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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선후배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최종 수정일: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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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정말 아웃사이더 그 자체로 다녔다. 내 시간표를 짤 때 누군가와 같이 들을 과목을 상의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며, 첫 주 수업시간 강의실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대학원에 들어갈 때 몰랐던 게 두 가지 있었다. 대학원은 공부를 더 하는 곳이 아니라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지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선배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방학부터 세미나를 했었고, 수업은 대부분 같은 수업을 들었다. 모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인간관계 천태만상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 한가운데에 끼여있기도 했다.


대학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대학원생은 교수와도 관계를 맺지만 다른 동학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선배, 동기, 후배라는 이름으로 엮여서 한동안 수업 동료로, 학과/연구소/방 따위의 일을 나눠 해야 하는 팀으로, 학업 고민이나 일상 고민을 T적으로 또는 F적으로 나누게 되는 친구로.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정규 수업이나 논문 지도 이외에 대학원생들의 생활을 구성하게 되는 ‘연구실 문화’는 대학원생이 성공적으로 학업적 사회화를 이루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묵지의 전수도, 지식과 커리어에 대한 정보 공유도, 심리정서적인 지지도 이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학과 사람들은 어떤 연구실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우리 연구실이 최선일까? 내가 우리 연구실 선후배 동료들에게 갖는 불만은,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도 정당한 것일까? 이런 궁금증들이 떠오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른 환경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 떠는 일이다. 부산 서면의 한 중식당, 5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룸에서 서로의 경험을 풀어내보았다. 다섯 사람은 각기 다른 학교, 다른 인문사회 계열 전공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거나 마쳤고, 자기 학과 외의 대학원생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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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소개


깐풍기  박사과정 마지막 코스웍을 하는 중. 공동체를 떠올리면 대학원 동료들보다는 학교 밖의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방에 교수님과 본인뿐이었는데, 올해는 교수님마저 연구년을 떠났다.


사랑  박사수료까지 했는데, 부산에서 계속 연구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진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지지할 수 있는 동료들의 공동체나 연구자 롤모델 찾기에 관심이 생겼다.


에그마요  입학하고 반 년 지난 석사과정 2학기생. 대학원에 온 이상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고 가리라 다짐했다. 잦은 리액션을 하지만, 영혼도 충만하다.


롯데  석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신설 대학원 과정의 1기생으로 입학해서 선배가 없고, 후배도 많지 않다. 5명의 대학원생들이 교수님과 뭉쳐서 학과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크림새우  아직도 종종 자기가 대학원생인 걸로 착각하며 산다. 무관심과 무던함이 추구미이지만 어딜 가든 사람이 모이면 차이와 갈등, 감정적 소요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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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해보자 호-칭


사랑  다들 대학원에서 서로 뭐라고 불러?


롯데  우리는 다 또래여서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나이 많으면 형이나 오빠 호칭도 쓰고.


에그마요  우리는 이름에 님 자 붙여서 불러. 사랑 님, 롯데 님, 이런 식으로. 과에 한국인이 별로 없고, 서로 스쳐 지나가는 관계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선배도, 선생님도 좀 뭐하고. 그냥 땡땡 님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한 것 같아. 정말 친한 사람만 말도 트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크림새우  외국인들한테도 님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유학생 친구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 지가 늘 애매하더라. 나는 땡땡 씨로도 많이 불렀는데, 외국인한테는 괜히 씨를 붙이기가 좀 이상한 느낌이랄까?


에그마요  응. 근데 진짜 신기한 게 중국인 친구들이 반말에 되게 열려 있는 편이더라. 그래서 누구 님 누구 님 하면서 내가 깍듯하게 대하면, 편하게 그냥 말 놓으라고 먼저 말하는 분들이 많아. 이름 한자 발음 어려울까봐, 중국식 애칭 말해주면서 이렇게 불러도 된다고 말도 해주고.


사랑  맞아. 중국이랑 미얀마는 가족들끼리 애칭을 많이 만들더라고.


크림새우  나는 내가 석사 처음 들어갔을 때는 다 형, 누나, 오빠, 언니, 이런 분위기였는데 박사 끝날 때쯤 되니까 어느새 다 쌤으로 바뀌고 존댓말로 바뀌었어. 뭐가 더 좋다기보다는 그 변화를 몸으로 겪으니까 신기한 느낌?


깐풍기  우리는 샘이야. 다 존댓말 하고. 석사 왔을 때부터 학교에서는 존댓말을 다 해 왔어서 이걸 인지를 못하고 있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러시아 친구인 율리아한테는 그냥 율리아라고 하는 것 같아, 중국인 친구한테도 그냥 편한대로 호칭하고.


