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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논문을 냈다~ 잘. 했. 다.




논문을 냈다. 두 편 냈다. 글이야 학기마다 여러 편 쓰지만,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학술지로 투고하기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어떻게 한 번에 두 편이나 내냐고, 대단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이미 써둔 글을 낼 뿐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사가 진행될수록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됐다. 한 번에 두 편을 내는 건 미친 짓이 맞았다.


제일 큰 문제는 스케줄이 뜻대로 조정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예상보다 심사가 늦어졌다. 그래서 수정 기한이 빠듯하게 주어졌는데, 투고를 하기 전부터 정해둔 일정과 겹쳐서 밤새 고쳐야만 했다. 이에 더해 수정 기한이 애매하게 학기 초에 걸치면서 여러 할 일들 사이에서 시간을 분배하기가 어려웠다. 멀티가 안 되는 타입이라 더 어려웠던 것도 같다. 그렇다고 타협해서 지적 받은 부분만 대강 고치기에는 문화연구는 글쓰기와 논리 구조가 중요하다 보니 한 군데를 고치면 다른 곳도 고쳐야만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사실 두 편 중에 한 편은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당연히 좀 더 나중에 수정을 한 쪽이다. 막바지에 이르자 체력이 고갈되어, 문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수정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논문에서 오탈자를 발견할 때면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이해가 된다. 아마 나와 비슷한 절차를 거쳤을 테지... 밤을 새우는 와중에 문득 각종 행정적인 일과, 연구 프로젝트와, 수업과, 학생 지도와, 개인 공부까지 해내시던 교수님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몇몇 분들은 가정도 있다!). 어떻게 하신 걸까? ‘전업 학생’이라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아 돌더라도 시간 조율이 안 돼서 허덕이고 있는 나도, 언젠가는 여러 일을 한 번에 해내는 정신없는 삶에 의연해질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 본다. 부디...


다른 어려움으로는 간사님과의 관계 설정의 문제가 있었다. 간사님을 쪼거나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투고를 했었다. 그건 아마 내가 편집간사 경험이 있기 때문일 테다. 일정을 지키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 투고자’가 되는 대신, 칼같이 마감을 지키고 필요한 정도만의 소통을 하는 ‘나이스한 투고자’가 되기. 그건 나의 ‘추구미’였다. 실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수월히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논문 발행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건 ‘도달 불가 추구미’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괜스러운 질문들로 간사님을 귀찮게 하지 않고 싶었는데, 도대체 언제 발행이 되는 건지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자기검열과 불안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다가, 결국 매일매일 온라인 논문 발행 사이트에 접속해 내 이름을 검색하면서 올라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쌓여간 ‘괜스러운’ 수고들에 정비례하여 피로감과 분노가 올라갔다. ‘왜 언제 발행되는지를 투고자한테 안 알려주지?’, ‘굳이 물어봐야 알려주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왜 일처리를 이렇게 하지?’ 같은 거친 생각들이 솟아올랐다. 심지어 ‘나는 안 이랬는데’처럼, 제법 꼰대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 와중에도 자기검열이 멈춰지지가 않아서 분노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원체 내가 좀 피곤한 성격이다...). 이제 돌이켜 보면, 차라리 한번 물어보고 털었으면 이렇게까지 스스로 피로해질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기말 페이퍼를 발전시킨 글이다 보니, 수업 선생님들에게 피드백을 받은 뒤에 투고했다. 두 분 모두에게 받은 피드백이 ‘심사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심사자의 취향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 같다’는 논지였지만, 서로 다른 주제의 글에 같은 피드백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괜히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비슷한 피드백을 이전에 쓴 다른 글들에도 받은 바 있기도 했다. 스스로 ‘사리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아직은 어느 쪽에서도 비판받을 용기를 아직 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기에 좀 의외였다. 귀납적으로 ‘나는 호불호가 갈리는 연구를 하는 사람인 걸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 연구의 타겟은 누구일까?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을까? 내가 짜낸 언어를 기다리는 이가, 유독 와닿게 읽어낼 이가 누구일까? 아무래도 선험적으로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일 테지만, 틈틈이 고민하다 보면 연구자로서 나의 방향성이 어렴풋하게나마 잡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운이 좋게도 심사자 분들을 잘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칠기 짝이 없는, 아주 부족한 글이었음에도 의도를 고려하여 성심성의껏 장문의 피드백을 남겨 주셨다.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는 내게 동료들이, 심사평은 어느 정도 걸러 들어도 된다고 했다. 짧은 시간 내에 해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위치에서 던진 제안들을 전부 반영하다 보면 논문이 산으로 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심사평을 쉽게 넘기기 어려웠다. 하나하나 옳은 말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직 내가 연구자로서의 자아가 말랑말랑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감사한 나머지, 만약 내가 심사자였으면 겁나 부담스러웠겠다 싶을 정도로 답변서도 장황하게 썼다. 시간과 역량이 부족하여 전부 반영하지는 못했음에도, 수정사항을 반영하다 보니 초고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썼다면, 학술지 투고로 내보내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는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편 다 단독저자였음에도 논문이란 혼자 쓰는 게 아니구나, 오롯이 나의 저작이라 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도 누군가의 글에 이 정도로 성의 있고 쓸모 있는 피드백을 주는 동료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왜 논문을 쓸까? 나는 종종 농담처럼 친구들에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 바깥으로 굳이 나서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했었다. 아직 나의 작업물에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대학원생의 암울한(?) 생활 및 글쓰기의 고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그 때문에 글의 퀄리티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가 꺼림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게재한 논문의 온라인 발행이 늦어지고, 그 점에 엄청난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깨달았다. 나는 사실 내 글이 다른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충분히 사포질되지 않은 글을 통해서라도 대화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논문을 써내는 건 쪽지를 담은 유리병을 드넓은 바다로 던지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디로 갈지도, 누구에게 닿을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 유리병을 던지고자 한다. 혹시 누군가는 펼쳐 읽어줄지 모른다는, 소박하고 부박한 희망으로 말이다.



글. 익명의 돌고래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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