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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게이 연구는 하고 싶지 않았어


새 학기가 시작되고 대학원 수업에서 여러 신입생과 다른 전공 학생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올해는 왜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입생이 들어와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더라고요. 수업에서, 과 행사에서,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인사와 자기소개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고. 주말 낮에 한가롭게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남자 친구에게 공유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질문이 돌아왔어요.
“커밍아웃은 했어?”
아, 맞다, 그런 절차가 있었지, 뒤늦게 깨닫고는 짧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기억해 내죠.
“석사 때 무슨 연구 했는지 말했으니, 다들 저절로 알지 않을까? “그렇네, 자동 커밍아웃이네, 크크큭.”

그렇습니다, 저는 자동 커밍아웃이 될 만한, 그러니까 ‘게이 연구’라는 걸 석사학위논문으로 썼어요. 그것도 무려 이태원 게이클럽에서 주말마다 밤을 새서 사람들이 춤추는 걸 보며 인류학적 현장연구를 진행했어요. 아무래도 게이클럽에 죽치고 서서 연구를 한 사람이, 게이가 아니기는 힘들겠죠. ‘저는 석사 때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하고 말하기만 해도 다들 ‘아,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들 있을 겁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요.

그래서 그런지 ‘연구를 어떻게 잘할지’에 관한 고민과는 다른, ‘이런 연구를 하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관한 조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특히 학회 발표 같은 곳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연구 내용을 보일 때, 내가 게이라는 걸 밝히는 게 연구 내용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런 생각 때문에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많습니다. 아마 반 정도는 밝혔고 반 정도는 안 밝혔던 것 같아요.

물론 연구자의 위치를 밝히는 것이 더 나은 사회과학 연구를 위한 성찰적 태도라는 오랜 교훈이 전해져 내려오기는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제가 다른 연구자에게 ‘게이 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연구자’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어요. 내가 게이라서 이런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야, 단지 내가 게이라는 이유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정당화되길 바라지는 않아, 나는 ‘게이 연구’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연구’를 한 거야, 라고 말이죠. 일종의 우아함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달까.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게이스럽긴 하네요.)

연구 초기에 들었던 대학원 수업에서 기말 과제 발표회를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현장 연구 자료를 처음으로 연구의 모양이 나도록 정리해서 발표했었죠. 정신없이 술 마시고 춤추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어렵게 건져내 나름의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받았던 피드백을 아직도 기억해요. “현장감 있는 좋은 자료네요. 게이 하위문화와 소수자 정체성 형성에 관한 좋은 연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건방지게도 이 피드백을 듣고 거의 욕을 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에서야 돌이켜보자면 ‘게이 하위문화와 소수자 정체성 형성’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그때는 아직 연구 경험이 없는 초짜로서의 자신감? 오만함? 같은 게 있었던 거죠. 내 연구는 단지 ‘게이가 게이했다’는 종류의 당연한 이야기보다는 더 의미 있는 게 되어야 하는데? 게이라는 집단을 연구했다는 사실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인류학 연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연구, 그냥 연구자, 그냥 인류학……. 도대체 ‘그냥’이라는 게 뭐였길래 당시 저에게 ‘그냥’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중요했던 걸까요.


이렇게 고백하듯이 말하는 게 웃기지만, 사실 저는 게이 연구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연구 주제로 삼지 마, 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없게 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사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고 싶지는 않다는 가벼운 거부감이 있었죠. 내가 공부하는 데에서까지 게이로 살아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런 제가 연구 현장으로 게이클럽을 정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제가 대학원에 입학한 첫해에 있었던 10.29 이태원 참사였어요. 물론 사고 자체는 게이클럽이 있는 이태원소방서 뒷골목 쪽이 아닌 길 건너편에서 일어났기에 게이클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문제는 사람들이 이 사고를 추모하는 혹은 추모하지 않는 방식에 있었어요. 추모하지 않는 사람은 이들이 놀러 가서 죽었기 때문에 공적인 추모를 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어요. 반대로 추모하는 사람은 놀다가 죽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망자들이 ‘평소’에 건실하고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애도했죠. 그 어느 쪽에서도 그들을 ‘놀다가 죽은 사람으로서 추모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어요.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태원의 많은 업장이 영업을 중단했어요. 놀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더는 놀 수 없게 된 거죠. 저에겐 그 사실이 너무 모욕적이었던 것 같아요.

노는 게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놀이’는 인류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죠. 그러다 이태원을 종종 같이 다니던 친구가 게이클럽에 필사적으로 걸그룹 안무 따와서 춤추는 사람들을 연구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바로 오케이 하진 않았어요. 내가 어떻게 거기를? 그 어지럽고 번쩍거리는 곳을? 생각지도 않던 게이 연구를? 하지만 곧 운명을 받아들였죠. 아예 새로운 현장과 주제를 발굴해 낼 깜냥이 저에게는 없었거든요.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게이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는 자각 자체도 없었습니다. 제 연구를 ‘놀이 연구’ 정도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구한 내용을 들고 다른 사람 앞에 설 때마다, 제 연구가 ‘게이 연구’가 되고, 저는 ‘게이 연구자’가 되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게이들은 왜 남돌이 아니라 여돌 노래를 좋아하는 거예요?” “게이들은 왜 여자 춤을 추는 거예요?” “게이들은 왜 외국인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예요?” “게이들은 왜……?”
저는 게이 국가대표도 아니고 게이 대통령도 아닌데, 마치 이태원에서 노는 게이 모두를 대변해야 할 것 같은 질문이 저에게 쏟아졌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 제가 이태원 게이 대표는 아니라서요. 이런 황당한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 다행히 알았죠. 그때가 돼서야 조금씩 제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 나 지금 ‘게이 연구’를 하고 있구나, 소수자 문화를 끄집어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에는 책임이라는 게 따르는 거구나, 이 질문들을 매듭짓지 못하면 내 연구는 여태 얕보던 ‘게이 연구’조차도 될 수 없겠구나, 이를 꽉 깨물고 잘해야 되겠구나……!

물론 마음을 다하긴 했지만, 석사논문을 제출한 지 일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제가 제 연구를 통해 이 질문들에 충분히 답했을지 확신은 없습니다. 제 연구를 읽어 주는 분들이 판단하시겠지요. 소수자 연구에 대한 사명감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연구를 통해 무얼 보여주고 싶다는 명확한 그림도 없이 얼렁뚱땅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그러나 확실해진 게 있다면, 제 연구는 ‘그냥 인류학 연구’면서 동시에 ‘게이 연구’이기도 하다는 걸 제가 받아들였다는 거. 그래서 내가 게이라는 걸 밝혀야 하나,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 이제는 그냥 차분히 제 연구 주제를 말하고는 그게 끝입니다. 다들 속으로 생각하시겠죠, 제가 ‘게이 연구자’라고. 하하하. 뭐 아무렴 어때요, 맞는걸요.



글. 이현화

편집.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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