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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밖] 준비되지 않은 채로, 부딪혀보기



나는 평소 발표할 때 크게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다. 발표해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꺼리지 않았으며, 학회란 단지 내가 탐구하고 싶어서 시작한 연구를,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듣고 중요한 질문과 피드백을 던져 주는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4년 전 처음으로 전미사회학회에 갔을 때 나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목 안에서 말들끼리 엉켜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시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꼈다.


그런데 작년의 어느 날, 동료 연구자가 한 이메일을 공유해주었다. 내 세부전공 분야의 학회가 이탈리아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학회라기보다는, 내 전공의 세부 분야의 Summer Camp에 가까웠다. 신진 연구자들을 모아서 연구방법론별 특강과 세미나 형식으로 일주일 간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분들이 주최자, 강연자로 참여한다고 적혀 있어서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쉽게 지원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4년 전, 압도되었던 감정이 여전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럽에 가기로 결정했고,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내 세부전공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내가 작성 중인 논문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워낙 세부전공 분야가 다양한 전공인지라, 국내 학회에서 세부전공이 정확히 맞는 토론자를 만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분야 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을 수 있는 건 귀한 기회였다. 두 번째는, 발표와 토론뿐만 아니라 강의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국내 석사과정을 경험한 나는, 해외에서 내 분야의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초록과 커버레터를 제출하고, 참여를 확정받았다. 상반기 내내 수정을 거듭하던 원고를 프로그램 일정에 맞추어 마무리했다. 언제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원고란 없으니, 연구자에겐 마감이 필요하다. 논문을 제출하고, 출국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첫 번째 난관이 닥쳐왔다. 30분의 논문 발표와 다른 참가자의 원고에 대한 토론이 배정된 것이다. 나는 30분 동안 영어로 발표해본 적도,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원고를 토론해본 적도 없었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발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의 원고를 읽으며 어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멀게 느껴졌던 긴장감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도착한 날 저녁에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앞두고 Welcome Aperitivo가 진행됐다. 강의 내용이나 토론할 텍스트가 정해져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로 말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대화 내용을 떠올리고, 사소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일주일 간 함께 지낼 서로를 탐색해야 했고, 빠르게 지나가는 농담은 대체로 놓친 것 같다. 긴장한 와중에도 이 사전 식사 자리는 나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생각보다 위계가 없었고,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놀랐던 점은 프로그램을 조직자와 Keynote Speaker로 참여한 저명한 교수님도 학생들과 같은 자리에서 섞여 식사를 하고, 와인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모두의 이름이나 연구 주제 등을 물어주셨던 것이다. 한 가지 더, 비행기에서 발표와 토론 소식을 듣고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참가자들은 다들 그 메일을 받고 당황했다고 입을 모으며, 당장 내일 아침 9시에 발표를 해야하는 친구는 너무 긴장된다고 이야기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일주일 간 오전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강의와 토론이 교차로 이루어졌고, 각 세션 사이에는 티타임이나 식사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기가 죽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익숙한 듯 영어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참여자를 구성할 때 다양성을 고려한 것인지 모두 다양한 국가와 대학원 프로그램에서 왔지만,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만 쩔쩔 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 연습을 좀 더 열심히 해둘 걸!’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이 상황에 내던져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곧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먼 곳까지 와서 귀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온 정신을 기울여 강의를 듣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다시 물으면서 계속 말하려고 했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궁금한 점을 질문했고, 티타임마다 새로운 연구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 말이나 하는 게 나에겐 더 어려웠기에, 연구 발표 내용에 집중한 다음 관련된 질문을 해서 물꼬를 텄다. 이곳에서의 생활이나 프로그램 이후 여행 계획과 같은 가벼운 대화도 열심히 나눴다. 그 과정에서 어법이 맞지 않기도 했을 것이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사소한 오류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프로그램이 절반쯤 지났을 즈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다. 실제 발표를 들었을 때 완성된 원고를 가져 온 사람이 거의 없었고, 이론 설명만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다리를 꼰 채 앉아서, 발표라기보다 대담을 진행하듯이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국내 학회에서 보아 온 각 잡힌, 준비된 발표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공부하신 교수님들이 항상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이런 걸 말씀하신 거였을까 싶었다.


한 강연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분은 말이 굉장히 빠르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 분이었는데, 나는 그분이 한 꼭지의 설명을 끝낼 때마다 “Okay?”라고 되묻는 말 이외에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 전체 식사 자리가 있어서 동료들에게 사실 이 강의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토로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다른 동료들도 비슷했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옆자리의 미국인 교수님께서 자신에게 해당 강연자분이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했다고도 했다. 예상치 못했던 이 유쾌한 대화는 내가 지레 겁먹고 나를 낮추어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점차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모두 어느 정도는 나와 같은 마음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온 친구도, 스웨덴에서 온 친구도 간결한 표현으로 소통했고 자신도 영어로 연구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이 분야의 연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자신보다 내가 더 이론적 언어에 능숙하다는 이야기를 건네 준 연구자 친구도 있었다. 비록 6일뿐이었지만, 매일 9시간씩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며 예상치 못했던 반응들을 보다보니 나는 이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동료 한국인 연구자나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교수님도 없이, 이렇게까지 낯선 학술 환경에 나를 내던져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잔뜩 긴장한 채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는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었다. 금세 새로운 도전거리와 즐거움을 찾아냈다. 아직도 해외 학회에 있는 나를 상상하면 긴장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환경에서 또 나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실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껴지던 그 상태로도, 충분히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글. 사소 (신문연 회원)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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