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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뒤사] 웹소설 연구자 이재희의 감정들



재희는 봄 학기 수업에서 만난 학생이었다. 연구방법을 다루는 수업이었고, 학기 둘째 주에 처음 어떤 주제로 이번 학기 연구할지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주 완성된 논문 초고를 발표하면서 마무리하는 수업이었다. 재희의 연구 소재는 웹소설이었고, 나는 단 한 번도 웹소설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피드백 주는 일에 약간의 막막함을 겪기도 했다. 웹소설 독자 연구참여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쩐지 괜한 열정과 오지랖에 불타 그 시기에 누군가가 웹소설을 읽는다는 말만 들으면 인터뷰에 연결해 줄 수 있는지를 묻고 다녔던 일도 생각난다.


많이 연구되지 않은 소재와 주제, 접근 방식에 초기 경력 연구자가 겪는 어려움까지 겹칠 것이 객관적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연구가 잘 굴러가게 될지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재희는 학기가 끝나고 더운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학술지 게재 심사에 통과했다는 기쁜 소식을 공유해 주었다. 이제 재희의 글을 모든 독자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첫 논문을 축하하는 의미와 그사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궁금한 마음을 모아 논뒤사 인터뷰를 신청했다. 재희는 인터뷰 전날 밤에도 웹소설 팝업스토어 오픈을 밤새 줄 서서 기다리느라 공복 상태였다. 하지만 눈앞의 스콘보다는 웹소설 연구에 대해 말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였다. 재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연구자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연루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원래 재희가 '웹소설 연구'를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대학원에 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 수업과 일상, 특히 선행연구, 즉 학계의 담론을 읽는 경험들이 그를 점차 웹소설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로 이끌어갔다. 입학한 후 얼마 안 되어 교수님과 식사할 때 "재희는 요새 뭐하니"라는 질문에 "웹소설 봅니다"라고 답했고, 교수는 재희가 내뱉는 '남성향'과 같은 단어들에 대해서부터 질문을 하다 결국 "네가 하는 말을 내가 하나도 이해 못하는 거 보니까, 너는 이걸 연구해야 할 것 같다"라고 '점지'했다. 재희에게는 당연했던 일상적인 언어들을 교수뿐만 아니라 동학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첫 학기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유명한 작품으로 과제를 했는데, 학생들이 "논문 자체를 이해를 못해서 피드백할 수 있는 게 없었다"라고들 이야기했다.


내게 당연한 것을 학계의 사람들은 모르는구나 라는 의아함의 감정은 나아가 분노가 되기도 했다. 워낙 선행연구가 많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재희는 '웹소설' 키워드로 검색되는 대부분의 문헌을, 학제를 가리지 않고 읽어야만 했다. 그런데 웹소설 연구를 읽다 보니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됐다.


"저는 굉장히 웹소설에 약간 몰입해 있는 사람이고 그와 동시에 연구자인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몰입해 있는 이야기들은 논문에서 전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우리가 자본의 자원으로 환원돼 버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웹소설 연구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웹소설 독자들의 이야기를요."

재희가 정리하는 선행연구의 문제점들은 중층적이었다. 첫째, 산업적 관점에서의 연구가 대부분이다. '연독률‘ 같은 양적/산업적 개념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된다던가, 최근 웹소설 IP 확장과 관련한 산업적 전략과 아이디어들을 다루는 논문들이 이 범주 안에 있다. 이용과 충족 이론(use & gratification theory)을 기반으로 웹소설이 독자의 결핍을 채워준다는 가정 위에서 진행되는 많은 연구들도 유사한 선상에 있다. 둘째, 비판적 웹소설 연구는 조금 급하게 웹소설 독서를 정치적 논의로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헨리 젠킨스를 참조하는 많은 수용자 연구들은 독자들, 혹은 콘텐츠 산업의 팬덤이 저항적인지(혹은 순응적인지)를 확인하고 논의하려는 규범성을 갖고 있는 듯했다. 여성 독자의 즐거움이 정치적이면 좋은 거고, 정치적이지 못하면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셋째, 산업적 관점의 연구든 비판적 관점의 연구든 정작 '웹소설' 그 자체, 그리고 웹소설의 독자에 대한 관심이 적어 보인다. 웹소설 연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정당성을 말할 때 웹소설이 수용자와 가장 밀접한 매체라는 말을 쉽게 하면서도, 웹소설 독자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어떤 웹소설 연구는 천 화짜리 웹소설을 25화만 읽고 연구해 논문을 쓴다. 여성 독자는 로맨스만 본다는 걸 거의 상정하고 있는지 웹소설과 관련한 젠더 연구는 대부분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다루고, 이에 대한 관점도 '여성들의 여성 서사 수요'에 주목하는 식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결국 재희는 웹소설 연구자들이 사실 웹소설에 그다지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됐다. 요즘 인기가 있다고 하니까 다뤄볼까 하는 산업적 접근이든, 웹소설 독자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성과 주체성만을 보려고 하는 비판적 접근이든, 그건 재희가 생각하는 웹소설 연구가 아니었다. 그 빈틈을 자신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됐다.




