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뒤사] 발로 논문 쓰는 사람을 만나봤어요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3일 전
- 11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일 전

이번 논뒤사의 주인공은 이나은씨 입니다. 나은은 제 대학원 동료 혹은 학교 친구 비슷한 것입니다. 하지만 매번 자신이 박사 7학기 차임을 강조주장하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는 저보다 대선배이긴 합니다(저는 박사 0학기에요). 나은에게 논뒤사에 나와달라 하였을 때 나은은 논뒤사가 논문쓰다뒤진사람의 줄임말인지 논문때문에뒤진사람의 줄임말인지 질문했는데요. 그 말을 들으며 바로 나은이 논뒤사에 딱 맞는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참고로 논뒤사는 논문뒤에사람있어요의 줄임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앞으로 논뒤사를 논문쓰다뒤진사람의 줄임말로 기억해 주시겠죠? 실제로 별차이가 없으니 괜찮습니다.
나은은 친밀성과 돌봄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있고, 모순이 있는 현장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팬플랫폼 ‘버블’에서의 친밀성(대화하지 않아도 대화한 느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탈코르셋을 그만둔 여성들(왜 여자들은 탈코르셋 죽을때까지 할 거라고 했으면서 그만두게 되었을까?), 기후위기와 비출산 등을 연구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태권도장에서의 돌봄에 대한 박사논문을 작성중이고 참여관찰을 위해 태권도장에서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질적연구를 하고 방법론으로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하고요. 그래서 인터뷰에서는 질적 연구방법에 대한 이야기와 좋은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답해보았습니다. “본격 대선배에게 듣는다! 좋은 질적연구란 무엇일까?” ....
네 그냥 수다떨며 연구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궁금증 몇 가지 해소했다는 뜻이에요. 나은을 섭외하게 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 말을 시니컬하고 웃기게 함, 장군의기개테토녀임, 친구라서 접근성 좋음 - 저는 나은의 연구가 재밌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해봅니다.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사진도 첨부해보았어요.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발로 논문쓰고 있는 나은의 사진입니다.

# 박사 7학기차는 이렇게 지낸다 ^^
수정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나은 저는 박사 수료하고 주로 학교에 있어요. 오전에는 수영하고요. 8시부터 1시간 수영하고 씻고 나오면 9시 반이고, 공부 시작해서 밤 9시나 12시까지 합니다. 수영 안 하는 날에는 8시나 9시쯤 학교 도착해서 마찬가지로 하다가 가요. 물론 그 사이에 집중 시간은 많지 않고요.
요즘은 태권도장에서의 돌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데 참여 관찰을 위해 태권도장에서 알바를 해요. 원래는 3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는 거였는데, 꼴을 보아 하니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4시부터 6시로 변경됐고요. 지난 주에는 한 번도 안 부르시다가 이번 주에는 월수목을 불러서.
수정 스케줄이 일주일 전에 나와요?
나은 하루 전에도 부르기도 하고요.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아무 때나 부르라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아무 때나 부를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웃음).
수정 시급은 얼마예요?
나은 만 천 원입니다.
수정 [꽤나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나 봄]
나은 만 천 원에 만족스러워하는 윤수정 씨를 보니까. 대학원생의 현실이 무엇인지 알 것 같고요. 박사 수료까지 했는데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면접 볼 때 이력서를 왜 안 가져 왔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제 이력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안 갖고 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 해서 하고 있어요.
또 요즘엔 10년 전에 땄어야 되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틈틈이 운전면허 학원에 가고 있습니다. 화요일마다 정신 상담도 받고 있고요.
수정 아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도움이 되나요?
나은 별로 안 됩니다.
수정 심리 상담사라고 좀 더 특별해지는 게 없나요?
나은 네 그분이 조금 더 참을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술 마실 때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 너는 상담을 받아봐라는 말을 하는데, 심리 상담사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겠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방어 기제, 회피 기제 등등을 나에게 발휘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심리 상담사는 피할 수 없다. 그 정도의 차이. (웃음) 어쨌든 요즘은 조금 더 자기 돌봄, 그리고 놀기에 치중해 있습니다. 지난달에 캐리비안베이, 롯데월드, 에버랜드, 그리고 서울랜드를 갔습니다.

