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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한 우리의 관계

12시간 전
10분 분량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사는 것은 늘 아름다운 순간으로 채워져 있지만은 않다.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내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방의 모습이 나올 때면 우리는 당황하기 일쑤이다.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대에게 개입하고 통제하기도 한다. 가족이 되는 것을 비롯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처럼 언제나 서로를 침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동물과의 관계일 때 문제는 더욱 난감해진다. 그 침범이 더욱 일방향적인 것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편에서 참여자들은 동물을 키우면서 느낀 어려움이나 곤란함 같은 것들을 나누었다.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은 잘못이었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선택은 실수일까? 언제나 내가 동물을 돌보는 방식이 충분한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마음 한 켠에 해결되지 않는 이런저런 의문을 품고 살 뿐이다.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지금 나의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것이 아마도 반려인이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방식 아닐까?


1부부터 참여한 낑깡, 롱코트, 츄말론, 꿀벌, 카피바라, 양말의 소개는 여기를 참조!



# 너에게 어디까지 개입해도 될까?


츄말론 롱코트도 전에 키웠던 개가 17살까지 산 노견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애'라고 표현했단 말이지. 카피바라도 강아지를 '우리 애'라고 부르곤 했던 것 같고. 우리는 우리의 개나 고양이가 실제로 성년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우리 가정의 아기,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있지 않은가 싶어.


꿀벌 우리가 그렇게 동물을 의인화해서 대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여러 고민들도 안겨주는 것 같아. 나는 지금 우리 강아지에게 아빠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 책임도 지고, 훈육도 하고, 보상도 하고. 또, 우리 집 강아지는 집에 누군가 방문하면 어디 숨어 있기보다는 나와서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단 말이야. 그래서 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으면 안 되니까 어느 정도는 강아지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들게 되더라고.


카피바라 그렇지, 물면 안 되고. 짖으면 안 되고.


꿀벌 맞아, 변을 이상한 데 본다든지, 아니면 마운팅을 한다든지 이런 것을 조절하도록 개입을 하게 되거든. 아무튼 그런 사회적인 존재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항상 거기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통제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게 맞을까?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그런 고민들을 하게 돼.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끝에 나는 자녀 계획도 하고 있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워 가는 과정에 계속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야. 누군가를 길러낼 때 어디까지 개입해야 잘 키우는 걸까? 애를 키운다는 것도 이런 걸까?


낑깡 나 같은 경우는 원래도 임신, 출산, 육아 이런 쪽에 큰 뜻이 있지 않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더욱이 '난 아이를 키우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 고양이를 키우면서 내가 너무 통제욕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조금 다른 예로는, 친구 강아지를 한 번 산책시킨 적이 있는데 내가 어쩌질 못하고 끌려갔거든. 얘를 당겨서 방향을 못 틀겠는 거야. 난 그 정도의 통제도 할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 하고 싶지 않았어.


카피바라 근데 통제를 안 하는 게 좋은 거 아니야?


낑깡 그래도 애를 키울 때는 뭔가 통제도 하고 훈육도 하고 이렇게 방향을 잡아줘야 되는데 난 그걸 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롱코트 인간 아기와 동물 아기를 기를 때에 가장 크게 나뉘는 지점이 이 지점인 것 같아. 그러니까 사람은 사회로 내보내야 되잖아.


츄말론 나도 사회성이라는 것을 기를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게 내가 기르는 존재에게 얼만큼 개입하는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측면에서 집고양이라는 존재들은 산책을 나가지도 않고, 워낙에 규칙적인 습성을 갖고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하잖아.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얘네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형 정원 같은 집에서 평생을 사는 게 꼭 얘네들한테 나쁜 일은 아닐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


양말 그러게 고양이랑 집에만 있다 보면, 그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 수 있겠다.


츄말론 그래서 좀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고양이 기르면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던 것 같아.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처럼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무대를 밀어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싶은 존재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거를 조금 확장하면서 이어가 보면, 자폐나 치매 같은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자폐인 자녀가 평생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모나, 겉보기에 요양원처럼 안 보이지만 치매 노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테마파크 같은 형태의 요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일까? 사회성을 위해서 사회 속으로 누군가를 밀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가 그 개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일일 수도 있다라는 점에 대해서는 고양이 기르면서 생각을 확장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



# 내 동물의 섹슈얼리티


카피바라 근데 그래서 꿀벌은 마운팅을 못하게 해?


