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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논문 깎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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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수료생 신분. 이제 박사논문을 써야 하고, 그 전에 내 질문이 박사논문감인지 심사받는 프로포절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틈틈이 내가 학과에 걸맞은 논문을 쓸 만한 사람인지 심사받는 논문자격시험도 봐야 한다. 앞으로 이 모든 과정에 쏟아야 할 에너지와 아득한 시간을 떠올리면 ‘이제 논문 써야지’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대단히 큰 양심을 걸어야 응당한 거 아니냐,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 어쨌든 논문은 써야 하니… 얼마 전에 지도교수님과 면담했다. 2시간에 달했던 면담을 마치고 걸어 나가면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은 ‘논문은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다. 새삼스럽다. 돌아보면 사실 이건 내가 석박사 과정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것에 왜 감회가 새로워졌느냐 하면… 생각건대 내심 억울한 마음에 내가 그 조언을 모질게도 외면해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인정할 수 있게 돼서 그런 것 같다.


이 ‘억울한 마음’이라는 표현 아래 깔린, 혹은 그와 겹쳐 있는 나의 산만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대학 밖 연구공동체에 발을 들이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사회학과 석사과정 입학 후 한 학기의 절반 정도가 지난 다음이었고, 그동안 학교에서 듣는 수업이랄지 세미나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고 무미하다고 느꼈다. 당시 사회학에 대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으니(사실 아직도 나는 사회학 이론과 서먹하다)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말도 별로 없었던 데다가(사실 아는 게 없었다), 책에서는 엄청 간지나는 이야기들을 하던데 좀 심심하네(사실 알아듣지 못했다)... 하고 곧잘 건방을 떠는 것 말고는 별반 하고 있는 게 없었다. 떠올려 보면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숫자놀음에 이골을 내고 있을 때쯤 공교롭게도 정치경제학 수업이 열렸고 거기서 자본축적이니 변증법이니 하는 개념들에 삽시간에 사로잡혀, 여기 마르크스 잘하는 데가 어딥니까? 하고 치기만만하게 들이받았던 게 사회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사회학에 대해서도, 대학원에 대해서도, 연구에 대해서도, 또한 연구공동체에 대해서도 마땅히 알지 못한 채 생전 제대로 가져본 적도 없는 요상한 패기 하나만으로 이곳저곳에 덤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학과 단톡방에 ‘어디에서 무슨 무슨 세미나가 열린다더라’ 하는 홍보글이 올라왔고, 적적한데 가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3개의 세미나에 신청했다. 담론, 문학, 공간 세미나였다. 알파벳 쓰기 어려운 푸코(Foucault...)를 읽는다니 가보고, 문학은 원래 즐겼고, 공간은 친구가 관심이 있다길래 같이 참여하자고 했다. 그런데 웬걸, 책에서 읽었던 ‘간지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네. 그러니 그때의 내가 이 연구공동체에 매료되는 것에는 시간조차 문제가 안 됐다. 줏대 없는 학계 핏덩이(나이는 차치하고)였던 나는 열외로 하고, 그 사람들의 학과나 연구 주제나 문제의식이 서로 다른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대략 한 달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 내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도 그들을 따라 사뭇 진지해져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연구자 단기 양성 프로그램 같은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외려 연구 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나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어떤 ‘전략’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됐던 것 같다. 인간사 사회생활 기술로서의 전략이 아니라, 학문적 관심과 시야를 넓히는 데는 전략적으로 임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내 석사논문에 담긴 꼬박 4년의 시간이 그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렇다고 4학기 걸린 논문이 4학기만큼의 마음과 고민만 담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대학 밖 공동체에 모이는 사람들 역시 연구자이지만 ‘연구자 세계’의 어떤 한계를 인식했을 것이고, 다만 나는 운 좋게도 그것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전에 그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따름이다.


결국 나는 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노동‘자’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연구를 하게 됐다. 추상적인, 어떤 개념으로서의 노동자보다는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정체성도, 감정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공간도, 담론도, 국가도, 뭣도뭣도...이처럼 저마다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다 해서 그게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닌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면면들 역시도 다분히 노동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많은 연구가 그걸 해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나의 산만함은 내가 이 연구공동체에 들어온 계기이기도 했지만, 계속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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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낸 글이라 해봐야 석사논문과 개작논문이 전부지만, 내가 이들을 써가면서 가장 고민하고 어려워했던 것은 그 마음을 ‘좋은 논문’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을 짜는 일이었다. 논문의 각이 제대로 서려면 문제의식과 연구 질문이 명확해야 하고, 그 연구 질문은 연구 대상을 적절히 쳐내고 좁혀야 답을 낼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은 내 능력으로 감당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심사자들이 가진 ‘규격’ 아래 있어야만 했다. 그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나는 그러한 필요와, 어쩌면 높은 가독성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한 규격이 야속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에 잘 맞춰나가지 못하는 나의 아둔함과 그 공간의 빠듯함에 대한 섭섭함을 비벼 끄기 위해 ‘상상된 제도권’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물론 안다. 그 산만한 관심사들을 한꺼번에 담아낼 수 있는 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모든 연구에는 한계가 있어야 하고, 그 한계를 건너는 또 다른 한계를 가진 연구들이 있어야 한다는, 그래서 이 세계가 나름의 변증법을 이뤄내고 있다는 것도 안다.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과 ‘전략적 접근’이 누군가의 학문적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도, 진정성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상적이라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질없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 어떤 연구자를 ‘심사’해야 할 때, 그 어떤 연구자들이 규격에 맞추기 위해 잘라냈어야만 했던 서사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래서… 어쨌든 글을 마쳐야 하기에 마침 떠오른, 그러나 너무 적절한 듯한 구절을 하나 넣어보자. 샤이어의 골목쟁이네 빌보는, 이후 곤도르의 왕이 되는 아라곤 2세가 순찰자이던 시절에 그에게 시를 한 편 지어주었다(반지의 제왕 이야기다). “방랑자라고 해서 모두 길 잃은 것은 아니다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빌보에게는 역시 안목이 있다. 그러니까 이 연구자들도… 언제 왕으로 귀환해 버릴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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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단비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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