# 참여관찰과 인터뷰하기
참여관찰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참여관찰은 다른 자료수집방법보다 하기 어렵고 품이 많이 든다는 인식이 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저는 연구참여자들과 실제로 관계맺고 부대끼며 연구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동경심을 가지고 있고 늘 현장 비슷한 것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현장에는 어떻게 진입하는 것이며 필드노트는 어떻게 쓰는 것이고 자료는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막막한 마음이 있어요. 논문꾸미기(논꾸)용 참여관찰 말고 제대로 된 참여관찰 하고싶은데~(^^) 어쨌든 참여관찰을 비롯하여 인터뷰와 온라인텍스트 수집까지를 넘나들고 있는 나은에게 방법론과 관련해 갖고 있는 고민들을 질문하였습니다.
수정 참여 관찰을 하시게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석사논문도 일종의 온라인 참여 관찰이잖아요. 그리고 원래 오프라인 참여 관찰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코로나 때문에 불가능해졌다고 하셨잖아요. 참여관찰을 주 방법론으로 쓰시는 이유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해요.
나은 음... 그게 연구자의 무엇이다, 그러니까 참여 관찰을 해야지 그 안에 진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진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결코 그 행위자일 수는 없어가지고, 같은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를테면 제가 석사논문에서 '버블' 참여 관찰 연구를 하기 위해서 버블 구독을 실제로 해봤었는데, 저는 팬으로서 버블 구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팬들은 굉장히 설레는 감정, 그러니까 메시지 올 때마다 설레는 감정을 느끼거나 이럴 텐데, 저는 태민을 구독하면서 태민의 침대 셀카를 받고, 연애 200일차에 내던져져서 희롱을 당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근데 아마 팬이라면 이런 느낌을 받진 않겠죠. 침대 셀카를 나한테 보내면서 "자기야 오늘 어때?" 이런 식의 멘트를 받았을 때, 인스타 디엠으로 희롱 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닌데. 그러니까 연애를 할 때 전반적으로의 과정이 있잖아요.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안녕이라고 하고, 아침 문안 인사를 하고, 이런 식의 것들이 있을 텐데 그걸 다 스킵하고. 침대에 누워서 윙크하는 셀카 같은 걸 받았을 때의 어떤 당혹스러움과 불쾌감. 이걸 아마 팬들은 안 느끼겠죠? 제가 만나본 연구참여자들은 안 느끼기는 했는데. 물론 느끼는 참여자들도 있긴 했어요. 어쨌든 제가 아무리 참여 관찰을 해도, 당장 그 사람은 될 수 없구나.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걸 느꼈어요.
수정 그럼에도 계속 하게 되는 이유가 뭐에요?
나은 그 간극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렇게 경험을 함으로써 나한테는 이렇게까지 이게 설레는 경험이 아닌데 누군가에겐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팬이 아닌데 버블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는 다소간 도움이 되었습니다. 팬이 아니면, 재미있게 얘기를 해 주는 어떤 사람을 바라며 구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수정 저도 참여관찰 관련 환상이 있긴 했거든요. 참여 관찰이 질방 중에 제일 하기 어렵고. 품이 많이 들고.
나은 그걸 하지 않으면 진짜 연구가 아니라는 그 감각. 만약에 어떤 사람은 인터뷰만 하고, 어떤 사람은 인터뷰에 참여관찰했다 하면은, 역시 후자의 논문이 더 좋은 논문이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이런 느낌 있죠.
수정 우리는 왜 온라인 텍스트 분석이라고 안 하고 온라인 에스노그래피라고 하는가. 논꾸(논문꾸미기)를 위해.
