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연구자의 테라리움, 작업대, 책상


지난 탁상공론에서는 각자가 거쳐온 연구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에게 주어지는 연구 공간의 실태를 알 수 있었다. 어떤 학교는 학생에게 연구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저마다의 경로로 알아서 연구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학교에 존재하는 연구 공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공용 연구 공간'의 필요성이었다. 공용 연구 공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까? 만약 공용 연구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모일 수 있을까? (하나의 방법: 신문연에 놀러오세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결국 혼자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각자가 글쓰기와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공용 공간에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가도, 결국 연구를 완성해내는 것은 각자의 책상 위에서이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어떤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까? 매일매일의 기복을 줄이기 위한 루틴 만들기부터, 좁은 연구실이나 책상 위에서 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팁을 나눴다. 좁은 책상 위에서 우리는 먹고, 쓰고, 놀고, 생활한다. 모든 시간을 열중하여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끈기가 아닐까(!).


#참여자 소개: 트레비, 유령, 브로콜리, 아메의 소개는 1부를 참조!




#하지만 때로는 혼자가 되어야 해


유령  어쨌든 학과 연구실이 있으니까 사람들끼리 시시콜콜한 대화도 나누고, 그러면서 학술장 문화 안에 들어간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다 확신이 없잖아.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같이 만들어 나가고 그런 대화들을 나누는 게 자신감을 갖게 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 연구실이 있는게 커뮤니티 차원에서는 좋은 효과가 많은 것 같아. 그래서 집에서 공부하거나 혼자 공부한 사람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 어쨌든 다른 사람과 교류가 필요할 텐데, 그럴 때 어떻게 그런 걸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 갔는지 궁금해.


브로콜리  나는 같은 시기에 논문을 쓴 친구가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는데, 그것과 별개로 외롭고 괴롭고 그랬어. 스터디 카페 혹은 늦은 새벽에 도서관 열람실에서 혼자 쓴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거든. 


유령  그럼 같은 과정생들과는 논문 쓰기나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할 기회들이 많이 없었던 거야?


브로콜리  응응응. 수업 때는 만나지만 수업 끝나면 만날 일이 없고. 각자의 작업을 각자의 공간에서 하는 느낌이 강했어. 따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어. 동기들과 논문 쓰는 타이밍이 다르기도 했고. 공간에 모여 있지 않으면 교류할 기회가 확실히 없다는 게 너무 느껴졌어. 그래서 논문 쓰는 과정이 너무 외로웠어.


트레비  나는 공간이 있어서 좋긴 했는데, 또 쓰는 건 혼자였어. 사실 학교 연구실을 자주 썼던 이유 중 하나가, 혼자 있으니까. 사람들이 엄청 많으면 그건 그것대로 지치니까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거기서는 주로 나 혼자 이용하고, 눈치 안 보고 라꾸라꾸 펴서 자다가 일어나고. 물론 중간중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머무르다 가곤 했지만, 혼자 쓰는 것도 좋았던 느낌이었어.


브로콜리  보니까 공통적으로 다들 집에서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떤 경우에는 공간 분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잇잖아. 집에서 하면 안 된다, 퍼진다, 근데 어떻게 집이 더 작업이 잘되는 환경이라는 판단이 생겼는지도 궁금해.


아메  작업 공간이란 침대가 분리되어야 하고. 작업 공간은 딱 작업 공간. 그리고 집에 박혀 있으면 돈이 덜 나가.


브로콜리  밥을 해먹으니까.


아메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것도 있지. 그리고 마감을 촘촘하게 두다 보니까 쉴 틈이 없고, 그래서 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 마인드였던 것 같아. 사람 만나는 건 잘 모르겠어. 사람 만나고 이야기하면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힌트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혼자 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도 있어서. 뭔가 고민이 들면 지도교수를 만나러 가거나, 이래저래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여럿 있는 것 같아. 공간이 없을 뿐이지 다른 식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정말로 피드백이 필요하면 발표를 하면 된다는 생각이야.


