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물 가족을 소개합니다
2시간 전
14분 분량

주위를 둘러보면 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이 참 많다. 연구자 동료 중에도 마찬가지다. 그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탁상공론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연구자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연구자들은 동물과 함께 살면서 무엇을 느낄까? 그들은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어떤 결심이 필요했을까? 또한 연구자라는 직업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형식 속에서 동물을 기를 때 발생하는 유리한 점이나 불리한 점이 있을까?
다만 막상 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모아놓고 보니,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가득 찼다(그래서 이번 편만큼은 ‘연구’라는 키워드를 내려놓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참여자들은 각자 자신의 강아지, 고양이를 소개하고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왔는지에 관해 들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게 습관적으로 ‘가족’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일까?

참여자 소개
낑깡 2016년부터 깜고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를 10년 동안 먹여 살렸으니 언젠가 고양이가 나를 먹여 살려주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기다리고 있다.
롱코트 항상 가정에서 개를 길렀으나, 독립을 하고는 어쩐지 고양이를 첫 가족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스트릿 출신 냥이와 6개월 전부터 함께 살고 있다. 아직은 초보 집사이다.
츄말론 요즘 키우는 고양이가 까탈스럽게 츄르를 잘 안 먹어서 츄르 종말론자가 되었다. 집에서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일을 담당한다. 발톱 깎기, 병원 데려가기, 약 먹이기 …
꿀벌 8살 먹은 대형 치와와(?)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의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1년의 적응기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완벽히 합사 성공했다.
카피바라 인생을 돌이켜보면 강아지 없이 살았던 기간이 더 짧다.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달려드는 사람 좋아 포메라니안과 함께 살고 있다.
양말 나만 고양이 강아지 없어… 짧게 강아지 임시 보호를 했던 게 동물과 함께 살아본 경험의 전부이다. 언젠가 운명의 동물을 만나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야심을 품고 있다.

# 우리는 어떻게 만났냐면
양말 다들 처음에 어떻게 동물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어? 먼저 동물을 데려와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동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건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살게 되었는지 궁금해. 다들 동물 키우기까지 어떤 결심이 필요했어?
낑깡 지금은 고양이랑 둘이서만 살지만, 그 고양이를 처음 데려온 때는 내가 본가에서 가족들이랑 다 같이 살 때였어. 나는 옛날부터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가지고 고양이랑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많이 하곤 했거든. 그래서 고양이 이름도 중학생 때부터 지어놨었어. 우리 고양이 친구는 보호소라든지 그런 곳 출신은 아니야. 그렇다고 펫샵도 아닌데, 그래도 높은 확률로 뭔가 펫샵과 결부되어 있는 곳이었을 것 같은 느낌은 들어.
롱코트 너무 예전 일이어가지고 정확한 맥락은 잘 모르는 거지?
낑깡 실은 가정 입양을 한 거였는데, 아마 펫샵에서 안 팔리는 친구들을 그런 식으로 떨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지금은 가정 분양도 다 전문 브리더 분들이 하도록 법이 생겼는데, 그때는 회색지대였을거야. 그때는 그런 걸 잘 몰라서, 네이버 카페에서 열심히 찾아보다가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분양하는 건가 보다’ 하고 연락을 드려서 데려왔어. 근데 사실 그때도 좀 이상하긴 했어. 까만 먼지 덩이 같은 애가 눈에 너무 들어와서 혹시라도 순서를 뺏길까 봐 평일 저녁에 급하게 연락을 남겨놨는데, 바로 데려다주겠다고 답장이 오더라고. 그래서 그 늦은 시간에 무슨 퀵배달 하듯이 애가 왔어. 그때도 받으면서 “왜 이렇게 급하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양말 진짜 이상하다.
