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연구하고 토론할 파티원 구합니다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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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연구한다’는 말은 사실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연구 분석 대상으로서 텍스트와 미디어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게임 또한 오래전부터 영화와 음악, 웹툰, 유튜브와 같은 문화적 텍스트/미디어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연구자들이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게임을 가져왔을 때 그 장벽과 난관은 작지 않다. 게임 연구자들은 게임이라는 대상을 기존 학문의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어려움에 처했다. 게임 연구에 대해 서로 다른 상위 분과의 언어가 요구하는 규칙은 각자 다르고, ‘연구대상으로서 게임’은 현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식의 비전공 연구자들의 선입견도 여전히 유지된다.
학제적 연구가 늘 그러하듯 국내 게임 연구자들 또한 혼자서 ‘솔플’로 연구를 해야 하고, 자기 분과에서 누가 게임을 연구하는지 발품을 팔지 않으면 서로를 알 수 없다. 연구참여자를 구하거나 함께 토론할 동료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게임 연구자들은 과연 어떤 조건이 주어졌을 때 어디에서 동료를 만나고, 무엇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게임 연구’라는 별도의 독립적인 연구분야를 만들어 연구자를 모은다는 것은 가능할까? 각자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부부터 참여한 이카루스, 패스맨, 나루호도, 스티브, 솔라, 호넷의 소개는 여기를 참조!

#1 게임 연구를 하게 된 이유 vs 못 하는 이유
패스맨 일단 게임 연구자가 아닌 나부터 말할게. 나는 앞으로도 절대로 게임 연구는 안 할거야!! …..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웬만하면 멀리 하려고 해. 가끔 주변에 게임문화 수업이나 세미나가 열릴 때도 있는데 흥미가 있어도 일부러 안 들었어.
나루호도 아니, 게임폐인인데 게임 수업에 관심이 있어도 안 듣는다니?!
패스맨 왜냐면 게임은 내게 일종의 ‘길티 플레져’기 때문이야. <피파>도 <오버워치>도 그렇고 내가 하는 게임의 상당수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하는 게임이야. 다른 사람을 이겨서 티어를 올려야 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게임을 할지 계산해야 한단 말이야. 웃긴건 현실 세계의 나는 ‘과도한 경쟁’이니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하는 주체’니 하면서 그런 것들을 비판해. 근데 그걸 내가 게임 속에서는 그대로 너무 열심히 하고 있어. (일동 웃음) 말로는 게임사의 현질 시스템을 욕하면서도 실제로는 거기다 돈을 쏟아붓고. 게임을 하면 너무 즐겁고 놓고 싶지 않은데 내가 연구자로서 갖고 있는 윤리관과 종종 부딪치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기더라.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해왔어.
스티브 게임에 대한 자기 마음을 지키고 싶어하는 거구나.
패스맨 응, 어찌보면 ‘게임하는 나’를 지키려는 것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아. 난 우리 길드에서 현질 안하고 약간 농촌에서 힐링하듯 게임하는 길드원이 있으면 닦달도 하고 그랬단 말야. 그런 것 때문에 더더욱 나는 게임 연구는 못할 거야. 더이상 게임을 유희나 여가로 볼 수 없는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솔라 그건… 패스맨이 게임을 너무 잘해서일거야(웃음). 난 못 해서 게임 연구를 하는 거라서.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도 뭔가 거기서 항상 열외되거나 어딘가 이탈해 있는 느낌을 받거든. 그 게임의 시스템이 명확하게 규정하는 어떤 이상적인 플레이나 수치가 있는데 난 늘 허덕허덕 하면서 ‘나는 이 게임을 참 좋아하고 싶은데 왜 얘는 나를 소외시킬까’ 하고(웃음). 아무튼, 나는 예전에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글을 투고하면 등단한 문인들이 그 글을 읽고 조언과 비평을 해주는 곳에서 게임으로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게임 연구도 자연스럽게 시작했던거 같아.