트레비  나도 사람들이랑 있으면 즐겁고 하는데, 가끔 집중이 안 될 때가 있긴 해. 다 조용히 해! 이럴 수는 없으니까, 한 쪽 귀는 열어놓고 작업하는데 재밌는 얘기가 나오면 끼고 싶고 그런 거 있잖아. 그러다 보니 정말 집중을 요하는 일들, 그러니까 단기간에 해야 하는 기말과제 같은 건 집에 틀어박히고. 또 밤을 새우고 하는 게 있다 보니까. 그래서 또 이중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것 같아. 연결될 때가 있어야 하고, 혼자 있어야 될 때가 있고. 연결되어만 있으면 좀 피곤하겠다.


브로콜리  좀 느슨한 작업을 해도 될때는 같이 있는 공간이 좋고, 인텐시브한 작업은 혼자 있는 게 더 좋고.


유령  맞아. 나도 딱 그런데, 학교 연구실에 자주 안 나갔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마감이 촘촘하게 있다 보니까 집에 틀어박혀서 그 일을 끝내는 데 엄청 몰두를 했던 것 같아. 근데 저번 학기에는 수업 하나 들으면서 논문을 쓰는데, 집에만 있으니까  논문은 잘 안써지고 되려 고립감이 많이 들었어. 때로  마음이 급할 때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뭔가 낭비되는 시간들이 있잖아. 그런 거에 좀 스트레스를 받아서 혼자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감이 길고 매일매일 꾸준히 작업하는 게 필요한 거는 오히려 낭비되는 시간이 있더라도 연구실에 나와서 하는 게 훨씬 자극이 된다는 걸 느껴.


트레비  근데 그런 공간을 두 곳을 동시에 두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



#길 위에서도 공부를 하고는 싶은데


브로콜리  나는 기숙사도 있으면서 서울에 집을 따로 두고 석사 생활을 했어. 서울에서 일을 해야 했거든.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해놓고, 일할 때는 서울에서 잠자고 출퇴근하고 학교에 있을 때는 기숙사에 살고. 석사를 졸업하면서는 일도 그만두었고, 전업 학생으로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니까 서울 집을 유지할 수 없는 거야. 소득이 없으니까. 일할 때는 번 만큼 월세가 들어가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진짜 서울 살기가 힘들다. 꼭 서울에 살아야 할까? 그러면서 서울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를 점검하게 됐어. 유흥… (일동 웃음) 그리고 맛집. 이런 것들,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무언가들이 서울에 분명히 있는 거는 확실하고, 세미나 같이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보통 서울이니까 그게 되게 크더라고. 근데 그것만 아니면 굳이 서울에 작업실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그래서 경기 북부 쪽의 외진 곳에 처음으로 갔는데… 북방 땅의 서울보다 훨씬 조용한 동네에 가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니까 너무 좋은 거야. 


아메  공감인 게, 지금 집의 입지가 좋아서 붙어 있긴 하지만 박사논문 쓰면 경기도로 갈까 생각을 많이 하거든. 필요하면 자동차를 사는 게 낫지. 집값이 비교적 더 싸니까 집도 훨씬 넓어질 수 있고. 갈 곳은 많겠다 싶더라고. 어쨌든 나는 집에서 안 나오니까.


브로콜리  생각보다 연구가 거대 도시 인프라가 필요한 작업은 아닌 거야. 내가 갈 수 있는 슈퍼마켓이나 카페, 헬스장 정도만 있으면 괜찮은 거야. 


트레비  도서관 이런 게 필요하진 않아?


아메  물론 인적 자원이든 도서관이든 신문연이든, 가까움에서 오는 편리함은 무시 못하지. 돈만 있으면 여기서 살지.