낑깡 그래서 사실 나는 처음 데려올 때 큰 고민이 없었어. 생명의 무게에 관한 생각도 사실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그때 동물권 이런 거를 제가 잘 모르기도 했고. 아마 지금의 나라면 그런 방식으로 데려오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항상 이 친구를 볼 때마다 너무 미묘한 마음이 들어. 지금 나의 윤리관에 맞지 않는 과정을 거쳐서 데려온 친구니까. 그렇지만 만약 이 친구가 지금 나한테 주는 행복을 아는 채로 시간을 돌린다면, 나는 그래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롱코트 우리 고양이는 이제 만 3살? 그러니까 23년 9월생인 걸로 알고 있고. 올해 3월에 입양해가지고 같이 산 지는 한 6개월 정도 됐어. 여자애고. 삼색이 고양이고. 트위터에서 그 친구의 입양 모집 트윗을 보고 완전 반해가지고 한 달 정도를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면서 이 고양이를 입양을 할까 말까를 매일매일 물어보다가 한 달 만에 딱 그냥 결심을 하고 입양 신청을 해가지고 데려오게 됐어.
낑깡 맞아, 롱코트 고민 진짜 많이 했잖아.
롱코트 사실 아무 생각도 없다가 얘를 보자마자 “난 얘랑 같이 살아야겠어!” 이런 건 아니었긴 해. 독립도 했고, 어쨌든 내 인생의 그림에는 고양이가 항상 한 마리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
카피바라 캣펄슨이었구나.
롱코트 그래도 너무 충동적인 걸까 봐 한 달 정도 고민했는데, 이렇게까지 고민이 되는 거면 이거는 그렇게 충동까지는 아니겠다 해가지고 데려오게 됐지.
꿀벌 나는 배우자랑 결혼하면서, 배우자 강아지랑 함께 살게 된 케이스야. 내가 데려온 게 아니기 때문에 크게 에피소드가 있지는 않은데, 배우자가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랑 오래 살아서 독립을 하고 나서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보호소 계정을 둘러보다가 “얘다!” 싶은 애가 있어서 데려왔다고 했어.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고 듣기로는.
카피바라 직접 데려온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꿀벌은 자기 강아지랑 되게 닮은 것 같아.
꿀벌 이 친구는 좀 큰 치와와야. 치와와가 보통 한 3kg 정도 최대일 텐데 우리 강아지는 5kg. 그게 이제 아마 보호소에서도 인기가 없지 않았나 싶어. 보호소에서도 인기가 있어야 좀 입양이 되잖아. 하여간 그 친구를 아내가 데려왔고, 나는 이제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거지. 사람한테 친근한 강아지인데, 그렇다고 또 막 부벼대는 스타일은 아니야. 좀 고양이 같긴 해. 좀 만지려고 손을 뻗으면 피하고, 자기가 원할 때 오고 이런 스타일이야.
츄말론 나도 꿀벌이랑 상황이 비슷해. 우리 고양이는 이제 만 3세가 되었고, 고향은 광주야. 조그마한 털북숭이 아기 시절에 엄마도 없이 며칠간 혼자 버려져 있는걸, 어떤 분이 계속 지켜보다가 결국 구조하셔서 SNS에 올린 걸 보고 데려왔어. 나도 내가 직접 데려왔다기보다는 아내가 얘를 꼭 데려와야겠다고 해서 함께 살게 되었어. 그때는 사실 아내가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역시 함께 살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도맡게 되더라고. 사랑하게 되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거지.
꿀벌 연대 책임 같은 거지.
카피바라 나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비명횡사해서 죽은 적이 있어. 새벽까지 같이 놀다가 같이 잠들었는데, 이른 아침에 눈 떠보니 애가 캑캑거리면서 힘들어하고 있는 거야. 너무 놀라서 새벽에 택시를 부르고 24시간 동물 병원에 데려갔는데, 새벽엔 의사가 없이 응급처치를 해주시는 분들만 계셔서 이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잠시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말해주시더라고. 근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애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어. 그때 상실감이 너무 커서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그러다가 어떻게 비슷한 강아지를 만나게 되어서 데려오게 되었어. 그래서인지 지금 이 친구만큼은 정말 내가 잘 케어를 해야겠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키우고 있어. 이 친구가 이번 생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갔으면 좋겠다. 이런 애착이 엄청나게 형성되어 있는 강아지야.
