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는 연구자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3일 전
- 10분 분량

사실 내 삶에 결혼이나 육아가 있을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그건 내가 연구자의 길을 선택해서만도 아니고, 내 섹슈얼리티 정체성 때문만도 아니고, 그냥 잘 상상이 안 된달까. 미래를 상상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울 때면, 자연스럽게 1인 가구의 삶을 전제로 하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게 있어서는 엄마보다는 이모가 되는 것이 더 상상 가능한 미래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닌지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연구자를 찾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연구자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서로의 일상을 나눌 때에도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이야기 주제가 잘 되지 못한다. (특히 인문사회계) 연구자의 삶이 갖는 취약성을 우리는 자주 이야기 하지만, 그 취약성이 연구와 아이 양육이 함께 하는 삶에서 어떤 모습을 갖게 되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에게 자녀 양육은 현재이자 현실이다.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고, 글을 쓸 때 그 곁에 아이가 있다. 이들의 생활에서, 그리고 연구에서 아이는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탁상공론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이 해 아이를 양육하는 연구자들을 모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1부 수다의 주제는 출산과 육아를 연구자의 삶 안으로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구라는 일이 갖는 의미이다. 많은 웃음과 탄식이 함께 한 그야말로 ‘웃픈’ 연구자 엄빠의 이야기들, 모두 함께 해주시길.

참여자 소개
카네이션 자녀 31년차. 결혼 생활도 부모의 삶도 잘 모르고 아마도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남의 삶에 관심이 많은 오지라퍼
케이 아이와 집에서 함께 한지 벌써 10년. 공부도 육아도 쉽지 않다. 그래도 둘 다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주양육자
모카라떼 엄마 3개월차. 모든 게 서툴고 쉽지 않지만, 어린 나를 키우는 마음으로 내가 받았던 사랑과 받고 싶었던 사랑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 근데 이와중에 박사학위논문도 써야한다니.
체리 9개월차 육아쪼렙. 박사과정생 신분으로 자꾸 모두에게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주눅이 든다. 육아도 연구도 잘하는 똑순이 스터딩맘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솔잎 미운 네 살 딸 육아 중. 박사학위 받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인 줄 알았는데 육아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더라. 그래도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조금은 컸을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양육자가 된다
카네이션 먼저 다들 자기소개 부탁해. 더불어서 자녀 소개까지!
케이 나는 사회학 연구자야. 아이는 내가 박사 과정 수료한 후 1년 정도 연구원 계약직으로 일하던 당시에 태어났어. 그리고 아이가 만 2살이 됐을 때, 생활고를 이겨내겠다며 아내가 취업을 했어. 그렇게 내가 주양육자가 된지 10년 정도 됐지.
모카라떼 나는 현재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고, 올해 1월 말에 딸을 낳았어. 남편은 출근하고 있으니 내가 평일에는 하루종일 아이를 케어하고 있지. 그런데 사실 내가 엄마가 된지 얼마 안 됐고, 주변에도 육아하는 연구자가 많이 없어서 궁금한 게 많아. 엄청 기대하면서 왔어!
체리 나도 동료를 찾고 싶은 마음에 왔어. 나는 지금 문화연구 전공 박사과정 중에 있는데, 박사과정을 시작한 해에 바로 결혼을 해서 임신과 출산까지 학업 중에 쭉 이어서 했어. 작년 8월에 아들을 낳아서 지금 생후 9개월 정도야. 원래는 올해 가을 학기에 복학하려 했는데 여러 상황으로 인해 지금 봄 학기에 복학을 해서 수업을 듣고 있어.
솔잎 나는 문화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박사논문 프로포절을 하고 바로 그 다음주에 결혼식을 했던 기억이 있네. 아이는 박사과정 졸업하고 2년 후에 낳았고 지금 만 3살이라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 연구자 집단 내에서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가 없는 부부도 많아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길래 재밌을 것 같아서 왔어.
카네이션 모두 정말 반가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사 과정 중에 아이를 낳은 경우도 있고, 아니면 수료 후에 혹은 졸업 후에 낳은 경우도 있네. 주변을 보면 그 시점에 대한 고민도 많더라고. 논문을 쓴 후에 낳을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낳을 것인가? 다들 어떻게 생각해?
