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SINSA] 첫 번째 회원과 첫 번째 회원 인터뷰를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3일 전
- 5분 분량

날이 너무 좋습니다. 여러분은 틈틈이 창밖을 본다거나 산책을 하고 계신가요? 비타민D가 부족하면 논문이 안 써진다고 하니(진짜로요), 하루 한 번이라도 햇빛 쬐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도 합법적으로 노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7년의 시간 동안 신문연과 함께 해온 소중한 회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 보기 위해, 올해 회원 인터뷰를 다니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첫 인터뷰로 누구를 만나면 좋을까 생각하다 곧 김연수 회원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연수 회원님은 신문연의 공식적인 첫 회원이에요(연구원을 제외하고 첫 회원이지만, 사실 어떤 연구원보다는 더 일찍 가입하기도 했답니다). 신문연이 막 만들어졌을 때쯤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저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리플렛을 주며 관심 있으면 가입하라고 했었는데, 그때 선뜻 가입해준 고마운 회원입니다. 7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신문연을 후원하며 여러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김연수 회원을 만나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 수 있는지, 신문연의 매력은 무엇인지 들어보았습니다.
((회원 인터뷰의 또 다른,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는 맛집 탐방입니다. 사진은 합정의 팔로피자예요 ⭐⭐⭐⭐⭐))

지금 하는 일과 함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서 활동하며 '디지털 시민 광장 빠띠'를 만들어 가고 있는 김연수입니다.
온오프라인을 점점 더 구별하기 어려워져 가는 디지털 시대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화를 나누며 사회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활동가·연구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캠페인·투표·토론·팩트체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을 펼치고, 질문·투표·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며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시민 활동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활동이 디지털 시대의 ‘공론장’을 만들어 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공론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숙의하여 공론을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공간이죠. 비상계엄·내란 이후 공론장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지닌 호명은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려는 여러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공론장'은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방패이자, 혼란의 시대 속에서 더 나은 미래의 길을 찾는 이정표 그 자체일지도 모르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디지털 정치양극화의 시대에는 공론장 구축 운동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자신을 ‘공론장 활동가’로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회원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혀 몰랐어요. 최초 회원 대우가 영 시원치 않구만, 1번 회원이라고 알려주지도 않고 커피 한 잔 보내지 않다니! (사실이 아닙니다. 기프티콘 한 번 보낸 적 있을...걸요?) 농담이고 몰랐던 사실이지만 신기하네요.
어떤 계기와 이유로 가입하게 되었나요?
정보영이 가입하라고 했습니다. (진짜예요. 그냥 들이밀었고 서명해주셨음)
7년 동안 신문연을 꾸준히 후원해주셨네요! 그 원동력은?
정보영이 있어서. 라고 하면 안되겠죠? 물론 의리도 있겠지만 정보영이라는 연구자가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곳이 신문연이잖아요. 그걸 7년 간 지켜봤고요.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해줘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지원, 네트워크 이런 게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어요. 대학이 못 해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크고요. 주로 살아남기 위한 전공들이 주가 되고 있기도 하죠. 그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점에서 신문연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도가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도들이 부침을 겪기도 했죠. 그러다 신문연이 라이징 스타처럼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가려나…'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신문연만큼 분위기 좋게 활기차게 유지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만약 연령대가 비슷하다거나 내가 연구를 지속하고 있었다면 신문연에서 더 자주 참여하고 놀았을 것 같아요.
그간 위기는 없었나요? 매달 문자가 가는 건 어때요?
위기는 딱히! 내가 계속 내고 있구나 하게 되죠. 문자를 보고 '내가 여기를 후원하고 있었구나!' 하고 해지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려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계속 낼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내주는 게 고맙죠.
* cms 안내 문자는 자동발송 됩니다. 출금처리 되지 않았더라도 신문연 연구원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어요.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
신문연 사업 많이 참여하셨는데 어떤 것들이 있었죠?
세미나를 두 번 정도 열었고, 성공회대 김진업 교수님 특강을 공동주최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신문연과 연금행동, 빠띠가 함께하는 연금 특강도 함께 진행했죠.
세미나는 혼자 공부하는 친구를 데려와서 열었어요. 그 친구가 연구하는 주제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아쉽게도 많은 참여자가 모이진 않았지만, 아주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근 연기금 주제의 특강은 어땠나요?
어떻게 보면 해야 해서 하는 일로 끝났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순간은 몰라도 지나면 금방 잊혀지잖아요. 충분히 잘 해냈느냐의 평가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특강 내용과 함께 특강 전후의 변화가 기록으로 남았다는 점이 좋았어요. 강의해주신 교수님께도 잘 피드백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강의는 일회성이지만, 이 기록이 빠띠 캠페인즈에 계속 남아 있을테고 언제든지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유입될 수 있을 거예요. 신문연이 플랫폼으로서 더 많은 연구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제가 일하는 빠띠도 더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주제의 민주적 소통과 연결하고 있어요. 함께 특강을 준비하면서 접점을 늘리는 시너지가 났죠.