꿀벌 마운팅? 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일단 이 친구는 중성화가 되어 있긴 하거든. 입양할 때 중성화가 필수더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가 마운팅을 한다는 건, 이 친구 역시 성적인 주체라는 거잖아. 사실 그래서 마운팅을 못하게 할 때마다 사실 내가 이 강아지도 성적인 주체라는 걸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기는 한 거지.


낑깡 성적인 주체…


롱코트 우리 오늘 딥하게 가는데?


꿀벌 어쨌든 중성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의 성적인 욕구라든지 이런 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데, 나한테도 그런 것을 스트레스의 발현 정도로 치부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 물론 보통의 경우에는 마운팅을 잘 안 하긴 하거든. 근데 사람들이 막 드나들거나, 주변 환경이 달라지면 가끔 할 때가 있어. 그리고 예전에 와이프가 혼자 키울 때 더 많이 했다고 해.


낑깡 아, 그럼 강아지의 마운팅은 원래 스트레스의 발현 정도로 볼 수 없는 거야?


꿀벌 그러니까,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냥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하겠거니라고 나름대로 내가 그걸 정의를 하고 있는거지. 사실 마운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불편해. 이를테면 자위 행위를 남들 앞에서 하는 거잖아. 나는 얘를 이미 의인화하고 있기 때문에, 얘는 내 아들인데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인형한테 마운팅을 한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되는 거지. 그래서 "하지 마" 하면서 인형하고 떼어놓는다든지.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돼. 우리 강아지는 우리 집 애야. 근데 동물이기도 해. 이 친구의 정체성이 실은 이렇게 복잡한 건데, 그걸 어떻게든 하나로 정해놓고 봉합하려고 하는 거지.


롱코트 예전에 키우던 본가 강아지도, 공공장소에서 자주 발기를 했었거든. 나도 그게 너무 부끄러운거야. 사람 많은 곳에서 산책시키는 중이면 "제발 좀…" 이러면서 데리고 도망가고 그랬던 게 갑자기 생각이 나네.


카피바라 우리 집은 강아지가 마운팅을 엄청 많이 하거든. 나도 여자애가 저렇게 마운팅을 하는 거는 이 친구를 키우면서 처음 봤어. 보통 마운팅은 수컷이 하잖아. 그렇다고 알고 있거든.


롱코트 그 친구도 중성화를 했어?


카피바라 실은 안 했어. 그래서인걸까? 우리 집 강아지는 자기 애착 담요에다가 마운팅을 엄청 하는데, 처음에는 좀 충격을 받았지. 그런데 나중에는 '얘가 살면 얼마나 길게 산다고, 저 쾌락을 왜 내가 막고 행동을 교정해줘야 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냅두고 있어. "즐겨라~ 더 즐겁게 하여라~" 그럼에도 이게 혹시 건강상에 문제가 있어서 제지를 해줘야 되는 건지 항상 고민이 들기는 해.


츄말론 근데 옛날에 프로이트가 아동의 성욕이 있다라고 했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했다든가 이런 얘기가 있잖아. 아동 자위 같은 것들도 그냥 보통의 현상일 수 있는데, 그걸 부정하고. 애기는 언제든 천진 무구하기 때문에 그런 성욕이나 성적 행위를 하지 않아. 이런 통념이 있으니까.


꿀벌 맞아. 사실 동물을 아기로 생각하니까 더 그런 것이기도 하지.


카피바라 근데 꿀벌의 강아지도 사실 성견이잖아.


꿀벌 그렇지, 사람으로 치면 나이가 50대지.


카피바라 나는 근데 중성화 수술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어. 나는 중성화를 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인위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굳이 안시켰거든. 근데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상 병원에서 나한테 중성화를 왜 안 시키냐면서 당장 시켜야 되고 그게 제가 주인으로서 되게 못되게 구는 거라고 얘기를 하는 거야. '중성화를 시키지 않은 주인은 항상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기는 해. 그리고 사실 내가 중성화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강아지가 마운팅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제재하지 않는 것 역시 있는 것 같고.


