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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간강사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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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초보 강사들의 탁상공론’을 진행하다 보니, 비정규 강사들의 경우 바로 옆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강사하고도 연결될 수 있는 경로가 없고, 강의, 즉 자신의 노동과 관련한 고민은 매우 많지만 그걸 막상 동료 강사들과 나눌 수 있는 경험은 과소함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번에 재계약 됐어요?” “채점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AI 때문에 큰일이다” 정도의 스몰토크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고민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철학적인 부분까지 나눌 수 있는 경험을 나누는 일은 대학원생 단위에서도, 강사 단위에서도, 아마 학계의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모자랄 것이다.


2부에서 소개할 고민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의 생성형 AI 사용과 관련하여 강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매우 긴급한 고민, 둘째는 전임이 아닌 비전임 강사로서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과 아쉬움에 관한 고민, 셋째는 전달형 강의, 팀프로젝트나 토론 등을 어떻게 수업 내에서 조화롭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한 페다고지상의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들은 강사로서의 일을 난감하고 어렵게 만드는 일이지만, 그러나 강사로서의 경험이 저임금과 과잉노동, 미숙함과 혼란스러움으로만 특징지어지지는 않는다. (정말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바꿀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돈으로만은 되지 않는 학생들과의 소중한 감정을 함께 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여자 소개: 1부부터 참여한 칼국수, 삼다수, 몽쉘, 덕우, 애플의 소개는 여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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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챗선생보다 더 선생일 수 있을까?


칼국수 내가 과제 채점을 처음으로 해보면서 가장 당황했던 건, 과제 채점을 할 때 학생들의 생각이라고나 할까, 그런 걸 전혀 읽을 수 없었다는 거야. 생성형 AI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때 AI로 작성한 부분 잡아내는 것에 혈안이 된 게 지금까지도 남아있어서, 다른 사람 글들 볼 때마다 ‘이거 챗GPT다’ 이런 걸 발견하는 일을 자주 해. 한 줄, 한 줄 이 부분이 이런 느낌이 드는 게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게 티 나는 이유라는 것도 알려 주고, AI 환각으로 없는 문헌이 잘못 만들어져 인용된 경우도 다 집어내서 알려주려고 했어. 뭔가 전임 교수님들이 그런 지적을 안 하거나 못 할 것 같다는 우려 같은 게 들기도 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


몽쉘 나도 OT 때 과제물에 AI 사용하는 거, 안 쓸 수는 없지만 잘 쓰는 게 중요하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시작했었는데, 막상 과제를 받아 보니까 내 생각과 기대와 너무 다르게, 너무 많은 학생이 AI를 잘 활용하기보다는 그냥 복사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됐어. 그래서 그때 약간의 당황과 상처를 받았지. 즉각적인 첫 번째 반응은 약간 분노 이런 거였는데, 곱씹어서 생각할수록 불같이 평가하기보다는 이건 이렇게 써야 하고, 뭐가 문제고, 이걸 잘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어. 1시간 정도 나는 AI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할루시네이션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인지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지. AI로 글쓰기를 많이 해 봐야 어떤 글이 AI스러운지를 아는 거잖아? 근데 내가 강의했던 학생들은 막 대학 생활 시작하거나, AI를 몇 번 안 써 본 1, 2학년 학생들이다 보니까 그걸 보는 눈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애플 우리 학교에서는 전임교수님들이 주로 참여해서 학교에서 만든 대응 방안은 글쓰기 수업인데도 중간고사를 객관식으로 바꾸거나 인용 방법 같은 아주 기술적인 걸 물어보는 시험으로 만들어서 변별력을 주는 거였어. 완성된 글 자체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중간 개요에 대한 배점을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성형 AI를 어떻게든 거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형식적 차원을 강조하는 거지. 근데 한 학기를 해보고 나니까 이게 아무런 교육적인 효과가 없는 거야. 정말, 교육적 효과가 0이야. 학생들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어. 자기 의견을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조직해서 표현하고 이런 훈련을 할 기회가 오히려 사라지는 느낌이었어. 이래 가지고 무슨 지성이 생기나 이런 고민에 아주 깊게 빠지게 됐어.


칼국수 오우 사실 내 경험은 너무 방임이었는데, 그러니까 학교가 강사를 너무 방임한다는 얘기지, 개강 때 아무 안내도 없고, AI가 강의실에서 이렇게 문제인데 아무 대책도 안내도 안 나오니까 그냥 알아서 해야 하고. 물론 이 방임이 싫지만은 않았던 게, 정말 그냥 강의실 안에서는 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긴 하구나 생각했거든. 그런데 애플처럼 동일 과목을 여러 강사가 가르치고 대학 차원에서 내려오는 틀이 있는 경우에는 그게 제약될 수도 있구나를 처음 생각해 봤어.


