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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연구하면, 안 되는 걸까?


저는 연구윤리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계기를 말하자면 IRB 때문입니다. IRB의 연구윤리 심의 절차를 거치는 게 뭔가 선진적인 것 같이 느껴져,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IRB의 문을 스스로 두드렸던 그 경험이 발단이었습니다. IRB가 연구윤리를 핑계로 삼아 연구자의 영역을 행정적으로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IRB가 연구윤리를 전담함으로써, 연구윤리에 대한 고민이 IRB 심의를 통과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축소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IRB와 관계없이 실제로 동료들이 고민하는 윤리적 문제가 분명히 있는데, 이 문제는 마치 부차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달까요?


그래서 탁상공론의 기회를 통해, 연구윤리에 관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고, 어떻게 대처해가고 있을지 궁금했던 동료 연구자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어요. 예상했다시피, 우리는 IRB 경험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계속 말하자면 끝이 없는, 그래서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서는 흐린눈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윤리적 이슈들에 관한 고민을 뻗어나가며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이번 탁상공론 참여자들은 모두 질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고, 이른바 ‘취약한 연구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연구참여자들과 함께 지식을 만드는 분들이 많았어요. 조금은 특별한 연구 사례들을 예시로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에, 대화 내용에 등장하는 연구를 익명화하는데 신경을 써 보았어요. 하지만 연구윤리 고민이 있는 연구자라면, 자신의 상황을 함께 떠올리며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 참여자 소개


보조배터리 언론학 분야의 연구자로, 사실 경험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연구윤리 고민은 어쩌면 이중에서 가장 적다. 하지만, 연구윤리 담론과 실천에 관해 메타적 관심이 있다.


빼빼로 사회학과 인류학 중간 어드메 분야의 연구자로, 미성년인 아동 청소년이 포함된 학교밖의 교육 현장을 13개월째 참여관찰 중에 있다. 최근 IRB 심의에서 보완 판정을 받았다.


탄산수 사회학 분야의 연구자. IRB 심의를 2회 경험했다. 첫 번째는 취약성과 관련된 키워드가 포함된 연구였고, 두 번째는 보통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는데, 첫 번째 연구 경험이 훨씬 고됐다.

젤다의전설 여성학 분야의 연구자.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문제와 관련한 경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도교수님이 IRB를 하래서 뒤늦게 신청했으나, 일정 문제로 스킵하기로 다시 합의되었다.


하리보 교육학 분야의 연구자로, 학교에서 부적응한 청소년을 연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받은 세 번째 IRB 심의는 의외로 빠르게 통과되었다. 보조배터리가 볼 때, 이 정도면 이제 IRB 마스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선인장 인류학 분야의 연구자로, 학교 교육 현장에 관한 문화기술지를 썼다. 현재는 출판된 논문의 심사 과정에서 연구참여자들의 직접 인용을 어디까지 그대로 살려도 되는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 1 전전긍긍의 시간, IRB 심의 과정


보조배터리 벌써 4년 전이 되었는데, 박사논문 작성을 위해서 처음 IRB의 문을 두드려 봤는데, 그때 심사과정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IRB라는 제도적 행정적 절차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됐어. 그래서 IRB에서 받은 이상한 피드백 모으는 걸 좋아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나 IRB 소재로 좌중을 웃기는 것도 좋아해. 다만 오늘 IRB 얘기만 나눌 건 아니고, 질적 연구자로서 갖는 연구윤리에 관한 이런저런 경험과 고민을 나누어 봤으면 해. 사실 난 어떻게 보면 언어 능력이 충분히 있는, 좀 평범한 연구참여자들을 만나는 편인데, 오늘 참여한 멤버들의 연구가 굉장히 다양하고 폭넓어서 어떤 경험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도 돼.


