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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영시] 토대, 태도, 토론



문화연구포럼 뒷풀이에서 집중력 문제로 딴짓을 많이 했다는 말을 선기쌤께 했었는데요. 이 대화에서 시작된 선기쌤의 편지를 하필이면 어느 학술대회에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짓을 하다가 열어보게 되었어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조금 많이 늦은 답장이지만 편지를 이어볼게요.


학술대회는 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아마 영원히 이러지 않을까 싶어요. 학술대회는 사람을 타는 자리이면서도, 학계의 ‘집단기억’을 타는 자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모두가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의 첫 학술대회는 섬유공학 학술대회였어요. 모든 발표가 영어로 이루어졌고, 지정 토론자도 없고, 플로어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도 없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돌이켜보면 서로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아가는 자리이면서도, 학계 네트워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누가 어느 랩 소속이고, 어느 교수의 제자인지)를 확인하는 자리, 흥미로운 발표자나 ‘대가’ 교수에 접근할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학부 2학년 즈음에 젠더사회학 수업을 듣고 이공계가 아닌 여성학의 언저리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 이후에 인문사회계열의 학술대회를 많이 찾아다녔고, 저의 ‘첫 학술대회’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얻었어요. 저는 ‘잼얘’처럼 보이는 발표가 있으면 어디든 갔던 거 같아요. 사회학으로 시작해서 여성학, 국문학, 문화연구 등등… 학제마다, 주최하는 학회마다 사회, 발표, 토론, 뒷풀이의 분위기가 각양각색이었어요. (학술대회 현장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어서 더욱 낯설게 느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낯섦을 읽으면서 각각의 학문과 학계가 보이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내가 가장 잘 맞는 곳은 어딜까’ 고민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낯섦‘들’ 속에서 익숙했던 건 분명히 있었던 거 같아요. 대개 논문으로 발전시킬 원고로 발표가 이루어지고, 토론에서는 이 원고가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어떤 보완점이 있을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던 거 같아요. 선기쌤의 추구미는 논문 심사장을 만들지 않고, 번역가가 되는 것이라 하셨죠. 저도 동의하게 돼요. 학술대회와 비슷한 자리에서 발표를 몇 번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걸 글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 무언가를 들고 간 발표에서 토론자 선생님께서 이 글이 어느 위치에 놓일 수 있고, 어떻게 뻗어나갈 수 있을지를 제안해 주셨던 게 큰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리고 이때 플로어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거 같아요. 여성학을 하시는 선생님부터 동양철학을 하시는 선생님까지 다양한 학제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아마 토론자 선생님의 덕이 아닐지 싶어요.


학부 교양 수업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토론’을 몇 번 하고 난 다음부터 토론에서 토대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부 수업에서 접했던 대부분의 토론은, 이 토론을 왜 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 공통된 합의가 없었던 거 같아요. 모두가 참여점수만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손을 들고, 그래서 그런지 규범적인 찬반 논의로 귀결되기 쉬웠던 거 같아요. 물론 3학점/15주/45시간 안에 토대를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토론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를 구체적인 현실에서 찾는 과정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기쌤의 토론 추구미로 말씀하신 번역가, 매개자를 제가 이해한 바로 바꾸어 말하면, 토대를 만들어 주는 혹은 보이게 해주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논의가 어떻게 (예상되는) 청중들의 관심사와 엮일 수 있는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 말이에요. 저에게 귀중한 경험으로 남았던 발표 역시 이게 이루어졌기 때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답장을 쓰다 보니 들었네요.



한편으로는 발표자의 역할도 고민하게 돼요. 그러니까 발표자의 위치에 있었던 ‘나’가 썩 좋은 발표자는 아니었던 거 같은 거죠. 토론자의 역할만큼이나 발표자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도 너무 중요한 거 같아요. 발표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발표문을 그대로 읽을 건지, PPT를 만들 건지, 발표문에는 없는 내용들을 말할 건지. 발표에도 추구미가 있겠죠. 그런데 저는 항상 추구미에 도달하지 못한 거 같아요. 발표문의 내용을 모두 머리에 넣고, 깔끔한 PPT를 만들고, 화면이 아닌 청중을 바라보면서 조리 있게 발표하기… 그런데 막상 발표장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PPT를 그대로 읽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학술대회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늘 반성하게 되는 듯해요.


뭔가 글이 반성문으로 바뀐 거 같은데, 이왕 시작한 김에 반성을 이어서 하자면 저는 ‘좋은’ 청중이 되지도 못하는 거 같아요. 집중력이 원래 안 좋아서 조용하게 글을 읽어야 따라갈 수 있는데, 학회 발표의 분위기는 정반대라 발표와 발표문을 동시에 섭렵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이제 몇몇 학술대회에서는 자료집을 별도로 인쇄하지 않고, 사전에 온라인으로 공개하더라고요. 글을 먼저 읽고, 현장에서 발표와 토론을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토론(혹은 학술대회 전반)의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면서도, 그 ‘토대’를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청중을 포함할 수 있을지, 학술대회 속에서의 태도를 고민하게 돼요. 청중으로서는 발표장에 앉아있다가도 여러 번 길을 잃고, 발표자로서는 원고 마감부터 못 지키고 현장에서 늘 망한 발표만 하게 되니 반성과 고민과 다짐이 항상 남아요. 


이쯤 되니 토론은 뭘까, 학술대회가 뭘까 하는 생각을 무한정 반복하게 되네요. 사실 편지를 받고 어떤 답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한 달이 지나서야 일단 뭐라도 쓰자는 마음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의식의 흐름대로 답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글)을 쓰게 되었어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저는 그새 개강을 맞이해 버렸네요. 그렇게 졸업 염불을 외다가 막상 올해 졸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지금은 수업에 치여 사느라 그럴 틈도 별로 없지만, 미래 고민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요. 너무 갑작스럽운 전환인가 싶기도 하지만, 저는 화제를 바꿔서 현화쌤께 편지를 보내려고 해요. 현화쌤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 소회가 어떤지, 학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럼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신승호 드림




작성. 신승호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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