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동향] 죽어도 아스날, 그럼에도...
- 2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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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2026년 5월 20일 새벽.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25-26시즌 37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 본머스의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났다. 잔여 경기는 38라운드 한 경기. 2위인 맨시티는 이번 경기 결과로 승점 78점. 38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둬 승점 3점을 추가하더라도 최종 승점은 81점. 37라운드가 종료된 이후 아스날 FC(이하 아스날)의 승점은 82점. 우승을 향한 레이스는 끝났다. 아스날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정. 22년만에 거둔 쾌거. 맨시티와 본머스의 경기를 시청하던 아스날 선수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아스날의 홈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있는 영국 런던의 이슬링턴 지역은 밤새 뛰쳐나온 수만 명의 팬들이 터트린 폭죽과 22-23 시즌부터 아스날의 앤썸(상징곡)이 된 ‘The Angel’의 후렴구인 “North London forever, whatever the weather, this streets are our own”이 울려퍼졌다.
이 장면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오랜 기간 아스날의 팬이었던 내게 큰 감흥을 줬다. 22년 간의 기다림. 응원하던 팀이 기나긴 암흑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쾌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암흑기에서 벗어난 22-23 시즌부터 매년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하여 3년 연속 2위라는 - 당연히 훌륭한 성적이지만 - 우승 외에는 잊혀지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더욱 아쉬운 결과를 받았기에 지난 25-26 시즌의 우승은 팬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고양감을 줬다.

시간을 거슬러 22년 전, 2004년 4월 26일 새벽. 나는 당시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다니던 대학의 자퇴를 결정하고, 거실로 나와 TV를 틀었다. 채널은 아마 MBC ESPN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스날과 토트넘의 경기. 시간이 흘렀기에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마 03-04 시즌 35라운드 경기였을 것이다. 당시 아스날은 승점 81점으로 1위.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당시 2위인 첼시를 따돌리고 우승 확정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아스날의 북런던 지역 라이벌인 토트넘. 경기 역시 토트넘의 홈 구장이었던 화이트 하트레인이었다. 경기는 순조로웠다. 전반까지는. 경기가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않은 시점. 아스날의 미드필더, 파트리크 비에이라의 선제 득점이 터졌다. 이후 전반 30분이 넘어가는 시간에는 아스날의 윙어, 로베르 피레의 후속 득점이 나왔다. 전반이 끝난 시점 스코어는 2:0. 우승이 확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반 토트넘의 반격이 거셌다. 토트넘의 제이미 레드냅이 추격 득점을 하고, 이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정규 시간이 끝난 시점 토트넘의 간판 공격수였던 로비 킨이 득점에 성공했다. 스코어는 2:2. 비기기만 해도 우승 확정이었지만 토트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행히 그대로 경기는 종료되었고, 아스날은 35라운드에 조기 우승 확정. 이후 잔여 경기 4경기는 2승 2무로, 아스날은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프리미어리그로 개편된 이후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런 영광의 순간은 없었다. 올해 5월 20일 전까지는. 이후 아스날은 새로운 홈구장 건설로 인한 막대한 부채와, 기존의 홈구장이었던 하이버리의 부지를 부동산 개발 부지로 매각하려던 계획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전지구적 금융위기로 좌초되었다. 그리고 열악한 재정 상황과 더불어 당시 유럽 축구계에 투입된 석유 재벌들의 오일 머니로 인한 선수 이적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적절한 선수 수급을 하지 못해 기나긴 암흑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월, 22년만의 우승은 오랜 아스날 팬인 나에게 더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앞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아스날의 꽤 오랜 팬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아스날과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연고도 없는 지구 반대편 국가의 프로축구 팀의 팬이 되었을까?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8년 월드컵. 당시 월드컵은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꽤 흥미로운 행사였다. 새벽에 거실로 나와 아버지와 함께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PC 게임의 <FIFA 98> 등의 게임 속에 등장하던 캐릭터(선수)들이 실제로 뛰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각 국가의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지구의 행사라는 월드컵이라는 축구 대회 이외에, 당시 보급률이 높아진 각 가정의 PC와, 특히 남학생들의 또래 문화였던 PC 게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때까지도 나는 유럽 프로 축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 그저 ‘호나우두’, ‘베르캄프’, ‘클린스만’ 등 게임에서만 보던 유명한 선수들이 실제로 뛰는 모습을 즐겼을 뿐이고, 어설프게 아버지를 따라 당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 국가대표를 응원했을 뿐이다. 그 때 나에게 충격을 줬던 경기가 바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경기였다. 결과는 5:0으로 한국의 패배. 당시 나는 한국 국가대표팀보다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등의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감탄했었고, 어느덧 그 선수들은 내 마음의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2000년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광랜이 한창 보급되고 있었고, ISDN이라는 이름의 광랜은 우리집 PC에도 연결되었다. 