선행연구를 읽으면서 차오르는 의아함, 나아가 생겨나는 분노, 무언가를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응답하면서 논문이라는 형태로 다듬어나가는 것은 굉장히 '원형적인' 형태의 생각과 논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졸업해야 하니까, 연구 실적을 내야 하니까, 요즘엔 이 주제가 '핫' 하고 잘 팔리니까 등과 같은 동기를 숨기고 있는, 하지만 사실 그 동기가 텍스트 밖으로 쭉쭉 삐져나오는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항상 분노에 차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분노를 느끼는데, 내가 왜 여기에 분노를 느끼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하고 싶어서 논문을 쓰는 것 같기도 해요. 그냥 나는 이런 거 싫어가 아니라 왜 싫은지, 내가 싫다고 느끼는 것이 어떤 문제인지를 얘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주장이 강한 문체들이 자꾸 튀어나오는 걸 다듬는 게 좀 어렵긴 하지만요." (인터뷰에 동석한 윤희는 그래서 "재희의 문장을 보면 되게 힘 있다"라고 거들었다.)

재희의 분노는 "욕망과 규범의 교차점: 노맨스 남성향 판타지 웹소설 여성 독자의 CP적 감상 문화에 관한 질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간됐다. 이 논문은 남성들이 주 독자층인 '남성향'의 웹소설 중에서도 로맨스가 없는 '노맨스(no-romance)' 장르의 웹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들에 관심을 갖는다. 나아가 로맨스가 없는 게 장르의 기본 요소인 '노맨스' 장르를 읽는 여성들이 왜 등장 인물들을 커플링(CP) 하는 2차 창작 유희 활동을 하는지에 관한 관심을 기울인다. 기존 연구들의 독해법이 주로 이러한 커플링 유희를 BL(Boy's Love) 문화의 하위 요소로만 보다 보니, 재희 시각에서는 해석의 한계가 보였다. 


"웹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환상적인 허구를 다루는 매체고, 사실 특정한 젠더로 고정되어 있다라고 보기 힘든 캐릭터들도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웹소설 속 캐릭터들을 CP적으로 감상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좀 차별성이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CP를 다루는 기존 논의들이 알페스(RPS, Real People Slash) 중심으로 흐르면서, CP 문화 전반이 '여성 포르노'와 다름 없다고만 비판받거나 혹은 아예 여성의 저항성을 보여주는 행위로 다루어지는 이분법적 논의틀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재희는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웹소설 취향을 가진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서, '노맨스 웹소설'을 보는 여성 독자들이 단순히 '로맨스가 싫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종류의 로맨스를 싫어하기 때문에 노맨스에 끌리고 있다는, 자신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논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했다. 사실 웹소설을 포함한 많은 새로운 문화적 현상에 관한 연구들이,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외부자의 시선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재희의 논문은, 이 논문 안에 당사자성을 열심히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사실 해당 문화를 향유하는 내부자의 위치에서 이 문제에 대한 편향된 해석을 정정하려고 한다는 데서 큰 차이를 갖는다.




