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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신진> 편집의 시간들이 내게 준 것



올해 4월, 네 명의 편집위원과 함께 시작한 신문연의 웹진 레터 <신진Sinzine>이 어느덧 한 해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처음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던 건 단체만의 고유한 의제가 깃들거나 시의적인 주제를 다루는 글을 평소보다는 자주, 그러나 무겁지는 않은 톤으로 다룰 수 있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서였다. 다들 너무 바쁘다 보니 과연 격주에 레터를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냥 해보지 뭐, 몇 번 하고 안 되겠으면 무르자”로 시작했던 레터가 기어이 20호를 내는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창간호 이후 1년이 약간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평소에 교류하던 인적 풀보다 훨씬 다양한 필자와 참여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글을 실어 왔다. <신진>의 한 해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나 앞으로의 편집과 기획 방향에 대한 의견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다루기엔 지면이 협소해 곧 준비할 기획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글에서는 한 해 편집을 맡았던 편집위원 개인이 느꼈던 소소한 에디팅 경험과 참여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소회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편집위원의 (예기치 않은) 슬픔


‘까짓거 해 보겠다’는 이카리 신지 급 패기로 시작한 웹진이었으나... 솔직히 말하면, 수년간 대학 밖에서 여러 실무들을 해 보았는데도 <신진> 업무는 참으로 쉽지 않았다! 청탁이나 원고 수급의 어려움 같은 문제도 있지만, 격주에 한 번 레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편집노동’임을 깨닫는다. <신진>을 펴내는 동안 우리는 적어도 홈페이지, 메일링 플랫폼, 설문용 온라인 폼 빌더, 디자인 플랫폼, 주소록이나 SNS까지 4-5개 이상의 편집 및 관리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격주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편집을 하기에, 개별 편집위원들은 이 프로그램을 모두 다루고 종합적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


사실, 필자들이 보내준 원고 자체에 대한 에디팅은 거의 품이 들지 않는다(우리가 만난 모든 필자들은 애초에 톤을 기막히게 잘 잡으시고, 피드백도 너무나 개방적으로 수용해 주셨다). 그러나 링크 원본과 템플릿과 폴을 새로 만들고 소식을 갱신하고 구독자와 소통하고 소개글을 쓰는 등 그 짧은 레터 안에 들어가는 선행 작업들이 매우 튼실한 품을 요구했다. 적절하고도 저작권에 안 걸리는 원고 썸네일을 찾아 붙여야 하는 건 덤이다. 아무리 검색을 해도 저작권 프리 이미지가 걸리지 않자, 편집위는 급기야 썸네일 디자인과 손수 그림 그리기까지 시도하였다(혹시 발견하신 분이 있을까?). 뉴스레터 툴로 유명한 ‘스티비’를 다뤄보긴커녕 단순 홍보 메일도 거의 보내본 적 없던 나로써는, 거진 너댓 호쯤 펴내고서야 일이 그나마 손에 익기 시작했다.


작업 태스크는 나름 익숙해졌지만, 레터를 직접 쓰는 정성적인 일도 남아있다. 근황 토크처럼 레터를 쓰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별 것 아닌 듯해 보이지만, 사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쓴다는 건 다수를 상대로 한 ‘진행력(사회력)’이 꽤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사소한 인사말을 쓰다가 좌절한 것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아, 대체 왜 내가 여는 말을 쓰면 꼭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같이 되는 것이냐? 레터를 쓰며 언제나 내면의 노잼 자아와 항상 맞서 싸우고, 스몰톡에 익숙하지 않은 부족한 사회성(?)을 곰곰이 생각게 된다.


무엇보다, 신진에 글을 기고해 준 소중한 필자들의 글을 적절하게 소개하는 것이 에디터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간접인용’ 글쓰기의 또 다른 형태를 수행하는 과정이자 나의 기존의 관심사를 초월하는 다양한 타인의 의제와 글에 관심을 기울이고 번역하는 과정이다. 부담스럽지 않되 정확하게 핵심을 전달하고, 글의 논지를 해치지 않아야 하며,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흥미의 언덕을 같이 올라간다. 에디터가 보탤 수 있는 의견을 약간 곁들인다면 더 좋다.