애플 맞아. 그래도 내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은 역시 강의 초반에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또 합의하는 건데. “너네가 뭘 배우고 싶긴 하냐”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 높은 학점 받고 싶은 것 말고 무엇이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AI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하면서 강의실 내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그걸 재료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시작했어. AI를 쓸 때 내 사고가 어떻게 멈추게 되는지에 대한 감각을 길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생각을 인공지능에게 외주화주는 게 너희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합의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


삼다수 아니, 다들 너무 좋은 선생님인 것 같아! 나는 그냥 “AI 쓰지 마” 으름장 놓아버리거든. AI를 썼어도 정말 성의 있게, 티 안 나게 고쳐온 친구들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만, AI 사용한 티가 나는 과제는 그냥 감점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 막 “너 썼지.” “인정해.” 이런 말도 하고 말고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해. 으름장 놓으면 ‘걸리나 보다’ 하고 좀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다만 아무래도 나도 시험 보는 방식을 조금 바꾸기는 했어, 서술형 문제를 미리 알려주고 공부를 해 와서 시험장에서 종이에 외워 작성하는 거야. AI로 글을 생성하더라도 그걸 외우는 과정에서 논리가 공부가 될 거라고 믿고 그걸 좀 바라는 건 있어. 그리고 나름 괜찮은 방법 같아. 답안을 읽어보면 좀 공부를 했구나, 같은 게 느껴지긴 해.


애플 한 가지 덧붙일 게, 내가 했던 수업은 소규모 수업이라 그렇게 학생들과 다 같이 합의를 만드는 방식이 가능했다는 거야. 스무 명 정도 되거든.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이게 70명 되는 보통의 수업이면 완전 불가능했을 거고, 그럼 GPT킬러를 나도 돌릴 테니 학생들한테도 돌려 봐라고 얘기하는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


칼국수 진짜 강의당 학생 숫자 줄이는 건 너무 중요해. 물론 역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번에 연세대 AI 커닝 사건도 뉴스 보자마자 가장 눈에 들어온 게, 수강생이 600명이라는 점이었어. 이 사건에 대해 코멘트를 요청하는 기자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도 “600명 수업인데 뭘 기대하냐. 학생의 잘못이나 강사의 잘못을 묻기 이전에, 600명 짜리 수업을 만들어 놓은 학교 문제부터 이야기하자” 이런 코멘트를 했어. 50명만 되도 너무 힘든데.


삼다수 나도 사실 그거 보고 그 강의 수강생 숫자가 미쳤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온라인이라도 그게 말이 되나? 학교가 너무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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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시 50분에 출근해서 3시 50분에 캠퍼스를 떠나는 비전임 강사로서


애플 근데 너희는 그런 생각 안 했어? 나는 그 사건 보고 학교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는데, 나는 되게 즉각적으로 ‘이 사람이 전임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라면 유야무야 넘어갔지 이렇게까지 강력한 문제 제기가 가능한 거구나 생각했어. 비정규직 강사로서의 비루한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


삼다수 전임한테 수강생 몇 백명인 수업을 주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중요한 건 확실히 애플 말대로 비전임 강사 신분으로 학생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야. 만약에 ‘이 강사 너무 빡세다’ 이런 얘기 나오면 폐강이 될 수도 있고, 강의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고, 이런 이유로 웬만하면 학생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해.


칼국수 나도 AI 잘 잡아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한편으로는 교육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평가 때 AI를 잘 못 걸러내면 왜 예전에 나도 학부생일 때 커닝해도 모르는 교수님 이슈도 있고 했었어서, 평가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이 좀 있었거든. 그런 것도 민원사항이 될 수 있으니. 그래서 사실 시험도 과제도 채점을 좀 누가 봐도 쉽게 이의제기 할 수 없게, 깔끔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도 가졌던 것 같아. 너무 심하게.


삼다수 그래도 한 가지는 눈치 보지 말자 하는 것도 있어. 나는 페미니즘을 다루는 수업을 하니까 더욱 망설여지는 부분이기도 했는데, 정치적인 발언을 과격하게 하는 일을 스스로 검열하지 말자, 그런 이유로 잘리면 그냥 잘리지 뭐, 이런 마음을 먹고 강의를 시작한 것도 있어. 특히 작년 이맘 때 계엄이 있었잖아. 계엄이나 대선 때 이준석 발언, 동덕여대 사건 등을 수업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 정치적 발언이 강사에게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인지 그 선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냥 하는 편이야.