호넷 내가 게임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이거야. 사실 나는 학부가 공대거든? 어떻게 보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부터 콘텐츠를 ‘읽는 사람’으로, 게임 연구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어. 코로나 시기에 한창 메타버스니 하면서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관계를 강조하는 학술 경향이 많이 있었거든. 근데 오랫동안 게임으로 관계를 쌓아온 내 입장에선 그 현상이 특별한 건지 좀 의아했어. 지금까지 내가 해온게 그거 아닌가? 그렇다면 게임이랑 메타버스가 뭐가 다를까? 찾아봤지만 명확하진 않았고,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갖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잘 공유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에는 사람들이 게임 공간에서 만나서 발생하는 특유의 어떤 것들을 풀어내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원에 입학했었어.
스티브 나도 게임 자체보다도 ‘게임하는 사람’을 보는게 재미있어서 연구를 시작했어. 아까 솔라는 게임이 자기를 소외시킨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네가 왜 그렇게 느낄까가 너무 궁금하거든. 사실 내 연구에서 게임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결국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고 싶어하는 궁금함이 큰 동력이었던 것 같아. 또, 게임 연구 분야에 발을 들이고 생긴 강박 같은 게 있어. 소위 말하는 ‘갓겜’이나 좀 참신하다고 평가를 받는 게임들은 일단 다 사서 다 해봐야 해. 만약 내가 그 게임을 못 하겠으면 유튜브 영상이라도 보려고 하는 편이야.
이카루스 확실히 게임 연구를 시작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아. 게임은 항상 새로운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어떤 특정 장르도 자주 변주되고 메타가 계속 바뀌니까.
스티브 그리고 이쪽 판에 있다보니 소위 ‘진정한 게이머 상’이라는 게 있더라고?... 국내외 학회를 다녀보면서 얻은 결론인데 진정한 게이머 상이 어디에나 글로벌하게 퍼져 있어. 좀 짜증나는 부분이긴 해. 게임 연구를 한다고 하면 ‘너 <롤> 마스터 찍어봤냐’부터 시작해서, ‘너는 ‘진짜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게임 연구를 하는구나’ 이런 시선이랄까? 진정한 게이머 상에는 몇 가지가 들어가는데, 게임 종류를 많이 해서 게임 지식을 많이 쌓는게 하나 있고 게임 실력도 포함돼. 특히 소울류 게임이나 하드한 게임, 혹은 ‘진짜 게이머’가 아니면 절대 안 할 게임까지 해야 게임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뭔가 알 수 없는 장벽을 만드는 인식도 있고.
이카루스 연구자까지 포함해서 게이머들이 자기들끼리 줄 세우기를 하는 거네?
솔라 근데 난 요즘 시대에 그런 ‘진정한 게이머’가 된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 최근 AI 덕에 바이브코딩이 되면서 게임 개발자 모임 같은 데 가 보면 AI로 만들겠다는 이런저런 게임이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어. 요즘 게임들은 특정 장르로 고정된 것도 아니고 장르의 경계를 점점 바꾸는 편이잖아. 게임 씬을 만들고 장벽을 세우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이런 상태에서 한 개인이 이 온갖 게임들을 다 플레이할 수 있을까?
이카루스 옛날처럼 모든 게임의 CD를 사야 했던 상황이라면 이렇게 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즘은 엔간한 인디게임도 그냥 스팀에 올려놓으면 얼마든지 다운받을 수 있다 보니까. ‘플레이할 수 있다’는 조건이 ‘(전부) 플레이해야 한다’로 바뀌어버린건 아닐까 싶어.

#2 게임 연구에 대한 선입견
스티브 게임 연구에도 뭔가 그런 인식이 있어. 게임 연구는 ‘게임만의 특수한 뭔가를 밝혀야 한다’는 식의… 오래 전에 ‘트롤링’을 연구하려고 했을 때, 트롤링은 어디에서나 생기는 건데 게임만의 특별한 주제가 아니지 않냐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어. 근데 난 그렇기 때문에 트롤링이 의미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게임 속 어떤 현상이 단지 게임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현실로 연결되고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점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그랬을 때 정말 의미 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아직도 게임이 그런 점에서 굉장히 유용한 연구 주제라고 생각해.
