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공부한다는 것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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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대학원생임을 밝히게 될 때가 있다. 대개는 “그냥 공부하고 있어요” 정도로 이야기하는데 집요하게 그 공부가 취업 준비인지, 학업인지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레 학교와 전공까지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마다 나는 의기소침해진 나를 발견한다. 왜 나는 내가 대학원생임을 밝히는 것에 위축되거나 불편함을 느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고 하나둘 가정을 꾸려가는 친구들과 달리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이라는 점, 석사에서 박사과정으로 넘어왔음에도 그럴듯한 실적 하나 없다는 점은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대학원생임이 드러나면 ‘똑똑한 사람’이라거나 ‘교수님의 노예’, ‘부잣집 딸내미’ 등으로 재단되어버리는 것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실제로 모두 들어본 말이자 모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 복잡한 감정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소위 ‘지방대’라고 불리는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일종의 자격지심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왜 자격지심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공부를 지속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네가 여길 왜 와?”
자대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나에게 학부 지도교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미래와 자대 대학원이 처한 상황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종합해 볼 때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괜찮은 생각이지만, 학교는 ‘서울’이나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교수님들도 비슷한 반응이셨다. 나는 교수님들의 조언이 현실적이라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했으나 그 의견을 따르지는 않았다. 타지로 가는 것이 학벌 차원에서, 또 학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 측면에서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으나 그것이 곧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에서 생겨난 의문과 답답함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대학원으로 이끌었는데, 정작 그 일상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무언가 모순처럼 느껴졌다. 자대에 문화연구를 전공하신 교수님들도 계시고 연구를 위해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내가 이곳에 오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선택이 낯선 곳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두려워서 내린 일종의 회피는 아닐지,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초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연한 계기로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이 고민은 더욱 깊다. 연구자로서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지역에 있다는 사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지역 대학원이 사회적‧제도적으로 처한 한계에 가까운 것 같다. 적은 학생 수와 한정적인 개설과목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들을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지만 동시에 낯선 이야기들을 마주할 기회를 좁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점을 조금이나마 보완하기 위해 가능한 학회는 참석하려고 한다. 학회에 가면 내가 하는 공부가 외딴곳에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또 다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는다.

한편 여전히 나는 외딴곳에서 공부하는 ‘지방’의 연구자다. 간혹 학회에 가면 광주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5.18과 관련된 연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결국 특정 지역에서 공부하는 연구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특수성과 연결되는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상상’과 결부된다.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연구는 지속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이지만 그것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 연구자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표준’으로 여겨지지 못한 다양한 몸과 그 경험들에 관심이 있다. 연구 주제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이 경험들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타인에게는 낯설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이자 사회문화적 현상들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는 않지만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개인의 삶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환경과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나는 한국 청년의 주거 문제나 취업 문제, 지역 공동체 이야기나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논의를 접할 때 간혹 ‘내가 한국 청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이질감은 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남녀라는 연구대상을 ‘20-30대 남녀’라고만 간략히 제시한 후 이를 한국 청년의 경험으로 일반화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질적연구의 특성상 그 결과를 모든 사람의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울 이외의 지역 사람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면 오히려 해당 지역의 특수성을 다루는 연구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단순히 질적연구가 가진 특성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분야 연구는 결함 많은 ‘나’라는 인간이 어떤 특수한 사람, 특수한 상황을 만나 특정한 지식이 만들어지는지 드러내는 거예요.”
지난 학기, 나의 연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한 생각들로 가득 찬 것 같아 잔뜩 쪼그라져 있을 때 한 교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다. 나는 내가 속한 사회와 몸이라는 물리적 렌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러 위계와 경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굳이 그 렌즈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담아내고 다른 것이 틀리거나 이상한 모습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공부하는 이유이자 우리 학문이 추구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은 나에게 한계이자 동시에 가능성이다.
이 글의 일정 부분은 ‘한국 대학원생’으로서 겪는 ‘일반적인’ 고민이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읽히면 좋겠다. ‘지방’이라 불리는 곳에서의 삶과 경험이 언제나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지역’에서 살고 있다.

글. 김선주 (조선대 박사과정)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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