양말 꿀벌이나 츄말론은 내가 선택한 강아지, 고양이는 아니었던 거잖아. 그러면 같이 살게 되는 데에는 뭔가 어려움 같은 건 없었어? 말하자면… 합사가 잘 됐는지?
꿀벌 아, 나라는 생명체와 그 강아지 친구가 합사가 잘 되던가?
낑깡 평등한 표현이다.
꿀벌 사실 처음에는 같이 사는 게 어렵고 불편했던 것 같아. 이제는 그냥 가서 만나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잖아. 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잘 모르다 보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 이를테면 산책하는데 저쪽은 공원이고, 이쪽은 골목길이야. 근데 골목길이 좋은 냄새가 많은가 보지? 그래서 강아지는 골목길 쪽으로 가자고 해. 그럼 내가 그쪽으로 데려가는 게 맞을까? 내가 조금 힘을 줘서 이 친구를 당기거나 끌어가도 될까? 이런 고민들이 있었지. 잘 때도 마찬가지였어. 인스타 같은 데 ‘강아지랑 같이 자는 법’ 이런 거 보면 애가 침대를 다 차지하고 사람은 구겨져서 자고 이런 거 나오잖아. 나는 자면서 막 움직이고 뒤척이는 편인데. 내가 이 친구를 발로 조금 밀어도 될까? 그래도 내가 실례하는 건 아닐까? 이 친구가 상처를 받거나, 실제로 부상을 입지는 않을까? 이렇게 조심스러운 기간이 1년 이상 됐던 것 같고. 이제는 서로의 선을 알지. 좀 밀어도 되는구나. 그리고 좀 당겨도 되는구나.
롱코트 카피바라도 최근에 결혼을 했으니까 남편 분도 비슷한 이슈가 있었지 않았어?
카피바라 맞아, 사실 나도 꿀벌이랑 츄말론 얘기를 들으면서 비슷하게 공감했어. 남편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자기가 이런 생물체를 책임지고 뭐 이렇게 돌볼 거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거든.
양말 오로지 카피바라 때문에 같이 살게 된 거잖아.
카피바라 근데 사실 우리 강아지가 요즘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가끔 솔직히 서운해 (웃음) 그렇게 오래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나보다 더 정을 붙이는 것 같아.
낑깡 아니! 오래 만났는데, 이제 꽤 본 사이 아니야?
카피바라 그건 그런데, 우리 강아지는 보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 본 사람’이야. 어떻게 이러지? 강아지도 엄청 잘 따르고, 남편도 애지중지 대하는 거 보면 고맙고 뿌듯하기도 한데. 하여간 좀 서운해 (웃음) 나랑 더 오래 봤잖아!

# 별난 내 고양이, 별난 내 강아지
츄말론 근데 고양이도 개체마다 스테레오 타입에 안 맞는 성격 같은 게 있잖아. 그래서 모든 고양이가 다 ‘고양이스럽다’고 생각할 수 없고, 또 성격이 다 다른 면도 있고 그런 것 같아. 나는 고양이를 처음 데리고 올 때 고양이에 관한 책을 읽었거든. 이를테면 <캣센스>라는 육묘서? 이런 것들. 미리 준비를 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안 맞는 거야. 고양이는 상자를 두면 거기에 들어간다 하는데 우리 고양이는 상자도 안 좋아하거든.
롱코트 어 우리 고양이도!
츄말론 그럴 때 고양이마다 개성이 다 있구나 이런 걸 느껴. 또 한편으로는 좀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고양이들은 초기 성격 발달에 있어서 생후 4개월 정도까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때 인간을 많이 접한 애들은 인간을 스스럼없이 대한다는데, 우리 고양이는 길생활을 해서 그런지 아직도 인간을 무서워하거든. 그래서 사람들 왔다 갔다 하거나 배달 오거나 하면 화들짝 놀라 도망가고. 이제 4살이 되어 가는데도 그래서 ‘이건 고치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나. 그것도 개성으로서 안고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좀 어렸을 때 봤으면 더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은 가끔 있긴 한데, 그래도 도망가는 것도 귀여워. “왜 이렇게 놀라~ 너 몇 살인데 아직도 놀라~”
양말 그러면 처음 데려왔을 때 엄청 낯을 많이 가렸겠네?
