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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배운 대로 키울 수 있을까?

  • 6월 13일
  • 12분 분량

우리는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 여러 사회적 모순을 배우는 일은 곧 내 안의 모순을 대면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런 모순을 회피하는 방법도 같이 배우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모순에 조금은 무감해지고 무심해지는 것인지, 이제는 ‘흐린 눈’도 곧잘 해내게 된다. 


아이를 양육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하게 된 한 가지는, 아이는 내가 외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는 당장 내 곁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는 내 모순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내 시야를 넓혀주는 렌즈가 되기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며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도, 그리고 그와 함께 더 큰 의미가 생기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면한 질문, 우리는 배운 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각자가 치열하게 싸워온 그 고민을 이번 수다에서 풀어내보았다.


참여자 소개


탁상공론에 참여한 카네이션  케이  모카라떼  체리  솔잎 의 소개는 지난 1부 참고!





#1 양육은 함께 해야 해


카네이션 확실히 양육은 혼자서 하기엔 정말 버거운 일인 것 같아. 주양육자라는 역할이 있어도 양육이란 같이 해야 하는 거고. 각자 배우자랑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다들 그 과정은 어땠어?


솔잎 나는 남편도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연애 때는 깨어있는 사람이었어. (웃음) 근데 육아를 하다보니 이렇게 보수적인 사람이었나 싶더라. 한 번도 싸운 적 없다가 아이가 3, 4개월 때 처음 크게 싸웠어. 육아 분담을 하는데 내가 여전히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손가락이 항상 너무 아팠거든? 계속 정보를 검색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니까. 그런데 남편은 이걸 안 해봤기 때문에 몰라. 어떻게 이렇게 페미니즘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돌봄에 대한 배려가 없을 수가 있나! (웃음)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더 많이 같이 해주는 편이었지만, 그땐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엄청 싸웠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이 더 양육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어.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아. 놀이터에 서 있는 일조차도 아빠가 하면, 다정한 아빠가 돼. 칭찬이 아주 자자해. 반면 엄마는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데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엄마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애를 너무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눈치가 보이기도 해. 엄마의 절대적 역할이 있고 그걸 내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죄책감이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가더라. 


케이 확실히 사회적으로 엄마와 아빠한테 기대하는 바가 너무 달라. 나는 그냥 아이랑 식당에서 밥만 먹어도 좋은 아빠가 되거든. 엄마는 식당에서 아이랑 밥을 먹으면 왜 밥을 안 해먹이고 사먹냐 이래. 그리고 되게 웃긴 게, 나는 아이랑 외출했을 때 나한테 시비 건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그런데 아내가 애를 안고 가면 그렇게 간섭하는 사람이 많아. 왜 애한테 양말을 안 신기냐부터 춥다, 덥다. 


카네이션 아니 양말 가지고는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케이 한편으로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고 아내는 연구자의 삶을 잘 모르는 정규직 노동자니까. 나는 늘 일을 안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도 있긴 해. 막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계산하게 되는 거야. 내가 이걸 왜 더 많이 하는 거지? 이런 느낌이 들고. 내가 집에 더 많이 있다 보니까 아이랑도 더 많이 있게 되고, 당연히 직접적인 집안일은 내가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그걸 막 내가 계산하고 따지게 되더라. 그래서 그런 걸 좀 안 하려고 노력 중이야. 최근에는 아내도 특수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약간은 나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 (웃음) 어쨌든 이런 두 가지 마음이 늘 공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얻는 편익이 훨씬 많다고도 생각하고.


모카라떼 나는 남편한테 엄청 주입했어. 엄마 없이도 아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같이 많이 하는 편이긴 해. 하지만 전혀 분담할 수 없는 영역이 모유 수유였어. 나는 이게 너무 힘들었어. 임신 중에는 내가 유축해놓고 새벽에 남편보고 수유하라고 해야지, 이렇게 상상했는데 낳고보니 우리 애는 젖병을 물지 않는 애인 거야. (웃음) 예쁜 젖병을 사놨는데 다 소용이 없던 거지. 그래서 내가 전적으로 애한테 직접 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말 암담했어. 몸도 너무 지치고 긴 외출은 상상도 못했지. 지금은 단유를 한 상태인데, 모유수유 기간 동안에는 아무리 옆에서 남편이 육아를 같이 한다고 해도 이건 나밖에 못하는 일이라서 압박감이 크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


