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밖] 끈적임 속에서 살아가기

이 글은 (적어도 구상 단계에서는) 현지조사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글에 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윤리에 관한 고민 역시 깊어졌고, 여러 장면을 담아내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나머지 내 기억에서 지워져서 담을 수 없었던 것도 많았다.) 대신 이 연구를 다녀온 이후 생각을 정리하면서, 또 그동안 연구를 목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연구 그 자체보다 연구 ‘이후’에 관해 쓰기로 했다. 이후에 관해 쓰는 것은, 현지조사 경험을 토대로 더 섬세하게 만들 수 있었던 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삶, 살아짐, 사라짐
두 달 전 즈음, 계절학기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정규학기 종강을 겨우 맞이했고, 어쨌든 방학을 시작했지만, 마감은 여전히 산더미만큼 쌓여 있었다. 한편으로 종강 시즌에 모든 힘을 쏟은 관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입시를 앞두고 미래에 관한 온갖 걱정을 쌓은 관계로, 이게 번아웃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번아웃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과 마음을 두서없이 담아 지도교수님께 ‘징징거리는’ 연락을 보냈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현장 연구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해가 떠있을 때 연구를 하는 대신, 해가 지면 놀 수 있으리라는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쉼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진단에 맞는, 꽤나 매력적인 처방처럼 들렸다. 낮에는 연구, 밤에는 쉼 따위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어버렸고… 그렇게 개강 직전 열흘 정도의 시간을 현지조사로 보내게 되었다.
현지조사로 찾게 된 곳은 온갖 교통수단을 타고 5시간 이상을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다. 사실 처음 찾는 곳은 아니었고, 작년에도 답사 차원으로 짧게 왔었다. 그때는 역사 답사가 주된 목적이었고, 그때의 나에게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이 보존된 공간, 어딘가 멈춰있는 공간처럼 다가왔다. 이번에는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고, 열흘 동안 붙어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살아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동시에 ‘살아간다’라는 말로 설명을 끝낼 수는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생애 말기를 살아가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텃밭을 가꾸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챙기는 등, 다양한 관계 맺기 속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이러한 일들은 어디까지나 끝이 보이는, 임시적인 일들이었다.
‘끝’의 형상은 주변인들이 아프고, 세상을 떠나는 과정, 그리고 이들의 장레식을 지켜보면서, 또 그 이후를 살아갈수록 구체화된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세상을 떠나기 전, 어느 정도의 돈을 맡겨놓은 후 이 돈으로 당신의 장례식을 치른다. 장례식 이후 답례품까지 그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답례품으로는 대부분 자양강장제가 준비된다. 날씨가 유난히 더워서 많은 인터뷰가 집에서 이루어졌고 그럴 적이면 어르신들은 커피나 간단하게 먹을 것들을 내주셨는데, 내가 받은 건 주로 자양강장제였다. 어느 집으로 가든 냉장고에 쌓여있던 그 음료를 받아 마시면서, 몇몇 어르신은 이곳의 죽음과 장례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조사 과정에서 안 마신 날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 음료를 받아마실 때의 느낌은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어딜 가도 음료수를 받는다. 나는 그걸 마신다. 사양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으니까. 내가 아무리 마셔도 냉장고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넘쳐난다. 나는 그걸 마신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걸 주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나는 그걸 마신다. 인터뷰를 마치고, 녹음기를 끄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또 마신다.
그 어떤 순간에도 죽음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내가 마주한 삶들은 사라짐을 향하는 삶, 그 앞에서 ‘살아지는 삶’이었다. 굳이 현지조사의 경험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만난 생애 말기의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잘 상상하지 않았다. 혹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혹은 상상했더라도 그걸 말로 전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애 말기라는 표현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아마도 ‘이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말들 사이에서 느껴졌다.