츄말론 그럼. 맨날 숨어 있고. 구석에 있고. 도망 다니고. 근데 고양이도 강아지들이랑 좀 비슷한 게 잘 때 등 뒤가 막히는 곳, 그리고 자기 뒷면을 누가 지켜봐 주는 걸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자고 있으면 가랑이 들어와서 자는 걸 되게 좋아해. 그때 나도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아. 어느 순간 나한테 등을 기대는구나.
롱코트 우리 고양이도 2살 반 될 때까지 길 생활을 했으니까, 성묘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길고양이였던 거잖아. 근데 얘는 오히려 우리 집에 와서도 첫날부터 바로 배 뒤집어 까고 막 그랬어. 근데 방금 츄말론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우리 고양이를 구조해 준 구조자님 역할이 지대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구조자분이 원래 우리 고양이 엄청 어렸을 때부터 밥을 챙겨주시던 캣맘이었다고 하셨거든. 올해 초에 겨울이 엄청 춥기도 했고, 얘가 대장 고양이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는 거야. 주변 고양이들의 텃세 때문에 영역에서도 계속 밀려나서 쫓기고, 사라지고.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구조를 하셨대. 근데 그 구조자분 말씀에 따르면, 우리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유독 사람 손을 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그래서 구조했다고.
낑깡 진짜 고마운 분이다. 그 캣맘분이.
롱코트 그러니까. 또 그런 이야기 들으면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나 싶기도 해. 하지만 사실은 나를 만나기 전에 구조자분이 캣맘으로서 되게 잘해주셨던 거겠지? 그러니 사람과 함께 집에서 사는 것도 잘 적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에도 몇 번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아직도 신경을 많이 써주시더라고. 그런 게 되게 감사한 것 같아.
츄말론 집고양이가 될 운명이었구나.
롱코트 맞아. 근데 아기 때를 못 본 게 너무 아쉬워. 지금도 너무 아기 같긴 한데, 진짜 아기 때는 어땠을까? 얘는 사냥도 못 하고. 그 성격에 대체 어떻게 두 살 반을 길에서 살아남았지?
낑깡 우리 고양이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잖아. 나는 우리 고양이랑 나의 20대를 쭉 함께 보내온 셈인데, 그러면서 느끼는 건 딱히 계기가 없었는데도 이 친구의 성격이 계속 바뀌는 것 같다는 점이야. 아니, 성격이라기보다는 나와 고양이 사이의 관계성이 계속 변화한다는 느낌? 이 친구가 원래는 사람과 붙어 있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거든? 고양이답지 않게 궁디팡팡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잘 때도 딴 데 가서 자고. 이런 게 많았는데, 요즘에는 갑자기 자기 전에 내 다리부터 밟고서 배 위로 올라와서 나한테 엄청 쓰다듬을 받고 부비고 뽀뽀를 하다가 가. 그러다가 또 내가 안 자고 있으면 다시 와서 나를 재워주고. 왠지 모르겠는데 이게 마음에 들었는지 새로운 취침 전 루틴이 되었어. 자는 자리도 한동안 발치였다가, 한동안은 여기, 한동안은 저기에서 자는 걸 좋아하고. 이렇게 계속 변화하는 게 약간 묘미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아동기를 함께 보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츄말론과 롱코트도 그렇게 계속 변화하는 고양이 모습을 앞으로 많이 볼 수 있을 거야.
츄말론 맞아, 고양이도 생애 주기에 따라서 계속 바뀌는 것 같아. 고양이의 아동기, 청소년기에 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 우리 고양이는 청소년기 때 우다다를 엄청 했어. 맨날 뛰어다녔거든. 그리고 또 고양이 발달기에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냥이래. 특히 어릴 때, 활동성이 좋을 때는 사냥을 못하면 우울해진다고 하거든. 그래서 산책 다니듯이 하루에 한 세 번씩 이런 사냥놀이를 계속 해야 했어. 그게 또 굉장히 에너지가 들고, 시간이 드는 행위더라고.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기를 고양이는 사람 손을 안 타거나, 혼자 놔둬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느 시기까지는 얘가 “사냥하고 싶어! 사냥할래!” 하면 해줘야 한대. 그리고 그러면서 관계성도 쌓이는 거고.