몽쉘 나도 강의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한 주차 젠더 수업을 해야 하는 그 때를 앞두고였어. 피하고 싶다고 피해갈 수도 없고 어떻게든 하긴 해야겠는데, 수업 중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박하면 뭐라고 대응해야 하지? 이런 망상 같은 것도 젠더 수업이 다가오는 동안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 내가 어디까지 말해도 될까, 말할 수 있을까, 반박이 들어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GPT랑도 많이 상담했었어.


삼다수 아니 실제로 에타에 나를 ‘페미 교수’라고 칭한 평가가 올라와 있다고 하더라고.


애플 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저 치사한 방식을 택했어. 교수자로서의 권위를 이용하는 거지. 문학에서 페미니즘 붐 이후에 나온 여성 서사의 중요성을 지식으로서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면 현대 문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거다 이런 식으로 설득을 하게 되더라. 그게 내가 활용하기 가장 쉬운 방법임에 틀림없으니까. 이렇게 정면 돌파를 안 해도 되나 하는 불편함이 스스로 계속 생겼지만, 무난하게 하려면 역시 교육자의 위치를 활용하여 계몽 모드가 되는 게 내가 찾은 타협점이었어.


삼다수 너무 공감 가. 나는 다른 연구자의 권위에 기대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비판적인 생각이나 평등에 관한 감수성이 없는 건 지식이 부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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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나는 처음으로 수업을 해 봤을 때, 계속 수업 첫 주에 이걸 말할 걸, 저걸 말할 걸 이런 생각을 엄청했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과제를 냈더니 AI가 했을 때, 토론을 하자고 했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이럴 때 잔소리를 굉장히 하고 싶은데, 수업하다 말고 잔소리만 하는 느낌이라 또 그걸 하기가 굉장히 망설여지더라고. 그리고 또 약간은 학교를 원망하기도 한 게, 나는 수업이 정말 처음인데 학교에서 거의 아무런 안내도 없이 그냥 알아서 수업하고 평가해라는 식이니까, 첫 주 준비를 나름대로는 했는데 못 챙긴 점들이 많았던 것 같아서 아쉬웠어.


몽쉘 맞아. 진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이잖아. 겪어보니까 나는 사실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학부 1학년부터 박사과정까지 쭉 같은 학교에서 다녔어서, 새로운 학교 캠퍼스에서 뭔가를 한다는게 이렇게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인지 몰랐어. 프린트는 어디서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강의실 가면 물리적인 시스템도 익숙하지 않고, 그리고 소프트웨어도 온라인강의실 시스템도 학교마다 다 다르잖아.


칼국수 맞아. 나도 큰 실수했었는데 온라인 강의실 문제였어. 나는 컴퓨터 키드로서 그런 일을 겪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세 개 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세 개 다 다른 시스템이었거든? 내가 과제를 아까 엄청 열심히 채점한다고 했잖아. 채점하고 피드백도 정성 들여서 달았는데, 학생들이 그 피드백에 대한 어떤 반응이 몇 주째 없어서 그냥 아이들이 그냥 수긍했나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4주 정도 지났나? 피드백을 언제 주시나요 라는 질문을 하는 거야. 알고 보니까 내가 시스템 상에서 설정을 잘못해서, 피드백을 입력은 했는데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게 지정이 되어 있는 거였어. 근데 사실 이런 것도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으니까, 이런 실수를 하면서 학생들을 통해 배워야 했던 게 참, 뭐랄까 내가 너무 초짜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 같기도 해서 당황스러웠어.


애플 이런 행정적인 문제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대학에서의 교육이 갖는 의미가 뭔지에 대한 교육이나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는 채로 강사가 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거쳐서 강의로 진입할 때 강사로서의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이 없잖아. 그냥 냅다 강의를 하게 되니까, 나는 그런 이유로 내가 빈 곳이 있다는 감각을 늘 느꼈어. 어떤 채점이 잘 한 채점인가에 관한 실무적인 질문에서부터, 아주 깊이 들어가게 되면, 내가 가르치는 인문사회 계열의 모든 논의가 정말 타당한가? 객관적인가? 이런 질문까지 하게 돼. 오늘날 인문사회 계열의 지식이라는 건 동시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이 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나조차도 완벽하게 설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강의를 이어나가야 하는 모순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칼국수 내가 전임이면,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때는 그럴 때도 있어. 내가 만약에 학교에 상주하면 학생들을 계속 지나가면서 마주치기도 하고 어떤 스몰톡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을 텐데, 나는 정말 1시부터 4시 수업이었는데 12시 50분에 도착하고, 왜냐하면 최대한 거기에 덜 머무르기 위해서, 3시 50분 수업 끝나면 딱 운전해서 나가버리는 사람 인 거여서 학생들도 혹시 그 선생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 있더라도 할 기회가 이제 안 만들어지는 그런 문제도 느꼈어.