트레비  예전에 교수님이 박사논문 쓸 때 대학 옆으로 이사를 가서,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루틴을 설계했다고 하거든. 근데 브로콜리는 경기 남부의 기숙사에 들어갔고, 애인집 겸 작업실은 경기 북부 저 멀리에 있잖아. 이동 시간이 어마어마 할 텐데.


브로콜리  그걸 이제 새로 짜야 되는 상황이야. 또 프로젝트를 하나 하게 되어서 서울 서북권에서 지역 조사를 하게 될 것 같아. 거기까지 가면 또 어마어마한 이동을 하게 될 거고… 또 현장 조사를 위해서 다른 지역에도 가야 하고…


트레비  정말 부지런한 삶이 필요하네… 그래서 나는 항상 고민인데, 다들 이동 시간에 뭐해?


아메  내가 나이 들었구나 느껴. 비행기나 광역버스 같이 먼 길 갈 때는 작업이 잘 되는 편이지만, 짧게 짧게 전철 타거나 왔다 갔다 할 때, 석사 시절엔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못 보겠어. 그냥 노래 듣고. 약간 쉬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면 크게 체감은 안 되는 것 같아.


트레비  나는 집에서 학교를 가든 어딜 가든 1시간씩 걸리거든. 왕복 2시간 정도인데,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나. 맨날 자거나 그냥 휴대폰만 보거나. 환승 없이 한 번에 가니까 더 고민이야. 자려면 내리 잘 수 있고 책을 읽으려면 읽을 수 있는데 늘 안 되더라고.


브로콜리  나는 아예 다른 전략을 쓰는데, 버스에서 잘 만큼 집에서 덜 자고 나와.


유령  대박.  침대로 사용하는구나.


트레비  생각도 못했어. 답을 얻어 버렸다.


브로콜리  원래 못 잤는데, 이제는 이동시간이 길어지니까 안 되겠더라고. 잘 자게 되었어.


유령  나는 좀 환승이 있는 편이라서 좀 가벼운 책을 들고 다닐 때도 있고, 애니나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집에서는 힐링 타임 같은 취미들을 이동할 때는 필사적으로 즐기는 편이야. 


아메  나는 그런 거 못하겠던데. 이동 과정에서 애니를 본다? 덕질을 하기엔 남들의 시선이…


유령  그래서 그냥 집 밖에서 보기 무난한 것들을 보지.


트레비  내 이동 시간을 잘 쓰고 싶은데 맨날 자가지고. 차라리 덜 자고 나오면 덜 억울한데 잘 때도 펑펑 자고 버스에서도 자고.


브로콜리  이동 자체가 갉아먹는 에너지가 있어서 어쩔 수 없어.



#나를 (허리를) 지탱해주는 사소한 것들


브로콜리  허리에 신경통이 있어서, 자세가 너무 중요해서 기숙사에서 주는 의자로는 안 되겠더라고. 발 받침이랑 모니터 높이도 다 조절해야 하고… 이거는 허리와 목에 생명이다. 이거 안 하면 다 나간다. 이런 생각으로 완벽히 뭔가 갖춰야 되는 것이 나한테는 되게 중요해.


트레비 나도 학교 연구실에서는 의자를 사비로 사서 가져다 놓았었어. 의자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브로콜리  그래서 그런 게 없는 곳에서 작업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트레비  이제 카페에서는 못 하겠어. 예전에는 카페에서 열심히 했는데, 이제는 카페가 작업을 하기에 친절한 공간은 아니야.


유령  근데 그런 장비를 갖추기가 처음에 너무 부담스러워. 내가 그만큼의 장비를 갖출 정도로 제대로 공부를 하긴 하나. 그래서 다들 언제부터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는지도 궁금해.


브로콜리  나는 통증이야. 너무 오래 앉아 있으니까 악화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하룻밤 작업하면 다음 날 누워 있게 되고, 이거는 안 되겠구나 계속 찾아보고. 정선근 교수 알아? 유명한 교수 있어. 허리디스크 재활 관련 책 찾아서 보고, 이런 자세 만들어야 되는 구나 하면서 맞춰서 했지.