이카루스 비슷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난 게임을 소재로 학회에서 발표를 한 적은 꽤 있지만 그게 ‘게임 연구’라는 생각은 잘 안해봤어. 게임 속의 ‘고인물 룩’이라는 정체성 표현 방법과 능력주의를 연결시켜 보는 연구, 한 게임 캐릭터의 ‘젠더 정체성’을 두고 해외 팬과 국내 팬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다룬 연구를 했었거든. 예를 들어 드라마 연구, 영화 연구, 게임 연구 같이 대상 중심으로 연구를 명명하는 워딩이 있을텐데, 그 텍스트 안에서 무엇을 볼 거냐에 따라 연구를 충분히 다르게 범주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호넷 게임을 분석하는 관점은 인류학이나 사회학, 심리학이 될 수도 있는거고, 심지어 국문학도 게임을 다룰 수 있잖아, 게임에는 스토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게임이라는 소재를 이미 순수한 ‘오락’으로만 보거나 특정한 ‘영역’에 한정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해. 게임이 가상 공간이기 때문에 게임 연구는 그 외의 맥락을 다룰 수 없다고 여기고, 연구자가 그 맥락을 가져와서 다루면 어딘가 어중이떠중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것들에 대해 난 좀 화가 많은 상태야.
솔라 그거 정말 공감이야. 문학 전공자 입장에서 게임을 다룰 때 그래서 결국 이걸로 무슨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계속 직면했던 것 같아. 내가 특히 관심있는 게 게임에서의 ‘이야기’라 더 그래. 인간의 이야기라는 건 사실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 속에서 추상적으로 추출되는 단위잖아. 그래서 오히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시에 ‘어차피 이야기를 말하는 건데 이걸 굳이 게임의 측면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다 보니 어떻게 내 입장을 세울지 고민이 많았어.
스티브 저 얘기 듣다 보니 화가 나서 그러는데 이 자리에서 반론 바로 해도 돼? (웃음) 게임이 사실 굉장히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형식의 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신>에서 내가 1시간 잡고 있는 거랑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건 정말 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단 말이야.
나루호도 여러 사람 얘기를 들으니 결국 게임 연구도 학제적 연구일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게임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반적인 선입견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 각자의 전공이 있다 보니까 자꾸 상위 분과 학문에서 기본적으로 견지하는 방법론이나 연구 관행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듯해.

#3 분과학문 속에서 게임 연구 하기 너무 빡세다
호넷 아… 인류학 쪽에서 게임 연구 하면서 참 난관이 많았어. 전통적으로 인류학은 발로 뛰는 연구를 많이 해왔어. 어떤 지역에서 며칠 살기도 하고 온갖 필드를 발로 뛰며 느껴지는 감각을 토대로 연구하는 분과잖아? 그런데 수업에서 배웠던 방법론을 게임 연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게 어렵더라. 게임 연구를 하려고 하니 ‘내 발은 어디에 있는가’부터 고민인 거야. 그 발이란 사실 내 책상 밑에 살포시 얹어져 있는 것인데(웃음)... 그러다 보니 연구자로서 ‘몸의 감각’에 대해 서술하고 이론적 틀을 가져오는게 개인적으로 어려웠어. 인터뷰도 마찬가지야. 인류학에서 인터뷰는 당연히 대면을 전제로 하는데 가상 공간을 연구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미국의 보엘스토프라는 디지털 인류학자가 실제로 게임 공간에서 인터뷰를 수행했었거든? 나도 비슷하게 시도했는데, 게임 속에서 누군가를 인터뷰한다는 거 자체가 어려웠어. 이건 비대면 인터뷰와도 완전히 다른 결의 문제야. 애초에 한국 인터넷 문화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면 경계하게 되는게 있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참 아쉬웠어. 뭔가 기존 방식으로 연구하려 하니 게임 속의 삶에 충분히 가닿지 못하는 부분이 항상 있어.
이카루스 솔라의 경우도 그래? 문학 쪽에서 게임 연구하시는 분들이 좀 많이 있을까?