사랑  우리는 누구누구 샘이라고 부르고, 존댓말 하고. 나는 그게 익숙해. 뭐 존댓말이라고 해서 ‘식사하러 가시겠습니까’ 이렇게까지는 아니고, ‘깐풍기 샘 밥 먹으러 갈래요?’ 이런 정도. 나는 대학원 처음 들어왔을 때 20대 중반이었는데, 40대 대학원생 동료도 있었거든. 이렇게 10살, 20살 차이 나는 동료들이 있을 때 서로 쌤이라고 부르니까 상호 존중도 되는 것 같고, 너무 어른 대접하는 것도 아니고 좋더라고. 거기에 익숙해졌어. 그런데 어떤 박사님이 왜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냐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놀랐어.


크림새우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된대?


사랑  그분도 딱히 어떤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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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동료일까? 학과 원생들끼리 교류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깐풍기   우리 과는 존댓말만 하는 걸 넘어서 좀 데면데면하기도 한 것 같아. 시민사회, 사회운동과 다양하게 관련 있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관심사도 다양하고 서로의 주제에 접점도 거의 없어. 그렇다 보니 우리 과 안에서 토론이 별로 없어. 학과 차원에서 하는 연구사업도 거의 없다 보니까, 공동으로 협업을 해서 뭔가를 쳐낸 경험이 없고, 각자 개인 작업만 하는 것 같아. 흩어져 있는 점 조직이야. 심지어 같은 학과 동료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주제를 프로포절 행사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기도 해.


에그마요  토론은 우리도 딱히 없어. 강의 때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대체로 너무 의기소침하고 무서워 하는, 그러니까 토론하고 싶어하지 않는 느낌? 그리고 토론에 적극적이지 않은 걸 떠나서 발제를 해도 수업시간에 안 듣는 사람들도 많아. 모니터 보면 그냥 본인 과제, 본인 논문 하고 있고 이러니까 발제할 때도 주눅 들더라고. 교수님이랑 혼자 얘기하는 기분?


크림새우  에그마요는 대학원 입학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갔더니 선배들이 그러고 있었으면 되게 황당하긴 했겠다. 맞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남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 무슨 발표를 하는지, 어떤 피드백을 내가 줄 수 있는지 고민 안하고 그냥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도 대학원에 늘 있었던 유형인 것 같아.


에그마요  그나마 몇 분은 조금씩이라도 토론에 참여하고 하는데, 너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토론에서 말을 많이 하는 내가 오히려 나대는 것 같고, 궁금한 걸 물어보는 내가 너무 그냥 수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번거롭게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에 자꾸 휘말리게 돼.


롯데  우리는 학과 대학원생이 소수라서, 수업도 다 똑같은 과목을 듣고, 수업을 할 때도 지금 여기 이렇게 편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하고 항상 붙어 있어. 다들 막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토론할 때 말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교수님이 질문 던져주면 각자 생각 얘기하고, 궁금한 점 얘기하고 이런 건 자연스러운 것 같아.


에그마요  맞아. 이렇게 수업 때든, 수업 밖에서든. 이렇게 대학원생들끼리 편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다보면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진짜 많잖아. 그런데 우리 학과에서는 동료들끼리 그게 안 되니까 너무 아쉬운 것 같아. 대학원은 사실 그런 걸 기대하고 왔는데.


크림새우  대학원생들끼리는 공부 얘기 많이 할 것 같지만, 막상 세미나 끝나고 밥 먹으러 가면 연예인 얘기 아니면 공통지인 얘기 하게 되더라. 그러다보니까 교수님들 얘기를 진짜 주구장창 하게 돼. 교수님이 너무 원생들한테 연예인이야. 오늘 그가 무슨 말을 했고, 기분이 어떻고, 미주알고주알. 그래서 나는 수업 외에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를 많이 꾸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사랑  나는 연구실이 있는지 없는지도 중요한 것 같아. 우리 과가 대학원생 연구실이 생긴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그러고 나니까 확실히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 석사 때는 연구실이 없어서 혼자 고립되어 논문을 쓰면서 너무 마음이 괴롭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랬는데. 연구실 생기면서, 특히 수업 전후로 자연스럽게 ‘오늘 너무 힘들었다’ 이런 얘기부터 나누게 되니까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돼. 아, 그리고 우리 밥 먹을 때도 다 같이 나가. 훠궈도 진짜 많이 먹으러 가고.


크림새우  좋겠다. 훠궈집 아는 데 있으면 알려줘!!


사랑  진짜 맛있는데 있어. 사천훠궈 양꼬치라고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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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마요  연구실이 있어도 사람이 와야 연구실 문화가 생겨. 우리도 공용 랩실 같은 게 있고, 이용하는 원생들끼리 단톡도 있는데, 사람들이 잘 안 와서 내 개인 독서실처럼 쓰고 있어.