아메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폼롤러로 한 번 지져주고 (웃음)


트레비  그렇구나. 예전에는 책상, 의자 욕심 아무것도 없었거든.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집 책상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걸 바꿔야겠다 생각을 해서 바꾼 게 처음이야. 몸이 불편하고 그랬던 건 아니고 그때는 그냥 내 것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아. ‘난 내 거 가지고 싶어’ 이런 게 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왕이면 편한 걸 사자, 이렇게 된 것 같아.


아메  석사 때까지는 그냥 깡으로 했던 것 같아. 박사과정 들어오고 나서 금전적인 여유가 조금씩 생기면서 뭔가를 더 사게 되기도 했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작은 노트북으로 다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눈이 더 좋잖아. 작은 노트북이라도 창 두 개 띄워놓고.


브로콜리  맞아, 맞아. 이제 모아찍기 하면 안 돼.


트레비  늘 생각하는 게, 난 이제 큰 모니터가 없으면 집중을 못 하겠거든? 노트북 자체로는 거의 작업을 안해. 근데 또 주변을 둘러보면 노트북으로도 잘 하는 사람들이 있고. 노트북 하나 두고 논문 쓰고 작업 하는 사람들 보면 장비빨이라는 게, 이게 변명인 건지. 없어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브로콜리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트레비  그치. 이제 난 장인이 아니니까 도구탓…


유령  학교에서는 같은 연구실 쓰는 과정생들도, 박사쌤 몇 분 빼고는 다 장비 없이 살아가지고 그런 걸 보면서 나도 장비를 갖추는 건 사치라고 생각을 했어. 근데 새로 다른 연구실에 오고 나서 좀 안정적인 공간이 생기니까 장비를 하나 둘 씩 들이게 되고, 확실히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어.


브로콜리  확실히 장비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게 주는 안정감이 확실히 있어. 그러니까, 필통이 있어야 되고 필통 안에는 내가 원하는 펜이 있어야 하잖아. 이런 감각이 장비에도 있는 것 같아. 모니터와 그 외에도 이거, 이거가 있어야 하는데, 탓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탓을 해야만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내가 쓰는 펜이 정해져 있거든. 그 펜을 한 다스씩 사서 작업 공간마다 나둬. 그게 있어야 안정감이 들어. 다 써도 바로 꺼낼 수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고.


트레비  옛날 교수님들도 그런 거 있었을까? 나 이런 수첩 아니면 안 돼, 이 펜 아니면 안 돼, 이런 종이 아니면 안 돼, 같은 그런 고집들이 있었겠지?



#나의 공간, 나의 루틴


브로콜리  집이 좋은 게, 작업하다가 그냥 옆에 가서 커피 내리고 하면 너무 좋아. 그러니까 내가 여기를 매니징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게 주는 안정감이 확실하지.


트레비  그래서 나도 내 공간에 커피 도구를 쌓아놓는 것도, 어쨌든 나한테는 저게 취미생활이고, 저게 공간에 있어야 더 자주 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아메  말 그대로 리추얼(ritual) 같은 거라.


트레비  그치. 심심할 때 하거나 루틴 같은 거지. 일을 시작할 때, 혹은 안 하고 싶을 때 하게 되는 루틴 같은 거지. 


유령  다들 그런 공간이 익숙해지면 또 무너지는 시기가 오잖아. 그런 루틴을, 어떤 것들을 시도해왔는지도 궁금해. 나는 그런 게 잘 안 돼서 말이야.