솔라 주변에서는 박사논문 같은 경우 주제 자체는 문학의 정통 주제를 선택하고, 분석을 위한 곁다리 같은 느낌으로 게임을 소화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해. 나는 문학 쪽의 클래식한 주제를 따라간 사람이 아니다 보니 실은 논문 쓸때도 직접적인 게임 텍스트에 대한 상세한 코멘트를 받지는 못했고 항상 클로드랑 살았어. 아무래도 게임 쪽 연구는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많이 나오다 보니 그걸 많이 따라갔고. 게임 속 스토리를 분석하면서 당연히 생산자에 대한 인터뷰도 같이 하려 했는데, ‘문학과에서는 인터뷰 하면 짜친다’ 하더라고…
나루호도 헉, 인터뷰를 분석 방법으로 쓰면 안 되는걸까?
솔라 실제로 문학 텍스트 수용자를 인터뷰하던 논문을 본 적 있는데, 그걸 소화하는 학과 내의 분위기가 딱히 호의적이지가 않았어. 다른 게임 연구들, 특히 그 내적 문화 생태계를 다루려고 하는 논문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질적 인터뷰를 당연한 방법론으로 채택하는 듯해서, 거의 많이들 쓰니까 나도 가져가도 되겠지 했던 방법론 자체가 기각이 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라는 막막함이 컸어.
호넷 나도 나랑 같은 게임을 다루는 국문학쪽 연구를 본 적 있는데 그것도 주어진 게임 콘텐츠를 텍스트 비평하는 글이었어.
솔라 물론 게임 속에 있는 음악이라던가 공간, 구조 자체를 일종의 텍스트처럼 취급할 수 있고, 나도 어차피 학제에서 그렇게 훈련받아 왔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내 연구주제는 게임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굉장히 특수한 스토리텔링 양식이거든. 혼자서만 만들 수 있는게 아니라 여러 수용자들과 협업적 구조가 필요한 거라서. 이걸 기존의 팬덤 이론의 영역에서 다루자니 너무 텍스트 비평의 요소조차 없는 국문과스럽지 않은 논문이 되는 것 같았고, 반대로 너무 텍스트 위주로 들어가자니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 양식이 만드는 희미한 클러스터적 움직임이 포착되지 못하는 것 같았어. 이 문제에만 3개월을 고민했었어.
나루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논문 주제로 ‘게임’을 다룬다는 것 자체는 각자의 학제에서 인정이 되는거지?
호넷 솔직히 게임을 주제로 한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좀 신선하게 보시긴 해. 근데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일수도 있지만 ‘아 요즘 애들은 확실히 다르구나’, ‘네가 확실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기 때문에 이 디지털 공간에 대한 감각도 좀 남다르구나’ 이렇게 선 긋는 느낌(웃음).
솔라 우리도 그래. ‘아 뭐든 텍스트가 될 수 있지~’ 하면서 게임도 다룰 수는 있다 이런 식(웃음) 사실 나도 막연하게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실제로 논문을 쓰려고 보니까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긴 해.
호넷 뭐 내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것도 맞지만… 어쨌든 지도교수님이 이 분야를 잘 모르시다 보니 현장 관련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나눌 수 없는 게 아쉬웠어. 우리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하신 게임이 오락실 시절 <갤러그>란 말이야(웃음). 연구 단계에서는 내가 게임 플레이를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드리기도 했었는데, 게임의 물질성이라던가 그 게임에 진입함으로써 내 몸이 느끼는 감각 자체를 선생님이 온전히 이해하시긴 어려웠지. 이건 서로의 삶의 경험의 차이 문제라 어쩔 수가 없었어. 나중에 우리 이후의 세대가 연구를 한다면 게임 연구에 있어서도 교수의 지도가 지금보다는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내 연구에 확신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비슷한 게임 연구자가 곁에 있었다면 분명히 더 날카롭고 뾰족한 도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4 게임 연구자는 생각을 나눌 동료를 어디서 만나야 할까?
나루호도 이 대담을 준비했을 때 그런 게 많이 궁금했어. 게임 연구자들은 다들 어디서 만나? 게임만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학회도 생각해보면 소수고 학술지나 비평지도 아직까지는 다양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의 막막함을 다들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어.