빼빼로 난 인류학자인 지도교수님 연구 주제를 따라가다 보니 아동을 연구하는데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내 경험을 살려서 한 교육 현장을 필드로 해서 참여관찰하고 있어. 벌써 현장을 드나든지 13개월 정도 된 것 같아. 그런데 이제 이걸 논문으로 본격적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해서 IRB 심의 신청을 지난 달에 했는데, 보완 판정이 나서 시간을 오래 잡아먹고 있는 상태야. 내 제일 큰 윤리적 고민은 지금 연구 참여자들과 라포가 너무 많이 쌓여 있다는 점이야.


보조배터리 라포 쌓여 있는 건 좋은 건 아니야?


빼빼로 연구물이 나왔을 때 조금 비판적인 얘기가 쓰여 있으면, 참여자들이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반응을 염려하니까 내 글쓰기와 연구 자체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젤다의전설 나는 오늘 사실 오프더레코드로 말하는 게 많을 거야. 왜냐면 아직 연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주제가 특정될 우려가 있거든. 이 주제로 이루어진 질적 연구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IRB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 연구에는 10대 미성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까다로웠던 것 같아. 이미 인터뷰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 지도교수님이 IRB를 해보라고 말씀하셔서, 신청을 해 보긴 했는데 자꾸 빠꾸를 먹게 돼서 결국에는 포기하기로 했어. 내가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연구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였어. 왜냐하면 내가 온라인상의 오픈 채팅방에서 일종의 참여관찰을 하고 있는데,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발언이 나오면 개입하고 싶기도 하고, 또 그런 혐오 발언을 들은 청소년에게 따로 연락을 하고 싶기도 한데, 연구자로서 내가 그래도 되는지에 관한 고민이 많았어.


탄산수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했어?


젤다의전설 그래도 한 번은 못 참고 한 청소년 계정에게 일대일 메시지를 보내서, 그 친구가 하고 있는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줬어. 그리고 그 계기로 그 친구를 인터뷰할 수도 있었어.


선인장 그럼 연구 면에서도 도움이 된 거네!


젤다의전설 그런데 그게 뭔가 내 연구에 그 친구가 고마움을 느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인터뷰에 응해준 것은 아닌가 그런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어. 그리고 나는 인터뷰할 때도 연구자로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인생 선배로서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이 많았어.


하리보 나는 학교에서 부적응한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해.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시작이 쉽지 않았던 건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많아서였어. 청소년 연구를 하면 졸업을 못 한다고 자꾸 얘기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처음에는 청소년 대신 교사, 그리고 청소년 때 해당 경험을 한 18세 이상 성인으로 연구 설계를 해서 IRB 심의를 넣었어. 근데 그런데도 ‘부적응’이라는 단어가 걸렸는지 몇 개월이나 걸려서 승인이 났어.


탄산수 아니 그럼 졸업이 좀 늦어졌겠네.


하리보 그러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제 박사과정에 오고 나서 다시 IRB 심의를 넣을 때부터 청소년을 연구참여자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어. 두 번째 심의 때는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 시설에 있는 청소년을 연구하고 싶었는데 시설장 직인을 받아오라는 거야. 그래서 또 몇 개월이 걸렸지. 그런데 요번에 다른 논문 때문에 세 번째 심사를 했을 때는 IRB가 조금 유연해졌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18세 미만 청소년들을 연구하는 건데도 한 달 만에 승인이 났어. 3~4개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말야.


보조배터리 IRB가 유연해졌을리가 없어! 아무래도 하리보가 이제 IRB 마스터가 됐나보다!!


탄산수 나도 IRB를 두 번 받았어. 나는 두 번째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엄청 힘들더라고. 한 번 더 해서 세 번째 받으면 하리보처럼 마스터가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IRB 할 때는, 시정 승인이 떠서 조금 보완만 해서 내면 통과되는 수순이었는데, 심의 받는 과정도 그렇고 좀 지쳤는지 보완을 몇 개월 동안 안 보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걸 이제 조금 지나서 다시 해 보려고 수정해서 보냈는데, 시정 승인이었던 게 수정 후 재심사로 판정이 아예 뒤바뀐거야. 그래서 뭔가 처음부터 다시 하는 기분이 들어서 의욕을 잃어버렸어.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좀 황당하더라고.


