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모두가 젠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인터뷰에서 젠더를 묻다 생긴 일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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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자 경험 연구를 위해 무성애자 인터뷰를 진행하던 와이너(Canton Winer, 2025)는 인터뷰 참여자에게 평소 하던 대로 젠더 정체성을 물었다. 문제는 많은 참여자들이 그 ‘간단한’ 질문에 마냥 간단하지 않은 대답을 했다는 점이다. “저한테는 젠더 정체성이 없어요(I don’t have a gender identity).” “저에게 있어 젠더는 빈터 같아요(My gender is like an empty lot).”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자기 자신과 삶을 이끌어가는 데 젠더가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For others, I understand that gender can be an extremely important aspect in how they conduct themselves and their lives. But that’s just not it for me).” 이 참여자들은 자신의 젠더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자신을 젠더퀴어나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어떤 무성애자들은 자신에게 젠더가 있고 그 젠더에 어떠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 자체에 무심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연구자는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은 모두에게 젠더 정체성이 있을 것이라고 너무 당연하게 상정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인터뷰 질문지에서 젠더 정체성에 관한 문항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수정된다.
10.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How would you describe your gender identity?)
* 후속 질문: 자신을 더 남성적이라고 여기시나요 혹은 더 여성적이라고 여기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Do you consider yourself more masculine or feminine? Why?)
a. 이 정체성이 스스로 얼마나 정확하다고 느껴지나요? (How accurate does this identity feel to you?)
b. 당신의 젠더 정체성에 스스로 얼마나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느끼나요? (How closely tied do you feel to your gender identity?)
이렇게 질문지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와이너는 연구자의 질문 자체가 기존의 인식 틀을 재생산하게 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수정된 질문지는 단순히 너의 젠더 정체성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게 아니라 젠더 정체성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게 하고 그러한 설명이 스스로 얼마나 정확하다고 여기는지 물어본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다보면, 내가 묻는 질문이 그 자체로 참여자의 답을 강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정체성을 물으면 참여자는 당연히 자신을 특정한 정체성 범주로 답하게 된다. 그런데 참여자가 그 정체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혹은 자신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는 언어이지만 마지못해 최선의 답으로 내놓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놓은 답인지 하나의 간단한 질문으로는 알 수가 없다. 모두가 당연하게도 젠더 정체성을 갖고 있고 거기에 대한 강한 인지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는 그 복잡한 맥락들이 소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와이너는 많은 인터뷰 참여자들이 젠더를 유용한 혹은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질문지에 반영하면서 ‘젠더에 대한 무심함’(gender detachment)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게 된다. 일부 참여자들은 자신을 특정한 젠더 범주로 정체화하지 않으며 젠더 정체성 그 자체의 기능 및 중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또 다른 참여자들은 젠더가 갖는 중요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젠더 정체성 범주가 모두 자신을 설명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자신을 특정한 젠더 정체성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에는 각자의 인종 정체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여성성 및 남성성에 대한 인식이 함께 결부되어 있었다.
당해 연구에서 인터뷰 참여자들은 모두 무성애자이긴 하지만, 젠더에 관한 무심함이 무성애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섹슈얼리티가 통상적으로 특정 젠더에 대한 끌림 유무 여부로 규정되는 (서구적) 상황 안에서 무성애자는 젠더 수행 압박을 덜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젠더에 대한 무심함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연구자는 추측한다. 즉, ‘타인에 대해 성적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라는 정의 안에 자신이나 관계 상대방의 젠더 정체성이 포함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성애자에게 있어 젠더는 비교적 그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젠더라는 범주 혹은 인식 틀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계속해서 문제시되어 왔다. 와이너 또한 페미니즘 이론 안에서 젠더 범주는 문제적 인식 틀로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젠더라는 인식 틀을 허물어야 한다(undoing gender)는 주장이 전개되어 온 바 있음을 짚는다. 그리고 많은 경험 연구가 젠더를 해체하고 그 틀을 허물어내는 실천들을 조명해 왔다. 당해 연구 또한 그러한 흐름 안에 위치할 것이다. 다만 이미 젠더화된 세계 안에서 젠더 없이 사는 것이 경험적으로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계속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젠더 규범을 전복하는 실천이나 정체성조차도 젠더 패러다임 안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가운데 와이너가 포착한 이 ‘무심함’은 어쩌면 우리 또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요소였을 수도 있다. 적극적인 전복이나 대안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 또한 무성애 스펙트럼으로 정체화하는 분들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젠더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자신의 정체성에 무심함을 보이는 이들과 많이 만나게 된다. 정체성은 내가 남들과 갖는 차이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언어가 되지만 그것이 나의 본질이라거나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다양한 정체성 범주가 더 세세하게 나눠지면서 늘어나는 가운데 누군가는 이를 두고 ‘자의식 과잉’의 징후라고 여기면서 조롱 섞인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체성 범주가 많아질수록, 내가 잠시 머물거나 혹은 오랫동안 정박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그러한 정체성들은 적어도 각자에게 있어 더욱 대수롭지 않아질 수 있다. 오히려 ‘유난스러운 건’ 그러한 정체성 하나하나를 적극적으로 차별하고 조롱하는 이들일 것이다.
이처럼 당해 연구는 경험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개념과 중요한 논점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지만, 보다 흥미로웠던 건 그 과정 자체였다. 그건 나 또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를 위해 참여자를 모집하여 인터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이너의 연구와 같이 정체성이 아주 중요한 주제이자 소재인 연구에서 정체성의 존재와 의미 그리고 그 중요성은 어쩌면 당연하게 전제될 수 있다. 연구자가 중요하게 여기니, 주된 질문거리가 되고, 따라서 연구 참여자도 그러한 틀 안에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그런데 그 틀에서 벗어나는 답이 나올 때, 나는 그 답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금 그 답을 억지로 내가 중시하는 틀 안으로 넣으려고 할까? 전자가 옳은 방향인 걸 알면서도 막상 인터뷰를 할 때에는 내 틀과 언어를 은연중에 참여자에게 강요하는 나를 발견하기 십상이다. 연구 질문과 연구 목표, 그리고 내가 활용하고자 하는 이론적 자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열린 태도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연구 과정을 적극적으로 열어 낼 때 더 좋은 연구와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이 연구는 내게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다만 당해 논문을 읽으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도 있었다. 연구자는 ‘젠더에 대한 무심함’이라는 개념을 고안하게 되면서 인터뷰 참여자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개념을 설명했다. 참여자가 자신이 젠더 정체성에 대해 갖는 태도를 설명할 때 이를 적절하게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와이너가 ‘무심함’이라는 언어를 제안하고 이에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그 어휘가 딱 맞다고 대답하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와이너는 당해 개념이 연구 참여자의 자기 이해에도 도움을 줬다고 언급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연구자가 언어를 제시하는 것이 젠더 명명을 피하고자 하는 동기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나름의 반성적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인터뷰에서 연구자는 참여자의 ‘이해’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역시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과정과 고민을 숨기지 않고 담아낸 연구의 의미는 무척 크다.
참고문헌
Winer, C. (2025). Does Everyone Have a Gender? Compulsory Gender, Gender Detachment, and Asexuality. Socius, 11, 1-17.

글. 조윤희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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