츄말론 개를 기르는 선배한테 들었던 말이긴 한데, 강아지가 임신을 하지 않을 것이면 자궁에 염증이 생기거나 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중성화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개를 키우는 환경이 성적 접촉을 쉽게 할 수 없도록 각자의 집에 가둬놓으니까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카피바라 오히려 임신을 안 하는 개한테는 그럴 수 있구나.


낑깡 사실 우리 고양이는… 외람된 표현이지만 성 경험이 있어.


꿀벌 잘 됐네. 이 역시 좀 외람된 표현이지만 우리 애는 없는 것 같아서 항상 그게 참 미안하거든.


낑깡 고양이는 강아지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우리 고양이는 중성화를 좀 늦게 한 편이라 나는 고양이가 발정기를 겪는 걸 본 적이 있어.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생리는 안하는데 엄청 애교스러워지고, 조금만 만져도 엄청 자지러지고 이러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보이는거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고양이가 짝짓기를 하면 여러모로 안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한 번 시도를 해본 적이 있어. 지금도 말하면서 너무 죄책감이 드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게 잘 되지는 않아서 우리 집은 그런 일을 한 번 겪고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어.


츄말론 그래서 궁디팡팡을 안 좋아하는걸까?


낑깡 사실 근데 그건 그 전부터도 별로 안좋아했어.


롱코트 근데 궁디팡팡을 좋아하냐 싫어하냐가 발정기가 오기 전에 중성화를 했냐 안했냐 이거에 따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더라고? 우리 고양이는 구조자님이 아직 얘가 애기일 때, 1kg 넘었을 때 바로 해주셨던 것 같거든. 그러니까 발정기가 오기 전에 했던 거지. 그래서인지 궁디팡팡도 역시 그냥 별로 안 좋아해.


츄말론 그러게, 고양이 생애주기에서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중성화 수술을 받느냐 안받느냐가 그런 감각에 대한 호불호에서도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근데 우리 고양이도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중성화를 한 쪽에 속하는데, 그래도 우리 고양이는 좋아해.


낑깡 우리 본가 고양이는 환장하는데.


카피바라 내가 고양이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고양이보단 강아지한테서 얘가 성적 주체라는 표시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네.


낑깡 고양이도 그런 게 종종 있는데, 뭐 수컷 고양이는 발정기 때가 되면 엄청 지독한 냄새가 나는 소변을 스프레이 한다고 하더라고.


츄말론 저게 '이쪽으로 오면 교배를 할 수 있어'라는 신호라고 하더라. 근데 역시 이것도 이차성징이 오기 전에 중성화하면 안하더라. 우리 고양이는 그런 게 없거든. 대신 가끔 발기를 할 때가 있긴 한데, 어릴 때 중성화를 했다보니 사실 크기는 아기때와 차이가 없어.



# 가족됨이라는 폭력


낑깡 나도 롱코트처럼 고양이가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었는데, 이 친구랑 함께 살면서 가족됨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 같아. 그 전에는 너무 자연화되어 있어서 몰랐다가, 낯설게 보게 된거지. 가족됨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거구나. 나랑 엄마도 당연한 게 하나 없었네 싶고. 사실 가족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폭력이나 침범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도 고양이랑은 어떤 점에서 그 폭력이 서로 양해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어. 고양이는 나랑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고, 그래서 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의미화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어느정도 감수하고 서로 양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츄말론 맞아. 오히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체념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 고양이한테는 '너 사회성을 길러', '너 내 가족을 만나면 잘 대해줘' 이런 게 불가능하잖아. '원래 고양이는 이렇지'라는 생각으로 고양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오히려 그런 기대를 내려놓기 때문에 더 조합적인 관계가 가능해지는 것 같아. 인간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블록을 내 블록으로 물들이려고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고양이와의 관계는 블록의 모양을 서로 맞추거나 물들이지 않으면서도 그게 맞춰질 수 있는 것 같아. 그런 체념에서 오는 안정감도 있지 않은가…