솔잎 난 학위 과정 중에 아이를 낳은 체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난 절대 병행하지 못했을 것 같아.
체리 나는 박사과정을 좀 늦게 시작한 편이고 결혼이랑도 겹치면서 출산 시기에 고민이 많았어. 박사 수료를 하려면 적어도 2년이 걸리니까, 그 후에 낳는다면 나이가 문제였지. 그리고 산전 검사를 했더니 어떤 항목 결과가 안 좋았던 거야. 바로 시험관을 하라고 하더라고. 공부를 해야 하지만 너무 시기가 늦어지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빨리 시도를 해야겠다 싶었어. 그런데 마침 아이가 빨리 생긴 거야. 돌아보면, 내가 뭔가 시기를 계산할 새도 없이 생물학적 시간과 의학적 판단으로 인해 아이를 갖게 된 것 같아. 한창 이 문제로 고민할 때, 어떤 여자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없다며 낳을 거면 그냥 빨리 낫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용기를 갖고 낳게 되었어. 그런데 주변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고 복학을 하지 못했다는 일화를 너무 많이 듣기도 했어. 그래서 교수님들이 한때 면접에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 임신 소식을 교수님한테 어떻게 밝힐까 고민도 했어. 내가 수료도 안 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다고 이야기하면 ‘얘도 안 돌아오겠구나’라고 단정지을까 두려웠거든. 선배들도 적어도 수료는 하고 아이를 가지라고 하더라.
케이 나는 내가 아이를 직접 낳은 건 아닌데, 딱히 서로 시기를 생각한 건 아니었어. 학업이랑 상관 없이, 그냥 결혼하고 4년이 지나니까 이제 가져볼까 했던 것 같아. 당시에는 수료 상태였는데 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 수업의 한 수강생 분이 최근에 수강을 포기하셨어. 아이가 생후 5개월이라 병행이 힘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모카라떼 어떤 선배는 졸업 후보다는 전에 낳는 게 낫다고 하더라. 졸업을 하고 나서 낳으면 커리어가 끊길 수 있고 다시 학계 안으로 들어오는 게 진짜 어렵다는 거야. 차라리 박사과정에 오랫동안 있었구나라고 여겨지는 게 좋으니, 박사과정이라는 타이틀이 있을 때 낳는 게 낫다는 거지. 근데 정말 적기라는 건 없는 것 같아. 내 몸과 내가 처한 상황, 아이가 생기는 타이밍. 이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과정 중이면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
케이 차라리 논문을 쓰는 중이라면 몰라도 강의 수강과 병행하는 건 힘들 것 같아.
모카라떼 수업을 들으면 발제도 해야 하잖아.
솔잎 나는 계획도 있었지만 운도 따른 케이스야. 나는 사실 아이는 그냥 결혼에 따라오는 패키지 같은 거였지,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 결혼하고 2년은 우리끼리 보내고, 그 후에 아이를 갖자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2년이 금방 가더라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나는 박사 졸업 후 포닥으로 일하고 있었고 강의도 나가고 있었어. 그래서 너무나도 나이브하게도, 방학 때 빠르게 아이를 낳고 9월부터 강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날짜를 계산해 보니까 가을에 가져야겠더라. 그리고는 한 번에 생겼어.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시간을 더 확보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 과제에 지원을 했지. 근데 감사하게도 과제 선정이 된 거야. 아이가 7월생인데 A유형 과제도 딱 7월에 시작되니까 기존에 다니고 있던 사업단에서도 홀가분하게 나올 수 있었어. 그때는 A유형 과제를 하는 5년 동안 혼자서 아이를 키울 생각이었는데, 너무 나이브했던 것 같아.
카네이션 어떤 점에서?
솔잎 몇 개월 지나니까 못 견디겠더라. 아이를 혼자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 아이가 생후 8개월이 되던 때 마침 지도교수님이 내게 일을 제안하셨지.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하고, 아이는 빨리 어린이집에 보냈어. 어떻게 보면 전반적으로 타이밍이 다 잘 맞았는데, 중간에 독박육아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어. 나는 일하는 게 맞는 성향인 걸 뒤늦게 깨달은 거지.

# 연구와 양육의 균형, 가능할까?
카네이션 솔잎의 말처럼 내 삶에서 양육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조정할지가 정말 중요하잖아. 다들 요즘은 어때?