그 결과 나는 새벽, PC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모님의 눈을 피해 ‘띠디디디디디- 띠-’하는 소리를 죽여야 했던 56k 모뎀 연결 대신, 당당하게 저녁에 PC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축구 선수들의 정보를 검색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데니스 베르캄프’, ‘마크 오베르마스’, ‘티에리 앙리’, ‘엠마뉴엘 프티’, ‘로베르 피레’ 등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선수 중 상당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이라는 팀에서 뛰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외 프로 축구를 안방에서 편하게 보던 시기와는 달리, 당시 해외 프로 축구팀의 경기를 보통의 가정집에서 시청할 수 있는 경로는 드물었다. 지금처럼 프로축구 팀의 경기를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플랫폼에서 볼 수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실시간 경기 중계마저, 스카이라이프 등 위성TV를 통해서 ‘ESPN’이나 폭스 코퍼레이션의 ‘스타스포츠’를 통해 미국 또는 현지 중계를 통해 제한적으로 시청할 수 있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우리집은 위성TV에 가입되어 있었고, ‘스타스포츠’를 통해서 아스날의 01-02 시즌 경기를 몇 경기 챙겨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를 아스날로 이끌었던 ‘마크 오베르마스’, ‘엠마뉴엘 프티’ 등의 선수는 이미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였지만, ‘데니스 베르캄프’, ‘로베르 피레’, ‘티에리 앙리’ 등의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내가 아스날의 경기를 처음으로 봤던 01-02 시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스날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던 2002년 월드컵의 열풍이 끝나고, 점점 많은 이들이 해외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영표가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게 되며, MBC가 ESPN에서 본격적으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해준 덕분에 많은 이들이 해외축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앞서 언급한 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개편 이후 유일무이한 아스날의 무패우승을 봤고, 아스날의 팬으로서 느꼈던 자부심은 한동안 시련으로 바뀌었다.
당시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은 우승 경쟁을 하던 팀이었고, 이영표가 뛰던 토트넘은 아스날과 지역 라이벌 팀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스날을 응원하는 것은 소위 ‘홍대병’ 내지는 ‘악당’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과장 조금 섞어서 당시 한국은 ‘맨유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승 경쟁 팀인 아스날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악역 취급을 받았다. 2011년 박주영이 아스날로 이적했을 때, 이와 같은 흐름이 끊기는 듯 싶더니,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되자, 당시 아스날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의 일본 프로축구팀 감독 경험까지 끄집어내어 아스날에는 ‘벵인양요’ 등의 멸칭이 따라붙기 시작했고, 아스날은 한국인이면 응원하지 말아야할 팀 취급을 받곤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 손흥민이 아스날의 지역 라이벌 팀인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한 이후,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심해졌다. 또한 당시 아스날이 암흑기를 겪고 있었기에 아스날의 팬을 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꽤 힘든 일이었다. 한동안 아스날 관련한 축구 기사를 찾아보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2018년, 아스날을 22년간 이끌었던 아르센 벵거 감독이 사임하고, 미국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인 KSE(Kroenke Sports Entertainment)의 소유주인 스탄 크뢴케가 아스날의 단독 소유주가 되었다. 이후 몇 년 간 최악의 시즌들을 보낸 후, 2020년, 아스날의 주장 출신이던 미켈 아르테타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아르테타 감독 부임 이후 세 시즌. 22-23시즌부터 아스날은 과감한 투자로 인한 선수 영입과 아르테타 감독의 전술이 녹아들며, 다시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강호로 돌아왔다. 22-23 시즌, 오랜 기간 1위를 달리다 시즌 막바지 주전 수비수인 윌리암 살리바의 부상으로 인한 부진으로 2위, 23-24 시즌, 역시 오랜 기간 1위를 달리다 승점 2점 차이로 맨체스터 시티에 역전 우승을 허용하며 2위, 24-25 시즌,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지만 그래도 여차여차 2위로 시즌을 마무리. 마지막의 한 끝이 부족하여 만년 2위로 마무리했던 시즌. 팀은 강해졌지만, 사람의 욕심은 간사한지라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시즌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시즌인 25-26 시즌, 여러 구설수가 많긴 했지만 결국 우승에 성공. 03-04 시즌의 무패 우승 이후 22년 만의 우승. 기뻤다. 좋았다. 하지만, 왜인지 이전처럼 큰 열정은 없어진 것 같긴 하다. 관성적으로 팀을 응원해왔지만, 그리고 물론 지난 시즌 우승의 감동이 매우 컸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쩐의 전쟁’이 되어버린 축구판 때문이 아닐까 싶다. 03-04 시즌, 아스날의 무패우승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03-04 시즌 이전에 그러한 기미가 있긴 했다. 프리미어리그의 만년 중위권 팀이던 첼시의 구단주로 러시아의 석유 재벌이자 올리가르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부임하게 되고, 선수들의 몸값에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지기 시작했다. 당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아스날의 입장에서는 팀의 월드클래스 왼쪽 풀백인 애쉴리 콜을 첼시에 석연찮은 이유로 넘기게 되었고, 이후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여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즈음에, 많은 선수들을 돈을 이유로, 또한 부진한 투자로 인한 우승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팀에 넘겨야만 했다. 2010년 이후 태국의 전 총리인 탁신이 구단주로 있다가 아부다비의 석유 재벌인 만수르가 구단을 인수하며 구단주로 취임한 맨체스터 시티 또한, 첼시와 더불어 ‘오일머니 클럽’으로 리그에 막대한 자본을 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오일 머니가 리그에 풀리기 시작하면, 리그 전체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정이 열악한 클럽은 비싼 값에 선수를 매각하여 재정을 보충할 수 있고, 프로 축구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린다는 것은 그 시장의 확장과 직결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축구는 ‘쩐의 전쟁’으로 이루어지는 축구판이었을까? 