롱코트 맞아. 고양이의 사냥놀이는 강아지의 산책에 준하는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아.
꿀벌 그러면 낚싯대 같은 걸로 해주는 거야?
롱코트 그것도 그 취향이 다 있기 때문에… 얘는 쥐꼬리를 좋아해. 얘는 깃털을 좋아해. 얘는 털 공을 좋아해. 이런 식의 취향이 다 있더란 말이지. 너무 웃기지 않아? 지들이 뭔데~
꿀벌 주는 대로 할 것이지~ 뭐 취향이 있고 난리야~
츄말론 한 일주일 놀고 나서, “나 질렸어!” 이러면서 탁 쳐. “다른 거 가져와!”
낑깡 아 진짜 건방져 (웃음)
츄말론 사람도 누군가를 알게 되고 개성과 취향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면 조금 더 마음이 가잖아. 더 친해진 것 같고. 이 사람을 좀 알게 된 것 같고. 그런 것처럼 고양이들도 성격이 다 다르고 취향이 있어서 그걸 발견할 때 얘네를 좀 더 잘 알게 되는 거 같아. 확실히 내적 친밀감도 커지고 말이야. 근데 한편으로는 이 취향이라는 게 너무 맞추기 어려워. 동물과는 타협이 불가능하잖아. 동물들은 언제나 자기 취향을 일직선으로 요구하니까. “너 딴 거를 먹거나, 딴 걸 가지고 놀면 안 되겠니?” 이런 게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인간이 언제나 질 수밖에 없다.
롱코트 “이거 비싼 건데 제발 갖고 놀면 안 되겠니?” 이게 안 먹히니까.
낑깡 강아지들은 어때? 장난감 안 가리고 다 좋아하는 편이야?
카피바라 우리 집 강아지는 노즈 워크를 진짜 좋아해. 진짜 똑똑해. 그래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모든 노즈워크를 다 섭렵하고, 다 엄청 빨리 끝내고, 그걸 너무 즐거워하더라고. 그래서 애착 장난감으로 노즈워크 류를 많이 사주는 편이야. 그리고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 정도로 먹을 거에 대한 집념이 너무 강해서 늘 배고파하고… 그래서 그런 장난감을 더 사주는 것도 있고 그래.
꿀벌 강아지들은 지금 고양이 이야기를 들은 것들에 비해서는 덜 가리는 것 같기는 해. 근데 우리 강아지는 옷 입는 걸 싫어해. 그리고 신발을 신기기도 하잖아? 그것도 신기면 안 움직여. 불편한 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 아무튼 이런 식으로 걔가 자기 성질을 드러낸다는 게, 나쁜 뜻이 아니라 자기의 특성을 보여주는 거잖아. 그런 게 쌓이는 과정이 확실히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우리 강아지는 공격성이 거의 없는 친구인데, 그래도 가끔 불안함을 표출할 때가 있어. 이를테면 밤에 같이 자는데, 베란다에서 뭐가 툭 떨어져서 소리가 나든가 하면 그때 으르렁대기도 하거든.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그럴 때 자기 성격을 보여준 거잖아. 그럴 때 ‘얘가 살아있는 생명체구나. 자기 정동이 있구나’ 뭐 이런 느낌을 주지.
양말 의젓한 친구구나.
꿀벌 또 유대가 쌓일 때는 서로 의존하는 경험이 쌓일 때인 것 같아. 방금 말한 것처럼 고양이도, 강아지도 개체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강아지는 어쨌든 사람하고 붙어 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친구들인 것 같아. 그래서 아내랑 나랑 연애만 하고 같이 안 살 때는, 아내가 8시간 정도 밖에서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야. 뭘 물어뜯어 놓는다든지. 근데 나랑 같이 살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한 6시간 ~ 5시간 미만으로 줄어드니까 그때부터 그런 행동을 잘 안 보이더라고. 얘한테 이런 지점이 중요하구나, 이런 걸 느낄 때 또 얘를 더 잘 알게 되고. 유대가 쌓이고 그래.
