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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대학원에 온 죄를 고백합니다 (feat. 대학원생 생존기)

최종 수정일: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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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그러나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원에 왔으니 죄를 찾아보자면 학부생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열심히 세상을 돌아다닌 죄 정도가 있겠다. 그 덕에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대학원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죄는 대학원에 온 것 그 자체가 아닐까? 그 죄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결혼도 취직도 하지 않은 비생산청년으로 남아있다. 학석사연계를 통해 대학원에 발을 들였을 당시에는 나의 대학원 생활이 이리 길어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공부가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면 석사 학위는 학부에서 공부하며 가지게 된 개발협력 전문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석사 수준의 학력’을 충족시키는 스펙 정도로 생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부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늪 같은 것이었고 연구란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다 쥘 수 없는 아득한 세계였다. 결국 이 업계에 몸담기로 결심한 후에 내가 마주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과 염려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미래였다.


   내 석사 논문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논문이었다. (사실 지금 돌아보자면 페미니즘, 여성학에는 닿을 수도 없는 수준이다. 동시에 사회학이나 사회운동 분야에도 닿을 수 없는 애매한 논문으로서 내 석사 논문이 ‘구라’라는 지도교수님의 의견에 백번 동의한다.) 그 논문을 쓰는 나는 여성주의를 공부한 적도 없고 여성학을 다루는 학과에 몸담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운동을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멕시코의 페미니즘 운동 보다는 종교/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보라는 의견도 있었고 해당 지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 중요한 운동이 맞냐는 의견도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과연 여성을 정말 소수자로 보고 페미니즘 운동을 소수자 운동으로 볼수 있냐는 질문도 받게 되었다. 수없는 화살 중 나를 가장 헤메이게 한말은 나의 당사자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논문 주제와 관련한 차별을 겪은 경험이 있는지를 물으며, "결혼도 출산도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여성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느꼈던 모욕적이고 당황스러운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경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과연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동료들도 이러한 질문을 받을지에 대한 고민이 드는 순간이었다.


   페미니즘 운동을 살펴보는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벽 외에 남초 교육자들에게 교육받는 여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들도 있다. 강의실이든 학회든 여학생들만 있는 환경을 아쉬워하며, "남학생들이 좀 입학해야 하는데" 같은 발언이 연구 환경에서의 남성 부족을 안타까워하는 말로 종종 나온다. 물론 연구 환경에 남녀 학생이 모두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들 충분히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또 이 분야가 남학생이 없으면 안 되는 성별 의존적인 분야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시는지 궁금해진다. 여학생들은 연구가 부족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학생들이 수많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위축된다는 뜻인지, 남학생이 있다면 달라지는 점이 있을지, 그 진심을 알 수 없어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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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이라는 늪에 발을 담근 젊은 연구자에게는 개인의 삶에서도 예기치 않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특히 가족들은 내가 '박사가 되기 전에' 결혼하기를 바란다. 박사가 되고 나면 결혼이든 출산이든 모든 일이 어려워진다는, 일종의 '배운 여자 기피론'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뿐 아니라 선배나 동료 연구자들도 박사가 된 후에 결혼을 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 과정을 끝내기 전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안정감을 갖기를 추천한다. 결혼만 문제인가?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모두의 걱정거리다. 졸업 후에는 무엇이 될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학교에 나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박사는 언제쯤 될 수 있는 건지…… 나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에 마주하게 된다. 요즘 뭐하냐는 친구들의 질문에는 늘 학교에 있다는 대답을 하고, 졸업하고 나면 교수가 되냐는 순수하고 (대학원생에게만) 폭력적인 질문에는 그저 와르르 무너질 뿐이다. 남들은 일하면서도 학위를 척척 따던데 너는 왜 취업할 생각을 안 하냐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억울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탑승하지 않은 딸 때문에 함께 그 궤도를 벗어나고 있을 나의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공부와 연구, 네트워킹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굴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물론 공부, 연애, 연구, 취업 모두를 다 잘해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다만 나는 그것을 모두 병행할 여력도 없고 그 필요를 느끼지도 못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아직 이룬 것도 없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을 인정받는 것은 연구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논문들은 이 모든 고민이 나만의 '예민함'이나 '이상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여성 신진연구자들과 박사과정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기록한 연구들(천주희, 김지수, 2025; 이윤정, 2023), 혹은 지방에서 페미니즘 연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계보 연구(추주희, 2025)들을 접하며 내가 가진 의문과 고민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확인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위로는 새로운 투쟁을 위한 동력이 된다. 석사 논문 이후로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학회에 참석하며 나의 명함을 뿌렸으며, 여성학 강의를 찾아 듣고 여성주의 단체에서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의미가 없거나 나의 학술적 범위를 여성학으로 좁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논문들은 오히려 나의 실천이 학문과 분리될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 우리의 어려움이 단순히 개인의 힘듦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연구와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고민과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단순히 여성 대학원생으로의, 지방 대학원생으로서의 고충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받은 위로와 영감처럼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궁금해하고 투쟁할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짤 중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 어느 책의 뒷표지인 거 같은데 제목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그렇게 쓰여있다. “사랑은 전투야. 나는 오랫동안 싸울 거야. 끝까지.”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내가,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투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이 사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며 이런 투쟁을 계속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어서 하진짜너무조앗서요……



참고문헌

이윤정. (2023). 인문사회 분야 박사과정생의 연구력과 연구 네트워크. <한국사회>, 24(1), 61-97.

천주희, 김지수. (2025). ‘불안정한 학술 노동자’의 재생산 과정 : 인문사회 분야 여성 신진연구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132-169.

추주희. (2022). 지방대 학문후속세대의 여성학하기: 전남대 여성연구소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61(2), 20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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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온유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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