솔잎 나는 딱 5시에 퇴근하고 나면 그 뒤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100% 아이한테 전념해. 그래도 아이한테는 부족한 것 같아. 계속 잠도 안 자려고 하고. 그런데 나는 빨리 아이를 재우고 다시 일을 하고 싶고 아침에도 아이가 빨리 등원했으면 좋겠거든.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있었어. 내가 낳아 놓고는 이렇게 안 놀아주고 안 돌보는 게 맞나. 그런데 주변을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 그래서 그런 마음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
케이 나도 그런 마음을 10년 동안 갖고 있어. (웃음) 아이를 빨리 재우고 일을 해야 하는데 솔잎의 경우처럼 아이가 안 자잖아. 막 누워서 이야기를 하면 그걸 잘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왜 안 자나 하는 마음도 들어. 그렇게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하면 죄책감 때문에 기분도 좋지가 않았어.
솔잎 5시가 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딱 생각을 해야 해. 빨리 뭘 해야 하는데, 일이 뭐가 남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괴로워. 주말에도 아이랑만 시간을 보내. 이렇게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 같아.
케이 난 박사논문을 쓰면서 아이랑 계속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오히려 괜찮은 면도 있었어.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에는 도서관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거든.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 외의 시간에서 힘들었던 건, 아이를 양육한다는 일 자체라기보다는 그냥 정말 우리 둘만 있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아. 둘이서만 고립되어 있다는 고독한 느낌. 아이는 정말 예쁘고 둘이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고립감을 많이 느꼈어.
카네이션 케이는 아이가 지금 초등학생이잖아. 아이가 크면서 상황이 좀 달라지기도 했어?
케이 아이가 클수록 집에 더 빨리 와.
일동: (웃음)
케이 어린이집 다닐 때는 4시쯤 왔는데, 유치원 가니까 2시쯤 오고, 초등학교 입학하니까 밥만 먹고 오더라. 이게 정말 문제야. (웃음) 그래서 사실은 나랑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어. 이제 낮에 어디 멀리 가서 일을 하는 건 힘들어졌지. 그래도 지금은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선 상쇄가 되기도 해. 혼자서 숙제도 잘 하고 말이야. 그래도 둘이 있을 때 내 일을 하기는 어려워. 근데 이건 내가 동네에 아는 친구도 없고 아무 연고가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아.
모카라떼 나는 이제 내 삶의 100%가 육아인 상황이지. 내가 조리원에서 딱 나왔을 때 게재 확정된 원고 최종 수정 요청이 왔었어. 근데 너무 힘들더라. 일주일 안에 수정을 해야 했거든? 근데 지금 상태에서는 진짜 아무 것도 못하겠다. 그 현실을 딱 느꼈어. 임신한 당시에는 출산하고도 엄마랑 남편이 도와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까 내 스스로가 안 되더라. 머리도 안 돌아가고 앉아 있을 힘도 없고. 체력적으로 너무 소진이 됐었으니까. 내가 회복할 때까지는 주변에서 나를 서포트해줘도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원고를 보낸 뒤에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육아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원래는 내가 학계에서 잠깐 한 발짝 나와 있는 것에 대해 미련과 두려움이 조금 있었거든.
솔잎 나도 조리원에서 논문을 고쳐서 보내기도 했어.
체리 나는 아이가 생후 4개월 될 때까지는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봤어. 그런데 이제 복학 시기가 온 거야. 나는 복학 전에 묵혀놓은 원고를 다 학술지에 투고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남편이 연초에 육아휴직을 했어. 그래서 내가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워낙 어리다보니 내가 계속 중간중간 챙길 게 많긴 했어.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는 엄마가 많이 도와주고 계시지. 학교를 일주일에 두 번 가니까, 그 외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하려고 하긴 해. 근데 난 아이의 발달을 위해 엄마가 뭘 해줘야 한다, 이런 거에 영향을 엄청 많이 받는 편이더라. 그 시작은 모유 수유였어. 나는 생후 120일까지 먹였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모유만 안 먹여도 살겠더라. 그런데 아이랑 애착 형성을 잘 해야 한다고들 하잖아. 우리 아이는 요즘 한 마디씩 하는데 아빠는 잘 하면서 엄마는 못해. 그러니 불안한 거야. 나랑 애착이 잘 안 생기면 어떡하지? 이러면서. 그래서 내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어.
