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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최종 수정일: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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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매우 특정한 맥락을 갖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 글이기에 학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빵을 치고 들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공부하는 학제에서는 연구 프로젝트라는 것이 없다시피 해서 대학원생이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니는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받는 근로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전액을 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마저도 매 학기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생활비는 또 어떻고? 운이 좋게도 가족의 지원이 가능하다면 지원을 받겠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왕이면 학계 내에서 도는 몇 안 되는 일거리들을 하면서 다른 연구자들도 알아가고 학계 일도 배운다면 좋지 않겠는가? 내가 연구자라는 직업인이기도 하구나, 라는 감각을 가지는 데에도 학계 관련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간간이 있는) 연구 프로젝트 보조, 학회 간사, 연구소 간사 등등. 이런 일거리들은 대학원 교수, 선배 및 동료 등 지연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그런데 그 일당은 천차만별이다. 일한 만큼의 금액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일한 양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금액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다. 각종 학연과 지연을 통해 일이 돌고 도는 경우에 일한 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도 적은 돈을 받는 일을 먼저 수차례하고 난 후에 온다, 혹은 올 수도 있다. 일을 물어다 주는 사람의 입장은 이렇다. 주변에 알아봐도 다들 바쁘다고 일을 거절하네. 그냥 이전부터 작은 일들을 해온 사람에게 계속 그다음 일을 맡기겠어. 나는 보통 저 ‘이전부터 작은 일들을 해온 사람’에 해당했다. 아예 돈을 받지 않은 적도 있고, 정말 적은 돈을 받은 적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후배’ 정도로 인식되었고 그 후에는 꽤 보상이 괜찮은 일도 받았다. 심지어 “너에겐 계속 일을 주겠다”라는 말을 무급노동의 포상처럼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주변에 ‘일을 거절하지 못해서 겪는 고충’을 이야기하며 한탄하고는 했다. 나는 내가 우유부단해서 거절하지 못한다고 자기서사화하는 데 익숙했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게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그냥 가성비 떨어지는 일을 해도 될 여건이었으니까 맡아서 했던 것이다. 그 시간에 더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당장 생활비가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주어진 일이 선배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학계에서 다른 이들과 안면을 트는 ‘가치 있는 일’로 의미화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물론 내 경험은 학계에서 각종 압력에 의해 터무니없는 금전적 보상을 주는 노동을 해야만 했던 다른 이들의 경우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비겁하게도, 그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는 독자에게 떠넘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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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있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 그 과정에서 ‘바빠서 일을 거절해 오던’ 동료들이었다. 그건 단지 거절을 잘해서 부여된 수식어만은 아니었다. 일의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상황이란 건 단순히 일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이 아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내 공부와 함께 생활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시간의 효율을 따져야 한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도대체 다들 돈을 어떻게 벌면서 공부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어떻게 보면 최대한 빨리 학위 논문을 써서 졸업하는 것이 돈을 버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학위 논문을 쓰는 건 워낙 어려운 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공부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내 공부와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수많은 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거리가 사람과 사람 간 관계를 타고 돌게 되는 경우에 그에 대한 거절은 카카오톡, 문자, 전화 또는 면대면 대화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 사적인지 공적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대화 속에서 이리저리 적당한 이유를 대며 거절하는 건 여러모로 에너지를 소모한다. 무례하지 않게, 말을 돌려가며, 내 상황을 전달하기. 그것도 ‘윗사람’한테.


그래서, ‘이제까지는 일을 거절해 오다가 갑자기 일을 찾는다는 한 후배’에 대한 뒷담화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내 귀에 들어왔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 그가 거절했던 일이 무급노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더더욱. 일을 거절하다가 또 일을 찾는 상황을 단순히 사회성이나 관계 맺기 요령 정도의 문제로 치부할 때 연구자가 겪는 어려움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일축된다. 학계라는 좁은 사회에서 너무나도 적은 일거리가 그만큼 적은 금전적 대가를 동반한 채 사적 대화창을 돌아다니고 일을 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처세의 문제로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어떤 이들은 다른 이의 상황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넘어가게 된다.


학계에 돌아다니는 ‘작은’ 일거리들 대부분은 그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간주된다. 그럼에도 그 사소한 일들을 할 사람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으니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 큰 힘을 쏟지 않으려 한다. ‘쉽게’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이에게 서로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거추장스럽다. 그런 한편, 일에 대한 제의를 승낙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마냥 쉽지 않고 오히려 어렵다. 이런 비대칭적인 상황이 지속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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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익명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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