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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편들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기

  • 17시간 전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시간 전



이번 여름,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게임 세미나를 하나 열게 되었다. <게임 토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잘하는 것이 아닌 게임을 잘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함께 게임을 비평해 보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미나가 아니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그보다 먼저 학위논문을 쓰면서 계속 부딪혔던 다른 문제에 대한 것이다. 바로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는 일의 곤란함, 좀 더 정확히는 좋아하는 것의 나쁜 면을 밝혀야 할 때 겪는 곤란함에 대해서다.


나는 MMORPG 장르의 한 게임을 현장 삼아 3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고 자문화기술지를 작성해 최근 석사를 졸업했다. 학부에서 일명 ‘공대’를 나온 나는 ‘인문대’인 문화인류학으로 시선을 돌려 대학원에 진학했고, 입학한 첫 학기부터 호기롭게 ‘디지털 인류학’과 ‘게임 인류학’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었다. 내가 이처럼 다소 갑작스레 전공을 바꾼 시작점에는 메타버스의 대유행이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던 시기, 일명 언택트 시대 때 사람들 사이에 메타버스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온라인 공간의 연결과 공동체를 예찬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성형 AI가 대세인 것처럼 메타버스가 그러했고, 국가까지 나서며 각종 관련 사업과 행사, 포럼 등이 산발적으로 열렸다. 대학을 갓 졸업했던 나는 그 흐름이 매우 불편했다. 그동안 온라인 공간, 특히 게임 속을 살아온 나와 내 친구들의 경험이 모조리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게임을 쫓아다니던 부정적인 시선과는 전혀 다른 메타버스를 향한 환호를 보면서, 왜 게임은 지금까지 이렇게 긍정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는지,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온라인 공간과 게임에서의 경험이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야 비로소 정당해지는 게 아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니 나에게 이 연구는 처음부터 순수한 호기심이나 대단한 발견이라기보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것에 대한 변호에 가까웠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무수한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다. 무언가를 변호한다는 건 그 결함을 축소하는 일과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억울함에서 출발한 연구는 자꾸만 반박할 상대를 상정하게 되고, 상대가 있는 논증은 자기도 모르게 한쪽 편을 필요로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과 게임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고 싶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장, 다시 말해 게임 속 경험은 마냥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지만은 아니었다. 유저들의 앓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세상에 대고 반박하고 싶었던 사실, ‘역시나’ 게임에는 나쁜 면도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낮은 확률에 기대어 계속 돈을 쓰게 만드는 확률형 아이템이 있었고, 유저들 사이 위계와 텃세, 따돌림 같은 괴롭힘이 있었고, 매일 같이 접속해야 보상을 주는 출석 이벤트와 숙제 같은 퀘스트들이 있었다. 게임은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게임사가 팔아야 하는 상품이기도 했다. 돈과 시간과 감정을 갈아 넣어야만 겨우 유지될 것들이 게임에는 생각보다 많았다. 연구를 진행하는 3년 동안 유저들이 그 악랄한 구조를 욕하면서도 스스로 거기에 매여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건 명백히 문제였다. 마치 덫 같았다.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계산해서 계속 붙잡아두는, 어떻게 봐도 옹호할 구석이 없는 장치들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것들은 그다지 새롭지도 않았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게임에 따라붙고 있는 꼬리표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심 원고를 쓸 무렵, 나는 그 이야기들을 쉽게 쓰지 못했고 쓰기를 힘들어했다. 문장을 쓰다가도 다시 지우고, 그 대신 유저들이 그 안에서도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찾아낸다는 쪽으로, 그들을 단순한 자본주의의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자 행위성과 애착을 강조하는 쪽으로 주장을 밀고 갔다. 다시 고백하자면, 그때는 게임의 부정적인 면을 긍정적인 면으로 슬쩍 덮으려 했었던 것 같다. 그게 사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쪽이 내가 더 쓰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게임을 넘어서 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연구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유저인 나도 게임의 착취적인 면들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고, ‘현질’이든 ‘과몰입’이든 만만치 않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구조가 나쁘다고 어딘가에서 계속 떠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내가 쓰고 있는 논문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쪽이 쿡 쿡 찔렸다. 말로는 착취적 구조를 욕하면서 실제로는 거기에 돈과 시간과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러니 논문에서 게임의 나쁜 면을 정직하게 비판한다는 건 돌고 돌아 나 자신을 비판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손이 더 멈췄던 것 같다.


예심에서 한 심사위원이 정확히 이 딜레마를 짚었다. 내가 게임 산업, 나아가 자본의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유저들의 행위성과 애착을 강조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시간을 잡아먹는 나쁜 구조 자체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들켜 버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열이 오르며 부끄러웠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애초에 내 경험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증명하고 싶어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 게임이 시간 낭비나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게 예전부터 싫었다. 게임 속에서 맺는 관계도 진짜이고, 그 안에서 흘려보내는 시간도 삶의 일부이며, 게임이 하나의 생활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다. 게임의 나쁜 면을 말하는 일이 결국 게임을 나쁘게 보는 세상의 오래된 시선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건 단순한 논문 작성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좋아하는 대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부딪히는 벽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명백하게 나쁜 부분이 있을 때, 그걸 있는 그대로 감추지 않고 말하는 건 왜 이렇게나 어려울까? (혹시 나만 어려운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비판과 배신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게임의 나쁜 면을 밝히는 일은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가 쌓아온 시간을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 논문이 세상에 던져지고 나와 같은 유저들이 이 글을 읽었을 때, 내 글이 그들에게 줄 상처나 나를 향해 돌아올 비난이 두려웠다. 나 역시 게임이 별것 아니라는, 나아가 그만두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세상의 시선에 오래 시달려왔기에 내가 그 나쁜 부분을 크게 말하는 게 결국 상대의 편을 들어주는 꼴이 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의 결함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도 이런 태도는 이상하고 잘못되었다. 누군가를 정말 아낀다면 오히려 그 사람의 나쁜 습관을 못 본 척하지 않는 것처럼, 게임을 정말 존중한다면 그 안의 나쁜 면에도 정직하게 눈을 뜨는 편이 맞았다. 게임을 향한 유저들의 애착이 진짜라는 것과 이를 이용해 돈과 시간을 가져가는 구조가 착취적이라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동시에 둘 다 사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이 두 문장을 한 페이지에 같은 무게로 놓는 법을 몰랐다. 하나를 힘주어 쓰면 다른 하나는 저절로 작아졌다. 나는 예심 이후 나의 딜레마를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했고, 별도의 목차를 할애해 게임의 나쁜 면에 대해 다루게 되었다. 게임이 시간 낭비나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세상의 부정적인 꼬리표를 떼어내고자 굳이 게임의 나쁜 면을 줄여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부풀리지도 않고 깎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간 경험은 나에게 어떠한 용기를 주었다. 게임은 좋아할 만한 것이면서 동시에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있는, 그 둘을 함께 견딜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걸, 연구를 마치고 졸업을 한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게임이 가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증명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게임을 둘러싼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경험들이 충분히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듯,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듯,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 역시 다양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게임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그저 그런 대화가 가능한 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꼭 게임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계속 담백하고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글. 이주원(신문연 회원, 2026 여름 신문연세미나 게임반 이끔이)

편집. 김선우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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