체리 나도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친구들한테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에서 배운 이야기를 그대로 하게 되더라. (웃음) 여성을 집 안에 몰아넣고! 이 산업을 일군 것이다! 여성의 희생이 없었으면 이 산업의 일꾼이 탄생할 수 없다! 그때는 울분에 찼던 것 같아. 사실 나는 너무 미리 이것저것 찾아보면 걱정만 많아질까봐 잘 안 찾아봤거든. 제왕절개를 하고 한 2, 3일 후에 전화가 와서 나보고 수유실로 오라는데, 나는 “왜지?” 이랬어. (웃음) 알고보니 수유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거였지. 그때 현타가 확 오더라. 애를 처음으로 안아보고 수유를 하는데, 얘를 어떻게 키우지 싶고. 멘붕이 왔어. 산후 우울증이 왜 오는지 알겠더라. 그냥 눈물이 막 났어. 남편은 막 괜찮아, 이러고.


솔잎 뭐라 말하겠어. (웃음)


체리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남편이 나보다 아이를 더 잘 보는 것 같거든? 근데 아이에게 필요한 게 단계별로 있잖아. 옷도 계절 바뀌면 다르게 입혀야 하고, 이유식 준비물도 많고. 근데 남편은 그런 걸 하나도 생각 안 해.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이 있잖아. 엄마들은 항상 그런 걸 생각해야 하지. 한 번은 남편이 우리 집에 택배가 너무 많다, 이러는 거야. 그 택배가 왜 많은데! (웃음) 다 아이한테 필요한 거거든. 


카네이션 정말 얄밉겠다.


체리 나는 벌이가 거의 없고 여자니까, 주변 시선에서는 내가 당연히 양육을 해야된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억울하기도 해.


모카라떼 나도 기획노동이 언급된 기사가 있길래 남편한테 보내준 적이 있어. 근데 얼마 후에 화장실 수납장에 두루마리 휴지 채워 놓고서 자기가 기획노동을 했다고 하는 거야.


: (소 )


모카라떼 내가 숨쉬듯이 하고 있는 건데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너무 웃기더라. 



#2 연구와 돌봄은 서로 닮았다?!


모카라떼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 누가 나보고 되게 좋은 조건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 거야.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닐텐데, 순간 속으로 욱하는 거야. 


케이 왜 좋은 조건이라는 거야?


모카라떼 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무직이고 남편이 돈을 버니까 그렇다는 거지. 근데 오히려 직장이 있으면 육아휴직이 끝나고 돌아갈 곳도 있고, 주기적으로 돈도 벌잖아. 나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내 입장에선 돌아갈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서로 관점이 다르구나 싶었어. 그리고 내가 하는 노동은 노동이라고 안 불리고. 시부모님도 나보고 항상 “그래, 공부 열심히 하는 거 보기 좋다,” 이러셔. (웃음) 나는 그냥 공부하는 애인 거야. 


체리 우리 엄마도 항상 아이한테 “엄마 방에서 공부해,” 이러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둘째에 대한 생각도 더 편한 것 같고. 나는 둘째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 그냥 선택지가 없어. 그래서 공부에 대한 자괴감도 들 때가 있어.


솔잎 연구라는 일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잖아. 공부는 많이 할수록 좋은 거고, 논문도 많이 쓸수록 좋은 거고. 정해진 양이 없지.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포기하면 되는 거기도 해. 내가 공부를 안 하고 논문도 안 쓰면 되긴 하지. 하지만 그러려고 내가 박사를 한 건 아니잖아. 내가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게 있고, 욕심과 자존심도 있는 건데 말이야. 나도 육아를 하면서 절대적 시간이 줄어드니까 공부를 안 하게 됐어. 공부를 줄이고 그 대신 행정적인 일만 하면서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게 되는 거지. 논문도 퀄리티가 예전보다 낮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썼어. 그런데 내 남편은 또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한단 말이야. 밤에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좀 얄밉기도 했어. 저런 모습을 존경하고 좋아했던 건데도, 감히 공부를 해?! 이런 마음이 드는 거지. (웃음) 


케이 나도 애가 더 어릴 때에는 밖에서 세미나를 하기도 어려우니까 혼자 도태되는 느낌이 있었어. 


모카라떼 맞아. 세미나 같은 거 듣고 싶은데 오프라인이면 포기해야 되니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런거 신청해서 하는거 보면, 나도 같이 해야하는데, 라는 조바심이 드는 거야.