스티브 내 생각에는 그건 게임 연구 관련 한국 씬이 좁아서 그런 것 같아. 아까 게임 연구의 학제성이나 여러 얘기를 했지만 결국 강하게 얘기해 보자면 ‘게임 연구라는 별도 분야가 과연 정말 필요하냐’는 질문도 남는 것 같거든. 그에 대해서는 사실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왜냐면 게임 그 자체가 중요하다면 그건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팬들과 산업체에게 뿐일거라서, 게임 연구를 한다면 결국 게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있나 싶거든.
그동안 해외 게임 관련 학회를 정말 많이 다녀봤는데 규모도 크고 학생들도 참 많아. 근데 막상 만나면 서로 뭘 하는지 아무것도 이해 못 하고, 서로 하는 게임도 연구하는 관점도 너무 달라. ‘너는 그 게임 할거니? 나는 이 게임 할거야 재밌었어’ 이런 식으로 거의 흘러간단 말이야. 그래서 사실 게임 학회에 왜 가는거지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 게임이라고 그저 한데 묶기보다는 게임에 대한 ‘관점을 비슷하게 가져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게 막 랭크를 어디까지 찍고 서로 모르는 게임을 오타쿠처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지 회의도 들거든. 게임만의 특수성이라는 문제를 처리하는 건 어렵긴 하겠지만 차후 연구자들이 해야 할 문제 같고, 게임이라는 너무 큰 분야 안에 모두를 묶어서 서로 뭔가를 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의문이야.
호넷 스티브의 이야기에도 동의하는게 다른 학과의 게임 수업을 들으면 게임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나 방법론이 확실히 다르다는게 느껴지더라고. 하지만 이런 건 있어. 여러 분과의 연구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어떤 큰 범주의 커뮤니티가 확실히 있다면 서로 간에 적어도 어떤 대화도 안 되진 않을거고, 서로 살풀이를 하면서라도 대화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인류학을 하면서 게임 연구하는 사람이 나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텐데, 못 찾겠고 만날 길이 없는 게 너무 막막해. 내가 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을 발품을 팔아서 만나야 되는 구조 자체가 아쉬워. 어디서 발표를 한다 해도 나는 게임 관련 학회보다는 여성학이나 퀴어 쪽 학회로 가는 편인데,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게 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취급을 받는 아쉬움도 있고.
애초에 게임 연구를 하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학원 내지는 연구 생활을 버티는 힘이 생긴다고 봐서 커뮤니티나 자조모임이라도 있으면 좋겠어. 한편으로 또 한국은 스티브 말대로 지금 게임 씬이 너무 좁아. 학회, 비평지, 발표대회 전부 한두 개 꼴인데 이거 자체가 게임 분야가 여전히 마이너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기를 이끌어가시는 분들이 잘못 하신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풀이 좁다면 그런 조직들은 다 고인물처럼 될 수 있잖아. 그래서 다양한 네트워크나 조직이 생겼으면 좋겠어.
나루호도 지금 나오는 얘기들이야말로 정말 학제적인 연구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이 겪는 난점들 그 자체네. 연구자들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최소한 다양한 관점으로 토론할 수 있는 깊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곳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호넷 사실 내가 이번에 세미나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같이 게임을 하는 모임을 하나 만들고 있는데, 영화나 독서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같이 보고 얘기하는 모임을 게임 분야에도 의식적으로 만들고 싶어서였어. 찾아보기론 같이 게임을 할 수는 있어도 진지하게 토론까지 하는 취미모임이 장기적으로 성행하는 곳은 없더라. 내 경우 게임 안에서의 ‘감각’에 관심이 있다 보니 토론을 한다면 각자의 감각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영화와 독서는 고급문화마냥 ‘깊생’ 대화가 가능한데, 게임은 여전히 단순한 오락처럼 즐기고 퉁치는 저급문화의 영역처럼 인식되는 걸까?
나루호도 나도 그건 너무 공감해. 책이나 영화에 대한 비평이 많이 나와 있지만 나는 게임 비평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나오면 분명히 읽어볼 사람들이 많을 거고. 하지만 왜 표면적으로는 그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몰라.
