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17분 전
- 5분 분량

알리가 떠났다. 풀네임은 알리 하그파라스트(علی حقپرست, Ali Haghparast). 이란 사람. 서울 우리카드 우리원이라는 배구단에서 24-25시즌부터 2년 동안 활약했다.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히터, 옛날 말로는 레프트다. 늘 그가 더 큰 무대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런 류의 헤어짐은 늘 준비없이 찾아온다. 우리카드 배구단은 언젠가부터, 누군가 떠나면 선수와 스탭이 모두 공항에 모여 따뜻한 이별 장면을 남겨주고는 한다. 알리와 동갑 케미를 자랑했던 세터 한태준 선수와의 수많은 투샷을 남기고, 알리가 떠났다.


나는 왜 알리를 좋아하는가? 알리가 왜 나의 최애가 되었는지를 회상해 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박사학위논문을 마쳐내는 동안 나는 이미 극심한 무기력증과 염세적 마인드에 깊이 침잠해 있었다. 누워서 쓴 논문으로 겨우 학위를 마치고도, 그 학위를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1년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보상심리와 함께 계속해서 누워 있었다. 터닝포인트는 가을에 짧게 다녀온 폴란드 여행이었다. 무슨 일에선지 박사과정 때 꿈에 나온 그 나라에 훌쩍 다녀왔다. 돌아와서 집 안의 묵은 물건들과 쓰레기를 새벽 내내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 스포츠 직관이라는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친구가 데려간 농구장이 시작이었다. 원래도 방구석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건 좋아하긴 했고, TV채널도 홈쇼핑 아니면 스포츠 채널만 봤다. 직관의 열기는 달랐다. 무엇보다 응원을 빙자하여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내게는 어릴 때 고향에서 열린 배구 경기를 보러 갔던 좋은 기억이 있어, 배구에도 관심이 있었다. 연구실에서 배구 정류장까지는 지하철 여덟 정거장이면 충분했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할 때 배구 직관의 큰 장점 역시 응원이었다. 말 그대로 쉴 틈이 없다. 랠리는 짧으면 10초 안에도 결정되는, 흐름이 빠른 경기인데 관중들은 볼 플레이가 되는 동안에는 선수들이 공을 타격할 때마다 구호를 외치고 - 우리카드 팀의 경우 우! 리! 빠샤! 다 -, 득점이 나면 득점을 올린 선수의 응원가를 부르며 다같이 율동을 따라 한다.
알리 응원가는 내 최애곡이다. “우리카드 알리 라랄라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 우리카드 알리 라랄라 신나게 외쳐봅시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쉬운 동작에, ‘신나게 외쳐봅시다’ 부분에서 나팔 부는 동작으로 키포인트를 넣은 신나는 곡이다. 알리가 득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첫 직관부터 쉽게 익힐 수 있다. 12.3 계엄 이후 아주 추웠던 여의도 시위 날에도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알리 응원 동작을 하면 추위 가고 에너지가 오면서, 흥겨운 기분을 느꼈다.
응원곡 때문에 선수가 최애가 된 건 물론 아니다. 나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얘기할 때도 꼭 ‘능력주의’라는 표현을 우스갯소리로 섞어 말하며 주로 메인보컬을 고르는데, 그 능력주의자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게 알리의 플레이였다. 2024-25 시즌 V리그 남자부 공격성공률 1위, 백어택 성공률 1위, 득점 5위, 2025-26 시즌에도 공격성공률 3위, 서브 5위, 득점 8위에 올랐다. 아시아쿼터 선수로서는 대체 불가능한 실력과 에너지.
놀라운 것은 알리가 겨우 2004년생의 신인급 선수라는 점이다. 청년 연구자이어서인지(?) 나는 스포츠 팀도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누가 봐도 강팀은 아닌 도전자 위치의 팀에 마음이 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큰 문제다. 좋아하는 팀들의 리그 성적이 좋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하지만 알리는 달랐다. 우리카드는 주전 세터 한태준도 알리와 동갑인 2004년생, 메인 국내 공격수인 김지한과 미들 블로커 이상현도 1999년생, 리베로 김영준은 2000년생. 아주 젊은 팀이다. (이대남 팀?) 하지만 늘 ‘봄배구’에 갈 수 있는 전력을 갖춘 팀이었고, 여기에는 알리의 존재가 아주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알리의 능력에는 배구 실력 바깥의 능력도 포함된다. 알리는 사실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일하는 일종의 외국인 노동자이기도 하다. 사실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들은 이른바 ‘인성’이 도마 위에 이르기도 하는데, 그들이 한국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때 팀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는 팀내에서 오히려 분위기 메이커였다. 마치 마을에 개구쟁이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듯이, 이방인 막내인 알리는 사글사글 웃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또 코트 위에서는 팀원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팀 분위기를 살리는 능력이 컸다. 한국어는 또 어찌나 빨리 배우는지. 구단 유튜브에 올라오는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늘 새로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알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알리의 억양과 발음을 생각하며 미소짓는다. 심지어 사실 이란이 전쟁에 휩쓸리며 가족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알리가 한국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배구했는지 배구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알리에게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알리는 팀 팬들 사이에서 ‘알쪽이’라고 곧잘 불렸다. 