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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 버스 창밖의 경관들


그것은 취향이었을까? 아니면, 몸에 새겨진 습속이었을까? 나는 상경한 이후에도 지하철보다 버스를 줄곧 이용했었다. 더 빠르고 간편한 전철 대신 버스를 고집하는 것은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살아왔던 일상이 몸에 새겨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시성과 빠른 속도를 보장하지만, 정시성과 속도 대신 다른 무언가를 선호하는 취향 때문일까? 아마 둘 다 해당할 것이다. 사실 이십 대 초반,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나를 둘러싼 일상의 반경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애초에 서울에 올라온 이후 어딘가를 돌아다닐 에너지도 흥미도 크게 없었기에, 내가 점유하는 일상의 공간은 자취방과 학교, 그리고 그 어드메에 있었던 소비공간에 국한되었다. 그랬기에 굳이 익숙하지 않은 전철 대신 버스를 더욱 많이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평소 지나칠 정도로 느긋함을 추구하며, 마치 전철의 시간표에 의존하는 계획과 바쁜 속도감을 싫어하는 성격, 그리고 주로 지하를 다니는 전철에 비해 다양한 시각성을 제공하는 버스가 전철에 비해 내 취향에 맞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나에게 주어진 일과 책임이 늘어갈수록 사회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전철을 이용하는 빈도는 갈수록 늘어간다. 그럼에도 어딘가를 이동할 때 시간적 여유가 나에게 허락된다면, 나는 나에게 허락되는 만큼 버스를 이용하곤 한다. 당연하겠지만, 나에게 버스는 전철과 다른 감각을 가져다준다. (요즘은 상당수의 버스가 전기 동력으로 교체되었지만) 거친 엔진의 진동과 소음, 차체의 흔들림에 따른 신체의 비의지적 움직임, 그리고 차창 너머 다가오는 도시 생김새가 선사하는 시각성 등, 전철에 비해 색다른 감각을 나에게 선사한다. 개중에 가장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동대문구에서 거주했을 때나, 지금의 은평구에 거주했을 때나 서울을 구성하는 도시 공간의 경관은 나에게 다양한 맥락으로 다가온다.
 
거주지 주변의 일상의 정경들, 어딘가로 이동할 때 마주하게 되는 익숙하지만 때로는 낯선 경관들은 나의 삶을 구성하는 공간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와 동시에 나를 구성해 왔던 삶의 궤적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경관들은 도시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과 일상 그리고 물질성이 어우러진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재현 자체로서의 경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령 이전 동대문구에 거주했을 당시, 청량리에서 261번 버스를 타고 마포로 이동하며 마주‘했던’ 동대문 시장의 간판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청계천 주변 골목 사이 보이는 다양한 공구상가와 소규모 공장들, 만리재 고개의 야트막했던 주택가들은 그를 관망하듯 지나치는 나에게 일련의 기억을 소환한다. 마트와 배달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시장의 간판들은 과거 시장에서의 경험을, 을지로-청계천의 소규모 공장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설비 업장에서 보냈던 시간을, 만리재 고개 초입의 주택가들은 초등학교 시절 거주했었던 언덕 동네의 기억을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다소 목가적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거주한 지 20년이 된 지금 시점, 아직도 낯선 이곳에서의 묘한 친밀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변화하는 도시 공간의 질서를 감각하게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동대문 시장 주변의 익숙했던 간판들을 달고 있던 건물 중 상당수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오피스텔 건물이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공구상가과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청계천, 을지로 일대는 아파트 부지로 재개발 중이다. 만리재 고개의 주택가는 도로변을 병풍처럼 수놓은 아파트들의 그림자 이면에 감춰져 더 이상 버스 차창 너머에서 볼 수 없다. 도시는 고정된 건조물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행위와 욕망, 그리고 비인간 행위자들의 물질성에 의해 끊임없이 변모하는 유기체와 같다. 따라서 익숙했던 경관은 다양한 이유로 변모하기 마련이다. 해서 익숙했던 경관이 변화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층위에서 과거 마주했던 다양한 경관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를 수놓은 다양한 궤적들이 흩어지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상일까?
 
예전부터 항상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는 현재라는 시간성 위에서 변화하는 물질성과 그에 깃든 기억들이 과거의 상실을 상정한다고 여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지배적인 것, 부상하고 있는 것들보다, 잔여적인 것들, 흔적들에 눈길이 간다. 더욱이 지금 변화하며 사라지는 내 이동 경로에 놓인 도시 경관들이 상징하는 것들이, 내 삶의 궤적을 그려왔던 가족의 노동 공간들, 소비 공간들, 주거 공간들과 많은 부분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흔적들에 시선을 떼놓을 수 없게끔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도시 경관의 변화를 추동하는 부동산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촉발한 개발 논리는 이러한 흔적들을 덮어버린다. 동대문 시장 주변의 수익형 부동산, 을지로 세운상가에서의 대규모 철거와 그곳을 대체한 공사 부지, 만리동 고개의 아파트들은 모두 그곳의 장소성과 기억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게끔, 매끄러운 외향의 건조물들을 그 위에 단단하게 올린다.
 
흡사 도시는 지층과도 같다. 도시는 이질적인 다양한 존재들의 삶의 양식과 습속들, 가치들이 켜켜이 중첩된, 그리고 물질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을 점유하는 건조물들이 겹쳐 다양한 의미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간대가 상존하는 장소의 층들이 쌓여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도시의 지층이 균질하게 재편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때 균질함 이면의 것들, 균질함에 포섭되지 않는 것들은 잔여적인 것들로 파편화되어 흩어지곤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질이든 그것들이 얽혀 직조된 기억이든 말이다. 마치 건축물의 기초 공사를 위한 평탄화 작업처럼 도시 개발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수익화가 되지 않는 것들은 축출되고 잘게 쪼개진 채 형해화된다. 그 위를 덮는 것은 도시 개발을 위한 세련되고 매끄러운 건조물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조물의 토대는 이전의 레이어를 전혀 감각할 수 없게끔 새로운 층이 되어 덮는다. 이전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람들과 사물들의 일상과 경험, 그리고 그것들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네트워크, 이질성 등은 마치 과거의 단층에 파묻힌 화석과도 같이 지금 여기의 경관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지금 여기의 도시라는 지층의 표면을 덮은 레이어는 더욱 단단하게 이전의 것들을 뒤덮는다.
 
나는 오늘도 도시에서 버스를 타며 변화하는 주변의 경관을 본다. 응암동의 재개발 주민(이라쓰고 건물주라 읽는다) 동의 충족을 축하하는 현수막, 북가좌동의 낮은 빌라와 맨션이 허물어진 부지 위에 지어지는 아파트 공사 현장, 자동차 공업사들과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던 상점들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주거 수익형 부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이 어떠한 질서와 경험, 기억을 자아낼지는 모른다. 다만 이전의 질서와 경험, 기억들은 심층에 가라앉은 채, 누군가 발굴하기 전까지 과거의 층에 파묻히게 될 것이다. 물론 발굴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사라진 누군가의, 무언가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버스 밖 경관을 마주할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든다. 이것은 사라져가는 것을 그저 목도하는 관망자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도 열심히 사라지는 것들을 눈에 담는다. 변화하는 과정들을 지켜본다. 그저 지나치는 시각성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사라지는 과거의 것들에 한없이 아쉬움을 느끼며 목가적으로 회고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것들을,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도시의 지층이 광포한 자본의 논리가 모든 것을 균질화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의 토대를 파괴적으로 과거의 층을 덮는 것에서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글. 구승우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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