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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방학에서 무엇을 내쫓을 것인가?

1시간 전
3분 분량

 

박사 과정 내내 나의 관심사 한편에 내려앉은 단어는 ‘부유(suspension/悬浮)’였다. 부유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중 담론에서 널리 사용된 단어로, 인류학자 샹뱌오(项飚)는 이를 공중에 떠 있으려고 계속해서 날개를 펄럭이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마모되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벌새의 이미지에 빗대어 설명하였다(Xiang, 2021). 모빌리티 연구자인 나에게, 샹뱌오가 말한, 지금 여기의 조건을 바꾸지는 않은 채 끝없이 움직이는 상태 내지는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기업가적 에너지와 정치적 체념의 공존은 줄곧 관심을 끌었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현상과 감각에 관한 관심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둥둥 떠다니는 (그러나 몸에 온전히 힘을 뺀 채로 떠다니는 것도 아닌) 감각에 관한 관심은 단순히 내 연구 관심사 때문만은 아니고 요즘 나의 생활과도 깊게 관련이 있다.


돌이켜보면 부유의 감각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박사과정 2년 차쯤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석사과정 때는 스스로 연구자라는 자각이 크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육체적 소진은 있을지언정 어딘가 안착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연구자로 정체화하고, 적응의 시간을 지나 내가 보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석하고 정의 내려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연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내가 통과하는 시간과 공간들, 나의 선택 등을 적극적으로 의미화해야 하는 맥락도 있었다. 이것이 버거웠던 것인지, 혹은 박사과정 동안 생긴 조급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어느 부분이 점차 마모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방학은 왜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기쁨과 곤란을 동시에 줄까도 생각해 보면, 방학이라는 애매한 사이 시간을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 곤란함은 어디서 올까? 우선 방학이 대학이라는 제도와 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엄연한 제도적 시간이라는 데에 있다. 즉,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의미와 시간적 경계가 조직된 사이 시간이라는 점에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 다른 맥락은 오늘날 시간이 점점 더 관리와 평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굳어진 표현이 되어 버린 ‘신자유주의화된 대학’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학계는 시간 관리 압박과 속도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조급함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이 변화를 앞장서서 생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 또한 이 변화에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의 곤란함은 이 애매한 사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물음, 그리고 그 물음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강박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으로 방학의 높은 자율성은 이 관리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나는 언젠가 시간 관리를 향한 스트레스를 내려놓고자, ‘관리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그것 역시 관리 강박이라는 것을. 



방학을 생각하면 왠지 집에 손님이 와서 급하게 옷들을 구겨 넣은 옷장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학기와 방학이라는 구분 속에서 많은 일들은 방학 때로 미뤄진다. 휴식과 여행, 대청소,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것, 전공 바깥의 글 읽기, 운동 좀 하기 등등 (처한 상황에 따라 미뤄진 일들의 목록은 각기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들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차이와 행정적 업무가 줄긴 하지만, 연구와 관련된 일들은 오히려 방학 때 더 늘어나기도 한다. 사실 중요한 것은 노동량의 문제보다는 시간성이 중첩된다는 데에 있다. 연구의 시간성은 계속되는데, 구겨 넣은 옷들처럼 그 위에 덧대어지는 각종 ‘방학 프로젝트’의 시간성이 중첩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방학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요구를 계속해서 조정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인지 방학이 끝나갈 때쯤 내가 방학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호해진다. 방학 잘 보냈냐는 물음에도 어색한 웃음만을 띄우게 된다. 연구에도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것 같고, 쉬었다고 하기에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몰입과는 점차 멀어졌으며, 나는 다시 소모의 감각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방학을 어떻게 해야 잘 보낼 수 있을까, 방학 때는 뭘 해야 좋을까?’ 하는 물음 자체가 (적어도 나에게는)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설정 자체를 바꿔서 이번 방학 때는 무엇을 안 해야 할지 생각하는 편이, 내면화된 시간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방학(放學)의 ‘방(放)’에 내려놓는다는 뜻 외에도 내쫓다는 뜻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이 방학을 더 방학답게 만드는 것 아닐까? 방학에서 무엇을 내쫓을 것인가? 나는 연구자로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율성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 장점을 지금의 사회가 구축하는 시간 질서를 거부하는 것에 써볼 필요를 느낀다. 


방학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동시에 학기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학기와 방학이라는 이분법에 너무 많은 것을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우리는 학기 중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배우고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적어봤을 때 학기 중은 마치 초 몰입의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몰입한다면 왜 방학 때 하는 것으로 미뤄진 일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방금 전에 적었던 “휴식과 여행, 대청소,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것, 전공 바깥의 글 읽기, 운동 좀 하기 등등”은 왜 자꾸 미뤄질까, 그것은 몰입의 대상이 아닐까? 그 유예의 기저에는 어떤 가치 판단이 있을까? 어쩌면 내가 방학에서 느끼는 곤란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옷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옷들을 결국에는 마주해야 하므로.


Xiang, B. (2021). Suspension: seeking agency for change in the hypermobile world. Pacific Affairs, 94(2), 233-250. DOI: 10.5509/2021942233.



글. 아보카도

편집.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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