분명 입학하고, 연구방법 수업을 듣고, 연구를 완성해 학술지에 게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다. 하지만 의아함으로부터 출발해 분노를 거쳐 논문이 발간되는 이 과정이 아주 매끄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는 특히 웹소설과 같이 학계 내에서 충분한 시민권을 갖지 못한 주제를 다루는 연구자에게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사실 인문사회계 대학원 과정 이후의 작업들이란 대부분 남이 이미 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대학원생이 "내 연구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라는 식의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연구를 피드백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누군가에게 원고를 보여주면, 웹소설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고, 또 잘 몰라서 하는 질문들을 많이 받게도 됐어요. 대표적으로 많이 받았던 질문이 여성 독자들이 진짜 BL적으로 이걸 해석해? 정말 이렇게 봐? 라는 질문이었어요. 이 현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저는 깔려 있다고 봐요."

선행 연구도 충분하지 않았다. 국내 문헌은 앞서 살펴본 대로 오히려 비판하기 위해 참조해야 하는 자원이 많았고, 국외 문헌도 역시 정확히 재희가 가려는 길을 안내해 주는 문헌이 거의 없었다. 영미권 문헌에서 소개하고 있는 커플링 문화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규범성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의 대상이지 참조의 대상이 되긴 어려웠다. 쓰고 있는 글을 웹소설을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 가능한 수준으로 쓰고 있는가에 대한 기준점을 잡기가 특히 어려웠다.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분야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왜 웹소설을 연구해야 하는가'에서부터 계속해서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일이었고, 또 선행 문헌이나 학계의 관례를 통해 굳어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한국 웹소설 독자들의 CP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왼른'인데, 커플링을 만들 때 어떤 캐릭터의 이름을 먼저(왼쪽에) 쓰고, 나중에(오른쪽에) 쓰는지가 수용자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하고, 또 이 순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왜 위반으로 여겨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수적인 어휘다. 그러나 이걸 '왼른'으로 논문에 그냥 적어도 되는지에서부터가 사실은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주변 학계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타자화되는' 감각은 재희가 "제 연구가 연구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라고 말하게끔 하는 자신 없음의 감각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실 논문이 발간된 후 느끼는 가장 큰 감각은 '어떻게 논문을 냈지'라는 얼떨떨함과 함께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재희는 자신의 웹소설에 대한 관심이 연구할 만한 주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 얘기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연구 참여자들한테 논문 보내주고 나서, 내가 즐기는 웹소설과 내 이야기가 이렇게 학술적으로 연구된 게 신기하다라는 평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인터뷰에 참여해 준 연구 참여자들에게 논문을 보내주었을 때 받은 긍정적인 피드백도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구 문제를 떠올리고 연구에 착수하는 것에서부터 투고하고 심사평을 받고 디펜스하는 과정을 거쳐 보면서, 학술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감각도 기르게 되었다. 심사평이 좋든, 안 맞든, 내 연구를 다른 연구자들이 이렇게 본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피드백을 다 수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심사 답변서를 써야 하는지 등에 관한 일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겪게 되었다. 심사평을 수용하면서 결정적으로 논문의 제목을 좀 더 고쳐보기도 했다. 논문의 내용이 도발적이고 독특하기 때문에 제목을 훨씬 더 딱딱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단 연구라는 게 되게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서, 내가 정해놓은 그 길에 맞춰서 쓰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피드백을 하겠지만 그 길을 가는 건 자신이잖아요. 즉, 연구가 계속 자기반성적인 일을 하는 거라고 저는 느끼는데, 저는 계속 자기 반성을 하면 할수록 그 연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재희는 이제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박사과정에 진학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정받은 경험, 성장했다는 감각 등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편 그 과정에서 연구라는 자기 몰입의 과정에 굳이 따지자면 자신의 성격이 덜 적합하다는 통찰을 또 하나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박사학위를 마치고 직접 연구자가 된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드는 내부자로서의 솔직한 질문은, 박사학위까지 할 것도 아니고, 또 학교나 제도에서 필수 사항으로 요구한 것도 아니며, 논문을 쓴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논문을 출판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강사로 활동하는 입장에서,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논문을 당장 발전시키도록 하는 목표를 제시하는 일 자체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하고 있는 참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적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내보이는 작업 그 자체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앞으로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은 것 같아 내 논문이 아닌데 괜히 내가 더 뿌듯해졌다.




글. 김선기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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