나은 그러니까요.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온라인 에쓰노그래피라는거. 그 공기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애쓰노”그라피? 애쓴다진짜;방법론 같아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청년 남성의 정치 주체화라는 연구 모임에 있는데. 원래 연구질문이 "청년 남성은 왜 집회에 나가지 않는가"였는데. 이걸 참여 관찰을 하기 위해서 집회에 나가는 바람에 연구 질문이 바뀌어 버렸어요. "왜 어떤 청년 남성은 집회에 나가는가?" (농담) 왜냐면 참여 관찰을 하면은 보이는 사람이 그런 사람밖에 없으니까 연구 질문이 바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안 나가는 사람을 보려고 했는데, 나가는 사람을 보게 되고. 이게 참여관찰 연구의 맹점입니다~ (웃음) 행위하는 사람만 볼 수 있죠.1)
버블도 사실은, 행위하는 저밖에 볼 수가 없어요. 행위하는 저와 연예인. 왜냐하면 일대일 채팅방이거든요.
1) 이 인터뷰가 진행된지도 어연 2달 반. 저의 게으름으로 지금에야 발행되게 되었습니다. 최종검토를 위해 이 원고를 보내주었을 때 나은은 요즘은 행위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재하는 것을 관찰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근데 저는 뭔지 잘 몰라서…. 궁금하신분은 나은에게 직접문의부탁. skdms20@snu.ac.kr ) 어쩄든 새로운 현장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계신 나은씨. 만나면 칭찬 부탁드립니다.
수정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는 거네요.
나은 인터뷰를 하거나 아니면 뭐 밖에서 트위터 캡처를 보거나.
태권도장도 큰 문제인 게 사실은 참여 관찰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거기에서의 남성의 돌봄을 보고 싶었는데, 제가 들어가는 순간 돌봄이 저한테 전가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필드가 깨진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필드가 깨지는 것도 관찰해야 될 부분이기도 하고, 제가 안 한다고 해서 태권도장에서 비전문가 여성을 고용해서 돌봄을 맡기는 양태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들어가서 보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어떻게 전가되고 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기록하고 있어요.
수정 필드 노트 쓰세요?
나은 네 썼는데 절반 정도는 열심히 쓰다가 절반은 제 업무해야 되기 때문에 업무 지침을 기록하는. (웃음) 이것이 참여관찰의 맹점입니다.
수정 그러면 반대로 인터뷰를 하면서 답답한 점은?
나은 인터뷰를 훈련받은 적이 없어가지고. 아무도 저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뭘 물어봤어야 되는지, 일이라도 좀 들어오면 일해서라도 배울 텐데, 일을 할 때도 적당히 해오라고 하고 저 혼자 보내고. 그래서 제가 하는 인터뷰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생애사 인터뷰가 익숙한 친구들은 질문 2개만 가지고 간다는데 저는 그게 너무 불안해 가지고 좀 많이 가져가는 편이고. 너무 많이 가져가면 또 연구 참여자들이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죠.
저의 큰 문제는 인터뷰를 하다가 어떤 특정 연구 질문이 해결이 되면 그다음 연구 참여자한테 그걸 물어보는 걸 까먹는다는 거였는데요. 그런 경향성이 좀 보여가지고 연구 질문지를 좀 더 상세히 짜려고 하는 편이에요. 한 3~4명쯤 되면 풀리는 연구 질문들이 있는데 그걸 기록을 안 해놓으면 안 물어보더라고요.
근데 질문보다도 저는 저를 좀 정동시키는 인터뷰이들을 만날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약간 인터뷰하다 울 때가 좀 있거든요. 정보를 묻고 대답하고 이런 식으로 했을 때가 제일 재미없고, 쿼트(quote) 따기도 제일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그 사람도 딱 그것만 얘기를 해주고 더 얘기를 해주지 않는 거예요.
수정 ... 인터뷰하다 우세요?
나은 되게 짧은 인터뷰도 왈칵 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울었던 인터뷰가 좀 잘 된 것 같아요. (웃음) 아무리 짧은 인터뷰여도 그 정도로 서로가 공감했다고 생각이 될 때 더 좋은 인터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수정 저도 인터뷰할 때, 약간 좀 속으로 울컥한 부분이 있긴 있었거든요. 근데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되게 꾹 참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나은 더 진심으로 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래서 좀 더 전략적으로 제 얘기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버블 구독할 때 누굴 구독한다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기후위기 비출산주의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거를 할 때는 나도 애를 어떻게 안 낳고 싶었는지 이런 거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를 얘기를 하기도 하고. 얼마나 걱정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더 하기도 하고.