크림새우  개인 연구실!!!! 그건 좀 웃프다. 나는 연구실 쓸 때 이런 것도 신경 많이 썼었는데, 연구실 안에서 사람들 파가 갈리는 거. ‘분명히 쟤네 밥 먹으러 가는데 왜 걔한테는 안 물어보지?’ 이런 생각 진짜 많이 했었어. 사람들 표정이 읽히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나는 그래도 같은 학과 동료니까 같이 하는 문화라고 늘 생각을 했는데,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지. 혼자는 외로우니까 ‘한 명만 있으면 돼’ 이런 느낌으로 둘만 붙어 다니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근데 걔네 졸업하고 나서는 또 잘 안 보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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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학원, 수업과 교수가 전부가 아니다 


롯데   선후배 관계, 이런 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해. 나는 우리 과 1기 대학원생이라 선배도 없고, 후배도 이제 들어왔는데 아직 만나보지를 못했어.


깐풍기  나는 후배일 때는 선배들하고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 선배 되어서는 후배들 좀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내가 석사로 들어왔을 때는, 내가 30대에 대학원을 들어온 기혼남이고 하니까 나보다 더 젊은 박사과정 선배하고 편하게 대화하는 데 문화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선배들한테는 내가 굳이 대화를 같이 할 필요가 없는 신입생으로 여겨졌었나 싶어. 지금 이제 박사 4학기 차니까 새로 들어온 분들은 반대로 좀 많이 챙겨주려는 쪽에 가까워. 특히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알려줄 것도 많고, 한국에서의 추억을 같이 만들 것도 많고. 전통 체험도 하고, 공유주방에서 밥도 같이 해 먹고. 프로포절 준비도 돕고, 디펜스 팁도 공유하고.


에그마요  내가 우리 학과에 공부 안하려고 하는 사람 너무 많다고 말했지만, 물론 자기가 KCM인가? 수업시간에 헤드폰 끼고 스포츠 시청하는 선배도 있긴 해. 하지만 어디든 열심히 하는 분들은 엄청 열심히 하잖아. 그래서 그런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배들이 자기가 아는 건 무조건 다 가르쳐주려고 하는 게 있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분이 하신 말도 딱 깐풍기랑 비슷해. 자기가 석사 때는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너희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면서. 논문 찾는 법부터 교수님들 성향, 프로포절 팁도 다 공유해 줬어.


사랑  나도 처음 대학원 들어왔을 때 우리 교수님 방에 박사논문 쓰고 있는 선생님도 있었고, 박사과정 선생님도 있었고, 석사도 2명 있었거든. 그래서 저희 네 명이서 공부모임이 있었어. 우리끼리 책 읽고 발제하고, 그 시간이 나한테는 되게 좋았고 그 이후로도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 선생님들이랑도 많이 가까워졌고, 또 학부 마치고 대학원 처음 갈 때 발제라는 형식이 정말 익숙하지 않은데 교수님은 잘 안 알려주시잖아. 모임에서 발제를 연습할 수 있었어. 학과 내에서 선배가 어떤 스타일인지에 따라서 좌우가 많이 되는 것 같아. 선배가 좀 사람들을 모으고 그런 걸 좋아하는 타입이어야 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거지.


크림새우  맞아. 사랑 같은 선배가 있으면 분위기가 올라가지. 나 옛날에 석사 1학기 때 학문후속세대 연구에 인터뷰참여자로 섭외됐는데 그때 이런 질문을 받았었어. 학과 내에 네가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박사 과정 선배가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 그때 연구실에 있는 박사 형, 누나 말했었는데.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롯데  그래서 교수님들이 항상 우리한테, 너네가 1기니까 너네가 이제 모범이 돼야 된다, 학과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된다라고 항상 말씀해 주시는데 그게 좀 되게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확실히 잘 챙겨줘야지 그런 생각도 들면서 그러네?


사랑  그런데 사실 난 그런 생각도 해. ‘내가 그런 모임 한다고 해서 후배들이 좋아할까?’ 방학 때 알아서 공부하고 싶은데 이런 거 왜 하지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어.


크림새우  그래서 사랑 말대로 누가 대학원에 있느냐가 되게 중요해서, 결국 연구실 분위기 만드는 게 참 어쩔 수 없이 개인기에 많이 의존하게 되나 싶기도 해. 트위터에 나한테 자꾸 뜨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신입생 OT 가서 스터디 조직했다’ 그런 걸 올린 걸 보고 대단하다, 이런 사람들이 뭘 해내는 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


사랑  우리도 스터디 있어. 지난 학기까지는 제2외국어 스터디를 학과에서 같이 했었어. 특별한 건 아니고 챗GPT로 논문 번역 돌려 와서, 한 문장씩 챗GPT가 좀 이상하게 한 거 교정하면서 공부했어.


