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종교라는 이야기, 이야기라는 종교: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후기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12시간 전
- 4분 분량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와 연극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맹세코 청룡영화제 무대를 보고 박정민에게 입덕하여 연극까지 보러 간 것은 아니다. 다만 청룡영화제 무대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게, 그 무대가 워낙 화제가 된 덕분인지 내 SNS 타임라인에 박정민이 계속 흘러 들어왔고 그러다가 연극 소식까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평받은 소설과 호평받은 영화, 그리고 브로드웨이에서 역시나 호평받은 연극까지. 한 이야기가 세 가지 버전으로 각색되고, 그렇게 여러 배우가 한 인물을 거쳐 가게 되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그 과정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표를 예매했다. 마침 20% 할인까지 했으니까. 같이 보러 가는 친구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해서,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영화도 한 번 더 같이 봤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이야기는 새삼 참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구나, 생각했지만 연극은 그러한 끔찍함이 더욱 생생하다. 영화는 파이의 여정을 압도적인 시각적 스펙터클로 소화해 내면서 신비롭고 환상적인 장면을 맘껏 뽐내지만, 연극은 영화만큼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물론 창의적인 무대 연출이 뒷받침해 주지만 말이다. 다만 연극은 그 부재를 드라마로 채운다. 그래서 더 끔찍하다. 영화를 보면서 시각적으로 압도된다면, 연극을 보면서는 파이의 처절한 독백에 압도된다. 이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점이 생존 직후 병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중년이 된 파이의 회고 안에 병원에서의 보험 조사관과의 인터뷰를 배치하지만, 연극에서의 화자는 병원에서 보험 조사관과 인터뷰하게 된 바로 그 파이다.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그보다는 오히려 그 기억의 생생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파이.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경험과 시공간적 거리를 두고 어느 정도 차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 중년의 파이가 아니라 아직 자기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파이인 것이다.
연극은 훨씬 직설적이다. 세밀한 퍼펫 연기를 통해 살아난 동물들은 죽을 때 몸통이 분리되고, 내장이 뜯긴다. 서로 먹고 먹힌다는 게 어떤 것인지 영화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한 생명의 빛이 꺼질 때, 그 동물의 퍼펫 연기자가 무대를 떠나게 되면서 죽음은 더욱 생생해진다. 그림자처럼 퍼펫 옆에서 퍼펫을 조종하던 연기자가 퍼펫을 두고 떠나는 모습은, 마치 영혼의 해방 같기도 하고 신의 저버림 같기도 했다. 또, 스페인어로 말하는 멕시코 병원 간호사와 일본어로 말하는 화물선 선원들에 둘러싸여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파이가 느꼈을 불안과 초조함도 와닿았다. 그렇다고 연극이 내내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유머가 많고 관객들은 여러 번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런 유머 뒤에는 거의 언제나 참혹함이 따라왔다. 이 연극에서 유머는 일종의 서사적 점프스케어를 위한 장치였다. 연극은 파이의 고통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파이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도 직설적으로 전달된다. 파이는 성당과 이슬람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나란히 있는 곳에서 자랐다. 그렇게 그는 모든 신을 모시고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곧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한 번에 3개 종교를 믿을 수는 없다는 어른들의 말에, 파이는 응수한다. 그냥 서로 조금씩 다른 버전의 이야기인 거 아닌가요? 왜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죠? 그렇게 종교는 그냥 하나의 이야기로 격하된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삶이라는 이야기는 종교와 같은 것으로 격상된다.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진실’이라는 이야기를 원하는 보험 조사관과의 다툼은 단지 참과 거짓을 가리는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 전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그냥 바나나가 물에 뜰 수 있는지를 실험해서 증명한다고 결론이 나는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믿음의 문제다. 그것도 아주 신실하고 진실된 믿음.
동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와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그 둘을 죽인 하이에나, 그리고 그 하이에나를 죽인 호랑이와 보트를 타고 생존한 파이. 다리를 다친 선원과 어머니와 그 둘을 죽인 주방장, 그리고 그 주방장을 죽이고 보트에서 생존한 파이.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와 두 명의 파이를 들려준 후 파이는 묻는다. 두 이야기 모두 배는 침몰하고 내 가족은 죽어요.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당신은 그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죠. 그렇다면 무엇이 더 나은 이야기죠?

아무도 쉽게 두 번째 이야기, 더 납득 가능하고 개연성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더 낫다고 답하지 못한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두 번째 이야기 또한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해 낸다. 파이의 이야기가, 그 끔찍한 참상이 무대 위에서 되풀이된다. 그래서 저 이야기를 살아낸 파이가 더 낫다고 답하지 못한다.
무엇이 더 나은 이야기인가, 그 기준은 연극에서 거론되지 않는다. 그건 실증 가능성이나 개연성에 달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무엇이 더 나은 이야기라고 선택해야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걸까? 그냥, 3개 종교를 다 믿고 있는 파이처럼 우리는 동시에 여러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어느 하나가 더 낫기에 다른 하나를 버리는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이는 결국 이야기의 내용, 즉 참과 거짓에 대한 것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고 듣고 또 다루는 태도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지난 학기 자기이론을 중심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구자들을 의심하고 심문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서로의 큰 자아를 어느 정도는 비웃으면서도 동경하는, ‘성찰하는 나’마저 과시가 되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성찰을 계속 고민하게 하는, 그런 기묘한 수업을 들었다. 이론, 성찰, 정체성, 연구. 이런 것들의 내용보다는 끊임없이 그것과 관계 맺는 태도, 양식, 윤리를 토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의 서사들을 읽고 듣게 된다. 그런 자기 서사들은 다 하나의 선택, 그러니까 그렇게 믿기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모두가 그러한 믿음과 거기서 비롯된 이야기에 신실하다. 어쩌면 이 또한 작은 종교들의 경합이다.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이야기에 대한 나의 믿음에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그렇게 선택하면서 믿지 않기로 하게 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믿지 않기로 한 이야기를 길어 올려서 하나의 이야기라는 일관된 나의 삶을 분열시킬 수 있을까? 의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기각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라, 그 모든 가능한 이야기가 동시에 내가 될 수 있을까? 파이의 두 가지 이야기를 우리는 동시에 믿을 수 있을까?
이 리뷰는 2025년 12월 말에 쓰기 시작해 2026년 1월에 마무리하게 된 글이다. 이야기를 맺고 끊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인지라, 한 해가 끝나갈 때쯤이면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한 장이 결론에 다다른 것 같고, 다시 한 해가 시작하면 새로운 장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연말연초에는 계속 곱씹게 된다. 내가 살아낸 혹은 그렇게 살아냈다고 믿는 지난 이야기를. 때로는 그 믿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건들이나 이야기들이 나를 침투하기도 했다. 그걸 거부하면서 온전한 나를 지키려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기꺼이 무너져 내렸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자면, 그 판단은 내 역량 밖인 듯싶다. 이야기는 결국 청자 없이는 성립되지 않으니, 그 판단의 몫도 청자에게 있을 것이다.

글. 조윤희
편집. 조윤희

![[이편영시] 더 좋은 독자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jpg/v1/fill/w_980,h_980,al_c,q_85,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f6734_9e63780e9f4f400895237f2d6e69752e~mv2.jpg)
![[하...] <신진> 편집의 시간들이 내게 준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png/v1/fill/w_980,h_594,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ff6734_a212d85dee3e4d80a2751e7879c70ffe~mv2.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