삼다수 맞아. 생각보다 학생들과 개인 대 개인의 스킨십을 하는 기회가 더 있으면 좋겠더라고.


몽쉘 좋은 학생들, 열심히 하는 학생들하고는 약간 더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아쉬웠어. 그런 마음을 담아서 마지막 시간에 이런 이야기도 했어. 전공 강의이거나 내가 다른 과목도 하는 강사였으면, 우리가 이렇게 서로 겪어봤으니까 여러분들도 내 강의가 마음에 들면 다른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우리의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가 있을 텐데, 이게 교양 강의라서 재수강이 아니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나는 심지어 같은 강의라도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중에 일방적으로 다음 학기 강의를 못하게 된 상황이라, 더 아쉬움이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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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업 중 토론의 희망과 절망


삼다수 나 여러분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어. 수업에서 팀플 시켜?


덕우 나 했었어! 11주차까지는 강의를 하고, 12~14주차는 발표 수업하는 전형적인 형식. 4주차 쯤에 조를 짜주고, 발표를 돌아가면서 하라고 했지.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해 조사를 한 걸 발표하도록, 그래서 조가 만들어진 이후에 2주마다 한 번씩 개인 피드백을 계속 줬었어.


몽쉘 나는 교양 수업이라, 교양은 팀플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안 했어. 바쁜데 교수자가 다 떠먹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근데 그래서 전공을 하게 되면 꼭, 꼭 팀플을 하고 싶어.


칼국수 왜 하고 싶어? 나는 사실 학부 때 팀플 너무 싫어했어서, 나는 팀플 시키지 말자는 혼자만의 다짐을 가지고 있어. 거의 모든 과목을 팀플하는 학과를 졸업했거든.


몽쉘 난 강의할 때 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없는 게 걱정이었어. 강의가 시간을 못 채우고 빨리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그게 나의 기본적인 걱정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간다는 점에서 팀플을 너무 하고 싶어. 그런데 다른 교수님 한 분은 팀플을 그 이유로 안 한다는 거야. 자기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팀플을 시킬 수가 없대.


덕우 맞아. 그게 나도 너무 모르는 주제로 갑자기 수업을 하게 되다 보니까. 팀플로 수업 콘텐츠를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기도 했어.


삼다수 16주는 학부 수업을 강의로만 채우기엔 너무 긴 시간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해. 대학원 수업이면 1년 내내도 새로운 거 읽어가면서 할 수 있는데, 특히 교양 같은 경우는 너무 어려운 거 가르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이 있고, 그래서 팀플을 시켜볼까 싶은데 눈치가 보이는 거지. 학생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난 팀플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나름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


애플 내 지도교수님이 내가 처음 수업할 때 해 주신 말이 이런 거였거든. ‘애들은 너한테 배우는 거 없어. 다 자기들끼리 배우는 거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 그런데 내가 코로나 때 강의를 처음 시작했는데, 조별 토론하라고 소회의실을 파주잖아. 자기들끼리 너무 얘기를 재밌게 잘하는 걸 보고, 학생들이 생각보다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구나, 판을 잘 깔아줘야 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지도교수님 말씀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물론 나도 장치는 두지. 이를테면 읽기자료에서 좋았던 문장 3개 뽑아 와라, 그것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하는 식으로 과제를 주고, 도입부를 만들어주는 역할은 강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 같아.


덕우 맞아. 진짜 토론할 때도 강사가 그냥 놀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토론이 잘 이루어지게 챙겨야 하는 게 있지. 학생들이 보통 친구랑 앉아서 토론하고 싶어하니까, 양심껏 돌아가면서 앉아라 체크해줘야 하기도 하고, 또 토론 시켜놓고 강의실 돌면서 말 안하는 친구가 있으면 친구 옆에서 가만히 얼굴 맞대고 앉아 있으면서 이야기 꺼내게 하고. 할 일이 많아. 정말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하다못해 (팬덤수업 주차에) 자기가 덕질하는 아이돌을 홍보라도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을 여는 걸 유도해보기도 했어.


