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연구는 윤리적 고민의 연속이더라


연구 윤리를 주제로한 탁상共론, 지난 1부에서는 IRB 심의에 관한 의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서 윤리적 이슈는 IRB가 내 연구계획을 통과시켜주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연구 윤리란 어떤 정해진 기준을 행정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만족되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구가 인간 사이에서 진행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돌출하는 게 연구 윤리 문제이기 때문에, 매뉴얼을 갖기도 힘들고 연구자가 매번 새로운 고민을 안고 풀어 나가야 하기도 하지요.


혼자 안고 있으면, 논문을 쓰는 일에 비해 너무 사소한 문제인가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고민들을 이야기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구참여자들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 ‘뒤통수 치는 일’로 여겨질까봐 고민하시나요? 연구를 마친 후에 연구참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하시나요? 연구자의 위치성에 관해 논문에 어떻게 적는 게 ‘덜 짜치는’ 서술인지 궁금하신가요?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더 후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여자 소개


1부부터 참석한 보조배터리, 빼빼로, 탄산수, 젤다의전설, 하리보, 선인장의 소개는 여기를 참조!




#1 ‘뒤통수 안 되기’도 ‘거리 두기’도 어려워


선인장  나는 현장에서 들은 얘기를 어디까지 논문에 써도 되는지가 큰 고민이었어. 출판된 이후를 걱정하게 되는 이유는, 말하자면 ‘뒤통수’ 이슈야. 나는 학교에서 참여관찰을 했다 보니까, 교사나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말을 하는 걸 이미 많이 들으면서 연구를 했거든. 그러니까 그분들은 이 연구자라는 사람이 우리를 나쁘게 묘사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이미 한가득 하고 있는 거야. 현장의 연구참여자들과 라포를 쌓아 가면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연구자가 비판적으로 관찰한 자료를 보면 배신 당했다는 느낌을 받을까봐 걱정이 됐어.


젤다의전설  그러게. 나는 아직 연구를 하는 중이니까 선인장은 어떻게 마무리를 지었는지도 궁금해.


선인장  난 사실 그 고민에 대한 결론을 정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어중띠게 논문을 마무리했던 것 같아. 교수도, 연구 참여자도, 연구자 나도 만족을 못한 뭔가 박쥐 같은 모양새로 말이야. 그래서 난 내가 고민했던 연구에서의 재현 윤리도 결국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아.

 

빼빼로  선인장은 필드에서 경계를 받았다고 했잖아. 나는 오히려 처음 진입했을 때 반대로 너무 환대를 받았어. 내가 당사자성을 가진 현장으로 진입을 했다 보니까, 다들 내가 그곳을 연구해서 매우 좋게 묘사해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거야. 직접 말로도 들었고, 좋게 써 주고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선인장  결국엔 논문을 좋게 써 줄거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는 또 통하는 거네.


하리보  이거 나도 고민인데, 참여 관찰을 허락해 주는 대부분의 경우 그 장소의 구성원들은 그곳을 좀 좋은 곳으로 소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같아.


빼빼로  맞아. 그래서 지난 번에 중간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고민이 좀 본격적으로 들었어. 특별히 좋게 혹은 나쁘게 쓰려는 의도를 갖고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내 필드의 독자들이 이걸 읽는다면 너무 비판적으로 읽힐 것 같아서 완성 후에 이걸 어떻게 보여드리나 걱정이 되더라고. 나중에 읽으실 때 너무 불쾌하지 않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내용을 좀 더 넣어야 하나 고민해보기도 했어.


탄산수  물론 연구자의 해석에 참여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실 연구 참여자는 인터뷰를 제공해주는 사람이고, 해석하고 결과물의 내용을 책임지는 건 연구자라고 생각해. 오히려 나는 연구자의 생각과 연구 참여자의 생각이 너무 같아져버리면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런데 이렇게 또 깔끔하게만 말할 수 없는 게, 어떤 연구에서는 이 이슈가 좀 더 두드러지게 된다는 걸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야. 청년들을 만나는 연구를 진행했을 땐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깔끔하게 관계가 잘 정리되는 느낌이었는데, 중년 여성들을 인터뷰했을 땐 윤리적인 고민이 너무 중층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어.


