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먹] 관심사를 학술적으로 재조립하기
-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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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과정에 입학하기 전, 대학원 진학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매학기 졸졸 따라다니며 강의를 수강했던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석사 과정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만 찾으면 돼.” 선생님은 유학길에 올랐지만 결국 끝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던 본인의 박사 과정 실패담을 들려주시면서 이 말을 당부하셨다. 학부에서도 석사 과정에서도 시키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진짜로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 크게 고민해 보지 않고 유학길에 올랐던 선생님은 결국 박사 과정을 중도 포기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물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박사 과정을 밟으셔서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신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까운 기회를 날려 먹은 것일 테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각성의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자신이 공부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공부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며, 선생님은 내 석사 과정 진학을 응원해 주셨다. 그때는 어렴풋하고, 또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선생님이 쥐어주신 응원만 붙잡고 대학원 지원 원서를 써 내려가는 데만 급급했다.
그로부터 벌써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번 여름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을 앞둔 석사생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런 것이다. “이제 뭐 할 거야?” 그 뒤에는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박사 갈 거야?” 이 질문에 답하길 우물쭈물하면서, 자꾸 그날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석사 과정을 잘 보냈나? 나는 내가 진정 공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나? 석사 시기 동안,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지고 있던 관심사를 종합하여 석사 논문을 완성하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진 않는다. 다만,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 막연하고, 어렴풋하고, 당연해서 곱씹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말은 점점 더 구체적인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석사 논문을 쓰면서 이 말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무척이나 괴로워하면서 석사 논문을 썼다. 심지어는 무엇이 괴로운지를 스스로 솎아내지 못하겠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본심 보기를 포기한 학기도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어렵고 괴로웠던 것일까? 석사 논문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 어려움은 이런 것들이다. 일단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너무나도 나의 삶과 맞닿은 고민을 연구 주제로 잡았다는 데 있었다. 나는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어떻게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더 날 것 그대로 말해보자면 이런 것이다. “일상에서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해 봤자… 뭐가 되는 거 맞아?!” 나는 2017년부터 채식 실천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동안 마음 한 켠에 간직해온 일상적 실천의 힘에 관한 회의감을 석사 논문 주제로 뿜어낸 것이다. 우리는 왜 지극히 일상적인 실천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그러한 믿음이 작동하게 되는 데에 어떠한 바탕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매일 실천하고 있는 채식에 어떤 힘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일단 한 켠에 미뤄두고, 일상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이러한 ‘삶의 고민’은 여러 세미나와 면담을 통해 ‘학술 언어’로 된 ‘연구 질문’으로 다듬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쉽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고민에 대한 표현을 경험적 언어에서 학술적 언어로 옷 갈아입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고민이라고 해서 그것이 학술적으로도 고민이 되는 주제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술적 관심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내 연구 주제는, 진정한 ‘연구 주제’가 되기 위해서 겹겹이 쌓여 있는 여러 가지 이론적 전통과 경험적 연구 사례의 줄기 틈에 자리 잡을 수 있어야만 했다. 즉,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여러 선행 연구의 입장에서 내 연구 주제가 어떻게 고민거리가 되는지를 생각하고 설명할 줄 알아야 했다. 비거니즘을 연구의 소재로 잡았던 나는 그 지점을 가늠하기 위해 사회운동 연구 세미나에도 참여해 보고, 동물 연구를 하는 분들을 만나 보기도 했다. 즉, ‘사회운동 연구’라든지 ‘동물 연구’라든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학술적 카테고리의 힘을 빌려서 내 삶의 고민을 ‘연구 주제’로 포장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다만 그 두 곳에서 모두 튕겨져 나오고 말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다. 사실은 내 일기장에 쓰이면 그만인 내용을, 연구 주제랍시고 어설프게 부여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석사 논문을 쓰면서 늘 자괴감에 허덕였던 건, 내 삶의 고민을 학술적 언어로 옮기는 일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체계를 허무는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험적 수준에서 바라보고 있던 일을 학술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나의 짧은 생애 수준에서는 옳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더 길게 이어져 오고, 오래 묵은 이론적・분석적 맥락 속에서는 사실 틀릴 수 있다(기보다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내 삶의 경험과 내 주변을 연구 주제로 삼는 일은 학술 언어를 통해 내가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면화하고 구축했던 사유체계를 분석하는, 평가하는, 어쩌면 공격하는(!) 일로 느껴지곤 했다. 특히나 진짜 문제는 이 연구의 직접적인 대상이 나 자신이 아니라 참여해 주신 연구 참여자들이라는 데 있었다. 나 자신의 가치체계를 허물어 보기 위해 쏘아져 나가는 심판의 언어들이 연구 참여자분들을 향하게 되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무너뜨려 보면서, 그리고 이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타인의 발화를 분석하면서 드는 불안감에 나는 석사 논문을 쓰는 내내 자괴감에 허덕거렸던 것 같다.
이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돌파했느냐 하면, 사실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저 겪어야 할 일들을 느릿느릿 겪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괴감에 짓눌리다가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꼬박 1년이 걸렸으며, 이는 결국 추가 학기를 붙여 논문을 쓰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프로포절, 두 번의 예심, 그리고 본심을 거치면서 논문을 몇 번이나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내 연구는 ‘정치 참여의 개인화’, ‘정치 참여의 일상화’, ‘생활정치’와 같은 키워드로 정리되었고, 허술하게나마 학술적 언어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과정 덕에 나는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를 한 번 깨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사실은 이것만으로도 대학원에 온 게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석사 논문 집필까지 마친 시점에서 석사 과정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곱씹어 보면, 이는 결국 ‘학술적 관심사’를 발견하라는 말로 들린다. 나는 석사과정 내내 연구 주제를 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학술적 관심사라는 것이 경험적 수준에서 쌓아올린 내 삶의 관심사와 무관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반드시 그것과 포개어지는 것 역시 아니라는 점을 더듬더듬 배워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삶과 연구 사이에 그러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괴로워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에 답하는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 것일까? 이는 그 이전에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 -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 의 일종인 것 같으면서도, 실은 그것을 대체하는 훨씬 구체적인 질문이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를 찾는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결국 내가 들어서게 된 (연구자의) 길이 제기하는 구체적인 질문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답하기로 결심하는 일을 말하는 것일테다. 즉 나의 개인적인 일생과 어느정도 겹치나, 완전히 포개어지지 않는 연구자로서의 삶과 관심사를 일구어 나가겠다는 다짐일테다.
나는 석사 논문을 통해 내 삶의 고민 하나를 어찌저찌 학술적 언어로 번역해 보기는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학술적 관심사의 갈피를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연구 주제를 찾기 위해 나 자신을 내가 원래 있던 경험적 수준과는 다른 위치에 놓아 두어 보면서, 나의 관심사를 부수고 비워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빈 자리에 나도 모르는 새에 무언가 채워졌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그것들을 새로운 관심사로 충분히 엮어내지 못하겠다. 이것이 ‘졸업하고 난 다음에 뭐 할 거냐’는 물음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겠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배우고, 숙고하는 일은 재미가 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시간과 품을 들여 고민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당위를 넘어서, 어떤 사안이 가진 복잡성을 구체화해 보기를 선택하는 관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은 다른 것을 희생하고 포기해 가면서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품을 들여서 생각하는 일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접속해 있고 싶다. 그것이 반드시 대학 안에서 공부하는 연구자의 형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학술적 관심사’라는 것을 새롭게 엮어낼 수 있을 때까지, 당장은 학교 안팎에서 지식과 연결되어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모색하며 지내 볼 생각이다.

글. 권오경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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