롯데  우리는 시작되는 학과라 교수님이 열정이 있으셔. 교수님이 스터디 제안하셔서 수업 외에 격주로 독서모임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어. 그런데 이번에 석사논문 스터디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실패했어. 다들 꺼려하는 분위기. 졸업논문은 개인 프로젝트라 그런가?


깐풍기  우리는 학과 내 스터디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은데, 다들 각자 시민사회에 따로 연결된 공동체가 있어서, 각자 원하는 조직에서 스터디 할당량을 채우는 것 같아. 나 같은 경우에는 철학 모임하는 스터디, 도시 스터디를 바깥에서 따로 따로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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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안적인 연구 공동체를 상상하기


사랑  나는 대학에 오면서 부산에 왔어. 나는 사실 부산이 굉장히 편안하고 즐거운데, 계속 의문이 드는 것도 있어. 젠더, 퀴어, 사회운동 이런 얘기를 인문학으로 푸는 데 관심이 많은 내가 이걸 공부하면서 부산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또 사람들을 모아서 뭔가 같이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데, 나랑 마음이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


크림새우  그럐? 근데 나는 오늘 깐풍기도 많이 소개해 줬지만, 지역에도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공동체들이 있다고 느꼈어. 관심 없으면 잘 보이지 않지만, 관심 두고 보면 찾을 수 있는? 그래서 요새 이런 얘기도 자주 하는데. 공동체 만들기 워크숍 같은 거 해서 서로 노하우 공유해야 한다고. 대안적인 공동체 필요한 사람들이 오면, 자기 자신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그런 워크숍 말이야.


사랑  다들 만들고 싶은 공동체나 공간 같은 거 있어?


롯데  난 딱히 취미나 이런 게 없어서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는 것 같아.


크림새우  근데 이미 연구소 일하는 게 거의 공동체 활동이나 다름 없지 않아? 깐풍기도 공동체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고.


깐풍기  나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어. 학부를 중간에 그만뒀다 보니까, 내가 32살까지 고졸이었거든. 그래서 다른 대학생들처럼 시간표나 이런 게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사회단체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소속이 없는 상황이었던 거야. 그래서 생존의 개념으로, 나와 닮은 사람들끼리 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조직들을 만들었지. 사실 요새는 다시 공부하며 학교에서 지내니까 오히려 삶을 단출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에그마요  나는 모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껴. 학부생 때 대외활동 동아리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걸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든 거야. 6개월도 못하고 다 이렇게 무너진 적이 있는데, 그 뒤로부터는 내가 주도해서 어떤 모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워. 사실 나는 지금도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이런 일 같이 하는 모임도 해 보고 싶은데. 주변에 그런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도 모르겠고, 계속 이끌어가는 능력도 나한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깐풍기  그런데 나는 조직을 만들 때, 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나까지 세 명. 적절하게 활동에 호응해주는 두 사람하고 최소 1년을 만나면 공동체가 좀 단단해지고 덩치가 커지는 것 같아. 오히려 처음부터 덩치가 커지면 일이 많아져.


에그마요  맞아. 나 한 10명으로 시작했었어. 완전 망했거든.


크림새우  진짜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 처음에 크면 오히려 힘들다는 게. 사람이 모이면 무조건 성향 차이와 오해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특히 이제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 너무 많았어. 오늘 얘기한 것처럼 대학원에서도 스트레스가 많잖아. 왜 쟤들은 저렇게 공부를 안 하고 수업에 비협조적이지? 생각할 때 걔네는 ‘범생이’라고 우리 욕할지도 모르고.


사랑  맞아. 우리 연구실에도 최근에 갈등이 있었어. 내가 연구실 벽에 특정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큰 생각 않고 두었었거든. 그런데 지난 학기에 그 국적을 가진 학생이 우리 학과에 들어온 거야. 그 친구도 입학하고 처음에는 인식을 못하다가, 어느 날 그걸 딱 인식을 하게 됐나 봐. 그래서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선생님들이 이걸 철수해야 한다, 그대로 둬야 한다 논쟁이 붙어 버린 거야. 대학원이라는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이제 서로 또 대학생 때랑 다르잖아, 이미 내가 다 나의 어떤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 계속 부딪히니까.


크림새우  아휴. 그러게. 생각만 해도 내 머리가 아픈 일이야. 수다하다 보니 끝이 없네. 여기 가게 문 닫아야 한대. 오늘은 우리도 여기서 그만하고. 잘하면 우리도 오늘 처음 봤지만 공동체처럼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 숫자도 다섯 명이면 너무 안 많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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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크림새우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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