낑깡 아, 그런 것도 있어. 나는 평소에는 당연해서 몰랐는데, 가끔가다가 고양이랑 내가 서로 몸이 너무 맞춰져 있었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해. 이를테면 우리 고양이는 손을 갖다 대면 머리를 부비는데, 친구나 지인들이 놀러 왔을 때 그런 걸 몰라서 고양이를 어떻게 대할 줄 몰라 하는 걸 볼 때라던가. 또, 고양이를 안았을 때 얘 눈에 등이 비치면 눈부셔하는 걸 느낌으로 안단 말이지. 그래서 그림자를 만들어주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까 고양이랑 사람이랑 서로 영문 모르게 불편해하고. 얘가 청각이 예민하기도 해서 물 마실 때 소리가 나면 곧장 멈춰버리곤 해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게 된다던가.
롱코트 맞아. 물을 잘 안 마시려고 하니까.
낑깡 말하고 보니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하여튼 얘가 지금 뭘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끔 표정도 읽히기도 하거든? 이걸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네. 이런 식으로 ‘생각보다 서로 맞춰진 게 엄청 많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 가끔 일이 있으면 고양이를 본가에 맡기고 오기도 하는데, 그러면 내가 자취방에 고양이가 없는데도 집에 들어갈 때 본능적으로 문을 살짝 막으면서 들어가는 거야. 애가 나갈까 봐. 내 몸에도 이런 습관이 남아 있는 게 보일 때마다 고양이랑 많은 게 맞춰져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 같아.

# 동물과의 관계에서 내가 맡은 배역은
롱코트 그런 것도 얘기해 보면 좋겠다. 본인들이 각각 자기의 반려동물에게 어떤 사람이야? 그러니까 엄마, 아빠야? 아니면 언니야? 그것도 아니면 동거인이야? 스스로를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있어?
낑깡 나는 일단 ‘언니’야. 엄마가 벌써 할머니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언니가 되었어. ‘엄마’는 우리 엄마야.
꿀벌 나도 결혼하고 아내가 강아지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형이 될 수는 없더라고. 그럼 아빠지 뭐. 그렇게 아빠가 됐지. 근데 별로 거부감이 없었어. 어쨌든 아빠가 되니까 키우면서 아빠 노릇 같은 걸 하게 되더라고. 이를테면 훈육 같은 거. “기다려.” “아니야, 지금 아니야.” 그러니까, 아내는 좀 더 뭔가를 주려 하는 사람이고, 나는 “너 기다려, 앉아.” 이런 거 시키는 사람이 됐어.
양말 엄격한 아빠 역할이구나.
꿀벌 그리고 가끔 본가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하신단 말이야. 우리 부부가 아기가, 그러니까 사람 애가 아직이란 말이야. 그래서 얘를 손주처럼 여기는 거야. 그러니까 졸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거지. “할아버지한테 가”, “할머니한테 뭐 달라고 그래.” 강아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부모님도 그냥 받아들이시는 것 같더라고. 어쨌든 이런 식으로 얘는 사람이 아닌데도 의인화해서 나름대로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습성이 우리한테 있는 것 같아. 거기서 이제 뭘 선택하느냐도 다 우리랑 관계가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되더라고.
낑깡 나는 언니로 역할을 정해서인가? 나는 얘랑 비교적 평등하게 관계 맺는 것 같기도 해. 어제도 얘랑 싸웠거든. 발톱을 깎아주는데,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닌데 막 난리를 치는 거야. 으르렁거리고, 하악질하고. 그래서 내가 실랑이하다가 너무 화나가지고 “아니, 가만히 있어! 이러면 네가 다친단 말이야! 가만히 있어, 조금만 참아. 내가 많이 깎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서운해 죽겠네!” 이런 얘기를 얘가 알아들을 것도 아닌데 혼자 막 중얼중얼하게 되더라고. 다 깎고 났더니 걔가 나랑 멀리 거리를 두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흥!”하고서 이렇게 막 멀리 있고.
