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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영시] 더 좋은 독자되기


신진 1호가 나왔을 때… ‘이 편지는 영국이 시작되어’라는 코너명을 기억하시나요? 아쉽게도 답장을 받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영국에서 출발해서 그런지(아님) 한국으로 오면서 어디선가 사라졌나 봐요. 편지는 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카카오톡에 1이 사라지느니 마느니 하지만, 우체통에 넣고 기다리던 시절에는 집배원이 자루에 우편을 쏟아 내다가 흘리거나, 잘 담겨도 하필이면 자루에 난 구멍 때문에 길 위에 떨어지거나, 분류원이 악필로 쓰인 주소를 잘못 봐서 수취인 불명으로 분류되거나… 다 쓰기도 어렵네요. 아무튼 제 손에서 떠난 편지가 어떻게 될지는 세상의 몫인 거죠. 하지만 계속 개점휴업일 수는 없으니 다시 릴레이를 시작해 보고자, 이번에는 우빈쌤에게 편지를 써요. 우빈쌤도 받아 보시지 못한다면 아마 저는 이편영시의 고정 필자가 되겠죠. “김선우의 수취인 불명”... 후후.


신진이 어느덧 21호에 이르렀고 첫 편지를 썼을 때 석사 졸업생이었던 제가 어느덧 박사과정생이 되었어요. 박사과정을 가네 마네 여길 가네 저길 가네 미루네 마네 정신없었던 상반기를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지금은 다른 소속, 다른 직함(?)이 적힌 명함을 가지고 다녀요. 첫 수업에서 소개할 때 저를 박사과정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딘가 머쓱했고, 그래서 ‘신입생’이라는 걸 더 강조했던 것 같아요. 초심자라는 말은 어딘가 안심이 되죠.


우빈쌤도 저와 같이 박사과정을 시작했잖아요. 우빈쌤의 박사과정 입학과 첫 학기는 어땠나요? 석사과정 때 저에게 ‘박사과정’은 정말 무겁게 느껴졌고, 그걸 짊어진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고,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었죠. 적어도 제가 봐왔던 박사과정생들은 그랬어요. 막상 제가 그 이름을 달고 나니 어색한 것도 사실이에요. 명함은 바뀌었지만 나는 정말 ‘박사과정생’다울까?


물론 자의식이 지나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대학원에 대한 여러 글과 대화들 속에서 ‘박사생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을 많이 본 탓인지, 또 ‘박사생 정도 되니까 이젠 후배들을 잘 챙겨야지’, ‘박사생 정도면 다른 대우를 받아야지’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어서인지, 그리고 더 이상 초심자가 아니니까, 나는 좀 더 경험을 해봤으니까 달라 보여야 하고 프로패셔널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이번 학기 내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학교에 들어설 때마다 항상 긴장했거든요. 초반에는 마음이 너무 지쳤답니다(다행히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거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몸이 피곤했지만요. 어쨌든 방학해서 행복해요).


다른 마음가짐으로 더 성실하게 공부해야 하지만, 동시에 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공부하는 것인가? 단지 박사과정답게 보이고 싶을 뿐인가? 내가 원하는 건 역시 “박사생은 좀 달라!” 같은 말일까? 라는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어요. 그런 걸 계속 의식하는 게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경 쓰기를 반복했죠. 아마 제가 낯선 학교에 왔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 같아요. 인정하든 안 하든 첫인상은 중요하니까요.


박사과정다움을 생각하면서, 제 주변의 선배들은 어땠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그 선배에는 우빈쌤도 포함이랍니다!). 선배들은 그냥 대단한 사람일 뿐이었나? 아는 게 많고 똑똑한 사람이어서 좋아했나? 나는 그냥 아는 게 많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저는 석사과정 때 늘 제 작업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부끄러워했어요. 작업물이 엉망진창인 것도 있지만 동시에 밑천이 다 드러나 버릴까 봐, 내가 나에게 품고 있던 헛된 기대 같은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릴까 봐 무서웠던 것도 있었어요. 정작 석사논문을 제출하고 나서는 왜 남들 바짓가랑이를 더 적극적으로 붙잡고 매달리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요. 이건 박사과정을 지원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선뜻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웠죠.


온갖 걱정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피드백과 도움을 요청해도, 선배들은 나무라지 않았어요. 그것은 당연한 고민이다.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원고에서 나도 몰랐던 연구의 의미를 찾아주고,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정확하면서도 사려 깊은 피드백을 해주었죠. 어쩌면 나보다 내 연구를 더 잘 아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선배들은 늘 자기 연구는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었어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함께 고민해 주었어요.


제가 선배들에게 보았던 모습은 ‘좋은 독자’였던 것 같아요. 그냥 읽고 마는 독자가 아니라 (글이든 사람이든) 발전할 방법을 같이 머리 맞대고 생각해 주는 사람. 어딘가 대단해 보이는 모습은 대단해 보이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려 깊음과 오랜 고민들, 거기에 천착하는 모습들에서 오는 거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운이 좋게도 정말 좋은 선배들을 만났었네요.


물론 제가 언제까지고 후배일 수만은 없을 거예요. 언제까지고 ‘학생’일 수는 없을 것이고요. 분명 좋든 싫든 이전보다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게 될 것이고, 박사과정에게 가지는 기대를 회피할 수는 없겠죠. 다른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주어야 하는 일이 찾아오기도 할 거예요. 그럼에도 ‘박사과정’이라는 호칭 또는 위치 자체를 의식하기보다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정확하면서도 애정 어린 독자가 되는 데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그건 언젠가 ‘과정’이 끝났을 때에도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제 얘기가 길어졌네요. 우빈쌤의 박사과정 첫 학기는 어땠을지 궁금해요. 저는 늘 머뭇거리고 돌아서는 일이 많은데, 늘 우빈쌤은 자신이 없어도 기세 있게 앞으로 척척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한 학기 고생하셨어요. 그러면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선우 드림



글. 김선우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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