빠띠 얘기를 하게 됐는데, 연구자에서 현장으로 옮겨갔는데 어떤 과정이었을까요?
회원 중에도 연구와 현장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이 많거든요.
처음부터 온전한 대학원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회운동을 할까 대학원을 갈까, 한 학기 정도 고민했던 것 같고,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위해 공부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었죠. 근데 책 읽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우리가 닮은 점이 참 많지만, 이 점은 참 다르네요) 일단 뭘 모르니 책이라도 읽어볼까? 대학원생은 원하는 책 마음껏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애매모호하게 모든 것을 건드릴 수 있는 사회학이 딱 좋았어요. 모든 주제에 OO사회학이라고 붙이면 다 되잖아요. 그래서 사회학과에 들어갔고 석사과정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어요. 동료들과 세미나도 엄청 하고. 와중에 청년유니온 활동도 동시에 해야해서 그것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석사논문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난 진득한 연구자 스타일은 아니구나. 어딘가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서 글을 써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다시 느껴지는 동질감) 좀 밖으로 나가보자 해서 석사논문 쓰고 난 뒤에 환경단체에서 일 년 정도 일한 뒤에 박사과정에 진학했죠. 석사 때는 이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이미 좋은 이론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연구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좁혀서 시너지를 내는 '유기적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연구자이면서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좋은데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에요. 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려운 이론을 적용하는 것을 난감해하고, 연구자들은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더욱 깊이 있는 분석을 해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론과 실천, 연구와 현장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먹고 살려면 어느 시점엔 선택을 해야겠더라고요. 근데 여전히 대전제는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것보다는 활동에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석사논문 주제가 2008년 촛불시위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중 한 챕터가 디지털 시대 사회동학으로서의 디지털 공론장이었고,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운좋게 일이 된 거예요. 그런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왔을 때 또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죠. 어디에 있든 연구와 활동,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아직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활동가 정체성을 가지고 이론적으로 맞다고 생각한 것을 구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구의 세계로 복귀할 생각도 있나요?
연구자가 되겠느냐는 질문이라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일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멈추는 시기가 올 수도 있겠죠?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이제까지 해온 것들을 정리해서 학위논문으로 결실을 맺고 싶을 것 같긴해요.
활동가로서의 김연수도, 연구자로서의 김연수도 응원합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때도 신문연이 김연수 회원님의 비빌 언덕이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신문연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신진레터에 콘텐츠들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는데, 신문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글이 전달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신진레터에 실린 글이 빠띠 캠페인즈 토론 섹션에도 올라갈 수 있다면, 빠띠는 포털 검색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문연과 신문연의 글이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구독자들만 읽기에는, 신문연 홈페이지 방문자만 읽기에는 아까운 글들이니까요.
이런 건 실무적인 거고 더 크게 장기적으로 기대하는 것도 있죠. 신문연에 여러 의미가 있지만, 제 마음 속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비빌 언덕이 가장 큰데, 그게 일단 기본적으로 굴러가는 상황이라면은,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임파워먼트를 하는 사업들을 개발해나가면 좋겠다. 이미 그런 기능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더 잘되는 조직이라는 게 끊임없이 회고하고 평가하고 고민하는 거니까,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면 더 좋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원들도 중요하지만, 회원/비회원 중에서 끊임없이 발굴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더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신문연을 매개로 만나도록 해서 사회적으로도 더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연구원들 만큼이나 신문연의 미래를 고민해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한 인터뷰였어요.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새로운 시도가 '연구분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5년 개설된 분과를 통해 새로운 회원분들과의 인연이 생기고, 신문연 활동이 풍성해지기도 했지요.
신문연 홈페이지에서 현재 운영되는 분과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회원 여러분이 직접 새로운 분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분과를 만들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다? 저희가 홍보해드리겠습니다! 더 많은 분과가 생겨서 활동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원 인터뷰를 기획하며 회원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했고, 회원들에게 신문연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지만, 신문연의 회원과 회원 사이를 연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요. 온라인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빠띠와 김연수 회원님도 신문연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빠띠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앞으로 회원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 신문연을 얼마나 잘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맛있는 걸 먹으며 유잼대화를 통해 서로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찾아가서 밥 사주는 이벤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어느날 갑자기 만나자고 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 혹시 제가 먼저 찾지 않더라도 신문연을 더 깊게 알아가보고 싶은 분이라면 연락주세요!

글. 정보영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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