솔잎 사실 아이를 보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알아주질 않으니까.


체리 듣다 보니 그런 것 같아. 사회적으로 돌봄이나 육아도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 받지 못하잖아. 그리고 연구라는 학술적 영역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여겨지지 않고. 


솔잎 내가 두 개 다 해버렸네. (웃음)


체리 우리들은 이렇게 분투하는데 둘 다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고, 또 인정도 받지 못하고.


케이 둘 다 돈도 못 벌고, 끝도 없고. (웃음)



#3 학계 내 양육자들, 있다 or 없다?


카네이션 이번 탁상공론 시작하기 전에 다들 이런 주제로 학계 내에서 대담을 한 적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하더라고. 아이 양육을 주제로 연구자들이랑 이야기할 자리나 기회가 자주 있었어?


모카라떼 아니. 육아 이야기는 대학원 밖 친구들이랑 주로 하는 것 같아. 


체리 할 대상이 없는 것 같아. 우리 대학원에는 결혼을 한 사람도 많지가 않아.


솔잎 나이 많으신 분들이 아이 안부를 물어봐 주시는 정도인 것 같아. 또래 중에는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 잘 없어.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싶었어. 우리는 연구자 부부인데, 문득 주변을 보니까 연구자 부부들도 다들 아이가 없는 거야. 내가 믿을 빽도 없는데 철없이 아이를 낳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모카라떼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사람이 없는 게 큰 문제인 것 같아. 학계 내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거나, 있더라도 나랑은 좀 다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혼자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케이 나는 사실 거의 집에만 있어서 만나는 사람 자체가 없어. (웃음) 그런데 확실히 연구자 중에는 결혼을 해도 아이는 없는 경우가 많긴 한 것 같아.


카네이션 나는 예전에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해외 학회를 갔는데 다들 아이를 데리고 왔더라. 대학교의 한 강의동에서 열린 학회였는데, 방마다 세션이 열리고 있으면 가운데 홀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 연구자들끼리 서로 잘 아니까 엄마가 발표하러 가면 아이는 홀에서 놀고 있고 다른 연구자들이 그 아이랑 같이 놀아주는 거야. 이건 내가 국내 학회에서는 본 적 없는 광경이었거든. 물론 막상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는 학회에서까지 아이와 있어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웃음) 한편으로는 학회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아.


솔잎 실제로 한 학회 회장 선거 때 놀이방 운영이 공약으로 나오기도 했었어. 국내에도 어떤 학회에서는 이미 아이를 돌봐주는 놀이방 같은 걸 운영한다더라. 그래서 나도 솔깃했었어. 그런데 이런 제도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변화도 같이 가야 하는 것 같아. 나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학회에 가기도 해. 내 남편도 그렇고. 각자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거든. 근데 뭐랄까, 좀 신경이 쓰이더라. 민폐 같기도 하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 저 사람은 아이를 봐야 하는 사람,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발표나 토론으로 부르기 좀 그렇다는 인식이 있는 거지. 우리는 계속 기회를 잡아야 하잖아. 한 번 원고 청탁을 거절하면 그 후로는 청탁이 안 올 수도 있고. 우리가 아이를 학회에 데리고 다니면서 학회에 완전히 집중을 못하는 사람으로 틀 지어지면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고 아이를 봐야 해서 못 가요, 라고 해버리면 내 입장에서야 아이가 크면 해결될 문제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냥 내가 아이 때문에 바쁜 사람으로만 생각될 테니까 이런 일이 누적되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이런 인식이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계속 아이를 데리고 학회에 가야 하나 싶은데 괜히 내가 아이를 보느라 시간 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닌가 싶고 어렵더라.


카네이션 실제로 그런 공약이 있었구나. 그런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해?


솔잎 그치. 내가 토요일에 박사 과정 강의를 하는데, 수강생 대부분은 따로 일을 하고 아이가 있는 경우도 많아. 그래서 내가 반쯤 농담으로, 하지만 꼭 실현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해. 대학원에 놀이방이 있어야 한다, 다들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어야 한다고. 근데 딱히 사례가 없어서 어려운 것 같아.


모카라떼 연구자 중에도 양육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솔잎 이것도 비용이 드는 문제니까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모카라떼 만약 당장 우리 학교에서 행사를 하는데 나를 배려하기 위해 그런 제도를 마련한다고 해도 나만 이용할 것 같아. (웃음)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게 나 뿐일 것 같은 거지. 새삼 아이를 낳는 연구자가 참 없다.