꿀벌 나는 이런 문제를 공간이랑 관련해서 종종 하게 되는 것 같아. 결혼을 하기 전에, 내가 혼자 원룸에 살고 있을 때 당시엔 애인이던 아내가 강아지를 맡기고 어디 다녀와야 했던 적이 있거든. 그래서 한 달 정도 내 원룸에서 강아지랑 같이 살았었는데, 그때는 너무 가둬놓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더 넓은 집에 살고 있고, 강아지는 매일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또 여행을 갈 때면 데리고 가서 부산도 같이 가보고 제주도도 같이 가보고 했거든. 그러니 요즘은 그런 느낌이 덜하지만 그래도 약간 미안함 씁쓸함 이런 게 종종 있긴 해. 근데, 네가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살건데?


일동: (웃음)


낑깡 그래 어쩔건데, 너 강아지인데.


츄말론 네가 사냥을 할거야?


낑깡 네가 쥐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웃음)


꿀벌 너 나가면 얼마 못살아. 여기 있기 때문에 네가 사는거야. 어쩔건데. 이제 이런 마음으로 사실은 봉합을 하는거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고.


카피바라 다들 말한 것처럼, 나도 당연히 동물 키우는 일은 모두 폭력적인 일일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우리는 우리 식대로 강아지를 해석하고, 훈육하고. 그리고 그 사실을 내가 인정하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기르고 행동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낑깡 나는 사실 고양이가 서너살 될 때 까지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 그때쯤 동물권 담론이 활발해지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나는 우리집 고양이와 시작부터 잘못된 관계를 맺은 거지. 품종묘를 전시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럼 난 내 가족이고 일상인데 이 친구 사진을 SNS에 올리면 안되는 건가? 이런 딜레마도 많이 느꼈고. 또 돈 없는 사람은 고양이를 키우면 안된다는데, 나도 병원에 이 친구를 데려갈 때면 항상 돈이 부족하고, 비싼 간식도 못해주고. 그러면서 꾸준히 죄책감이 쌓이더라고. 이런 게 다 내가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건가? 나는 이 친구를 내 의지로 선택했지만, 만약 이 친구가 같이 사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날 골랐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일동: (울음)


낑깡 근데 지금은 또 뭐 어쩌겠어. 고민해도 달라질 게 없고. 이 친구가 더 좋은 집사를 만나는 다른 세계선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나고, 나는 지금 내 최선을 다해서 이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 연구자 키우는 동물


롱코트 고양이는 루틴이 굉장히 중요한 동물인데, 보통 루틴이 꽉 잡혀 있는 연구자는 보기 드물어서 연구자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꽤나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싶어.


낑깡 그래도 연구자라는 위치에서 갖는 이점이 있다면 병원을 갈 때인 것 같아. 물론 이게 다른 한편에서는 치명적인 결점이 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일반 직장인에 비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웬만하면 어느 시간대에든 병원에 즉각적으로 데려갈 수 있으니까 좋은 건 있어. 근데 문제는 가서 지불할 돈이 없어. 그래서 한 번 고양이가 아팠을 때 동물병원의 금액을 보고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얘를 키우겠다고 했지? 내가 이렇게 돈도 없는데? 아니 내가 왜 박사까지 갔지? 진작에 취직을 했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양말 갑자기 존재통이…


낑깡 또 사소한 불편은 우리 고양이가 귀가 밝아서 내가 활동 중일 때는 잘 못 자거든. 그래서 내가 집을 비우거나 아니면 나도 같이 잠에 들 때 푹 자는 편인데, 기말 시즌처럼 새벽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기에는 고양이도 나랑 같이 밤을 새주는 거야. 침대 속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거든. 그러면 너무 미안하지. 물론 그러다가 못기다리겠으면 그냥 노트북 위에 올라와서 직접 방해를 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아, 이제 자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나도 그냥 같이 자러 가기도 하고.


츄말론 낑깡은 P라 그랬나? 고양이가 오히려 일상에 규칙성을 부여해주네.


낑깡 맞아, 넓게 보면 어느정도 고양이에 의해 규율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게 나한테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해. 이건 다른 얘긴데, 얼마 전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일이 있어서 고양이한테 "내일 알람 울리면 언니 깨워줘야돼. 꼭 깨워 줘야돼!"하고 애원을 하고 잤더니 진짜로 깨워준거야. 그래서 아침부터 "얘 없으면 어떻게 살아" 하고 벅차오른 적이 있어. 효녀야, 효녀.


