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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불찰의 계절 : 망한 프로포절 후기




프로포절은 재밌다. 너어무 재밌다. 한 학기에 한번 학과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이고, 대학원 동료들이 스스로 가장 진중하게 고민하는 주제를 소개하는 자리는 흔치 않아서 더 소중한 자리다. BK 사업단이 있어서였는지, 코로나 이전의 감수성이었는지, 혹은 내가 대학원에 더 애착을 가졌던 시절이어서인지, 아무튼지 간에 석사 시절처럼 대학원 동료들과 일상적으로 논문 얘기를 나누기 어려워진 지금, 프로포절 자리는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으로, 프로포절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동료들을 채근하고는 했다. “그래도 이런 자리 없으면 누가 무슨 연구하는지 모르잖아! 나는 그래도 우리 과 프로포절이 좋아.”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속 좋은 소리만 해서였는지 업보빔을 제대로 맞았다. 발표 전날 지도교수님과 함께 한 리허설에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일종의 통과 판정을 받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발표를 마치고 코멘트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 이거 아닌데?’, ‘큰일인데?’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결국 “피피티에 쓰인 폰트가 예쁘다”는 평가 외에는 단 하나의 긍정적 평가를 듣지 못한 채 잔뜩 두들겨 맞고 내려왔다. 나름 즉흥적인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변하는 상황의 스릴을 즐긴다고 믿어왔는데 뚝딱거리며 ‘이래저래 부족했습니다’ 같은 말들만 내뱉고 내려왔다.


패잔병을 위한 비상대책회의가 곳곳에서 소집되었다. ‘안심의 어쏘시에이션’을 꿈꾸는 신문연 친구들은 언제나 나의 안전지대이다. 슬랙에도 한 무더기, 월요수다에서도 한 무더기, 월간 회의 시간에도 한 무더기, 연구실에도 한 무더기… 한동안 연구실의 친구들은 나만 보면 위로봇이 되어야 했다. 약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무기력하고 멍한 상태와 ‘탈주할 거야! 다 때려치울 거야!’ 사이를 오가며 원고 파일을 열어보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신문연 동료들이 없었다면 영원히 이 굴레에 갇혔을지 모른다. 동료들과 신문연의 존재가 나를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오히려 무기력해지고 싶을 때 충분히 무기력할 수 있도록, 그래서 결국에는 다시 나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



드디어 일어날 힘이 생겼을 때쯤, 친구들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신문연의 연구원들은 매년 한 번씩 동료들 앞에서 최근 자신의 작업을 공유하는데, 이 자리에서 프로포절 발표를 다시 했다. 동료들은 교수님들의 코멘트를 조심스럽게 풀어주면서 수정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당혹스러웠던 감정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프로포절 코멘트들을 다시 해석할 수 있었다.


석사 때 만나 대학원을 중도포기 하지 않도록 지지해 주었던 또 다른 선배는 또 한 번의 SOS 요청을 듣고, 자신도 이제는 박사논문을 써야 한다며 ‘함께끝장회’를 결성해 주었다. 순식간에 주변에 써야 하는 논문이 있는 동료들을 찾아서 2주 간격으로 만나 그동안 작업한 내용을 나누고 코멘트를 주고받는 모임이 생겼다. 이 모임은 ‘2주나 시간이 흘렀는데 한 자도 안 써가면 너무나 창피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압박감을 주어서 내가 자꾸만 무기력에 빠지려는 것을 방지해주었다. 선배는 학과 교수님들의 성향도, 프로포절이 굴러가는 원리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 전략을 함께 세워주었다.


전공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지만 ‘선배’라고 부르고 싶은, 나만의 대나무숲 같은 선배는 언제나처럼 밥과 술을 공급해 주었다. 주기적으로 무기력에 빠지는 나를 너무 잘 알던 선배는 “맛있는 거 사줄게”라는 말로 나를 집 밖으로 꺼내주었다. 잊을 만하면 잘 되어가고 있는지 물으며 원고를 보내보라고 했고, 그때마다 ‘되겠네’, ‘잘하고 있네’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어느 순간 원고를 보여줘야 할 사람이 많아져서 계속해서 쓰고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보면 그 시기,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받았다. 위로, 조언, 수정 전략, 강제적인 일정 관리까지. 다들 자신의 삶과 연구로도 충분히 벅찼을 텐데, 누군가의 멈춤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이제는 내가 받은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생각한다. 돌려주는 방식은 꼭 그 사람에게 되갚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고 믿는다. 언젠가 또 누군가가 무기력한 시간 앞에서 멈춰 설 때, 나는 기꺼이 ‘위로봇’이 되고, ‘함께끝장회’를 제안하고, 발표 리허설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구자의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조금씩 주고받으며 버티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반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나도 신문연과 대학원에서 내 몫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또보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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