선인장 나는 학교를 현장으로 참여관찰을 했는데, IRB를 받지는 않았어. 이건 뭐랄까 불성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긴 한데.


보조배터리 에이, 선인장 학과에서는 IRB 하지 말라고 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선인장 뭐 아무튼, 나는 학교 현장 연구가 학교에서 승인이 안 되고 반려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학교에 요청을 한 게 오케이를 받으면서 급작스럽게 현장에 진입했단 말이야. 그래서 IRB에 사전 심의를 하는 걸 물리적으로도 할 상황이 안 되었어.


빼빼로 그러게, 연구라는 게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젤다의전설 맞아. 나도 연구참여자를 구하기 너무 어려운 연구 주제이다보니 사실 인터뷰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IRB 일정이고 뭐고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야. 열심히 찾아도 한 달에 한 명 인터뷰 할 수 있을까 말까 싶은 정도야. 그저 너무 소중한 인터뷰이인데. IRB에 보고한 일정대로 하는 게 실제로 가능한가 싶기도 해.


빼빼로 나 같은 경우엔 이거 나가도 될까 싶지만, 지도교수님도 IRB에 비판적이셔서, 형식상으로 IRB 심의를 받되, IRB 승인 이전에 수집한 데이터도 연구에 사용하자고 이야기가 되었어. 교수님도 IRB는 사회과학을 위한 연구 윤리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셔. 질적 연구랑은 더 잘 안 맞고. 우리 나름대로의 연구 윤리를 잘 지키면 된다고 말씀하셨어.


선인장 내가 연구 중에 윤리적 측면에서 더 고민했던 건 그래서 IRB 심의 통과보다는 재현 윤리였던 것 같아. 학교를 참여관찰을 하다 보니, 특히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는 내용이라든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내밀한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논문에 그대로 써도 될지가 엄청 고민이었어. 심사 때도 교수님들이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 맞냐’ 이런 피드백을 주기도 해서, 감이 잘 안 잡히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 끝까지 수정을 많이 한 부분이었지.



# 2 청소년을 연구하면, 안 되는 걸까?


젤다의전설 아까 하리보가 청소년 연구한다고 했잖아. 나도 연구참여자 중에 10대 청소년이 포함되어 있어서, 공감이 됐어. 나는 IRB를 포기했다고 얘기하긴 했는데, 그게 애초에 될 수도 없었던 게, IRB에서는 청소년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부모 동의를 받아오라고 하잖아. 그런데 내가 연구한 청소년의 경험은 사회에서 일탈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기도 해서 부모 동의를 받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내가 연구를 해야 되니까 그 청소년한테 부모한테 그 사실을 고백하라고 부탁하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보조배터리 맞아. 내가 아는 쌤은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할 때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면 연구자더러 아웃팅을 시키라는 거냐고 분개하기도 했어.


빼빼로 공감해 정말. 나도 아동 청소년이 포함된 참여관찰을 하고 있는데, 내 경우엔 부모를 먼저 컨택해서 연구참여 동의를 받고, 부모를 통해서 아이들에 대한 동의를 받는 식으로 일종의 탑다운 승인절차를 거쳤단 말이야. 이건 IRB가 요구하는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사실 윤리적인 고민을 남기게 되더라고.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신이 연구 참여자가 된 게 사실상 본인 의사가 아닌 거잖아. 부모가 하자고 해서 하는 거지.