수정 아니 근데 그런 식으로 하면 연구참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은 제 말은 빼버려요. 내가 한 말은 넣을 필요 없잖아. (웃음)
수정 미친거 아니야? (웃음)
나은 내일 심리 상담사한테 가서 어떻게 하나 좀 봐야 되나. 심리상담사는 자기 얘기 안 하면서 하긴 하니까요.
수정 저도 지도교수님이 처음 인터뷰 나갈 때, 심리상담사가 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열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준 적 있어요.
나은 상담사는 맨날 그때 기분 어땠어요? 이런 거 물어보던데요. 저도 나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모르겠네요. 인터뷰 너무 싫어요. 남의 말을, 내가 말 안 하고, 어떤 방식으로 바뀔지 계속 계산을 하면서 집중해서 들어야 된다는 게 좀 곤욕스러워요.
수정 저도 인터뷰가 좀 적성에 안 맞거든요. 저는 사실 인터뷰도 인터뷰인데 제 말이 연구자에게 해석되는게 너무 싫어요. 특히 옛날에 어떤 분 인터뷰에 참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 말을 너무 이해를 못 한다고 느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걔가 내 말을 이해를 못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써가지고 해석할 거 아니에요. 인용 따고. 저는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내 소중한 목소리가 걔 쿼트가 되는 게(웃음).
그러니까 저는 그거에 대한 강박이 너무 심해서, 연구참여자들도 다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좀 조심스럽고. 근데 어떤 사람은 이제 인터뷰하고 이러면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이러면서 좋아할 수도 있고, 맨날 여성주의 인터뷰에서 얘기하는 그거잖아요. 해방적 효과. 근데 저는 그게 어떻게 해방적 효과가 있을까 생각해요. 제가 제 고통을 남한테 말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구참여자들 대할 때도 항상 이 연구가 뭐라고 여기 괜히 시간 내가지고. 나는 고통이나 캐묻고. 이런 생각이 들고. 제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나은 [상담사 톤으로] 그거는 그럴 수 있죠.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근데 저는 분석하고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커가지고 자기 자신을 분석을 너무 많이 하고. 그래서 느낀 게, 대학원생은 좋은 인터뷰이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분석하고 해석해 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해석할 여지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재분석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거 너무 골치 아프고 그 다음에 좀 과한 일이어가지고. 그 분석을 재분석을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 분석을 하는 걸로 봐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같은 그 메타적이고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들어가는 거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지고. 이미 분석이 다 끝난 이후에는.
그런데 대학원생을 빼려고 했지만, 대학원생이 제일 쉬운 인터뷰이이긴 하죠. 대학원생은 24시간 아무 때나 인터뷰 되고, 그 다음에 연구 힘들죠~ 하면서 돈도 안 받으려고 하고. (웃음)
어쨌든 자기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석해서 갖고 오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해석당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해석해서 갖고 올 수도 있긴 하죠. 내 경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인터뷰이로 연구에 참여했을 때 저는 제 경험이 너무 특이해서 인용하기 좀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탈코르셋을 하면서 그때 당시 애인이었던 남성에게, 맨박스를 부수기 위해서 그 남성의 파운데이션을 골라주고, 저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이 애인의 화장품만 골라줬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걔가 화장을 하면 할수록 저는 탈코르셋을 하는 느낌이었던거죠, 대비되면서. 하지만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속상했어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한편으로는 저의 특이한 어떤 인생 경험들을 가지고 자문화 기술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 탈코르셋의 경험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좀 더 엄청 더 내밀하고 특유하게 분석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걸 쓰는 건 너무 귀찮은 과정이니까 인터뷰를 한 거죠. 그리고 탈코르셋을 그만둔 여성들 논문을 쓸 때도 제가 어떻게 그만두게 됐었는지에 대해서 자문화기술지로 좀 길게 쓴 게 있었는데, 폐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연구를 하면서 머리를 숏컷으로 밀긴 했었습니다. 다시 그때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3년 전 일인데요. 그것도 역시 참여관찰이죠. (웃음) 왜냐하면 그때도 한참 안산 선수랑 해가지고 머리 짧은 여성만 보면 비난하는 남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길에서 젊은 남성을 마주하는 일이 매우 무서웠습니다. 불링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수정 그때도 약간 의도하신 거예요. 참여관찰을?
