있어도 왠지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고, 실제로도 홈런 한 방으로 지던 경기를 뒤집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만큼 당시의 광주는 야구 하나에 울고 웃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9년 한국시리즈. 상대는 당시 강팀이었던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SK 와이번스였고, 치열한 승부 끝에 시리즈는 7차전까지 갔다. 기아는 1 대 5로 뒤져 패색이 짙던 경기에서 6회 말부터 차츰차츰 점수를 내기 시작해 어느새 5 대 5까지 따라붙었다. 그리고 9회 말 1아웃,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 끝. 당시 야자를 하고 있던 나는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 모여 PMP 화면으로 그 끝내기 장면을 보았다. 홈런이 터지는 순간 교실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너희도 너희 인생에 끝내기 홈런을 한번 쳐봐라.” 경기가 끝난 다음 날 한 선생이 수능을 곧 앞둔 우리를 독려하며 남긴 말이다. 광주에서 초중고를 나온 나에게 끝내기 홈런이란 어쨌든 ‘인서울’을 해서 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었다. 서울로 간다고 해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그 당시로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해 기아의 극적인 우승 덕분인지 수능 당일에는 찍은 것도 많이 맞았고, 그렇게 난 어렵사리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며 광주를 떠나게 되었다.


2.
2010년부터 서울에 온 지로 이제는 서울에 산 지 15년 차가 되었다. 광주는 내게 있어 그리운 고향이지만, 서울의 속도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정적인 곳으로 여겨진다. 혹자는 서울의 번잡함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인지 계속 서울에 남고 싶다. 어제까지 있던 것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서는 일이 반복될 것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나는 다년간의 서울살이 속에서 근대성의 매혹을 경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샬 버먼이 『근대성의 경험』¹에서 파우스트를 통해 형상화했던, 낡은 것들을 파괴한 자리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싶은 욕망이 내게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 같다. 지나온 세계를 뒤로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려는 파우스트적 욕망 말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새로움을 욕망하며 ‘발전’을 추구하는 마음은 동시에 내가 떠나온 것들을 낡은 것으로 밀어내며 나를 정처 없이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할 테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살면서 고향과의 접점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움을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어느 아이돌 멤버의 구수한 광주 억양을 들을 때도 그렇고, 광주에 있을 때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이 사투리 쓰는 것을 들을 때도 그렇다. 서울에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내 발음은 완전히 ‘서울식’으로 고쳐지지 않았다. 가령 ‘재즈’를 ‘째즈’라고 한다거나 ‘샤워’를 ‘쌰워’라고 한다거나. ‘의’ 발음도 여전히 어렵다. ‘의사’를 ‘으사’라고 하고 ‘의자’를 ‘으자’라고 발음한다. ‘의’ 발음을 하려면 ‘으’와 ‘이’를 조합해서 발음해야 한다는 걸 여전히 ‘으이식’해야 한다.
광주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양가감정이 있다. 광주를 떠나고 싶었고 지금도 돌아가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전라도’라는 단어를 발화하는 순간 그 말에 따라붙는 부정적인 수사들을 의식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7시’, ‘홍어’, ‘슨상님’ 같은 표현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어법에 익숙한 나를 여전히 흠칫하게 만드는 단어다. 1990년대생인 나는 과거 세대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겪었을 핍박과 고난을 피부로 경험하지는 않았다. 실제 생활에서 겪는 차별보다는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표상적 혐오에 더 익숙한 편이다. 그런데도 그런 혐오적 정서를 접할 때면 광주나 전라도를 대표하는 집합적 상징에 더욱 마음이 기울게 된다.
광주가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맥락에서 소환되는 계기는 역시 1980년 5월의 광주일 것이다. 최정운이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절대공동체’로서 묘사했던 광주는, 그 시절을 각종 매체를 통해 사후적으로 접했을 뿐인 내게도 강렬한 공통체적 감각을 제공했다. 물론 그러한 재현이 광주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전형화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여전히 5·18을 의문시하고 희화화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더더욱 무언가 ‘기댈’ 대상을 찾게 된다. 특히나 올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이나 배재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따지는 가운데 혹자는 5·18이 지나치게 성역화되었다고 말할 때, 나는 그 소동 속에서 슬픔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의지할 만한 공동체적 감각을 희구하게 되었다. 광주를 떠난 이후에야 내가 그간 의식하지 못했던, ‘광주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3.
그런 점에서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은 내 경험을 조금 더 정제된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를 제공한다. 장애인 퀴어 페미니스트인 클레어에게 망명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장소에서 떨어져 나오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던 장소에 도착한다고 해서 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본래의 장소에서 살아온 역사는 자국을 남기며, 새로운 곳에서도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인정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자긍심의 언어를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레어에게 망명과 자긍심은 완료된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 중인 과정이다. 떠나온 곳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새로 도착한 곳을 완전한 해방의 장소로 이상화하지 않으면서, 그 사이에서 자신을 긍정할 언어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퀴어이자 장애인인 클레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곳에서 떠나온 경험과, 수도권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를 떠난 나의 상경을 같은 층위에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클레어가 ‘망명과 자긍심’이라는 말로 포착한 떠남과 애착의 모순은 내가 고향과 맺어온 관계를 돌아볼 언어를 제공한다. 내게 있어 수험 생활에서의 ‘인서울’은 광주에 남아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떠난, 얼마간 자발적인 망명이었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해서 ‘온전한’ 서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의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자가를 마련하는 ‘평균적인 삶’의 공식에서 벗어난 내게, 서울은 여전히 마음 놓고 ‘내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고향으로는 돌아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정착한 곳에서 안정감을 찾지도 못하는 내게는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마련해줄 수 있는 자긍심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아 타이거즈는 내게 자긍심을 발견하게 해주는 하나의 매개가 된다. 기아는 연고지를 넘어 전국적으로 많은 팬을 거느린 구단인데, 그 배경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호남을 떠나 전국 각지로 흩어져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역사가 놓여 있다. 타이거즈를 향한 팬들의 오랜 사랑에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지역의 현실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애환이 얼마간 포개져 있다. 지금도 광주는 ‘기아차가 없으면 일자리가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도 광주는 정말 ‘기아 없이는 못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올해 반도체 공장 유치를 둘러싼 논의가 호남 지역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받아들여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기아 타이거즈라는 구심점이 있으면,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같은 팀을 응원할 수 있다. 사정과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한 팀을 향한 애정만으로 일시적이나마 공동체적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기아의 승리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팬들은 「남행열차」를 열창하곤 한다. 그 순간 집 떠나온 이들의 애환과 고달픔은 응원가에 녹아들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감각을 되새긴다. 한여름 저녁, 기아 경기로 온 도시의 브라운관이 반짝이던 때를 아련히 회상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지나친 낭만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의 의미란 본래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그런 식으로 나는 ‘기아 없이는 못 살아’라고 외치며, 이제는 의미가 달라진 내 고향 광주를 깊이깊이 추억하고 싶다.

¹ 원제는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로,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사라진다’로 번역할 수 있다.

글. 서준상
편집.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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