솔라 유튜브 등지에서 게임 비평을 파편적으로는 접할 수 있어. 유튜브나 다른 매체들이 비평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으로 비평이 해오던 영역이 분명 위축된 것도 사실이야. 한편으로는 스티브 말처럼 게임이라는 대상 자체가 특수하다 보니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플레이어별 경험과 접근이 너무 다를 수밖에 없는거고. 독서 모임이야 주말에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책 읽다 들어가는 아주 일상적인 단위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만 게임은 그게 어렵다 보니 매체적인 난관도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아.
패스맨 비용과 접근성의 문제도 간과하기 힘들듯 해. 게임 타이틀의 가격도 있고 플레이 타임도 필요할 거고 고티(GOTY: Game of the Year) 게임만 해도 고사양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게임 관련 경험과 토론 모임을 하려면 오히려 그런 환경이 갖춰질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고사양 PC가 몇 개 있고 거기서 모여서 그냥 오늘은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고 얘기해보는 거야. 예를 들어 <사이버 펑크> 같이 RPG적 요소가 있는 게임에서 어떤 사람들은 효율적으로 빠르게 미션을 처리할 거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NPC랑 만나서 얘기하면서 게임 속 도시의 풍경을 즐길 텐데, 그런 각자의 경험들이 만날 수 있으려면 확실히 일단 직접 게임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5 이런 게임 연구 누가 좀 해주시오
나루호도 오늘 얘기하면서 게임 연구가 굉장히 떠오르는 신흥 학문 분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여러 어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게 됐어. 국내 게임 씬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각자 게임 분야에서 향후에 좀 중요하게 다루어줬으면 하는 연구나 작업들이 있을까? ‘이거 중요한데 왜 아무도 안 하냐’ 싶은 거 있어?
솔라 우선 국내에 게임 연구 관련 번역서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 <루틀리지>나 <스프링어> 같은 출판사에서 게임 관련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번역이 하나도 안 되는 거 같아. 매번 클로드랑 퍼플렉시티 AI 돌리면서 이렇게 좋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왜 한국에는 이게 소개가 안 됐는지 맨날 고통받고 있어!
호넷 너무 동의해.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영어를 별로 잘 하는 편이 아니라 논문 하나 읽으려면 하루를 잡아야 해서 너무 힘들었어(웃음). 게임 연구 관련 텍스트는 대부분 영어고 아니면 일본어인데, 그러다 보니 게임 연구하는 사람들 참고 문헌이 다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지. 국내에서 그렇게 수요가 없나 하는 생각도 들어.
이카루스 아까 호넷도 잠깐 얘기해줬지만 나는 게임과 관련해 친밀성의 문제를 계속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어. 게이머들은 게임 캐릭터에도 많은 애착을 투여해서 다들 가챠로 어떻게든 뽑으려 하잖아. 게이머들이 게임 속 캐릭터나 게임 내 다른 플레이어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한 연구들이 나온다면 많이 재밌을거야.
패스맨 난 게임 연구자가 아니고 게임을 연구로 할 생각도 없지만(단호) 그나마 비슷한 방향에서 연구하려 했던 주제로는 한국 사회 내 PC가 보급되고 활용하는 데 게임잡지가 꽤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에 관심이 있어. 그리고 당연히 게임과 관련된 미디어 정치경제학적 연구도 나오면 좋겠어. 물론 내가 그걸 하려면 그라비티와 넥슨과 NC의 숙주인 나 자신을 욕해야겠지…?
스티브 언젠가 자문화기술지로 꼭 써(웃음)!!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게임을 가지고 연구한다면 어떤 방법론을 해야 할지’, 방법론적인 윤리 문제나 절차 문제는 어때야 할지를 다루는 실험적인 연구들도 나오면 좋겠어. 그게 생각보다는 덜 된다는 느낌인데 (물론 열심히 해외를 뒤져보면 조금씩 있긴 있어). 그리고 게임 디자인과 행위성의 연구는 정말 꾸준히 더 많이 수행되어도 좋을 것 같아.

글. 나루호도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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