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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저건] 오직, 당신만의 생산성

1일 전
4분 분량



내 노트북에는 제미나이와 클로드가 항상 떠 있고, 유료 결제를 하며 사용한지는 제법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인공지능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초기에는 너무 멍청해서 못 써먹겠다고 생각했고 AI 붐이 반쯤은 과장됐다고도 생각했었는데, 반쯤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이것도 되네?'를 깨달으며 자연스럽게 내 생활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이를 테면, 회사 단톡방에서 일정을 잡기 위해 투표를 했는데 서로 일정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난망했던 적이 있었다. 누가 언제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정리하는 게 늘 귀찮았는데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투표 결과를 클로드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우선순위와 함께 '일정 조정안을 제시해줘'라고 말했더니 세 가지 안을 툭 하고 뱉어냈다. "원하신다면 일정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문안도 같이 짜드리겠습니다"라는, 으레 덧붙이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 언젠가는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조정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AI는 꽤 편리한 도구다. 나는 수포자였을 정도로 숫자에 약하지만, AI만 있다면 엑셀로 예산안을 짜고 자금 사용을 관리하며 숫자가 틀리지 않게 계산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럭저럭 덜 덜렁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일에 쓸 시간을 줄였으니 그만큼 더 공부하고 연구할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금액을 검토한다. 아무리 AI가 잘 계산해줘도 내가 예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으려면 직접 정리하고 계산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물며 문서를 편집할 때도 여전히 우리는 한글(.hwp)을 사용해야 한다. 서식을 통일하고 예쁘게 만드는 작업은 예전에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어렵다. 오히려 AI는 hwp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고, 대부분 마크다운(.md), 워드(.docx) 또는 구글 문서를 경유하기 때문에 한글에서는 모든 서식이 깨져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한글을 완벽 지원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이런 단순 작업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잘 감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최근에 부쩍 느끼고 있다. 내 직장 상사는 AI가 있어서 일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뭐 하나 요청하면 온갖 문서들을 촤라락 생산해주니까, 생산성이 높아져도 너무 높아졌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을 나에게 요청하면서 '이 정도면 클로드한테 시키면 얼마 안 걸리지?'라는 눈빛을 보낸다. 편해진 부분도 있지만 '얼마 안 걸릴 정도'는 아니다. 다른 부분에서 소모되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이제는 쉽게 간과된다. 상사의 생산성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험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상사는 사업 예산을 클로드에게 시켜서 만들고는 나한테 검토하라며 던졌다. 표 자체는 깔끔했지만 셀 수식이 걸려 있지 않았고 너무 과대하거나 과소하게 계상한 부분이 많았다. 내가 현실적인 소요를 고려하면서 셀에 수식을 걸고 다시 계산하며 수정을 해야 했다. 상사가 보기엔 전체적으로 '보시기에 좋았다'이지만, 하나하나 뜯어 보면 엉망이다.


각종 문서 초안들을 클로드로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지만 상사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수정했는지는 의심스러웠다. 불필요한 기호와 볼드 처리, 쓸데없는 메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용 자체도 불필요한 말이 너무 많았다. 클로드는 한두 장이면 끝날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온갖 패러프레이즈를 섞어가며 10장으로 만든다. 위에서 확인한 내용을 맨 밑에서 재차 삼차 정리한다. 내가 간과했을 부분을 짚어주는 건 참 고맙지만, 애초에 이걸 정독하는 게 쉽지 않다. 가독성이 아주 나쁘다. 나는 이걸 그대로 옮겨서 사내에 공지할 수 없다. 다시 읽으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야 하고, 애매한 부분은 연락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언젠가는 한창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상사가 같은 문서의 '새로운 버전'을 나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수정한 부분이 있으니 새로운 버전을 사용하라면서. 그런데 어디가 수정됐는지는 모른다. 이걸 AI에게 시켜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도 어쨌든 그걸 읽고 확인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이다. 결국 나는 내가 수정하던 것을 폐기하고 다시 작업해야 했다.



PPT도 마찬가지다. 상사는 "요즘은 PPT도 다 알아서 만들어줘서 참 좋아"라고 말하며 나에게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회의에 사용할 PPT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나는 PPT를 잘 만들지 못하니까 어느 정도 글과 도형, 색상을 배치해주는 건 참 좋다. 하지만 아무리 프롬프트를 잘 짜놓아도 AI가 준 초안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원본 자료와 대조하면서 불필요하고 이상한 표현을 제거하고, 미묘하게 이상한 배치를 조정하면서 예쁘게 정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사는 잘 모른다. 내가 시간 들여가며 수정해서 보여주면 상사는 "역시 클로드가 잘해주지?"라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마 내가 클로드의 PPT를 고치는 작업과 숙련자가 처음부터 만드는 데엔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쨌든 시간이 걸린다. 클로드가 모든 걸 다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클로드가 생각하고 작업하는 방식을 내가 학습하고 조율하는 것조차도 시간이 걸린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사소한 할루시네이션들을 확인하기, 불필요한 메모들을 지우기, 서식을 맞추고 편집하기 등 클로드가 만들어준 걸 실제로 활용되는 형태로 바꾸는 데에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그런 수고를 해주기 때문에 AI는 비로소 '편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AI가 업무 전반에 적용되면서, 나에게 업무를 요청하는 상사의 '심적 부담'은 상당히 적어 졌다. 내가 들일 노력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낮아졌다. 나는 1시간 해야 할 일을 50분 정도로 단축했을 뿐이지만 상사는 클로드로 10분 할 일을 50분이나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AI 사용 역량에 차이가 많이 날 때, 조직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건 전체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AI로 문서를 만들고, 누군가는 꾸역꾸역 AI 어투로 작성된 불친절한 문서를 읽어야 한다. 'AI 덕분에 편해졌다'는 것도 사람마다 감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도구로서의 AI도 권력의 문제다. 그게 편하니까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언설이다.


내가 클로드가 생성한 작업을 가지고 어떻게 수정하고 요리해야 할지 머리 싸매고 있을 때, 상사는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게 고민할 일인가? 클로드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젊은 사람이 왜 그래? AI를 좀 적극적으로 사용해!" 한 가지 간과된 사실은, 머리 싸매는 것도 클로드에게 물어본 결과였다는 점이다. 나는 클로드의 답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미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데 왜 마음에 안 드는지 또 생각해야 한다. 혹시라도 이상한 수치를 가지고 오진 않았는지 다시 원본 문서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모두가 최종 검토는 인간이 해야 한다고, 인간 판단이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말한다.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판단하고 고치는 데에 들이는 시간의 가치는 이전만 못하다.





글. 랄세이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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