꿀벌 동물에 의해서 시간이 규율된다는 것도 맞는 것 같아. 나는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사실 연구자로서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잖아. 방해 받지 않고 글을 읽어내고 만들어내고 이런 시간 필요한데 그런 것과 관련해서는 사실 좀 부담이 되는 존재인 건 맞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내가 연구실에 가고 싶은 날이 있어, 근데 아내는 출근하고 강아지랑 나랑 둘이 집에 있는데 나까지 집을 비우면 얘가 힘들어하는 걸 아니까. '아, 그럼 집에 있자' 하고 집에 머무르게 되고, 그러면 능률이 떨어진다던지. 이런 문제들이 없지 않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를 탓할 수는 없지. 그래서 큰 틀에서는 이 친구와 함께 하면서 얻는 기쁨이 나의 멘탈 헬스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렇게 믿는거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정당화가 필요하니까 ~


롱코트 맞아 (웃음)


츄말론 나도 고양이랑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데, 그렇다고 그게 반드시 고양이어야만 하는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경험하는 배움이나 애정 같은 것들, 그리고 여러가지 경계적 경험은 무엇하고든 느낄 수 있는거고. 심지어는 같은 인간하고도 느낄 수 있을테고.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머니랑 함께 살면서도 그런 타자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 대상이 꼭 반려동물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 그래도 지금은 우연히 이 친구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거고.


롱코트 나는 연구자로서의 삶의 경로를 선택하기 위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여러가지 있다고 생각하거든. 안정적인 수입의 기회라던가 이런저런 것들. 근데 나는 그 중에서 내가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포기한 게 있다면, 아니 애초에 피해온 것이 있다면 누구를 돌보는 일이었어. 그게 나의 에너지를 많이 빼앗아가고, 계속 노동이 필요하고, 말하자면 나의 자원을 빼앗아가니까.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를 입양할 무렵에는 내가 너무 나밖에 모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거야. 그게 인간으로서 되게 결여된 사람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고양이를 데려오기까지의 고민 중에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런 돌봄을 해봐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일부분 있는 것 같아.


양말 그래서 고양이 데려올 때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던 거구나.


롱코트 맞아. 그런 목적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 게 너무 폭력적인 일인가? 내가 마치 나의 어른됨에 대한 강박 때문에, 나의 결여를 충족시키려고 이 동물을 기르려고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지. 근데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낑깡이 "뭘 그렇게까지 생각을 많이 하냐, 다들 별 생각 없이 데려오고 같이 잘 산다"고 해줘서 마음이 편해졌어.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되게 잘한 선택인 것 같아. 진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츄말론 맞아.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답을 못 찾고 10년씩 흘러버릴 수 있어.


카피바라 나는 사실 이 탁상공론으로 섭외 요청이 오고 나서, 무슨 얘기를 하면 좋지 싶어서 일주일 동안 강아지를 엄청 열심히 관찰했거든. 내가 강아지한테 해준 게 뭐 있나 하고 경험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근데 나는 기억을 되돌아보다보니 오히려 내가 강아지한테 받은 게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아까 꿀벌은 논문이나 글을 쓰는 데 고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근데 나는 그 과정이 너무 길고 외롭고 고통스러웠거든. 그 시간을 잘 버티는 게 관건이었는데, 그때 나는 강아지가 나한테 줬던 위안이 엄청 컸던 것 같아. 우리 강아지는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항상 무릎에 올라와 있거든. 거기 혼자 올라와서 자. 그럼 그냥 그게 너무 좋았어.


양말 부럽다…


카피바라 동물 기르는 다른 연구자 동료들을 보면서도 느끼는 건데, 오히려 강아지랑 한 번씩 산책 다녀오는 게 그 친구들한테도 좋아보이기도 하고. 연구자로서 자기를 돌보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어쨌든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이 힘든 부분도 있더라도 동물을 돌보기 위해서 나를 돌보게 되기도 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많이 받으면서 지내는 거 아닐까?




글. 양말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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