어느덧 내가 사랑하는 아스날 역시 이러한 ‘쩐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매년 수천억 원의 돈을 투입하여 선수들을 사 모으고, 그렇게 선수 이적료의 인플레이션에 일조하며, 자본이 많지 않은 타 리그의 구단들을 ‘거지00’로 웃으며 멸칭처럼 말하는 흐름이 과연 옳을까? 물론 내가 사랑하는 아스날이 매 시즌 리그 우승을 하기만을 바라지만, 막대한 자본으로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구단만이 리그 우승을 돌아가며 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프랑스 리그인 르 샹피오나의 파리 생제르망이 사우디 국영펀드의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매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욕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클럽 역시 은연중에 비슷한 길을 걷길 바라는 팬들을 보게 되면서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본 지 꽤 오래되었다. 그간 프리미어리그에서 전통의 명가로 불렸던 볼튼 원더러스, 위건 애슬래틱, 블랙번 로버스 등의 팀은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서 보기 힘들다. 막대한 자본이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몰리는 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팀들은 여지없이 자금난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일원으로서 천문학적인 몸값이 매겨진 선수들을 다년 할부로 구입하고, 강등당할 경우 중계권 수입료 등에서 그 적자를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재정건전성 룰 위반으로 여겨져 승점 삭감 등의 징계를 받게되고, 그렇게 열악해진 클럽의 재정으로 2부리그인 챔피언십에서 강등을 당해 3부리그인 리그1, 4부리그인 리그2로 연속적인 강등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15-16시즌에 우승했던 레스터 시티는 24-25시즌 직후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당한 이후, 연속으로 강등을 당해 지금은 3부리그인 리그1에 속해 있다.
이에 대해 알렉스 헤스(Alex Hess)는 지난 2020년 자코뱅지에 ‘자본주의는 축구를 어떻게 망쳐놓았는가(How Capitalism Changed Football for the Worse)’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막대한 자본이 축구계에 투입되고, 잉글랜드 프로축구 시장이 커지며, 영국 노동자 계층의 문화였던 축구가 빠르게 자본주의에 침식되는 양상에 대해 기술한다. 그는 프로축구 시장의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가속화되는 상업주의를 지적하며, 프로축구 팀 사이의 경쟁력의 균형이 해체되어가며 소수의 유명 클럽을 제외한 다수의 클럽들이 열악함 속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아스날은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난 팀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냥 다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실, 내가 아스날이 팬이 되었다는 것 역시,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지구 반대편의 국가에서 꽤나 일찍 해외 프로 축구를 접했다는 것에도 일련의 계층화가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외 축구 중계가 본격화되기 이전, 해외 프로 축구팀의 팬이 되었다는 것은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있을 것, 해외 프로 리그의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있어야 할 것이라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애당초 계층화된 접근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몇 년 일찍 해외 프로 축구를 접했다는 것은 위성TV의 구독료가 비쌌던 시절, 집에 접시판(수신 안테나)을 달아 놓고 그것을 관람할 수 있다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아스날이라는 팀의 팬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아스날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통적인 강호였고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팀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자본력을 갖춘 팀일수록 많은 유명 선수가 해당 팀의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으며, 그러한 팀들의 마케팅 역시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팀들에 비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쉽게 노출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팀들은 대부분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팀들이기 마련이고, 아스날 역시 그런 팀 중 하나다. 물론 내가 처음 아스날의 팬이 되었을 때엔 지금처럼 엄청난 돈을 투자하던 팀이 아니었고, 당시의 아스날 감독인 아르센 벵거는 유럽 프로축구계에 오일 머니가 개입하며 발생하는 과도한 이적료 인플레이션 등을 경계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스날은 그렇지 않다. 필요하다면 1억 파운드 이상의 돈을 들여 선수를 영입하는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구단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순위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이전처럼 내가 사랑하는 아스날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좋지만 그래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복잡한 느낌. 물론 난 여전히 아스날을 사랑한다. 죽어도 내가 선택할 클럽은 아스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에는 ‘그럼에도’라는 수식어가 점점 많이 붙기 시작한다. 죽어도 아스날. 그럼에도... 앞으로 ‘그럼에도’ 뒤에 붙을 말은 무엇이 될까? 또 어떤 것들이 늘어갈까? 그때도 나는 죽어도 아스날을 외칠 수 있을까? 요즘들어 아스날의 경기를 볼 때마다 즐겁지만 복잡한 생각만 늘어만 간다.

글. 구승우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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