하리보  논문을 쓸 때 나는 조금 다른 고민도 해. 재현에 대한 고민이라는 면에서는 같겠네. 난 내가 거리 두기를 너무 못 하나 하는 고민을 해. 정말 난 거리 두기를 실패했다고 계속 이야기하거든. 연구 참여자들의 입장에 마음이 너무 붙어 있어서, 내가 쓰는 이야기가 공공의 지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해. 뭔가 연구자니까 마음을 더 담고 싶을 때 참고, 차단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마음 같이 안 되고 무너질 때가 많아.


보조배터리  물론 하리보가 그렇게까지 단순하게 표현한 건 아니겠지만, 애초에 거리를 왜 두어야 하지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돼. 거리를 두어야 잘 보이는 것도 있지만, 거리를 좁혀야 잘 보이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빼빼로  난 하리보 말에 공감하는 맥락이 있어서 보태보고 싶어. 연구 참여자와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라포를 만들어야 연구를 얻고 자료를 구축하는 게 가능하잖아. 그런데 참여관찰 현장에서 어떤 경우엔, 그 최소한의 거리를 좁히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그럴 때는 거리 두기 고민 이전에 친해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게 될 때도 있는 거야. 그래서 어느 순간 이 관계를 이렇게 가져가는 게 맞는지 의문에 빠지게 되는데, 그 생각이 들 땐 이미 뭔가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이더라고.



#2 피드백을 줘, 주지 마, 줘, 주지 마, …


보조배터리  사실 질적연구 교과서에서는 연구참여자들에게 연구 결과를 확인받는 절차를 강조하긴 하잖아. 그렇게 하면 연구의 타당도도 올라가고, 어떻게 보면 아까 말한 윤리적인 고민들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고.


빼빼로  나는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게, 그래서 확인을 어떻게 받고 있어? 연구가 완성되고 나서, 연구 참여자별로 나온 부분만 발라내서 확인을 받는 식으로 해? 아니면 그냥 논문 전체를 보여주는 식으로 해? 내 주변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던데.


보조배터리  나는 전체를 다 보여주는데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연구 참여자 10명이면 파일을 10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언제 다 하고 있어? 귀찮아서 못 해. 그래도 조금 보태보자면, 연구 참여자들도 전체 글을 다 봐야 맥락을 좀 알고 체크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선인장  나도 정확히 밧데리랑 같은 이유에서 전체를 다 보내. 익명화를 한 다음에, 연구 참여자별로 너가 어떤 이름으로 바뀌어 있는지만 알려주는 거지. 컨트롤+에프(Ctrl+F) 키로 찾아보기만 하면 돼. 전체를 다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리기도 했어. 그런데 사실 응답을 주신 분은 딱 한 분이셨어. 그래서 찝찝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 논문 내용에 수긍하시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른 채로 마감이 되어서.


보조배터리  맞아. 사실 좀 여러 번 경험을 해 봐도 응답을 주는 비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높으면 30~40% 정도? 그냥 ‘감사합니다’ 아니면 지메일 엄지 하나 보내주시는 거 이런 거 다 포함해서 말이야.


젤다의전설  나도 대학생 때 인터뷰이로 연구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확인 메일이 왔을 때 ‘연구자 선생님이 알아서 잘했겠지’ 생각하고 답장을 안 했어. 그런데 나중에 내가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거야. 그 분도 연구 참여자들 대부분이 답장이 없었다고 말하더라고. 연구자가 되고 나서야 이 무플이 난감한 상황인지를 알았습니다.


탄산수  아이고야. 알고 나면 이미 늦어버리지 꼭.


하리보  나는 석사논문을 쓸 때는 연구참여자 확인을 못 받았어. 그래서 논문을 연구 참여자들에게 다 보내드리면서 뒤늦은 고백처럼, 혹시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시면 연락을 해 달라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경험이 있어. 그런데 현장 연구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 참여자 확인이 더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내 현장에서는 보안의 이유 때문에, 연구 참여자의 연락처를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야.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서 논문에 쓰게 될텐데, 연락처도 없는 경우에는 확인을 거칠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생겨.