트레비  루틴이 없어 ㅠㅠㅠㅠ


브로콜리  최근에 뽀모도로 어플을 써보고 있어. 50분 동안 집중하고 10분은 무조건 책상에서 벗어나기. 근데 이 어플이 간악한 게 휴식시간 10분이 지나면 계속 알림을 줘. 당신 10분 더 쉬었습니다, 빨리 돌아가세요. 당신 휴식이 30분째 계속되고 있는데 빨리 돌아가세요. 계속 꼽주는데 (웃음)


트레비  나는 석사 때는 루틴이라고 할 게 없었는데, 그냥 매일 연구실에 나간다 정도만 있었어. 일단 학교에 가자. 몇 시가 됐든. 4시에 가서 10시에 올 때도 있고. 10시에 집에 돌아가는 건 항상 고정되어 있었어. 그 외 루틴을 세워보려고 했는데 늘 망했어. 루틴이 만들어지질 않아.


아메  박사논문 집필을 시작하면서 여러 일들을 많이 끊었어. 그러다 보니 시간이 남는 거야. 퍼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요새 고민도 루틴을 만들어야겠다는 거야. 챗GPT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루틴도 ‘몇 시에 뭐 한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대신에, 일어나면 커피를 마신다, 논문을 읽어본다 이런 식으로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근데 보면 나는 아침에 늘 샌드위치를 먹었어. 그리고 산책도 있었고, 샤워하는 것도 그렇고.


트레비  샤워는 진짜 맞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아메  리프레쉬가 확 되잖아. 특히 생각이 잘 안 돌아가면 샤워하면 아이디어가 잘 나오는 거야. 그래서 샤워할 때 폰을 들고 들어가야 돼. 안 들고 가면 불안해.


유령  그럼 다들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가 있어?


트레비  나는 12시가 넘어가야 해. 그때쯤 씻거든. 집에 10시쯤 들어온다, 그러면 계속 누워 있어. 12시 되면 샤워하고 그때부터 집중 타이밍. 


브로콜리  원래 연구하는 사람들은 야행성 비율이 높을까?


트레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 다른 분들 보면 하루를 진짜 알차게 쓰거든. 아침에 나와서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생산성 있게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메  아침, 그러니까 이른 새벽에 일하면 확실히 좋긴 해. 에너지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인데 우리가 그렇게 못 살잖아. 어떤 교수님은 1년마다 책을 하나씩 내는데, 그 교수님 루틴은 이거야.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원고지로 글을 쓴다, 리딩은 하루에 논문 3개 보고 정리하고 끝. 그걸 하루도 안 빠지고 하는 거야. 이게 연구자인 거구나.


트레비  그런 얘기 들으면 나 따위가 연구를…


유령  나는 본가에서 가족들이랑 살다 보니까 확실히 모두가 잠든 뒤에야 잘 되더라. 확실히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것? 내 공간이라는 건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혼자 있게 되는 때인 것 같기도 해. 내 공간, 내 시간, 그런 게 집중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더라고.


브로콜리  본가에 있으면서 방이 마련됐다고 그게 끝이 아니거든.


아메  근데 혼자 살아도… 비슷해. (일동 오열) 낮 시간은 예열 시간이고, 자정이 다가왔을 때야 예열이 끝나는 거지.



#집중 안 되는 나, 문제일까?


트레비  근데 요즘 느끼는 거지만 너무 집중이 안 돼. 10분 정도 논문 보다가 딴짓하다가, 잠깐 논문 보다가 딴짓하기를 계속 반복하니까.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아메  그래서 나 ADHD 검사를 받아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


브로콜리  맨날 연구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얘기야.


트레비  검사받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차라리 공부만 하면 모르겠는데 일도 해야 하고 자잘자잘하게 해야 되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게 중간에 툭 치고 들어오면 공부는 놓고 일만 하고 있어. 근데 또 일은 집중이 잘 돼. 해야 하는 게 명확하고. 단순 반복인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집중이 잘 되는데 공부는 왜…


유령  맞아. 딱 책상이라는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해야하는 일의 종류가 계속 바뀌는데, 그때마다 할 일을 전환하는 게 쉽지 않아.


아메  이게 예열이 필요하잖아. 


