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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저건]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과 실존주의적 지식인

최종 수정일: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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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수 많은 모순들이 응축되어 있었다.’ 

더 이상 종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새로운 인식론적 혁신이 발아하는 순간에 대한 학술세계의 설명, 왜 그것은 다름아닌 그때에 그와 같은 모습으로 출현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관한 학술적 응답은 주로 모순들의 응축으로 갈음된다. 이른바 학술적 혁신의 빅뱅(Big Bang) 이론이다. 특정한 시점에 여러 모순들이 동시적으로 발생할 때, 인식론적 혁신은 발생한다고 우리는 가정한다. 영국  신좌파와 문화연구의 등장에 관한 지난 역사쓰기 작업은 중첩된 모순들이 혁신을 이끌었다는 빅뱅이론의 대표적 예다. 미국 중심의 문화연구자들로 구성된 ‘Cultural Studies Association’에서 발행하는 저널 <Lateral>은 2019년부터 ‘Years in Cultural Studies’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기획을 진행중인데, 해당 기획에서는 문화연구라는 학술 프로젝트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연도(Years)에 관한 에세이를 싣고 있다. 이 기획에서 그간 언급된 연도 중 가장 앞단은 바로 1956년이라는, 겹쳐진 모순의 시간이다. 

1956년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소련에 의해 학살이 자행되었고, 영국 좌파는 현실공산주의와는 다른 제3세력 프로젝트(English third force)를 모색해야 했다. 수에즈 운하 사태가 발발하고 영국 내에서 반전운동과 반제운동, 평화운동이 촉발되었던 것도 역시 바로 그 해였다.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이 지닌 서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좁은 시공간 내에 겹쳐진 다종의 정황들 속에서 영국 좌파는 기존과는 다른 문제틀을 발명해야 했으며, 영국 신좌파와 문화연구라는 새로운 학제적 실천의 원형적 실천이 Bang!하는 폭발음과 함께 등장했다.’ 해당 기획의 가장 앞단에 위치한 글인 1956년에 관한 에세이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956-영국 신좌파와 문화연구의 ‘빅뱅이론’ 1956—The British New Left and the “Big Bang” Theory of Cultural Studies”. 해당 에세이의 저자인 스티븐 고츨러(Steven Gotzler)가 이와 같은 서사 틀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은 문화연구의 등장 서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었던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재)생산해온 설명 틀이기도 하다. 아니, 홀 뿐만이 아니다. 신좌파나 문화연구를 비롯해 좌파 이론 내의 이론적 혁신에 관한 역사적 설명은 주로 이처럼 당대 정치경제적 모순 일반에 대한 ‘학술적 반응’이라는 식으로 갈음되곤 한다. 모순이 응축된 조건 내에서 기존의 설명틀이 도전을 받게되며, 새로운 이론적 혁신이 긴요히 요청될 때, 빅뱅이 출현하고 인식론적인 전회가 발생하여 ‘우리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새로운 설명틀이 자리잡는다고 말이다.

새로운 인식론적 틀과 강단좌파의 새 문제설정이 어떻게 출현하였는가에 관해 논할 때, 이 빅뱅이론은 당대 모순들과의 길항관계 속에서 그 설명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론과 현실’ 사이의 길항관계와 현실로부터 말미암은 이론의 혁신을 가정한다. 유물론적 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거꾸로 이론적 혁신을 매개한 ‘행위자-지식인’에 관한 구체적 설명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게 된다. 물론, 이 빅뱅이론의 서사를 그리 빈약하게 낮잡아봐서는 안될 것이다. 좌파이론의 빅뱅이론 서사 내에서도 학술혁신을 매개한 행위자-지식인에 관한 (특정하게 정향된) 자리가 있다. ‘학술장 안에서 성원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아웃사이더가 새로이 학술장 안으로 진입하며 혁신을 추동했다’며, 학술혁신의 빅뱅이론은 노동계급, 여성, 비백인 등 그간 학술장 내에서 성원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이 ‘(계급)횡단자’들이 학술장 안에 진입하게 된 과정을 강조한다. 바깥의 경험과 관점이 학술장 안으로 들어오며 혁신을 매개했다는 설명이 빅뱅이론 내에서 행위자-지식인의 자리를 채운다. 일례로, 영국 내에서 1956년 발생한 학술혁신의 지식인-행위자 차원의 설명은 전후 장학금을 받으며 학술장 안으로 진입한 노동계급 청년들-장학금 소년들’(Scholarship Boys)-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중첩된 모순들 속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술장에 진입하게 된 노동계급 출신의 신참자들이 변화를 매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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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역시 충분치 않다. 장학금을 받고 들어온 신참자들은 어떻게 학술장 안의 기존의 상징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계승자가 아닌 이단자가 되길 마음먹었던 것일까? 그 이단자들이 지닌 성향체계가 기존의 학술장과 불화한다는 점을 가정하더라도, 장 안에 이제 막 진입한 이단자들의 상징혁명-빅뱅!-은 어찌 성공할 수 있던 것일까? 모순들 속에서 대체 어떤 틈새와 기회공간이 열렸기에 그 이단자들의 상징혁명은 가능했던 것일까? 이 모든 질문에 거의 답하지 않고, 진입한 이들은 기존의 학술장이 지닌 상징논리와 불화했음을 강조할 때, 그들의 상이한 궤적과 경험에 말미암은 성향과 학술장의 지배적인 성향 사이의 불화만이 전경화되곤 할 때, 우리는 실존주의적인 영웅적 지식인 상을 다시금 마주할 뿐이다. ‘시간의 이음매가 어긋나 있다’(time is out of joint!)고 외치며 이쪽과 저쪽에 모두 불화하고 세계와 직면할 수 있는 렌즈를 고민하는 그이의 얼굴은 낭만적 지식인의 드라마를 불러내며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영웅적 개인 그이 자신을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게 된다. ‘(계급)횡단자’에 관한 실존주의적 서사는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의 부재하는 ‘개인’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이야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이다. 

