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별일없] 공통됨을 발견한다는 것

8시간 전
2분 분량


단상 1.


몇 주 전,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신진 탁상공론). 내 반려자의 강아지였던 피기는, 5년쯤 전부터 나와도 함께 살게 됐다. 탁상공론에서 동료들과 얘기 나누며 처음 깨달은 것은, 내가 나의 방식으로 피기를 ‘번역’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라 강아지인데, 나는 인간의 방식으로 이 녀석을 해석한다. 우선 나는 ‘아빠’고, 내 반려자는 ‘엄마’다. 이 녀석은 강아지 형상을 한 ‘아들’이다. 또한 나는 이 녀석에게 ‘인간적 규범’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아빠가 귀가하면 반기러 나올 것!, 부모 앞에서 성적인 행위 - 마운팅- 를 하지 말 것!) 이 녀석의 행동을 두고 인간적인 잣대로 평가하기도 한다(의젓하다, 버릇없다, 사려깊다).


이러한 번역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루어질까? 이 녀석과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을, 나는 공통됨을 찾고 함께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와 가까워지고 또 사랑하기 위해 공통됨을 필요로 하는 듯 하다. 나는 이 녀석과 나의 공통됨이 ‘영혼’이 있다는 데에서 찾는다. 나는 이 녀석에게 영혼이 있고, 그 위에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기쁨과 즐거움, 슬픔, 고통의 파동이 일렁인다고 느낀다. 나는 그로부터 비약하여 이 녀석을 인간적 가족의 관계 속으로 불러들임으로써 공통됨을 (내가 익숙한 방식의) 함께함으로 나아가게 만들고자 하는 듯 하다. 물론 이 녀석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온전히 알 수 없지만.



단상 2.


개인적으로 2024년 내란 국면은, 집회에 나가느라 몸이 지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대단히 심난한 때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윤석열 정권의 ‘폭정’이 도를 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군을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태로까지 이어질거라고는 상상치 못했었다. 우리 사회에 어떠한 ‘선’ 혹은 ‘금도’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 믿음이 무너지자, 무력감과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의외의 유튜브 콘텐츠에서 위안을 찾게 됐다. 소도시나 산골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생필품들과 주방 용품들을 파는 ‘만물트럭’(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의 직업이 만물트럭장사다) 사장 ‘청만이’가 주인공인 「청춘만물트럭」이 그것이다. 청만이는 타지로 트럭을 몰고 나가 며칠씩 머물며 장사를 하고 트럭 위에 마련한 숙소에서 숙식도 해결한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청만이와 손님들(주로 오랜 단골들인 할머니들이다)의 관계다. 이들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만나지만, 이내 거래 관계에서 벗어난다. 청만이는 가가호호 방문해 할머니들이 손쓰기 힘들어 방치한 집기들을 손수 수리하고, 할머니들은 청만이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반찬을 챙긴다.


너무도 뻔한 ‘시골의 정’을 나누는 장면으로부터 나는 왜 내란으로 다친 마음에 위안을 얻었을까. 뭔가 함께 감각하고 있다 믿었던 공통된 것을 상실하던 가운데, 아직 내가 사는 공동체에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만드는 공통된 것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정(情)이든, 비경제적인 교환이든 뭐라고 불리든지 말이다.



다음 단상을 위한 갈무리.


문화연구의 실천은 때론 공통됨보다는 차이에 주목한다. 차이들을 소멸시키는 공통성의 강요와 폭력에 대해 폭로하고 어떻게 차이나는 것들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행복할 수 있는가를 묻는 데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에 대한 강조가 공통됨이 불필요하다는 태도로 이어질 수는 없다. 공통됨에 대한 탐색은 어쨌든 공동체를 이루어 생을 살아내야 하는 사회적 존재들에겐 필수적인 요소다. 사회의 위기가 전면화된 오늘날엔,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기 위한 그 공통의 기반을 찾아내야 한다는 요구도 더 커진다. 극우의 부상과 폭력의 일상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서로 함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공통됨은 무엇인가? 연민의 능력인가, 아니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자질인가? 나는 세계가 여전히 계급투쟁(경제적 계급을 넘어서는 의미에서의 계급)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민주주의라는 인류적 성과 위에서 그것이 작동해야 한다고도 믿는 민주주의자이다.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 안에서 우리 계급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차이와 공통됨, 투쟁과 함께함은 어떻게 가능한가? 강아지와 만물트럭을 스치며 떠오른 생각들이다.



글. 이준형

편집. 김선기




댓글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