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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원형의 방에서 모서리를 찾는 것

최종 수정일: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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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신문연을 통해 두 번째로 퀴어 이론 세미나를 열었다. 작년 여름의 ‘퀴어 시간성’에 이어 이번에는 ‘퀴어 공간성’ 세미나였다. 2025년 10월부터 이어진 다섯 번의 모임에서 우리는 레이브, 정동, 캠프, 젠트리피케이션, ‘글로벌 퀴어’와 같은 키워드들 오가며, 섹슈얼리티 지리학이라는 프리즘으로 도시를 누볐다. 한 회 분량에 너무 많은 텍스트를 욱여넣은 것은 이끔이의 성향을 반영한, 욕심 많고 산만하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커리큘럼이었다.


이 커리큘럼을 구성한 건 나지만, 이번 세미나는 스스로 봐도 일관성이 부족했다. ‘퀴어 시간성’ 세미나에서는 미국 명문대 커리큘럼을 거의 모방했다. 유명 퀴어 교수들의 리딩 리스트를 수집하고, 어떤 챕터를 언제 활용하는지까지 복사하여 붙였던, 일종의 모범 답안이었다. 그 방식이 딱히 좋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퀴어 시간성’을 공부할 때 필요한 이름 몇 개는 기억에 남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반면 ‘퀴어 공간성’은 모범이 없다. 솔직히 말해 내가 읽고 싶은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짰다. 졸업 이후 학교에서 강의와 세미나로 떠먹여 주는 독서 목록을 벗어나자, 그동안 밀어둔 텍스트들을 마음껏 읽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학교에서 배운 페다고지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스스로 만드는 퀴어 페다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텍스트로 세미나를 연다면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어떤 대화가 만들어질까? 그런 실험을 하기에는 신문연만큼 적절한 공간도 드물었다.

 


이태원

사실 ‘퀴어 공간성’ 세미나의 시작은 ‘이태원 자조 모임’이었다. 친구들과 “왜 퀴어들은 이태원에 모일까?”라는 가벼운 농담에서 출발했다. 마침 맥켄지 워크의 <레이빙> 번역본이 나왔고, 훌륭한 동료들을 만났고, 어설픈 기획안이 우연히 신문연의 눈에 띄었다. 결과적으로 세미나는 우연과 기획 사이에 놓인 퀴어한 방식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끔이’라는 역할은 낯설다. 퀴어 이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오랜 연구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활동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매주 수요일 신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세미나를 당돌하게 기획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내가 갖고 있었던 ‘운’의 역사—즉, 매번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참여자들을 만날 수 있던 기회—덕분이었다.


학교 밖의 퀴어 이론이 고되고도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 그것일 것이다. ‘정답’이 부재한 자리에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견해를 대입하는 방식을 배우고, 그 안의 차이들을 번역하고 다시 해석하는 노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저는 잘 모르지만”이라던지,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과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도 생각들을 손에서 손으로 옮기는 고생길을 자꾸만 함께 걸어가려 하는 것이 아닐까.

 


독립문

10월 마지막 수요일, 세미나 대신 ‘퀴어 코미디 나잇’이 열렸다. 2024년까지는 이태원에서 진행되던 행사가 어쩔 수 없이 독립문 근처로 옮겨왔고, 나는 어쩌다 그 기획에 함께하게 되었다. 퀴어 행사를 만든다는 것은 대개 수많은 “어쩔 수 없음” “어쩌다 보니” 사이에서 간신히 유지되는 균형 위에 서 있는 일이다. 세미나도, 코미디 나잇도 그런 방식으로 우연과 호의에 기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퀴어 공간성’ 세미나는 10월 마지막 주 퀴어 코미디 나잇에서 최초의 “현장 학습”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 밖, 무대 위, 그 불안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우리는 아마추어리즘으로 포개어졌다. 전 주 세미나에서 “퀴어 이론을 하면 누구나 아마추어가 된다”라는 말을 나눴다. 그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그 문장을 살아내고 있었다. 퀴어 이론을 한국에서 한다는 건 늘 자부심과 사기꾼이 된 것만 같은 감각 사이에서 말하는 일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퀴어 이론은 늘 불안정하다. 의지할 제도도, 세대적 계보도, 충분한 아카이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호 돌봄과 번역, 인용의 네트워크로 지식을 지탱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때문에 퀴어 이론은 살아남는다. 뮤뇨즈가 말하는 ‘유토피아적 감각’은 종종 임시적이고, 취약하고, 불확실한 공간에서 반짝인다. 신촌의 세미나실과 독립문의 작은 공연장이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서로 다른 영역—학계, 활동가 네트워크, 나이트라이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섞이며,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일시적으로나마 흐리는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촌에서도 독립문에서도, 수요일 저녁 7시의 ‘퀴어한’ 공간들은 전복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정교한 언어들을 실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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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촌

작년 ‘퀴어 시간성’ 세미나를 마무리하면서, 참여자 중 한 분께서 왜 이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그냥 방학 중에 퀴어 이야기 하고 싶은 분들”께 이 세미나를 추천한다는 문구에 이끌려 신청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신문연 세미나 기획안에 적힌 추천 문구—“그냥 퀴어 이야기 하고 싶은 분들께”—를 실제로 따라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퀴어 공간성’ 세미나에도 같은 문구를 적었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이 문구를 재활용할 것 같다. 결국 내가 세미나를 기획한 이유도, 사람들이 신문연으로 모이는 이유도, 무대에 서는 이유도, 새벽의 이태원으로 향하는 이유도, 체로 치고 치면 “그냥 퀴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 아닐까.


사회과학이라는 분과에서 이론을 공부할 때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퀴어 이론은 그 질문 앞에서 특히 더 위태롭다. “원형의 방에서 모서리를 찾는 것”처럼, 설명하기도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세미나 또한 분명 결론보다 질문이 더 많이 남는 자리였다. 구성원들에게 “여기서 무엇을 배워가는지” 명확하지 않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미나를 시작하며 던졌던 퀴어 페다고지라는 무모하고 거대한 물음표는 애초에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더듬어 나갈 때 그 감각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무언가로 만져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세미나에 참여한 구성원들에게도 이 임시적인 공간에서만 가능한 이 대화들의 “쓸모”가 언젠가는 퀴어한 방식으로 다가오기를 바란다는 말로 후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나에게는 이 세미나에서 얻어 가는 깊지만 천박하고 진중하지만, 항상 농담스러운 대화들이 내가 그리는 ‘퀴어 페다고지’의 흐릿하지만 반짝이는 미명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고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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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시언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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