나은 네. 옛날에 제대로 했었나 잘 기억이 안 나가지고. 그때 머리는 안 밀었었지, 그 생각이 들어가지고 머리를 잘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중학교 때 숏컷으로 다녀가지고 그걸 한 번 더 해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탈코르셋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머리를 안 잘랐었으니까.
근데 저는 슈퍼 직모여가지고. 숏컷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주 동안 머리카락이 귀를 찔러가지고 잠을 잘 못 잤어요. 진짜 귀가 정말 너무 아팠어요.
참여관찰 뭘까, 로 시작되어 인터뷰 너무 어렵다로 귀결되었네요. 얘기할수록 모르겠고 생각만 많아지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아셨죠? 저를 비롯한 자아 큰 대학원생들은 어지간하면 인터뷰하시면 안 됩니다! 얘들아 우리 인터뷰 품앗이 이제 그만하자~ 당장 이 글 마감하고 오후에 대학원생 인터뷰하러 가는 사람이 간곡호소합니다.

# 좋은 연구란 무엇일까
나은 정말 그거 같네요. 논문 뒤에 연구자가 있네요.
수정 너무 신기하다. 근데 다 연결이 되어 있네요. 연구의 궤적이.
나은 네 아무래도 한 사람이 하는 거다 보니까 (웃음) 네. 인생사 털기를 하고 있고요.
수정 근데 그게 인생사 털기와 어떻게 관련이?
나은 제 인생사요? 저 태권도 다녔었어요.
수정 아 진짜 짱나네요....
나은 탈코르셋도 했었고요. 저도 기후 위기 때문에 아이 안 낳는 거에 동의합니다.
수정 버블 안 하셨잖아요.
나은 버블만 안 해봤죠.
수정 저는 버블로 석사논문 썼다 그러길래 당연히 덕후일 줄 알았는데. 이해가 안 돼서 이해해 보려고 들어갔다고.
나은 맞아요. 이해가 안 돼서. 저는 근데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굉장히 퍼즐링해야지,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질문이 있을 때 답이 이렇겠구나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답을 몰라서 들어가야지. 아직도 사실 안 풀렸어요. 거기에서 왜 친밀성이 나오는지 잘 이해가 안 가고. 가상적 관계에서 우리가 충분히 외롭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아직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람을 안 만나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항상 궁금했는데, 연구를 하면서도 확신이 안 됐어요.
수정 논문에서는 뭐라고 썼어요?
나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로. "과연 그럴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구 결론이 없다고 석논 심사 때 혼이 좀 났습니다. 하지만 통과됐죠? (웃음)
수정 아니 근데 논문 시작부터가 “이것은 버블에 대한 것이 아니다”여서. (이나은씨의 석사논문 초록 첫문장은 "본 논문은 팬 플랫폼 ‘버블’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실제 관계도, 쌍방의 소통도 소거했을 때 친밀감이 무엇으로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로 시작한다)
나은 맞아요. 그러니까 가상적인 의사소통 방식에서도 우리가 친밀감도 느끼고 외로움도 안 느끼고 충족될 수 있을까? 이런 게 질문이었는데 근데 뭐,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을 듯, 이런 게 답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시간에는 그럴 수도 있고 어떨 땐 아닐 수도 있고. 첫 한 달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그 다음 달은 아닐 수도 있고, 어떤 사람한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순간엔 그럴 수도 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아닐 수도 있고. 완전한 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외롭고 아니고 이런 게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수정 다른 논문들은 답이 좀 나왔어요?