꿀벌 (웃음) 서로 동등하게 삐진 거네.
낑깡 원래 가족은 어물쩡 화해하잖아. 고양이도 좀 그렇게 떨어져 있다가 다시 또 스윽 오더라고. 그래서 또 쓰다듬으면서 “그래, 왔어~ 너도 머쓱하지?” 막 이러고.
츄말론 나도 꿀벌이랑 비슷하게 아빠로 포지셔닝하고 있어. 배우자가 엄마로 포지셔닝을 하니까 나는 아빠가 되었거든. 그래서인지 고양이를 기르면서 양육에서 역할 책임 같은 것들도 엄청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아빠라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얘가 싫어하는 행동을 거의 내가 도맡아 하고 있거든. 약을 먹이거나,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 잡고 이동장에 넣거나, 발톱을 깎는 것도 아내가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그래서 그것도 내가 하고 있어. 옛날에는 이게 역할 분담이 제대로 돼서 전문화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가 아내에게는 뭐랄까… 좀 건방지게 구는 거야. 동물을 기를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분리불안이잖아. 그런 게 고착화되면서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역할인 아내한테 너무 의존하고, 간혹 배우자가 고양이가 원하는 걸 안 들어주면 스스로 털을 뽑더라고.
양말 고양이들은 스트레스받으면 털을 많이 뽑는 것 같더라.
츄말론 그래서 오늘도 그것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다행히 건강상의 문제는 없대. 근데 고양이는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심리 상담을 할 수도 없고, 대증 치료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 털을 뽑을 때 안정제를 줘서 자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 게 좀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래서 가정에서 역할 분담을 이렇게 완전히 나눠버렸을 때 한편으로는 전문화가 될 수도 있겠지마는,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양이를 의존적으로 만드는 부작용도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종종 거리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아까 낑깡은 자신을 언니로 포지셔닝 한다고 했잖아. 그런 관계도 굉장히 좋은 것 같아.
낑깡 나이는 모르겠고, 일단은 내가 먼저 태어났으니까 (웃음)
츄말론 근데 어쨌거나 우리가 억지로 고양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잖아. 아무리 걔를 위한다고 해도 진저리 치면서 싫어하는데 약을 먹인다거나, 병원에 데려간다거나. 결국에는 그런 게 미시 폭력이라고 할까? 어떤 위계가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언니라는 표현도 상대적으로 평등함이 있지만, 살짝은 높은 거잖아.
카피바라 그러게. 인간이 동생이 될 수도 있을까?
롱코트 나는 나 스스로를 엄마로 포지셔닝하고 있어. 사실 고양이를 길러야겠다고 상상만 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되게 많이 생각을 했었어. 나는 고양이랑 비인간 동물과 평등한 관계를 구축할 거야! 나는 그냥 얘랑 동거인일 뿐이지, 인간에게 통하는 가족의 형태로 나는 이 아이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거랑 별개로 고양이 역시 사람을 엄마 고양이로 인식을 할 수도 있다는 거를 알게 된 거야.
카피바라 아 정말? 사람을?
롱코트 응. 인간 집사를 큰 고양이, 엄마 고양이로 인식하는 고양이도 더러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만약에 내 고양이가 그렇다면 내가 얘랑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난 너희 엄마가 아니고 너의 동거인이야.’ 이렇게 하는 게 좀 웃겨지잖아. 그러다 보니까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지 결정하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엄마가 하는 일 같은 거잖아. 내가 얘를 양육하니까. 아프면 병원 데려가, 밥 차려줘, 물 챙겨줘, 뭐 떨어뜨리면 치워줘, 돈 벌어와… 그냥 엄마지 뭐? 그래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편하게 엄마로 포지셔닝을 하게 된 것 같아.
양말 그렇게 엄마가 되었구나.
롱코트 근데 관계의 문제가 진짜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일단 나는 혼자 기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내가 한단 말이지. 병원 데려가는 것도, 예뻐해 주는 것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대일 관계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좀 다르게 말하면 이런 고민과도 맞닿은 것 같아. 고양이가 훈육의 대상이 될 수 있나? 사실 강아지를 기를 때는 이런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거든? 강아지는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이상한 걸 주워 먹지 않도록 교육해야만 하는데, 고양이는 딱히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더라고. 고양이를 인간 양육을 하듯이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빚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자기만 아는 건방진 녀석으로 길러낸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는 너무 예뻐해 주기만 하고 있단 말이지.