1956년에 발생한 신좌파의 상징혁명과 문화연구라는 학술적 프로젝트의 초석에 관한 서사에서 지금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있는 조각들 몇몇을 길어올려 다시 배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내에서 교육제도의 변화와 대학교육으로의 출입문이 지속적으로 팽창했을 뿐 아니라 특정한 주기를 두고 지체와 급류의 리듬을 아래에서 팽창했으며(1910년대와 30-40년대) 계급횡단자의 세대구분을 만들어냈다는 점, 영국 대학의 상대적 자율성이 낮아지는 과정에서 -국가의 대학에 관한 영향력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학술장의 이단자들이 옥스브릿지를 비롯한 ancient university에 진입할 수 있게되었다는 점, 영국적인 대학제도 특징인 옥스브릿지와 시민대학 사이의 경쟁구도와 런던과 북부지방 사이의 갈등 하에서 옥스브릿지와 런던 출신이 아닌 (1세대 장학금 소년) 계급횡단자들이 시민대학 안에서 학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점, 1940년대 영국 노동당의 ‘황금기’였던 애틀리 정부 이후 1950년대까지 그의 리더십이 지속되는 등 낡은 노동당의 이미지 아래에서 이와 대조적으로 보수당의 경우 젊은 의원과 성원으로의 세대교체를 이뤄냈다는 점, 제도정치 내 청년조직과 청년들에게 막힌 기회구조가 있었고 제도 바깥에서 활성화된 사회 운동조직이 등장했다는 점, 1940년대 옥스브릿지의 담이 낮아지며 여러 ‘(계급)횡단자’들이 런던의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 하에서 공부하고 또 좌파정치를 모색했다는 점, 이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요크지방 중심의 1세대 신좌파와 달랐으며 후발 주자들은 그들의 객관적 위치 하에서 유리한 전략인 (대륙)이론수입을 통해 앞선 세대의 이단자와 그들 자신을 구별지었다는 점, 20세기 초 영국 내에서 출판의 민주화가 진행되며 읽고쓰는 능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읽고쓰는 취향의 계급별 분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점, 그 과정에서 중간취향으로서 대중적/교양서 양식의 발전을 이끈 출판계 혁신인들과 이 신좌파들이 협력/공모적 관계를 모색했다는 점을 우리는 빅뱅이론과 실존주의적 계급횡단자의 서사에 들이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재배치해 이야기를 다시 써볼 수 있을 것이다. 낭만주의적 그림자를 들춰내고 그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학술공간의 바깥을 안으로, 홀로 고립된 이단자를 조력자와 이단자들의 집단에 속한 행위자로, 다른 이단자들과 경쟁 또는 협력하는 얼굴로, 뭉뚱그려진 학계를 특정한 하위장의 결합체로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술장의 혁신에 관해 새로 쓰여질 이야기는 빅뱅이론의 행위자-지식인을 다시 사회공간 안에 위치시키는 이야기다. 그것은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학술장 안의 혁신에 관해 반복되어 온 영웅적이며 실존주의적 서사를 대체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 스스로와 학술장 모두를 재발명하고 구해낸 개인들의 서사가 주는 드라마와 아우라에서 벗어나 빅뱅이론을 탈신비화하는 과정은, 그간 미학적인 차원에서 주로 논의된 ‘자기-이론’이나 철학과 문학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어 온 ‘(계급)횡단자’의 사회학적 객관화가 될 수 있다. 취약함이 강점이 되는 순간에 관한, 그것이 사회과학적 혁신에 유용한 토큰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에는 종전의 실존주의적 드라마가 주는 파토스와 이쪽과 저쪽 사이에 선 지식인이 취해야 할 에토스에 관한 침잠이 자리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삶과 앎, 이론과 현실, 학계의 안과 바깥, 학술장의 지배그룹과 이단자 등에 관한 그간의 각본들을 재점검하며, 새로운 혁신을 모색하는 내일의 이단자들이 다시 비춰볼 수 있는 현실적이며 유용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이역만리 먼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를 다시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순간, 학술적 혁신의 빅뱅이론과 고뇌하는 실존주의적 지식인의 얼굴을 대체하는 새로운 서사가 출현하는 순간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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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태준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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