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없] 취미를 기도하기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1일 전
- 4분 분량

석사과정 시기, 운이 좋게도 연구실에 있으면서 책상 말고도 커피 용품을 둘 곳이 있었다. 의자 뒤편 창가였는데, 허리쯤 되는 위치에 구멍이 송송 뚫린 냉난방 겸용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가까이 붙어 있지 않으면 온기를 느끼기 어려웠고, 여름에는 동굴처럼 서늘해서 별 쓸모가 없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드리퍼 하나, 서버 하나, 전기 주전자 하나, 드립포트 하나를 올려다 놓았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오는 게 무척 귀찮아서, 학교에서 직접 내려마실 요량이었다. 빨아 쓰는 두껍고 단단한 행주를 접어서 바닥에 깔아두었다. 구태여 그걸 뭐라 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연구실은 한적했다. 커피 생활은 그냥 라디에이터를 무단 점거했을 뿐인 단촐한 공간에서 시작했다.
자주 연구실에 나오게 되고, 조금씩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다 보니 창가는 어느새 커피 용품으로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귀엽고 예쁜 컵들을 구비해놓고, 심심할 때면 전기 드립포트의 배선과 멀티탭의 위치를 고려하면서 내 손이 편한 배치를 만들었다. 누군가가 이 정갈한 배치와 귀여운 컵들을 보고 감탄해주었으면 하는 치기어린 마음도 있었다. 연구실은 적당히 서늘하고도 건조해서 원두를 보관하기에도 최적이었다. 연구실에 들어오면 가방을 내려 놓고 가장 먼저 드립포트에 물을 받아왔다. 연구실에서 졸기만 하다가 하루를 망쳐버리는 날이 종종 있었지만, 늘 시작만큼은 같았다. 그렇게 시작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더라도 연구실에 있는 한 번은 꼭 커피를 내려야 했다. 그게 약속이었다.
처음부터 커피, 그리고 커피 내리기를 좋아하진 않았다. 남들과 수다나 떨려고 내는 자릿세가 아니라면 일부러 사다가 쪽쪽 빠는 일도 드물었다. 텀블러에 정수기 물을 채우는 게 고작이었다. 텀블러는 책상 한켠을 차지하니까 내 눈에도 남들 눈에도 예쁘게 보이는 디자인에 더 관심을 가진 시절이었다. 커피를 마셔도 늘 수업 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카페인의 힘으로 무언가 도모하지도 못했다. 구태여 잠을 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른하고 게으르기도 했다.
나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커피 내리기라고 대답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즐겨 회상하기가 거북해지는 군대에서였다. 어느 날인가 내 손에 카누 한 봉지가 있었고 그걸 타서 마셨을 뿐이었다. 마음이 동하는 게 있었는지, 일과가 끝나고 전화로 어머니에게 카누 한 박스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매번 종이컵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즐겨 쓰던 머그컵도 같이 담아 달라고 했다. 알라딘에서 책을 사며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컵이었는데, 각진 손잡이에 겉면에는 기지개를 펴는 고양이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고양이보다 바닥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엎어 놓고 싶어하기도 했다. 사물함 한 켠에 카누 박스와 머그컵을 두는 자리가 생겼다. 점심을 먹고 생활관에 돌아오면 꼭 두 봉지씩 탔다. 커피 표면에 일렁이는 아주 작은 거품을 바라보면서 머그컵을 양손으로 꼭 쥐고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왜 카누에 만족하지 못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된 시기였기 때문에 일과가 끝나면 재빠르게 받아서 밀린 SNS 글들을 훑었지만, 그럼에도 심심한 구석이 남아 있던 모양이다. 홀린 듯이 핸드드립 세트를 샀다. 무미건조한 생활관에서 커피 내리기는 조금 튀는 행동이지 않을까 싶었다. 전투복과 속옷, 수건들, 책 몇 권만 있던 사물함이 점점 채워졌다. 사물함의 절반을 커피 용품이 차지했다. 중대장이 보고는 의아해 하면서도 뭐라고 하진 않았다. 사고를 칠 바에야 건전한 취미 생활을 즐기겠다는 걸 나무라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택배를 주문하며 저마다의 취미를 가지는 사람은 많았다. 커피의 반대편에는 단백질 쉐이크가 있었다. 