선인장 오, 진짜 그렇네. 아이들은 참여관찰이 뭔지, 연구가 뭔지 오히려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빼빼로 맞아. 진짜 고민인 게, 나는 절차적으로는 연구 현장의 장에게도 승인을 받았고, 부모님들도 동의를 다 받았기 때문에 잘 알고 계셔. 그런데 내가 직접 관찰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은 내가 꽤 여러 달 참여관찰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아. 어떤 아이는 나를 탁 노려보더니 ‘근데 누구세요? 왜 말을 거세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어떻게 친절하게 설명해보려 해도, 박사과정생의 연구를 초등학생에게 이해 가능하게 알려주긴 어려워. 아마 친구들 입장에선 매우 불친절하다고 느낄 거야. 그래서 나는 아이들 의사를 건너뛰고 부모 동의를 받는 것이 승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선인장 나는 IRB를 안 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사실 부모 동의도 받지 않았어. 학교 연구 승인은 학교 교사들이 내주었고, 교사들은 학생들과 모이는 일종의 의결 기구에서 회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연구자가 학교에 들어와도 되겠는지 물어보고, 학생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셨어. 부모는 빠져 있는 셈이지.


빼빼로 그 정도면 꽤 충분히 동의된 거 아닐까? 물론 IRB 기준에는 안 맞다고 트집 잡을 수 있겠지만.


선인장 그래서 사실 나는 부모 동의를 받은 적이 없으니까, 부모들이 학교에 왔을 때 나의 존재를 보고 나를 경계하면 어쩌지? 외부 연구자가 학교에 들어와 있는 걸 문제제기하면 어쩌지? 그런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우려도 했었어. 다행이 부모와 학교에서 만난 경우에도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했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


하리보 나도 이제 청소년 연구를 하려다보니까 부모 동의를 받겠다고 IRB에 보고해서 연구 승인을 받기는 했는데, 실제로 동의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고민이 돼. 청소년에게 먼저 섭외 연락을 해서 부모 동의를 받아와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에게 먼저 컨택을 해서 청소년 동의를 받아야 하는 건지 말야. 사실 둘 다 좀 이상해서 고민이 많이 돼. 그래서 자꾸 연구를 미루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아예 다시 18세 이상의 당사자를 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까, 심적 부담이 덜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해.


탄산수 그니까. 그렇다고 청소년 연구는 이미 청소년 시기를 지난 사람의 회상으로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하리보 원칙을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라고 세우는 건 쉽겠지. 하지만 그걸 실제로 부탁해야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무서운 일이야. 청소년 분에게 이런 연구가 있는데 참여해 주세요 부탁했을 때, 청소년이 자기는 하고 싶다고 말을 해. 근데 거기다 다시 부모님 동의도 필요하니까 여쭤봐 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탄산수 나는 좀 비슷하면서 다른 상황인데, 내가 자녀 양육에 관한 성인 여성 인터뷰 연구를 한 적이 있거든. 그런데 양육 문제를 다루니까 어머니들이 자녀들에 대해서 구술을 많이 하게 되잖아. IRB가 직접 인터뷰하는 사람 말고 자녀 동의도 받아오라는 피드백을 한 거야. 이 연구는 어머니 관점에 관한 연구고 어머니만 연구참여자니까 자녀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방어를 하긴 했는데 황당한 일이었어.


보조배터리 탄산수 얘기 들으니까 좀 재밌다는(negative) 생각이 들어. 부모와 청소년 자녀 관계에서 생각해보면, 부모는 청소년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녀에 대한 얘기를 막 떠들어도 되고 그건 출판되는 데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 자녀인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만 말을 할 수 있고 그게 기록이 될 수 있잖아. 만약 같은 사안에 대해 얘기한다면 부모가 청소년 자녀에 대해 한 말의 반론권을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얻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어. 나는 청소년의 연구참여 동의 문제를 그냥 청소년 개인의 의사 능력을 무시한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해왔는데, 부모-자녀 세대 관계에서도 불균형을 낳네.


하리보 나도 보태고 싶어. 내가 학교에 부적응한 학생들에 관해 연구할 때, 연구를 조금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교사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 연구를 했단 말이야. 그때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 내가 원했던 건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거잖아. IRB가 관장하는 윤리적 연구라는 맥락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는 교사들을 거쳐서만 이야기될 수 있었던 거야. 정말 많이 답답한 느낌이었어.