칼국수 지금까지 얘기 나온 게 약간 토론 수업 희망 편이라면, 나는 약간 절망 편인 것 같아. 나도 수업 외에서 모여 과제해야 하는 팀플은 안 하지만, 그래도 다른 학생들과 대화하고 또 이견을 가진 사람과 토론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수업 내에 토론 시간을 배치했거든. 그런데 너무 다들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토론을 피하기 위해 수업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학생들도 생기더라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러니까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뭘 더 했으면은 괜찮았을까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


삼다수 나는 친구들이 토론을 싫어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 번 시켜보니까 너무 잘 하는 거야. 그래서 학생들이 되게 예뻐 보이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토론을 시킨다는 게 또 되게 괴로운 거야. 그러니까 어떤 조는 되게 토론이 잘 돼. 근데 저 끝에 뒤에 앉은 애들은 가만히 앉아 있고 그럼 약간 미쳐버릴 것 같아. 망한 TV 프로그램의 MC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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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시 강사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 (돈은 아니고)


애플 나도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데, 내가 박사논문 쓰는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뭐가 가장 힘들었냐면 내가 아무 가치 없는 일을 한다는 감각이 너무 오래 있었어. 쓰나 마나 한 이야기를 하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쓰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살다가, 강의하러 가는 하루는 되게 희한하게 긍정적인 인터랙션이 되는 감각이 확실하게 있었어.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실제로 눈에 보인다는 감각이 느껴졌고, 그게 논문 쓰는 기간에 유일한 숨통처럼 느껴졌어.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잡는 데 수업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됐어.


칼국수 아, 나도 박사 논문 쓸 때 강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가게 되는 것도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나는 누워서 썼단 말이야.


몽쉘 맞아. 나도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는 게 활력 유지에 진짜 큰 도움이 됐어.


애플 그리고 사람 꼴을 하고 나가니까 말이야!


삼다수 나는 졸업했어도, 진짜 강의 빼고는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강의에서 느끼는 효능감이라는 게, 그렇게 집에서 나갈 때도 있지만, 나는 요새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는 것 같아. 내가 강의하는 학교 교양에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과목이 정말 없더라고. 그래서 이 대학 안에 있는 페미니스트 학생들, 퀴어인 학생들, 그리고 대학 안에서 스스로를 자꾸 부정하게 되는 학생들을 위해 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인 거잖아?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자의식 과잉인가?


몽쉘 아니아니. 그건 진짜 자의식 과잉이 아니고 실제로 너무 중요한 역할일 것 같아. 가끔 학생들이 수업 끝나고 약간 쭈뼛쭈뼛 남아서, 이 수업을 통해서 자기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런 거 얘기해 줄 때 있었거든. 이게 약간 진짜 나에게도 평생 가는 기억이겠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줄 수 있었다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덕우 나도 기말고사 답안지 다 적은 다음에 나한테 편지 쓰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게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 어쨌든 그게 또 자기 손글씨로 쓴 것들이니까, 그런것들을 볼 때 내가 뭔가 의미 있는 걸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또 나도 섹슈얼리티 수업은 아니었지만 요즘 대중매체에서 재현되는 다양한 LGBTQ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수업 시간에 할애를 많이 했었어. 생각보다 학생들이 재미있어 하고 좀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의 세계를 깨는 모습들도 보면서, 교육자의 관점이라는 게 이렇게 작지만 큰 효용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 아, 맞다. 수업 끝나고 갑자기 대뜸 혹시 교수님 나중에 성소수자 인터뷰 필요하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이런 말을 하고 간 학생도 있었어. 그것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네. 그래서 나는 그런 경험을 통해, 학위를 받고 강단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몽쉘 나도 비슷한 경험 있어. 한 학생이 학기 끝나갈 때쯤에 자기 이제 4학년이고 졸업반인데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 중에 제일 좋았어요. 이렇게 얘기해 줬을 때, 너무너무 큰 행복감이 들었어. 내가 1학점에 얼마를 받고, 가성비가 너무 없는 일이고 이런 걸 다 뛰어넘는 그런 행복감을 주는 일이었어. 이래서 다들 강의를 하시나 싶어.


삼다수 열심히 듣는 학생들 너무 예쁘지. 그런데 나는 또 학생들이 나한테 해줬던 말 중에 대학원 생각이 있어서 살짝 상담을 하고 이런 친구들이 오면 정말 당황스럽기도 해. 내가 이 사람이 그런 길을 가는데, 영향을 미치는 게 되게 부담스럽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길이 여러 모로 쉽지 않은 걸 아니까.


칼국수 그러게 내가 대학원 상담했던 선생님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나는 그래도 누군가 대학원에 가고 싶어 하거나, 우리 전공에 관심을 보이면 긍정적인 부분을 영업하고 더 해 보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 너무 희망 회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떤 교육의 과정 속에서 여기 있는 너희들 같이 교육을 고민하는 젊은 교육자들도 새롭게 대학 안에 들어오게 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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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칼국수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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