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먹] 말하는 감자지만 졸업은 하고 싶어
- 20시간 전
- 5분 분량

석사학위논문을 최종 제출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100 페이지 넘는 글을 꾸역꾸역 썼던 기억이 전생처럼 아득하다. 특히 우리 대학원은 한 학기 안에 프로포절과 예심, 본심을 모두 해치우는 것이 일반적이라, 어떻게 학기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물론 전공이나 학교마다 학위논문을 쓰고 심사받는 과정이 다르기에, 내가 논문을 쓰면서 실감했던 어려움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사한 무게로 와닿을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나는 이스포츠 여성 팬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연구를 진행했다.) 그래도 석사학위논문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이 짧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 내려가면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답답함(?)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당시에는 논문을 쓰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짧게나마 되돌아보고자 한다.

1) 글, 쓰고 싶은데 쓰기 싫어요
내 경우에 논문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학위논문을 보면 10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글이 부지기수인데, 그걸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저 정도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여기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혹은 강박이 겹쳐졌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식이 부족해서 글을 못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마다 선행연구를 새로 읽고 메모만 하다가 정작 내 논문에는 추가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 혹은 생각만 하다가 막상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곤 했다.
특히 문화연구 전공으로 졸업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어려움은 현실의 복잡한 작동 양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서로 다른 목소리들의 복수성과 모순을 하나의 설명으로 퉁치지 않으면서도 그 목소리를 둘러싼 정치적 맥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문화연구의 글쓰기가 엄청난 매력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그 매력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막상 내가 그런 글을 쓰려고 하니까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결론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영역을 더듬거리면서 글을 쓰는 동시에, 어느 시점에서는 깃발을 꽂고 내가 하려던 얘기를 당차게 해야 하는데 그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허둥지둥대다 보니 글이 난잡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어려움과도 맞물렸다.
2) 자꾸 하고 싶은 말만 앞서요
논문을 쓰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프로포절을 준비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유는 본론에서 잔뜩 하고 싶은 말들을 억누르면서 끝없이 서론을 수정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본론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을 자꾸만 서론에 당겨서 쓰고,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서론에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서론을 작성하고 고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고 생각해 아깝기도 했고, 이 정도 속도라면 한 학기에 졸업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물론 돌아보니 이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서론을 급하게 쓰고 넘겼다면, 마지막에 와서 서론을 뒤집어 엎거나 논문의 서론과 본론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 글을 썼을지 모를 일이다).
본론을 쓸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특정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사용하거나 충분한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주장을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 가능한 전개라고 생각했는데, 해당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경우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도움이 되었다. 나의 주장이 함의하고 있는 전제가 충분한 근거 없이, 혹은 잘못된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 그 전제를 꼬집는 피드백은 내가 다시 한번 차근차근 글을 되짚으며 보완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특히 내가 이미 고치려고 마음먹고 있던 지점을 똑같이 지적받고 나면 ‘정말 고쳐야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글쓰기에 탄력이 붙기도 했다. 논문을 쓰는 동안 그 논문의 부족함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지만, 그 부족함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혹은 문제 해결이 까다로운 작업이라 손도 못 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에 다른 누군가의 지적은 적절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3) 누가 내 글을 읽을까요
‘누가 과연 내 글을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두 가지 어려움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렇게 써도 누가 내 논문을 읽기는 할까’라는 ‘현타’도 있지만,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고 써야 할까’의 문제도 있었다. 나의 경우, 처음부터 팬덤 연구자 그리고 이 연구에 참여했던 팬들을 가상의 독자로 상정한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즉 팬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다양하게 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자신들의 경험이 잘 반영되었다고 느낄까의 여부를 가장 신경 썼다. 그러나 내 글을 읽은 독자 중에 팬 활동 경험이 없거나 스스로를 문화연구자에 가깝게 정체화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비심사와 본심사 때 받은 피드백 중에 의외로 가장 까다로웠던 것이 ‘서론에 연구 배경은 충실히 적혀 있는데, 연구의 필요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피드백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연구 배경과 연구의 필요성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부터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스포츠 팬덤에서 여성 팬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담론의 경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면 그것이 곧 이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러한 생각 자체가 이미 이스포츠와 팬덤을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를 전제하고 있었다. 팬덤 연구자에게는 흥미롭고 중요한 현상이, 다른 분야의 연구자에게는 반드시 연구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지는 않음에도 말이다.
지도교수님께서는 내 논문이 이스포츠 팬덤에만 한정되는 연구가 아니라 유사한 문제나 질문을 공유하는 타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연구가 되도록 하라는 조언을 반복해서 주셨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가상의 독자층을 팬덤 연구 바깥의 문화연구자와 인접 분야 연구자들로까지 넓히고자 노력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다 보면 다른 한쪽의 입장을 불충분하게만 반영하게 되는 문제가 반복됐다. 결론을 쓸 때도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단순히 본론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해당 연구 결과를 가지고 좀 더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해 보라는 피드백이 특히 까다로웠다. 결국 스스로 만족할 정도의 논의를 담아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4) 그렇지만 어쨌든 졸업합니다
위의 어려움들을 각개격파하는 나름의 해결책들을 찾아서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다, 고 결론을 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그냥 학위논문은 마지막 한 달 동안 어찌저찌 써서 내는 것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도 논문을 쓰는 동안 매일 같이 찾아오는 불안과 막막함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을 정리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우선 신문연의 어느 박사 선생님께서 학위논문을 쓰려면 폴더부터 ‘서론’ ‘본론’ ‘결론’ 그리고 하위 소제목들로 나누고, 각각의 파트를 그때그때 조금씩 쓰는 게 좋다고 조언해 주셨는데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나처럼 산만하고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사람이라면, 논문이 길어질수록 하나의 파일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하다가는 논문 분량에 압도되어 자꾸만 회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효율성도 효율성이지만, 본인이 회피형이라면 특히 파트를 작게 나누어 작업하는 게 지난한 글쓰기 작업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프로포절을 준비할 때부터 내가 공부하거나 고민한 내용을 매일 짧게라도 기록해 하나의 폴더에 저장해 놓았다. 쓰다 보니 공부 메모장과 일기 사이의 무언가가 되었고 가독성이 높은 글들도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써 놓으면 다음날에도 내가 하던 사유를 이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날 논문을 한 글자도 쓰지 않았더라도 공부 내용의 기록 자체가 동기부여가 됐다. 매일 무언가를 쓰고 있고, 오늘 하루를 그냥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서였다.
마지막으로 이곳저곳에서 관련 주제로 발표하며 피드백을 듣는 일 또한 동기부여에 도움이 됐다. 피드백의 내용보다도, 피드백을 듣다 보면 스스로 열불이 나서 그렇다. 내 연구 주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덧붙이는 말들을 들으며 짜증이 날 때가 많았는데, 오히려 그 짜증과 분노가 글을 마구 내뱉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게 좋은 조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써 놓고 나서 나중에 분노가 식은 뒤 천천히 글을 다듬고 고치는 작업이 꽤나 생산적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고 나서 고치는 게 나으니까.
사실 논문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글쓰기 자체나 피드백을 반영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나 불안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하루를 버틸 동력을 유지해가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논문 쓰는 석사과정생들 모두 화이팅이다.

글. 박여찬(신문연 회원)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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