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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연구활동가 몰까..."

최종 수정일: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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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섯 달 전의 [영주먹]을 통해, 언론노조 상근 활동가이자 미디어 문화연구자로서 살아온 몇 년간을 돌아보며 교차적 정체성으로서의 ‘연구활동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질문이 멤돌고 있다. “연구활동가 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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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도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됐다. <매스컴이론>이라는 고리타분한 제목의 강의다. 학부 시절 신방과를 다니면서 사회과학의 철학에 대해 제대로 소개받은 적이 없었던 나는, 이번 학기에 이 내용을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기 직전, 사회과학의 실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비판적 실재론자들이 보기에 사회과학자들의 사회적 대상에 대한 적절한 해명은 그릇된 믿음과 믿음의 구조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며, 그러한 비판은 행위자들의 행위과 관념을 변형할 가능성을 만든다. 그리고 이는 사회 구조의 변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사회과학자들의 역할은 일부의 사회구조와 기제와 경향들에 대한 추상적인 이론적 지식의 제공과 ‘안내’에 그치며, 이를 현실적 통찰과 결합해 구체적인 지식으로 발전시키고 실천 속에서 적용하는 것은 실천가들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사회과학자와 실천가들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자 하는 이들이 곧 ‘연구활동가’들이라고도 덧붙이며 강의를 마쳤다.


나는 미디어 문화연구자로서 국가론과 포퓰리즘 이론을 통해 미디어 정치의 구조와 현상을 분석한다. 또한 언론운동가로서 미디어 노동조합에서 언론정책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 얼핏 보기엔 연구 분야와 운동 분야가 꽤나 높은 수준의 일치도를 보인다. 그러나 나의 사회과학적 작업과 활동가로서의 실천과 얼마나 내용적으로 일치하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최근에 나는 국가론의 관점으로 한국 미디어 체계를 분석하는 논문을 썼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언론은 민주주의적 지배구조의 일부다. 언론은 시민사회를 ‘여론’의 형태로 대표하는가 하면, 국가와 지배블록이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나는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외부자의 시각에서 언론을,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와 국가를 바라보고자 했다. 그러나 미디어 노동조합의 활동가로서 생산해야 하는 담론은 이와 차이가 있다.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직면해 언론 자유의 가치를 강변하고 민주주의 회복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해야 한다. 연구자로서 나는 언론과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그 연구대상들은 진보적일 수도 있고, 반동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활동가로서 나는 그것에 대한 고민 대신 확신을 말해야만 한다.


사회과학자로서의 나는 활동가로서의 나에게 적절한 ‘안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제공하는 안내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활동과 실천의 형태로 변형되고 있을까. 모든 연구활동가들이 이러한 질문에 직면해왔고, 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개인적인 작업으로서의 연구와는 달리, 활동이라는 것은 언제나 조직을 배경으로 하며, 나의 개인적-사회과학적 관점이나 신념과 갈등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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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연구활동가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때로는 활동가로서 확보하게 되는 운동 현장에서의 구체적 경험들이 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사회과학자들이 상아탑 안에서는 좀처럼 확보하기 힘든, 과학적 진술을 위한 근거 자료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사회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이 현장에서의 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해당 분야의 ‘연구자 혹은 박사’라는 타이틀이 정당하게/부당하게 가져다주는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활동가 정체성 양자의 불일치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불일치가 꼭 부정적인 상태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양자의 불일치는 언제나 양자의 변형을 초래한다. 그러한 변형 과정이 양자에게, 적어도 한쪽에게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연구활동가의 딜레마는 감수해봄직한 것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글을 쓰는 탓은 아직도 연구활동가가 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연구활동가 몰까. 몰까…몰까… 그렇다고 연구가 뭔지, 활동이 뭔지 각각 아는 것도 아니다. 연구활동가 몰까… 연구 몰까… 활동 몰까… 김원훈과 조진세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애매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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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준형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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