운동한다는 사람들 침상 밑에는 꼭 커다란 쉐이크통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며 나눠 먹기도 했다. 매일 복도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쉐이커 안의 스프링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가끔은 카페인이 운동 효과를 높인다며 나에게 커피를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늘 사물함 정리하기를 좋아했다. 조금 강박적일 정도로 정리했다. 어느 TV프로그램인가에서 해병대원들이 모포에 칼각을 잡는 모습을 보여줄 때, 나는 머그컵과 원두 봉지의 위치를 세심하게 신경 썼다. 개인정비시간(일과 후 휴식)이 끝나기 20분 전에는 꼭 마시던 컵을 설거지해서 엎어 놓았다. 설거지를 하기 위한 수세미와 고체 세제도 자기 자리가 있었다. 점호 전에 꼭 흐트러지지 않게 배치를 정렬하고…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자그마한 것들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다. 책상 위 물건들을 잘 정리해 놓았는데, 며칠 지나서 어머니가 나에게 말하지 않고 '더 나은 배치'로 바꿔놓았을 때는 큰 소리로 울며 떼를 썼던 기억이 있다. '더 나은 배치'도 별 것 없었다. 쓰지 않고 먼지만 쌓였던,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가는 민트색 라디오의 위치를 조금 바꿔놓은 것뿐이었다. 휴지 박스와 위치를 바꾼 게 전부였다. 그게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다시 돌려 놓지는 않았다.
군대에서는 종종 생활관 점검을 하면서 중대장이 사물함을 열어보고, 엉망진창인 사람에게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때만큼은 책 잡힐 게 없었다. 머리는 반골이었지만 몸에 밴 건 너무 모범생이었던 탓일까? 군대가 너무 싫으면서도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내가 싫어져서, 휴가를 나왔을 때 선배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는 적응이 꼭 균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주 작은 돌출은 커피믹스가 아니라 카누였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방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사물함은 나의 연장(延長/鍊粧)이었다. 나는 우연히 거기에 커피들이 놓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진 않아서, 남몰래 군대를 카페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나중에 짐을 정리하니까 박스 하나가 커피 도구로만 채워져 있었다.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한 커피 도구들이 집과 연구실에 넘쳐났다. 따로 상자를 만들어 담아 놓아야 할 정도였다. 자주 손이 가는 건 한두 가지 도구일 뿐이다. 나는 장비들 사이의 오묘한 차이랄까, 이를 테면 드리퍼의 형태와 사이즈, 심지어 필터와 생수에 따라 어떻게 다른 커피맛을 만들어내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입으로 감지한 적은 없다. 그저 믿는 것이다. 다를 것이라고… 나만의 제단에 특별하지도 않은 공물들을 쌓아 놓고, 늘 같은 전례를 반복하며, 기도하면 믿게 될 것이라고, 무언가 변하지 않아도 변하리라 기도하며, 나중에는 무엇을 비는지조차 잊은 채 매일 매일의 의식을 행하는 것 자체가 자고 일어나는 것과 같은 본성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좀 힘을 줘서 썼지만 그냥 물욕이 올랐다는 의미다.
나는 다른 사람의 취미를 궁금해 한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자신의 돈과 시간, 관심을 쏟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기 향상이 아니면 더 좋다. 즐김이 꼭 잘함으로 이어져야 한다면 비극이다. 남들 눈에 쓸 데 없는 것들을 모아 찬장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일부러 문을 열어 흘끗 바라보는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거기에 조금 과한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 풍랑을 헤쳐나가는 커다란 배와 나침반은 아니다. 뗏목의 돛에 달아놓은, 어쩌다가 내 목에 둘러져 있던 붉은 천 정도는 될 것이다. 나는 그게 뗏목을 지탱하리라고 믿는다.

글. 김선우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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