2. ‘이후’를 상상하기
심층 인터뷰, 구술생애사. 어떤 이름으로든 인터뷰를 진행할 때면 나는 항상 생애사에 관한 질문(“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해주세요”)으로 시작해서 미래에 관한 질문(“지금까지 얘기한 내용과 상관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 같나요, 혹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혹은 어떤 꿈이 있나요”)으로 끝낸다. 사실 생애사에 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건 연구 때문이 크다. 그렇게 진행하는 게 연구에 좋다고 배웠고, 실제로 생애사적 맥락을 들어야 이해되는 것들도 많았다. 생애사를 듣는 과정에서 질문지에 쓰여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해결된다. 오히려 질문지를 초과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듣게 된다.
그런데 미래에 관한 질문은 연구내용 자체에 중요하다기보다, 이 인터뷰가 그간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이 되었다면 그것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가깝다. 이건 내가 ‘연구 참여자’의 위치에서 얻은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친구의 과제나 교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인터뷰에 몇 번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애사 연구가 아니었기에 내 삶 전반에 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삶의 일부분을 내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살아온 경로들을 쭉 생각해보고 미래를 더듬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미래에 관해 잘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남들의 미래를 질문하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만났던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나와 어딘가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후에 관한 질문을 항상 던지던 나는 현지조사에서 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질문했을 때 어떤 답이 돌아올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돌아오고 나서는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렸다. 현지조사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 찾았던 집과 만났던 사람들을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생각을 따라가니 몇 가지의 질문이 남았다.
다시 올 수 있겠지?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이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인터뷰 상황에서는 질문자와 답변자의 위치에 따라서 대화의 흐름이 배치되지만, 녹음기를 끄고 나면 서로에 관해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연구라는 목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그 목적을 초과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가까워지는, 정확히 말하면 임시적으로 가까워지는 사이가 된다. 그렇다면 이후에 관한 대화에는 가까워진 상태,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상태의 끝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의도 역시 있지 않았을까. 인터뷰가 끝난 이후, 연구가 끝난 이후에도 생각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는 문장들이니까. 현지조사를 마치고 남은 질문들은 어쩌면 서로의 이후를 상상할 수 없어서 계속 되묻게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3. 끈적임이라는 잔여, 그 속에서 살아가기
IRB로 대표되는 제도화된 연구 윤리든, 구술사를 비롯한 여러 장에서 이야기되는 연구 윤리든, 연구 이후의 윤리, 특히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만으로 요약할 수 없는 이 미묘한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 사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이 끈적임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끈적임 속에서 녹취록과 계속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끈적임 자체가 연구를 진전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텍스트 연구와 가장 큰 차이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이 끈적임, 그러니까 멀어지고 있지만 당장 끊어지지 않는, 그러나 언젠가는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어떻게 상상하고 대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인터뷰 이후의 잔여들과 무조건 거리를 두는 게 맞을까? 혹은 그럴 수 있을까? 몇 년 전 들었던 한 인류학자의 강연에서, 인류학자의 이점은 현장과 언제든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 농담이 섞인 말이었겠지만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거리두기가 윤리적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기보다 애초에 거리두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거리두기의 방법을 잘 모르겠다. 물론 교과서처럼 획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현지조사 이후에 이런 저런 경험을 곱씹다 내가 사회운동에 이끌렸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대개 누군가의 죽음이 얽혀 있는 순간들이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사건, 그러니까 ‘사건’이라 불릴만한 무언가가 있다. 동시에 나는 그 사건 자체보다 사건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더 이끌렸다. ‘사건’이 되는 것들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사건 곁의 이야기 역시 중요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을 주변부에 놓고 (사건을 중앙에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둘을 나란히, 하나의 곁에 다른 하나를 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그 곁의 위치에 있었고, 사건을 대하는 동안 만들어진/남은 끈적임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사건의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 과거에 관한 기억이 침습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이후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트라우마가 연구 관심사 중 하나라고 말했었는데, 정작 그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트라우마적으로 트라우마에 이끌렸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현지조사를 다녀온 이후 나의 관심사는 트라우마 그 자체보다 트라우마 이후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후’에 그렇게 집착하게 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분명히 나는 어떤 사건들의 이후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 사건들을 향해 돌아보는 방법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의 잔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끊임없이 묻게 된다. 연구든, 폭력이든, 죽음이든, ‘사건’으로 기억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든 말이다.

글. 승호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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