보조배터리  T로서 말하자면, 어쩔 수 없지. 노력을 했는데도 못 한 거면 연구참여자 확인은 받을 수 없는 거지. 또 그렇다고 연구자가 어떻게 논문에 자기가 연구한 걸 안 쓰겠어. 써야지.


하리보  맞는 말이야. 쓰긴 써야 해. 하지만 IRB 기준에서는 연구참여자 확인을 못 받은, 연구윤리 결함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것만 같아서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짐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젤다의전설  나는 오픈채팅방이나 SNS를 통해서 연구참여자를 구해서 인터뷰 연구를 하고 있는데, 논문 심사자들이 뒤늦게 인터넷 에스노그라피를 좀 더 전면적으로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준 거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오픈채팅방에 상주하면서 수집된 정보를 내가 논문에 적어도 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


보조배터리  그러게, 나는 오픈채팅방에 연구자임을 밝히는 족족 강퇴당하더라고.


젤다의전설  다행이 나는 방장한테 오픈채팅방에서 연구참여자 모집 홍보하는 것까지는 허락을 받긴 했는데, 계속 일을 지켜보았지만, 내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이 카톡방을 연구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은 건 아니라서 말이야.


탄산수  나도 하리보처럼 연구참여자 확인을 못 마치고 논문을 마무리했어. 연구참여자들이 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걱정이 됐거든. 심지어 연구 끝난 다음에도 무서움이 남아서 논문을 못 드렸어.


선인장  물론 탄산수 경험을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탄산수  요새 내가 하는 생각이기도 해. 심사자들이 내 논문에 들어간 연구참여자의 발화를 정말 자기 멋대로 읽는 걸 보면서, 좀 생각이 바뀌고 있거든. 내가 아무리 잘 해석을 해서 써도 어떻게 읽힐지는 어차피 연구자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어. 내가 어떻게 이상하게 써도 읽는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떻게 읽힐지는 통제할 수 없겠다는 .


빼빼로  그래 좀 더 자신감 있게 써도 될 것 같아.


선인장  이렇게 연구참여자 확인 거치는 걸 포함해서, 나는 연구가 종료된 이후에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느냐도 중요한 연구윤리의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 연구자가 화전민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연구할 때 이 밭을 경작하고, 끝나면 불태우고 떠나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관해서는 특별히 이야기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아.


빼빼로  내 연구 현장에 있는 아이들이 내 연구를 엄청 궁금해하면서, 동시에 연구가 끝나면 내가 떠날 거라고 ‘선생님 박사 되면 이제 가시잖아요’ 이렇게 얘기를 해. 그래서 나 너희 성인 될 때까지 안 갈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런 마음이 좀 진심이 되어서 연구와 상관 없이 여기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해. 물론, 후속 연구로 이어나갈 수도 있겠고.



#3 생각보다 복잡한, 연구자의 위치성


선인장  대학원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준 과제가 포지션 페이퍼를 써오라는 거였어. 그때 내가 무언가를 해석할 때 나의 위치성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어떤 문화에 대해 서술할 때 그 문화 안에 있는 집단의 언어로 서술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 비판을 하든, 서술을 하든, 연구자가 전지적인 관점에 서지 말아야 해. 사실 연구에 이론적 배경을 쓰는 것도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관점에서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밝히는 의미도 크다고 생각해.


빼빼로  난 연구자로서의 위치성이 계속 손바닥 뒤집히듯이 왔다갔다 하고 있어. 처음에는 현장에 처음 간 것 치고 너무 당연한 것들이 많더라고. 사실 당사자로서의 경험이 있는 현장이다 보니, 현장이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이래도 되나 싶었어. 그런데 중간중간 작은 발표를 하고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오히려 현장이 낯설어지기도 하고, 소극적이어졌다가 적극적이어졌다가 이런 게 반복되고 있어.


보조배터리  몇몇 학과에서는 학위논문에 아예 ‘연구자의 위치성’ 파트가 포함되기도 하더라. 나는 별도로 파트를 넣은 건 아닌데,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관계는 상대적으로 평등할 수 있었다’는 말을 논문에 썼어. 사실 좀 더 성찰해보고 싶었는데, 내 연구 주제에서는 뭔가 할 말이 많지 않더라고. 그래서 위치성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연구나 논문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해.