탄산수 한 가지 더 남는 질문은, 청소년 혹은 다른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IRB는 의사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서 당사자 자신의 동의를 불충분한 동의로 보는 거잖아. 그럼 그런 사람들을 IRB를 거쳐서 연구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딱히 대안이 떠오르는 건 아니고, 막 아무나 아무렇게나 연구해서도 안 되겠지만 말이야.



# 3 그런 남자는 다시 만나면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젤다의전설 나는 인터뷰 연구를 진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윤리적인 딜레마는 연구참여자의 세계에 개입하고 싶은 나의 욕망 때문이었어. 어떤 연구를 했을 때 막 엄청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를 만나고 있는 인터뷰이, 성생활을 하면서 사후 피임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는 인터뷰이 등을 보면서 인터뷰고 뭐고 그러면 안 된다고 자꾸 얘기하고 싶은 거야. “다음부터는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 만나지 마세요” 너무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잖아.


보조배터리 그러게, 그런데 그런 얘기는 인터뷰 끝나고 별도로 한다던지 하는 게 가능하긴 하지 않을까? 나는 들으니까 인터뷰 중에 연구 참여자랑 싸웠던 동료가 떠오르긴 하던데. 나는 그때 연구에서는 굳이 내 입장을 내세울 일이 아니고 연구 참여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것도 윤리적 딜레마인 게, 사실 다른 톤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람들하고 생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그들한테 최대한 많이 들어서 그걸 적어서 내 연구에 써먹고 싶었던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빼빼로 나는 아예 참여관찰을 하고 있으니까, 참여를 하면서 내가 내 연구 현장을 어떻게든 오염시키면 어쩌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어. 내가 보고 있는 현장에서는 자꾸 나에게 어떤 역할을 주려고 하는 거야. 아이들에게 이걸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이런 제안을 하신다던가. 그런 역할을 맡으면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간의 관계가 바뀌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서 거절을 했어. 또 예를 들면 아이가 울고 있어도 내가 달래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정말 그저 관찰하고 필드노트 적는 일만 했었거든. 그런데 이것도 어느 정도 라포가 쌓이고 나니까, 연구를 지속하면서도 다른 관계를 만들어보는 게 가능하기도 하더라. 개입이라기보다는, 내가 뭔가의 마음을 이만큼 내어주면, 연구 참여자들이 또 그만큼 내어주는 내면이 있는 것 같아. 이게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이전에는 내게 들려주지 않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순간들이 있거든.


하리보 그런 라포가 쌓였다는 게 참 멋지다. 나는 사실 내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한 윤리적인 고민의 순간이 있어. 한 인터뷰이가 내게 범죄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거든. 꽤 큰 범죄였다는 게 기억나는데, 들키지 않아서 처벌받지 않았다고도 말을 하는 거야. 마음이 정말 어려웠어. 내가 이걸 말을 안 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피해자는 분명히 있을 텐데 하는 그런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어. 또, 청소년 연구를 하게 되면 보통 성인 연구자는 청소년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만나기도 하니까, 내가 자꾸 면담이 아니라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서, 좀 주의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내가 뭔가 개입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입을 꾹 다물고 들어야하는지 아니면 잠깐 멈춰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해야 하는지는 큰 딜레마이긴 한 것 같아.


보조배터리 내 얘기는 아니고 좀 먼, 정말 먼 얘기인데, 예전에 그 유명한 ‘사당동’ 일가족을 장기적으로 참여관찰한 연구와 관련해서 세미나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갔던 적이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몇 십년을 연구 하면서도, 그 가족에게 경제적이거나 아니면 신변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연구자가 직접적으로 돕지 않았는지를 묻는 토론이 있었거든. 물론 우리가 독자라고 해서 그 연구 맥락을 다 알지는 못하니까 실제로는 도왔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연구참여자에게 애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무언가 연구자가 개입해서 좋게 만들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마음을 멈추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


(2부에서 계속)



글. 보조배터리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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