솔잎 원래 아빠가 더 발음하기 쉽대~
체리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 (웃음)
카네이션 들어보면 어린이집처럼 어느 정도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곳이 생기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기도 해.
케이 우리 아이는 내가 주양육자가 된 때, 딱 만 2살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어. 당시에 인터뷰를 하는 연구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낮 시간대에도 일을 다닐 수 있었지.
솔잎 나는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별생각 없이 일단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놨었어. 그런데 3, 4개월 지나니까 빨리 보내고 싶은 거야. (웃음)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는 시기가 있다던데 나는 연락이 안 오길래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 가능성이 있냐고. 마침 가능하다고 해서 보냈지. 그리고 아이도 빠르게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도록 했어.
카네이션 어린이집에 보낸 후에는 좀 괜찮았어?
솔잎 난 사실 만족스러웠어. 나는 빨리 보내는 걸 추천해. 가서 언니, 오빠들이랑 놀면서 발달도 빨리 하고 독립심도 길러지고. 내가 놀아주는 것보다 거기서 더 다양하게 놀 수 있잖아. 뭐, 보내 놓고 하는 정신승리일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케이는 아이를 유치원 종일반에 보내지는 않은 거야?
케이 종일반으로 하긴 했어. 원래 유치원 끝나는 시간은 2시고 그 뒤에 더 있을 수 있거든? 근데 내가 아이에게 늦게까지 있으라고 하지는 않았어. 자기가 있고 싶을 때는 더 있었는데, 내가 더 있으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한 거야. 아이도 집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
솔잎 우리 애도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긴 해. 이 나이대에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건 엄마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래서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를 4시, 5시까지 뒀어. 그러니 우리 애도 다른 아이들이랑 다 같이 있는 거야. 그런데 유치원에 오고 나니까 유치원에는 전업 엄마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 그래서 3시 30분에 데려가는 엄마들도 많고, 거의 4시 전에는 애들이 집에 가더라. 나는 원래 5시 30분에 데리러 가는 걸로 써뒀었는데, 그때 가니까 한 100명 다니는 유치원인데도 신발장에 10켤레도 안 되는 거야. 마음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다음엔 5시에 갔더니 아주 조금 더 늘어있더라. 다들 4시에 딱 집에 가는 거지. 그때 같이 나와야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이랑 놀 수 있어. 안 그러면 텅 빈 놀이터에 애 혼자 가는 거야. 그래서 점점 당겨지게 되더라. 5시 넘어서 가면 죄책감이 들어.
체리 나도 18개월 정도에 보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어. 근데 그냥 마음 같아서는 24개월 지나고 보내야 되나 걱정도 돼. 주변에서는 아기 기저귀는 떼고 보내야 한다, 그러더라고.
솔잎 우리 애는 아직 기저귀 못 뗐어. 거의 48개월 다 되어가는데, 응가는 꼭 기저귀에 해야 한다는 자기만의 원칙을 지키고 있거든. (웃음)
케이 우리 애도 떼기 전에 갔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 무직이요? 아뇨, 연구자인데요.
모카라떼 나도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놨는데 대기번호가 생각보다 빠르더라. 그런데 내가 대기를 넣을 때 맞벌이로 체크를 했거든? 찾아보니 수료생은 맞벌이로 인정이 안 된다는 거야! 박사과정 중일 때에는 재학증명서를 내면 맞벌이 인정이 되는데 수료생은 재적증명서가 나오니까 맞벌이로 인정이 안 된다는 거지. 이게 맞벌이 여부에 따라 점수 차이가 많이 나잖아. 나는 지금 박사과정 지원금도 받고 있으니까 주기적으로 돈이 들어오고 또 연구 등록도 할 거고. 그러니 이걸로 최대한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단 맞벌이로 넣어놨어. 다른 사람들은 어땠어?
케이 나는 맞벌이로 체크하지 않았어. 동네가 작아서 덜 치열하기도 했고.
체리 나는 대기 등록할 때에는 박사과정생이어서 문제가 없긴 했는데 막상 들어갈 때엔 수료생일 수도 있겠다.
