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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증명과 변명 사이, 그 어딘가에 남겨진 희생과 헌신



하… 그냥 일단 『증명과 변명』 읽고 와봐요… 나 진짜 말이 안 되게 조아써요…


남성성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1년간 남성성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여러 겹의 감정이 들었다. 텍스트를 읽어갈수록 부정적이거나 폭력적으로 재현되는 남성/성의 모습이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면 오히려 그 부정성이 과소재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남성들’과 나를 구별 짓고자 하는 내 태도가 옹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리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해도, 결국 나 또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남성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대안적 남성/성을 상상하거나 남성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들조차 어딘가 얕고 조심스러운 접근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은 아마도 남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언어 자체가 아직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공백이야말로 남성/성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고민은 ‘그렇다면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당사자로서 남성에 대해 말하는 일이 자칫 맨스플레인이 되지는 않을지, 아니면 오히려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그런 불안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집어 든 책이 안희제 작가의 『증명과 변명』이었다.


이 책은 자살을 결심한 친구 ‘우진’의 청년 생애사를 중심으로, 한 남성의 삶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 담겨 있는 책이다. 처음엔 그저 세미나의 마지막 책으로,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탐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선택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 선택이 단순한 ‘연구 텍스트’ 이상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게 “하… 너무 조아써요”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게 만든,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증명과 변명』이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이유는 저자가 친구에 대해 말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연구자이기 이전에 친구였고, 이 책은 친구로서 친구를 기록하려는 시도였다. 저자는 우진이라는 인물에게 객관적 거리만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그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 하고, 때로는 그의 말과 침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따라간다. 책의 구조 자체가 이 점을 드러낸다. 각 장은 ‘1장에 앞서’, ‘1장’, ‘1장에 부쳐’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데, 이는 저자가 하나의 단락을 쓰기 전과 후에도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 구성에서 저자가 친구 한 사람의 삶을 글로 옮기는 일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칫하면 누군가의 삶을 전유해 버릴 수 있는 서술의 폭력 앞에서, 저자는 가능한 한 멈춰 서고 비켜나 있으며 함께 감정을 나누는 방식을 택한다. 그 태도는 단순한 윤리적 글쓰기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남성이라는 존재를 말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었다.


『증명과 변명』은 한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그 너머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진이라는 인물은 단지 개인적인 아픔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의 회로를 살아가는 남성이기도 하다. 모태솔로, 번따, 주식, 학벌 같은 키워드는 단지 개인의 실패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청년 남성들이 자기 자신을 구성해 나가는 감정적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모태솔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68쪽)라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이 감정의 기원을 구조 속에서 읽어내려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러한 감정들을 ‘개인의 몫’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것이 언어와 경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남성들은 남성중심적 사회가 자신에게 충분한 언어와 경로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에 더 고민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는다”(268쪽)는 진단은, 나 역시 뷰티 분야에서 남성의 언어가 얼마나 결핍되어 있는지를 체감해 온 연구자로서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책은 단지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어떻게 상실했는지를 묻는 책이었다.


이 구조적 진단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아버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우진의 감정 서사였다. 우진은 연애나 사회적 낙오에 대한 불안을 ‘여성’ 앞에서만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했던 아버지를 향해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이기고’ 싶어 했다. “아버지를 꺾든, 아버지가 되든, 중요한 것은 아버지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221쪽)는 문장은 이 책에서 가장 긴 여운으로 남은 대목이었다.


또한 “좋은 삶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는 사라졌지만, 추구할 만한 새로운 가치는 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실현 불가능해진 삶의 규범에 고착된 채, 자신이 추구하는 대상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만으로 간신히 버텨나간다”(223쪽)는 구절은,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 남성들의 무력감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나 역시 아버지를 통해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때로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 감정의 골이 나를 스스로 남성과 가부장제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와 나 사이의 이해가 가능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나는 어쩌면 ‘남성’이라는 정체성이 안고 있는 무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 책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성을 일방적으로 조롱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그 무게를 다룬다는 점이 참 좋았다. 우진의 고통은 누군가보다 더 나은 남성이 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서사를 조심스럽게 감싸안으며 따라가는 저자의 글은, 남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건넸다.


물론 이 책이 내게 주었던 감정이 온전히 따뜻하거나 감탄만은 아니었다. 저자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느껴졌던 거리감은 분명히 있었다. 예컨대, 작가가 자신의 학벌이 친구 우진에게 위화감과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성찰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적잖이 불편했다. 성찰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 학벌에 기대고 있는 듯한 태도,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자기 면죄부의 감각. 그것은 어쩌면, 좋은 학벌을 갖지 못한 내가 느끼는 열등감의 또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함조차, 나라는 연구자가 어떤 자리를 지향해야 하는지 되묻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성찰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군가의 서사를 다룰 때 그 삶이 지닌 맥락과 감정, 침묵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이 책은 그 점에서 하나의 윤리적 기준점이 되어준다. 동시에 ‘이론’과 ‘계급성’, ‘말할 수 있는 위치’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남은 질문은 단 하나였다. 우리는 앞으로 ‘남성’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남성을 단일하게 만들지도 않고, 무조건적 비호하지도 않으며,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남긴 무게를 감정의 언어로 포착할 수 있는 연구. 나는 그 질문 앞에 아직 서 있는 중이고, 이 책은 그 질문을 오래 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드문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감정에 대해 말하고, 남성성이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성찰할 수 있는 이 시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부모 세대는 감정이나 욕망을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야 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보다 하루빨리 돈을 벌고 집을 사고 가정을 지켜야만 했던 삶. 감정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삶은 종종 ‘희생’과 ‘헌신’이라는 단어로만 요약되지만, 나는 그 말들이 가리키는 무게를 이전보다 조금 더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감정을 유예하고 책임을 우선해 온 시간 위에 우리가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다루는 청년 남성의 고통은 바로 그런 시간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감정이 어떤 시점에 말해질 수 있었는지를 함께 묻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질문들 곁에서, 누군가의 말이 되지 못한 감정에 언어를 건네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언젠가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조심스러운 다짐처럼 닿을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연구자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글. 서우빈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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