브로콜리  전에 내 애인이 내가 작업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거야. 3일을 아무것도 안 해. 그러다가 마감이 닥쳐서 힘들대. 그럼 ‘넌 왜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라고 묻는 거야. 정말 순수하게 비연구자의 질문 있잖아. 그럼 나는 ‘그때는 안 돼, 그걸 어떻게 해?’라고 대답하고.


트레비  이게 어쨌든 결과물만 나오면 되다 보니까. 업무는 중간중간 과업이 있고 계속 달성을 해줘야 하는데 연구는 그냥 결과만 나오면 돼. 뭐가 됐든. 일주일 동안 했든 하루 동안 했든.


브로콜리  그것도 좀 궁금했어. ‘마감에 시달려서 힘들어’ 이렇게 얘기하면 애인은 ‘그래서 몇 퍼센트 남았어?’라고 물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대답을 못하겠는 거야. 몇 퍼센트 남았는지 모르겠는 거야. 그런 거에 대한 감각이 있어?


유령  진짜 없는 것 같아. 과제를 할 때는 그게 가늠이 됐는데 석사논문을 쓰다 보니까 내가 끝을 안 정해놓고 그냥 지금 되는대로 해도 되는 건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트레비  진짜 신기한 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쓰다 보면 완성은 돼 있어. 몇 퍼센트로 하기가 어려운 게 이게 예측이 잘 안 돼. 겨우 3-4장 쓰면 되니까 간단한 줄 알았는데 제일 오래 걸리고.


아메  나는 석사논문 쓸 때 참고문헌 마지막 수정하는 게 몇 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하루나 잡아야 될지 몰랐지. 


유령  학부생때는 낮에도 집중해서 하고 이런 게 좀 됐었는데, 대학원 와서는 그게 잘 안돼서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했어. 조교 일도 해야 하고, 같이 하는 일이 있다면 체크도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까 너무 혼란스럽더라고. 다들 그런 여러가지 종류의 일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좀 궁금했어.


브로콜리  익숙해지는 거 아닐까? 많은 일들이…


트레비  그래서 지도교수님은 날짜를 나눠서, 일주일에 7일이 있으면 이틀은 업무만 보고, 이틀은 공부만 하고, 이틀은 강의 준비만 하고 이런 식으로 하라고 했던 적이 있거든.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 업무라는 게 딱 하루에 몰아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처리해야 되는 것들이 생기니까. 그러다 보니 일에 더 집중하게 되고.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일만 하고 있네.


유령  작업 공간을 가지고, 작업 루틴을 가지고 이런 게 얼만큼 숙련돼야 가능해지는 걸까? 죽기 전엔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브로콜리  합리적인 의심 하나. 그런 꾸준한 루틴을 제안하는 분들은 정규직이라는 것?


트레비  저에게 늘 깨달음을 주시는군요.


유령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집중하는 데 되게 많은 게 필요하구나. 공간도 필요하고, 안정적인 루틴도 필요하고, 경제적 뒷받침도 필요하고. 그런 게 항상 갖춰지지 않은 채로 뭔가 하게 되는 것 같아.


트레비  어쨌든 공간, 돈, 취미생활 그런 게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아메  내가 그런 걸 어디서 느꼈냐면, 아는 사람이 생산직 노동자인데 고졸이고, 직장에서 일하닥 그만두고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6개월 동안 준비를 했나 봐. 그런데 너무 힘들다는 거야. 허리가 아프다는 거야. 책상은 우리 앞에 있는 테이블 같은 거였고. 이 사람은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책상 높은 게 필요하고, 어디서 이걸 사면 되는 구나 생각 자체를 못하는 거고. 이게 일종의 문화자본 같은 거구나,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는 게.


트레비  남의 책상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또 그걸 갖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게… 


아메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확실히 그렇지.



#마지막 꿀팁


트레비  아무튼 공간 얘기하다가 갑자기 연구 얘기가 돼가지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싶기는 하지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메  여러분 꼭 멜라토닌 드세요.



글. 트레비

편집. 김선우






댓글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