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먹] 평평한 존재론과의 조우, 딜레마 그리고

나는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왔다. 세계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그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고 싶었다. 자주 사변적이기만 하는 나는 현실에 발 딛고 사유하고 싶었고 그래서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간을 형이상학적 차원과 경험적 차원을 오가는 존재로, 도덕과 상징의 세계에 사는 존재로 이해하는 문화사회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문화사회학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행위를 분석함에 있어 문화를 분석적 자율성을 가진 상징체계로 보고, 이를 독립변수로 두는 관점을 가졌다. 행위를 추동하는 의미구조와 그것이 가지는 도덕적 힘을 들여다보고, 의미구조들을 활용하는 행위자의 화용능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문화사회학이 가진 관점과 태도를 좋아하고 또 상당한 설명력을 가진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선호와 직관이 나를 자주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딜레마들은 자주 위험한 것으로 느껴진다. 몇 가지 딜레마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근본적 차원에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나누고 싶다. 문화사회학은 의미를 연구하는, 언어적 전환 이후의 사회학으로 기호와 언어, 텍스트 같이 의미를 담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방법론적 개인주의다. 후술할 내용으로 비추어 보면 방법론적 인간주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최근 사회학을 비롯한 학문영역에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존재론적 전환이라는 흐름 하 ANT 이론, 신유물론, 객체지향존재론, 사변적 실재론과 같은 이론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마어마한 학자들과 선생님들이 이러한 이론과 관점으로 연구를 생산하고 있다.

위 이론들은 상이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이론들에 따르면, 언어, 의미, 이해, 해석, 상징, 기호, 도덕, 정서, 가치, 서사 이런 것들은 권위를 가질 수 없다. 모든 것은 평평한 한 면 위에 놓일 뿐이다. 인간이 인식하든 말든, 인간 너머에 사물들의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실재가 존재하고 그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무언가라는 것이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그리고 도구화되었던 사물과 자연을 논의의 중심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강력한 정치적, 윤리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실재를 인간의 언어, 사회적 담론, 문화 등으로 축소하지 말라는 그들의 당위성은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한 켠에서는 어느 것도 권위를, 특히 질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세계는 납득할 수 있는 세계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적 관성을 깨라고 주문하는 이론들 앞에 나는 여전히 어떤 정리된 답을 낼 수가 없다. 인간인 이상 사물 자체에는 다가갈 수 없는 것 아닌가. 다가가려 하는 것이 오히려 오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시 나는 옹졸한 인간중심주의자인가, 의미와 도덕을 붙들고 있는 나는 뒤처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자주 고민하고 있다.
어떤 딜레마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끙끙 앓는 이유는 이 딜레마는 대결하여 극복해야만 할 혹은 끝내 화해해야 할 무언가로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적 삶의 의미를 다루는 사회학은 사물의 자율성과 화해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일까? 내가 따르고 있는 문화사회학의 거장 제프리 알렉산더는 이러한 물질적 전환(존재론적 전환)에 대해 반론의 글들을 남겼다. 하지만 탈인간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토론은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했었다. 대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희망하기로는 설득은 아니더라도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문화사회학과 이 이론들은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미학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것을 실마리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딜레마는 우회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옥영신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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