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영주먹] 장래희망은, 아직 고민 중입니다

12시간 전
4분 분량



긴 고민 끝에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나에게 큰 선택이었다. 올해 석사과정이 시작되면서 내 삶은 대학원 생활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학교에 좀 더 편리하게 통학하기 위해 (혹은 그것을 핑계로!) 난생처음 독립을 했고, 1학기 수업을 겨우겨우 마쳤으며, 대학원생스럽게(?) 장학금을 위한 연구 참여나 강의 조교 활동 등도 해보았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흥미와 연구자로서의 방향을 잡기 위해 신문연을 비롯한 각종 세미나와 학교 행사 및 수업에도 참여했다. 그랬던 만큼 1학기가 끝나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조금은 더 분명해질 줄 알았는데, 2학기가 시작된 지금도 여전히 방황 중이다.


사실 내가 대학원에 온 이유는 연구보다는 내 삶의 방향을 틀어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 조금 엉뚱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한 것에 집중하곤 했는데, 기독교 집안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런 게 왜 궁금해?”, “그게 왜 재밌어?”라는 질문들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질문들이다)을 자주 들었다. 운이 나쁘게도 내가 좋아하는 걸 재밌어하는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웠고, 가정환경이 넉넉하지 못해 안정적인 길에 집착했지만 그런 곳일수록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은 더 드물었다. 얘기가 통할 사람 없이 잠시 일했던 곳들과 비슷한 일터에서 9-6의 생활을 평생 반복하는 건, 과장을 좀 보태면 정신적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공부가 명확해서 온 것도 아니었고, 나 같은 사람도 편안하게 녹아들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환상을 안고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꽤 도피적이다.) 그럼에도 내가 원한 건 대단한 지적 공간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서브컬처든 대안적 삶이든 일상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주제를 결이 맞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최소한 내가 왜 이런 게 궁금하고 이런 걸 좋아하는지 일일이 변호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 진학을 비롯해 뭐든지 사회적 시계에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이 있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무서웠다. 학과나 학교 선택에 있어서도 얼마나 고민이 되었는지, 직간접적으로 적어도 50명은 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것 같다. (답정너 같은 질문들에도 성의 있게 대답해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입학 전부터 막연히 흥미가 있던 것은 문화 연구를 비롯한 질적 연구였고, 온라인 문화나 콘텐츠, 밈 같은 걸 다루고 싶다는 (매우) 추상적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연구 방향에 대한 조언은 크게 둘로 갈렸다. 대학원 진학을 상담했던 교수님은 내 막연한 환상을 듣고 대학원이 생각보다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라며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다. 그분을 비롯한 몇 분은 경제적, 생활적인 면에서 양적 연구를 더 추천한다고 하셨다. 다만 이는 상당한 취향과 신념이 있는 게 아닌 경우의 이야기였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자신이 정말 흥미가 있고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하다 보면 넉넉하게 살진 못해도 적당히 연구와 생계를 이어갈 길은 생긴다고 하셨다. 모두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을 곱씹으면서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알아도 현실적인 걱정들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인지) 점점 모르게 되어서 답답함이 오히려 커져갔다.


열등감과 비교의식도 온전히 내 흥미를 따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특히 질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이 주가 되는 신문연 같은 모임에 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다들 좋아하는 분야가 뚜렷하고 어떤 분야의 ‘덕후’ 같았는데, 나는 어디에 대해서도 어중간하게 알고 딱 그만큼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보다 더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관심 있는 주제들에 대한 대화를 듣는 것은 너무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친한 친구는 처음이라 그렇고 석사 때는 다 잘 모르는 법이라고 해주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만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기분이다. 수업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다른 학생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가 확고한, 밝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동기들도 계속 나의 초라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때가 있다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이해하지만, 이미 습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길들여진 나는 당분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또 다른 고민은, 사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단 글이 아니더라도 타인이 나를 주목하는 것이 대부분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SNS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왔다. 그런 면에서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온라인 문화를 다루고 싶다는 사람이 SNS는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건 좀 아이러니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몇 번이나 ‘이건 지면의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일단은 이조차 훈련이라 생각하고 써볼 뿐이다.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은 만큼 밥을 먹을 때만큼은 크게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먼작귀)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 귀여운 그림체의 작은 생명체들이 제초나 토벌 같은 퀘스트를 하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세계관을 그린 작품이다. 가끔 친구에게 혹시라도 이 압박감과 공부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학원을 그만두면 ‘슈퍼 아르바이터 자격증’ (먼작귀 세계관 내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필수적인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그렇게라도 근근이 살아가야 하나,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 자격증은 먼작귀 세계관에서도 따기 어려운 초고난도 자격증이라, 지금의 연약한 정신 상태로 내가 먼작귀가 된다 하더라도 딸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제도적으로 대학원이라는 공간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체가 내가 그동안 들어가지 못했던 대화의 자리에 들어가 볼 명분(?)을 만들어줬다.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커리어와 상관없는 세미나나 학술행사에 시간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신문연에서의 모임과 같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렌다. 그 밖에도 감사한 일들이 많다. 생각보다 학교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고, 원룸이지만 가족과 분리된 혼자만의 공간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독립 이후, 흔히 하는 표현으로 조금 알을 깨고 나온 기분마저 든다.


과제에 쫓기고, 해야 할 일을 쳐내는 데에 급급하지만, 요즘에는 새로 생긴 생활 속에서 전에는 몰랐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혼자 안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햇빛이 많이 드는 좋은 방은 아니지만…), 산책길에서 만나는 왜가리와 두꺼비,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들, 다양한 표정과 걸음걸이로 산책하는 개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생활을 가능하게 한 우연한 조건들에 감사하게 된다.


문제는 이 생활이 석사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느냐다. 내 주변에는 석사가 끝나면 진로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나 이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길게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보거나 전문가가 되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나도 불안하고, 궁금하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릴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장래희망을 정하기는 어렵다. (사실 성인이 되어서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래까지는 아니라도,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윤곽은 희미하게나마 잡힌다. 몇 해 전의 나는 그것조차 알기 어려웠다.


유치하지만 내가 앞으로 원하는 삶의 형태는 이렇다. 종종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게임하기, 지금은 키우지 못해도 이름과 사연을 아는 동물 친구들 늘려가기, 당장 큰 일 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작은 일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자기효능감 느끼기, 공통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거나 새로운 것을 만나는 감각 즐기기, 아직은 글 쓰고 말하는 걸 창피할 정도로 못하지만 그것도 계속 노력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걸 한 80퍼센트 정도는 전달할 수 있게 되기.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 갈린 지점도 결국 하고 싶은 일과 생계를 어떻게 잇느냐였다.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진로, 그게 내 장래희망인 것 같다.





글. 하늘다람쥐

편집. 김선우




댓글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2019 by 김선기.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