그 작은 한 문단을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지만, 이 과정은 나에게 적잖은 연결감과 환기 효과를 주었다. 수료 후 자기 글만 붙잡고 있었더니 본의아니게 학문적 시야가 축소되는 느낌이 들고, 타인에 대해 자연스러운 일상과 안부의 글쓰기를 하는 감각이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열거나 덧쓰기 혹은 건조한 리터러쳐 리뷰가 아닌, 필/독자와의 연결로서의 편집이 중요하다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그러려면, (곧 나올 어느 글이 말해줄 예정인데) 우리는 적극적으로 필자의 세계에 이입하고 다녀와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 계간지 월간지 펴내시는 분들 정말 너무 존경해요.



편집위원의 (중독적) 기쁨


그렇게 쉽지 않은데도 기어이 작업을 유지했던 동력은, <신진>을 통해 대학원생과 학부생, 박사학위자까지 다양한 신진연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관점과 생각을 읽고 나누는 데 있었다. 신진의 고정 간담회 <탁상共론>은 그런 노력이 깃든 기획이다. 레터에 일상의 소소한 생각이나 시의적인 문화정치의 한 단면, 감명깊게 읽은 문헌이나 요즘의 최애를 다루는 등 여러 코너들이 있지만, 탁상공론 만큼은 <영주먹> 코너와 함께 비교적 일관된 관심사를 정향한다. ‘신진’들이 느끼고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대학원 생활과 연구자의 삶, 학계의 문화 경험을 가감없이 나누면서, 인문사회 중심 국내 학술 장의 문화나 관행, 구조들을 서로 이해하고 비판해 보는 것이다.


올해의 탁상공론에서는 1) 학술대회 노동과 참여, 2) 학술지 투고와 심사, 3) 대학원생의 선후배 관계와 네트워킹, 4) 지도교수와의 관계, 5) 연구자의 SNS 경험, 6) 갓 강의를 시작한 시간강사들의 경험을 다루었다. 이런 주제는 어떠한 제도적 틀을 통해 공식적으로 경험의 바탕이 제공되는 것 같지만, 그 세부절차나 문화적 관행은 철저히 개인화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암묵지적 영역에 존재하는 학술 경험들이다. 탁상공론으로의 초대는 단순히 잘 살아남는 ‘꿀팁’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연구자로 잘 살아가기 위해 다시금 우리 삶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생산적 자조(self-help)’를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내게 이 자리는 논문 작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또 다른 인터뷰 현장이었고, 혼자만 품던 고민을 공유하고 그동안 쉽게 물어보기 힘든 문화를 동료에게 질문해 볼 수도 있는 준공식적 통로이기도 했다.


<신진>의 간담회와 지면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신문연 회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귀하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만나보지 못했을 새로운 분들과 나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의 연결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누군가는 하도 들어 지리하다고 평가할 학술 장의 이야기들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게 맞는 거다’라는 확신을 주는 순간적인 감각이 자주 온다. 청탁료를 많이 드리지 못하거나, 간담회의 경우 거의 무보수로 진행하는데도 언제나 어디서나 흔쾌히 초대에 응해주는 참여자와 필자분들께 늘 송구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학술경험 공유의 채널을 목적과 절차와 행동이 정해져 있는 정형화된 공간의 외부에서 만들어서 더욱 뜻깊다.


물론 당연히 이런 기회를 맛보는 대가로 노동(!)은 언제나 필요하다. 다같이 만난 자리에 불이라도 붙으면 두세 시간은 기본 순삭에, 심층 인터뷰나 FGI를 해본 분들은 익히 아실 그 하얗게 불태워진 느낌도 온다. (참여자 크로스 체킹에 인트로도 열심히 써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나고 구글 독스와 클로바 노트를 켜면서 느끼는 살짝 피곤한 기쁨이란, 꽤나 맛도리이며 중독적이다. 편집위에는 아직 초대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사실이 내심 즐겁다.




다음 해에도 무사히 편집을 진행할 수 있으려면 편집위에도 남겨진 과제가 많을 것이고, 곧 진행될 기획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아마 많이 나올 것이다. 어쩌면 ‘하진짜너무조앗서’ 보다 걱정이 더 많은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함께하는 모두에게, 편집위와 필진과 참여자들, 언제나 관심을 보여주시는 구독자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다. 우리 그래도 정말 한 번도 안 거르고 꾸준히 해왔어요. 그럴 수 있게끔, 좋은 편집의 경험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 김지수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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