나은 네. 탈코르셋을 죽을 때까지 해야지 이랬는데 왜 그만뒀을까? 그때 약속했던 것들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서, 새로운 답을 찾아서? 페미니즘의 새로운 약속과 연대를 할 수 있게 돼서? 이런저런 답. 재미없고 그냥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긴 하지. 원래 쓰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거를 강조해서 쓰고 싶다는 욕망이 들긴 했어요. 그렇지만 이게 학계에서 원하는 답이 아니고 나도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에 좀 안 썼어요.
수정 앞으로 쓰고 싶은 논문도 있으세요?
나은 요새 좀 그냥 놀고 싶기도 한데. (웃음) 이상한 것들을 많이 얘기하고 싶어요. 내밀한 것들. 항상 좀 저열한 거에 대해서 쓰고 싶어. 노골적이고.
좋은 연구 전략과 연구 방법론을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계속 인터뷰에 기대고 있는데 다른 방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수정 어떤 연구가 좋은 연구라고 생각하세요?
나은 일단 적어도 연구자 자신한테는 진실한 얘기를 써야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아까 말한 대로 편집하면 안 되겠죠. 학계의 전통에 맞춰서. 그러니까 연구 질문을 들었을 때 답이 유추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그 (유추된) 답이 틀려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연구가 좋은 연구인 것 같아요. 아니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근데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 학계 전통 이런 거에 맞춰가지고 다른 식으로 좀 나가면… 왜 쓰나~ 이런 거 써서 뭐 하나~ 트위터나 쓰지~ (웃음)
수정 자기 자신한테 진실한 연구. 근데 자기 자신의 진실성이 흔들리면 어떻게 해요?
나은 그러니까 논문이 안 나오죠. (웃음) 자기 자신을 속이기라도 해야지 뭐.
수정 근데 버블은 스스로에게 진실한 연구였어요?
나은 왜냐하면 진실한 바람에 결론을 못 내고 냈으니까. (웃음)
나은은 스스로 체감하는 좋은 연구와 그렇지 않은 연구의 선이 뚜렷했고 자기 논문의 특정파트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들으면서 진짜 칼같아 무서웠습니다. (야! 그냥적당히살아!) 하지만 한편으로 그 기준이 그만큼 진실된 연구를 했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멋지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쨋든 그결과 나은은 3년째 논문 출판을 못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ㅠㅠ 올해는 적극타협하여 세 편 게재하겠다고 하니 기대해주세요.
나은이 말을 재밌게 하는 것처럼 나은의 논문도 재밌으니, 다들 찾아보십시오. 노골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나은의 목표는 10개 학술지에서 디비피아(dbpia) 탑 10%를 찍는것이라고 하네요. 다들 클릭/다운부탁드립니다. 근데... 지금 학술지로 나온 애들은 이미 다 탑텐이긴 하거든요? 결국 나은님이 앞으로 논문을 더 열심히 쓰셔야겠죠? 스스로를 좀 많이 속이십시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와~ 드디어 끝났다~ 하마터면 논뒤사뒤사(논뒤사쓰다뒤진사람, 신문연 연구원 조윤희씨가 네이밍해줌)가 될 뻔 했어요. 하지만 즐겁게 읽으셨다면, 글을 읽으면서 얹고싶은 말들이 생기셨다면, 저는 아마도 행복하겠죠… 제발 말을 얹어달라는 뜻예요 (구독자에게애걸복걸하기, 신진문의링크 첨부) 구체적으로 사심을 채워보자면 저는 망한 인터뷰 후기들을 듣고싶고요. 인터뷰 싫어하는데 인터뷰 하고계신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아무말 피드백과 이야기들 매일매일 집요하게 기다리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나은과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이나은 (2022). 친밀환상의 작동 방식: 팬플랫폼 ‘버블’ 이용자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37(2), 157-200. 박현아, 이나은 (2023). 탈코르셋을 그만둔 여성들: 동일시의 정치와 물화된 얼굴을 넘어서. <문화와 사회>, 31(1), 89-148. 김홍중, 이나은 (2024). 그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 기후 파국, 성찰적 비출산, 태어나지 않을 아이의 행위능력. 비판사회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제주.

글. 윤수정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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