코트에서의 열정이 넘치다 못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흥분이 감지될 때 감독이 벤치로 불러서 좀 식혀줘야 하는 유노윤호 이상의 열정. 특히 배구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건 왜 현대캐피탈 팀의 레오만 만나면 서로 그렇게 기싸움을 하냐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이미 오래 뛴 1990년생의 베테랑이자 ‘V리그의 왕’인 레오에게 신인급 선수인 알리가 무례하다고 판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알리의 그런 모습도, 나이가 들면서 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당당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선배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갈등을 피하지 않기, 이런 것은 회피형에 유교보이인 내가 현실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리의 ‘노빠꾸’ 스타일은 내게 대리만족을 주기도 했고, 알리의 스타일을 경유해 일상에서 나의 다른 행동 방식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입덕 초기, 나는 내 프로필 사진을 알리 사진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는 특정 선수가 내 최애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알리를 너무 사랑해서 알리를 내 프로필에 담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그땐 어떻게 보면 알리를 이용한 것이기도 해서, 어차피 알리는 이 일을 모르겠지만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생겨나는 수많은 단톡방, 그리고 알게 모르게 돌아다니는 내 프로필 정보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나를 인식하는 게 싫었다. 그땐 이름도 본명이 아닌 초성으로만 설정해 놓았고, 누가 나를 쉽게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저장한 알리 사진을 프로필 사진에 넣어보니, 좋았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얘는 웬 중동남을 프사로 하고 있냐는 의문을 떠올릴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느낌에서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나와 교류하는 현생의 외국인들을 위해 프사를 내 사진으로 바꾸겠다고 생각하게 되기 전까지 1년 반 정도 내 프로필에는 알리의 사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떤 분은 외국 축구 선수겠거니 했다고도 하던데. 아무튼 알리가 내 얼굴이 된 덕분인지, 점점 더 알리는 내 최애 배구 선수가 되었다.
직관을 많이 다녔지만, 두 시즌 모두 우리 팀의 마지막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24-25시즌 우리 팀은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어 있었다. 17승 18패에서 진행된 마지막 경기. 그래도 마지막 경기니 잘하겠거니 하며 갔는데 1, 2세트를 너무 허무하게 졌다. 그리고 내가 영원히 저주할 이전 시즌의 그 감독은 알리를 투입조차 하지 않았다. 3세트에 알리가 투입됐다. 정말 너무 GOAT한 경기를 보여주시며, 남은 세 세트를 내리 따냈다. 그 경기 알리의 공격성공률은 90%를 넘었다. 18승 18패로 승률 50%를 마치며 시즌이 마무리됐다. 알리가 우리카드 배구 팀에도, 그리고 다시 연구자로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나에게도 큰 희망을 선물해준 것 같았다.
25-26시즌은 중간에 내가 저주하는 그 감독을 경질하고, 감독대행 체제로 기적을 써내려가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3전 2선승제의 경기였고, 1패를 안고 있었다. 이번에 직관을 가서 지면 너무 슬플 것 같았지만, 또 지더라도 내가 안 가면 한참 경기를 못 본다고 생각하면서 표를 예매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경기는 너무 아쉽게 패배했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알리는 세트가 끝날 때마다 벤치도 아니고 아예 경기장 밖으로 퇴장해서 뭔가 치료를 받고 계속 뛰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투혼을 발휘해줘서 고마웠다. 우리팀 막내이면서 선장인 세터 한태준 선수가 가장 아쉬워했다. 두 외국인 선수인 아라우조와 알리가 한태준을 달래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왠지 그 장면이 알리를 한국에서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계약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있었지만, 알리의 커리어도, 또 이란의 상황도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말 알리가 떠나게 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는 다음 시즌에는 그리스의 한 배구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리스.. 딱히 가 보고 싶은 나라 목록에는 없었는데, 왜인지 비행기표를 검색해봤다. 직항은 없고 먼 길이긴 한데, 그래도 우리카드 유니폼을 든 한국인이 알리 경기를 직관하러 간다면, 알리도 한국에서의 시간을 더 행복한 기억으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난 겸사겸사 그리스 여행도 하고 말이다. 사실 이란이라는 나라에도 알리 덕분에 처음 관심을 가져 봤는데, 지금 갈 수도 없고, 듀오링고에서도 이란 언어를 배울 수 없다.
사실 언젠가 한태준-알리 듀오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돌아와서 두 어린 선수가 성장하여 우승 컵을 드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 이제 만 나이로 22살인 이들에게는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았고, 아재 팬으로서 배구 정보 사이트에서 이따금씩 알리를 검색하는 나날이 나에게도 이어질 것이다.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 나는 오래도록 신나게 외칠게.

글. 김선기
편집. 김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