탄산수  나는 논문에 끝까지 넣을까 말까 하다가 위치성 파트를 뺐었어. 내가 인터뷰 참여자들하고 약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한 번 인터뷰 해보고 라포를 잘 형성했다고 쓰는 것도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젤다의전설  맞아. 그런 게 좀 민망하긴 해.


탄산수  그리고 다른 논문들을 봐도 위치성에 관한 내용이 보통, 내가 연구 대상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좋은 위치였는지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많이들 되어 있고, 아니면 아예 연구 대상이 연구자와 반대이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식, 예를 들면 연구자인 나는 중산층이어서 노동 계급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서 너무 평면적 서술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위치성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는데 결국 결론을 못 내려서 아예 빼버린 거야.


하리보  고민이 많았겠다. 나는 석사논문 때는 위치성을 쓰지 않았는데, 박사논문 프로포절에는 좀 적었어. 어떤 방식으로 썼냐면, 사실 위치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까 생각을 하긴 했는데, 내가 어떤 맥락에서 이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런 내 경험과 생각을 약간의 자기 고백을 곁들여 썼어. 나중에 논문에 이걸 최종적으로 낼 수 있을까는 고민이야. 이걸 위치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부터도 고민이기도 하고.


빼빼로  나는 탄산수가 말한 상투적인 방법? 그러니까 연구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달라서 어려웠다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것보다는 하리보처럼 연구자가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써 주는 게 훨씬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보조배터리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야. 나도 논문에 연구자가 ‘나’를 좀 드러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서론부에 연구의 배경 쓰는 부분에서도 거시적인 글로벌 경제 변동, 이런 얘기하는 것보다는 연구자가 연구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또 위치성 부분도 연구자가 어떻게 연구 현장에 진입하고 거기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투명하게 밝혀주는 부분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 그래서 아까 선인장 선행 연구도 관점과 위치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재정의를 해 준 것도 인상적이고, 동의하는 부분이야.



#4 다음 대화를 기대하며


빼빼로  오늘 이야기하면서 IRB와 같은 제도를 거친다고 연구 윤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 그냥 개인 개인이 연구 윤리에 관한 의식을 어떻게 가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 같아, 그리고 왠지 위로를 많이 받게 된 것 같아.


선인장  하지만 동시에 연구 윤리도 우리가 공공성을 가진 지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라면, 이걸 검수하고 만들어가는 작업도 공동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해. 대학원에서 매주 쪽글조차 비평하는데, 연구 윤리에 관해서는 개인이 알아서 할 일로 맡겨지고 비가시화되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좋았어.


젤다의전설  나는 뭔가 한탄하는 느낌으로 질적 연구를 처음 하는 사람으로서의 어려움을 오늘 많이 토론한 것 같아. 질적 연구가 결국 연구자, 연구 참여자, 주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 간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오늘 다시금 깨달았어. 연구윤리가 연구자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둔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져. 연구윤리가 동영상 강의 수료증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 직접 연구를 하면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재미있었어.


하리보  고민만 잔뜩 하고 가는 느낌이어서, 뭔가 미안함도 있고 마음이 후련하기도 한데. 이런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어. 연구자가 잘 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해 용기도 얻고, 또 연구 참여자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나누고 하는 시간이라 좋았어. 모두에게 고마워.


탄산수 나도 오늘 너무 재밌는 시간이었어. 난 한편으로 연구 윤리에 대한 강박이 굉장히 심하고, 연구 참여자들이 내 논문을 어떻게 읽을까 고민을 너무 많이 해 왔는데, 너무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오히려 자꾸 회피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오늘 해 보게 됐어.


젤다의전설  윤리에 대한 고민이 많은 건, 또 다른 한편으로 연구자가 연구와 논문, 연구대상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해. 이 애정을 좀 더 들여다보아야겠어.


빼빼로  맞아. 애정! 그래서 나는 이런 윤리적 고민을 담은 자문화기술지를 논문을 마치고 나서 논문이나 다른 방식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보조배터리  그래, 그래. 연구도 연구지만, 우리 얘기하느라 지금 밤 10시인데 다들 저녁을 못 먹은 것 같아. 너무 늦었지만 뭐라도 챙겨 먹고 다음에 다시 더 얘기하기로 해!



글. 보조배터리

편집. 권오경





댓글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