모카라떼 주변에 이런 케이스가 너무 없더라. 나는 사실 남편 회사 사내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거든? 근데 거긴 조건이 더 빡세. 거길 보내려면 정말 재학 중이어야 할 것 같은 거야. 게다가 6개월에 한 번씩 서류 검사를 한대.
솔잎 나는 이게 참 이해가 안돼. 저출생이라고 하는데 자리는 왜 적은 걸까?
카네이션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문제다. 연구자가 노동자, 근로자로 인정 받기 어려워서 생기는 일인 거잖아.
모카라떼 출산할 때도 직업을 물어보거든? 출생증명서에 부모의 직업이 들어가니까, 출산하러 들어가기 직전에 직업이 뭐냐고 물어봐. 그래서 대학원생이라고 답했더니, 간호사분께서 “무직으로 할게요”라고 하시더라.
일동: (폭소)
모카라떼 그래서 출생증명서에 나는 무직으로 되어 있어. 아니 왜! 나 일도 하고 연구도 하는데!
솔잎 차라리 학생으로 써주지.
모카라떼 그 긴박한 와중에도 칼같이 무직으로 기재되니까 좀 그렇더라.
케이 이게 수료를 하고 나서는 뭔가 일을 하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출근을 하는 건 아니니까, 늘 일을 안 하는 상태로 인식이 되는 것 같아. 지금 난 강사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매일 출근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아이가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어봐. (웃음) 다른 집들은 엄마가 집에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애가 놀라기도 하고.
카네이션 그럼 아이한테 뭐라고 설명해줘?
케이 뭐, 이것저것 이야기하지. 아빠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웃음) 그런데 그래도 명확한 상이 안 잡히는 느낌이야.
솔잎 우리 집도 지금은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아빠가 케어하는 시간이 더 많아. 그래봤자 하루에 30분 정도 차이긴 하지만 내가 더 늦게 집에 오니까, 일주일에 3일은 아빠랑 놀이터에 가거든? 그러면 대부분 엄마들이 간식 가방 들고 서 있어. 아빠는 또 거기에 못 끼는 거야. 아무도 남편한테 말을 안 걸어주고, 남편도 함부로 말을 걸기가 그렇고. 엄마들끼리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나도 가끔씩만 가니까 간단한 인사만 하게 되고 어색하더라. 5월에 부모 참여 수업이 있어서 그날만 기다리고 있어. 어떻게든 가서 친해져야지.
체리 아무래도 아빠는 그 장벽이 좀 크구나.
솔잎 응, 얼마 전에는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집에 들어가서 바로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까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바로 먹냐고 물어보시더라. 아빠가 식사 준비를 해둔다고 답하는데 그게 너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 거야. 그래서 공감대 형성이 안 되더라고.
케이 나도 그런 어색함은 계속 있어. 사실 내가 주양육자라고는 하지만 모든 걸 다 하지는 않아. 아내도 많은 걸 같이 하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나서부터는 전화 상담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건 항상 아내가 해.
카네이션 다른 학부모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양육자로서 하나의 일인 것 같네.
모카라떼 나도 연고가 없는 데로 이사를 가서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어. 나는 내가 내향형이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걸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고 집에 있어도 늘 바쁜 사람이라 아이 키우면서 그런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애와 둘이서 있는 그 시간이 진짜 견디기 어렵더라.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7시 30분인데, 5시부터 진짜 시계만 계속 봐. 시간이 너무 안 가.
솔잎 나도 베란다로 밖만 보고 있고 그랬어.
모카라떼 아이랑 둘이서만 있으면 시간이 너무 긴데 그냥 버티는 거야. 근데 아무 말도 없이 아이를 안고 집안을 계속 걸어다니다 보면 내가 아이랑 소통을 너무 안 하나 싶어서 미안해져. 기발하게 놀아주지도 못하겠고. 친정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시면, 그냥 집에 엄마가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더라. 정말 누가 되든 한 명만 더 있으면 그 자체로 좋은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소통이 고픈 사람이었나? 육아할 때는 왜 이렇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
체리 나도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조리원 동기 같은 것도 없었어. 그래도 아기가 뒤집기, 되집기를 하고부터는 좀 낫더라. 아이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고 같이 산책도 하게 되면서 시간을 더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어.
(2부에서 계속)

글. 카네이션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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