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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밖] 끈적임 속에서 살아가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b56fca739944a5fb10de590c537475e~mv2.jp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6b56fca739944a5fb10de590c537475e~mv2.webp)
![[이불밖] 끈적임 속에서 살아가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b56fca739944a5fb10de590c537475e~mv2.jp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b56fca739944a5fb10de590c537475e~mv2.webp)
[이불밖] 끈적임 속에서 살아가기
이 글은 (적어도 구상 단계에서는) 현지조사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글에 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윤리에 관한 고민 역시 깊어졌고, 여러 장면을 담아내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나머지 내 기억에서 지워져서 담을 수 없었던 것도 많았다.) 대신 이 연구를 다녀온 이후 생각을 정리하면서, 또 그동안 연구를 목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연구 그 자체보다 연구 ‘이후’에 관해 쓰기로 했다. 이후에 관해 쓰는 것은, 현지조사 경험을 토대로 더 섬세하게 만들 수 있었던 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삶, 살아짐, 사라짐 두 달 전 즈음, 계절학기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정규학기 종강을 겨우 맞이했고, 어쨌든 방학을 시작했지만, 마감은 여전히 산더미만큼 쌓여 있었다. 한편으로 종강 시즌에 모든 힘을 쏟은 관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입시를 앞두고 미래에 관한 온갖 걱정을 쌓은 관계로, 이게 번아웃인가 싶을
8시간 전
![[영주먹] 평평한 존재론과의 조우, 딜레마 그리고](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8222e725a339472481f2dd0e5dca1b14~mv2.jpe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8222e725a339472481f2dd0e5dca1b14~mv2.webp)
![[영주먹] 평평한 존재론과의 조우, 딜레마 그리고](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8222e725a339472481f2dd0e5dca1b14~mv2.jpe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8222e725a339472481f2dd0e5dca1b14~mv2.webp)
[영주먹] 평평한 존재론과의 조우, 딜레마 그리고
나는 알고 싶어서 대학원에 왔다. 세계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그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고 싶었다. 자주 사변적이기만 하는 나는 현실에 발 딛고 사유하고 싶었고 그래서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간을 형이상학적 차원과 경험적 차원을 오가는 존재로, 도덕과 상징의 세계에 사는 존재로 이해하는 문화사회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문화사회학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행위를 분석함에 있어 문화를 분석적 자율성을 가진 상징체계로 보고, 이를 독립변수로 두는 관점을 가졌다. 행위를 추동하는 의미구조와 그것이 가지는 도덕적 힘을 들여다보고, 의미구조들을 활용하는 행위자의 화용능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문화사회학이 가진 관점과 태도를 좋아하고 또 상당한 설명력을 가진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선호와 직관이 나를 자주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8시간 전
![[별일없] 공통됨을 발견한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jpg/v1/fill/w_250,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webp)
![[별일없] 공통됨을 발견한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jpg/v1/fill/w_296,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webp)
[별일없] 공통됨을 발견한다는 것
단상 1. 몇 주 전,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신진 탁상공론). 내 반려자의 강아지였던 피기는, 5년쯤 전부터 나와도 함께 살게 됐다. 탁상공론에서 동료들과 얘기 나누며 처음 깨달은 것은, 내가 나의 방식으로 피기를 ‘번역’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라 강아지인데, 나는 인간의 방식으로 이 녀석을 해석한다. 우선 나는 ‘아빠’고, 내 반려자는 ‘엄마’다. 이 녀석은 강아지 형상을 한 ‘아들’이다. 또한 나는 이 녀석에게 ‘인간적 규범’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아빠가 귀가하면 반기러 나올 것!, 부모 앞에서 성적인 행위 - 마운팅- 를 하지 말 것!) 이 녀석의 행동을 두고 인간적인 잣대로 평가하기도 한다(의젓하다, 버릇없다, 사려깊다). 이러한 번역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루어질까? 이 녀석과 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을, 나는 공통됨을 찾고 함께함으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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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 공통됨을 발견한다는 것](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jpg/v1/fill/w_454,h_341,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86ad5cc576b4aeab4e67677b016f76f~mv2.we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