카피바라 나는 사실 혼자 살 때는 내가 강아지의 엄마나 언니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거든.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이 내 강아지한테 자꾸 ‘엄마 어디 갔어?’ 이러더라고. 그래서 가끔 그게 당황스럽고 불쾌하게 다가오기도 했어. 나는 아직 그런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닌데. 나는 일평생 강아지를 키워왔으니까, 사실 전에는 강아지 주인을 ‘엄마’나 ‘아빠’라고 지칭하지 않았던 것 같거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문화가 굳어진 것 같아.
양말 그러게. 그게 어느 즈음 부터였을까?
카피바라 그게 딱 내가 혼자 키우기 시작하던 때쯤부터였던 것 같아. 그래서 ‘엄마’라는 지칭이 더 생경했던 거야. 그런 반면, 요즘에는 그 지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긴 해. 그래서 동물과의 관계에서 나를 어떤 위치에 놓느냐가 우리의 생애주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요즘에는 그때보다 나이를 더 먹기도 했고, 결혼을 하고 나니까 그런 지칭이 한층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
롱코트 나도 카피바라랑 비슷한 경험일 수 있는데, 지금 기르는 고양이 말고 20대 때 본가에서 강아지를 기를 때 항상 짠한 느낌이 들었거든. 내가 엄마와 갖는 복잡한 역동이 엄마랑 그 강아지 사이에도 있는 거야. 예를 들면, 엄마가 반응이 좀 일관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어. 나는 엄마의 그런 성격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떤 불안감을 갖고 커왔단 말이야. 근데 강아지를 보면 나랑 똑같은 거야. 얘도 분리불안이 되게 심했고, 사실 엄마라는 주 양육자를 가장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안정이 필요하면 항상 아빠한테 가는 거야. 그러니까 불안을 느낄 때 엄마를 피하는 거야. 그게 내 모습이랑 너무 똑같은 거야.
꿀벌 피해자 연대가 있었구나.
롱코트 진짜 얘도 우리 엄마의 피해자인 거야. 그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감을 했던 경험이 있고. 그래서 실제로 내가 집에서 나와서 독립을 할 때 얘를 두고 가는 거에 대해서 죄책감을 엄청 크게 느꼈어. 내가 얘 입장에서 우리 엄마랑 같이 싸워야 하는데.
낑깡 동생 두고 혼자 독립하는 장녀 같다.
롱코트 어쨌든 우리의 생애주기에 따라서 동물과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에 그런 측면에서 공감이 가기도 해. 만약에 내가 그 강아지를 지금처럼 혼자 사는 상황에서 만났다면 정말 다른 관계가 형성되었겠지.

카피바라 롱코트는 옛날에 강아지를 키워봤고,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걸로 아는데 둘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해? 사실 조금의 배신감도 있거든.
낑깡 독퍼슨에서 캣퍼슨으로 돌아선…!
카피바라 내가 강아지를 키우던 시기의 롱코트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양이를 키울 때 더 행복해 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지…
롱코트 근데 강아지냐 고양이냐를 떠나서 키우고 있는 상황이 너무 다른 것 같아. 강아지는 본가에서 원가족이랑 다 같이 기른 거라 주 양육자가 부모님이었고, 나에게는 양육의 책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 근데 지금 고양이는 독립을 하고 나서 내가 가족으로 선택한 최초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강아지와 고양이가 어떻게 다르다기보다는 내 상황이 달라진 게 큰 것 같아.
카피바라 그러면 고양이라는 종을 키워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구나.
롱코트 근데 사실 항상 고양이가 궁금하긴 했어. 그러니까 나 사실 캣퍼슨이 맞긴 맞아! (웃음)
낑깡 근데 우리 이런 콘셉트였나? 고양이파와 강아지파의 대결…
(2부에서 계속)

글. 양말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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