#4 연구와 양육의 공존, 단지 시간 분담의 문제만은 아니다


체리 이게 인문사회 계열이라 더 그런 것 같아. 아이를 낳는 건 사회적인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잖아. 대학원 생활 그리고 그 이후의 커리어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사회적으로는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게 아직은 주류잖아. 그런데 대학원 안에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게 오히려 비주류야.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어렵고, 그냥 내가 혼자 잘 해내야 하는 문제처럼 되고 있어.


카네이션 대학원 안에서 다들 불안정한 조건 속에 있으면서 취약성이 심화되고는 하잖아. 그런 가운데 이성애 결혼과 출산은 제도적 기득권과 결부되어 있고. 그러다보니 다들 이런 주제로 선뜻 이야기하기 어려워 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어. 퀴어로서는 그런 묘한 분위기를 자주 느껴.


솔잎 내 남편도 자기가 기득권이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아이가 생기니까 아이한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게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강하게 생긴다는 거야. 되게 수치스러워하더라고. 이런 이야기는 학회에 가서 못할 것 같아.


모카라떼 나는 그런 마음이 청첩장 돌릴 때부터 있었어. 내가 선생님들한테 청첩장을 돌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아이를 낳는 일도 잘 알리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아이 낳은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카네이션 자기 삶과 학문이 어느 정도 연동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내가 선택한 삶이 내 학문적 신념과 조금 빗겨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걸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서로 편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싶어. 대학원 안의 상징 자본이 밖에서는 전혀 다른 자본으로 전환되지 않고, 대학원 밖의 상징 자본이 또 대학원 안에서는 통하지 않고. 이런 간극에서 오는 긴장이 있는 것 같아.


체리 나도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게 내가 공부하는 학문과 어긋나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 한 1년 전 쯤에 임신 소식을 교수님께 알리면서 학교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교수님이 축하한다면서 이러시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웃음) 제자들이 다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으니까.


케이 사실 결혼하고 나서는 생활이 바뀐 게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너무 많은 게 바뀌었어. 그리고 내가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 뭐랄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스스로가 되게 모순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아졌어. 아이가 있기 전에는 그냥 내가 하던 활동을 바탕으로 논문을 썼었어. 그런데 박사를 졸업한 후에는 아이가 있으니까 그냥 집에만 있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데 내가 무슨 연구를 하지 싶었어. 그리고 내가 막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아이를 키우게 되잖아. 그러다보니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실제 내 생활 간의 괴리가 점점 커졌어.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도 생기고. 아이가 어릴 때는 그냥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거 자체가 힘드니까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었는데 아이가 커서 학원도 가고 그러니까 오히려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 예전과 같은 주제로 논문을 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 일단은 내 스스로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모카라떼 나도 내 연구 주제랑 내 삶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출산과 동시에 갑자기 나는 현장성이 높은 연구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야, 적어도 당분간은. 그래서 내가 이 주제로 박사논문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되고 엄청 우울했어. 그 답은 계속 보류 중이야. 당장은 내 연구 주제와 내 삶이 공존하기 어렵겠구나 싶어.


체리 나도 비판적 연구를 하지만 내 아이는 그냥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내 연구와 간극이 있는 마음이 드니까 내가 이런 연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솔잎 나는 몇 달 전에 영어 유치원 설명회를 듣고 왔어. 근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너무 이상한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내가 자발적으로 신청을 해서 간 건데도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그 다음 주에는 강의에서 막 상징자본이랑 계급 같은 걸 가르치고. 이런 식으로 내가 가르치는 내용과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되는 거지. 예전엔 비판 학문을 하는 게 내 정체성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그냥 내가 가르치고 논문을 쓰기 위한 기능적 지식으로 바뀌고. 내 삶에서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뭔가를 하고 있는 거야.


모카라떼 나는 심지어 주변에서도 내 연구자 정체성을 의식해. 한 번은 지인이 나한테 아기 옷을 선물해줬는데 옷 색깔이 너무 고민되더라는 거야. 내가 사회학과라서 나한테는 분홍색 옷을 주면 안 될 것 같았대. (웃음) 딸 예쁘다고 해도 돼?라고 물어보는 친구도 있어.


: (소 )


모카라떼 예쁘다고 해도 돼. 예쁘다고 해줘~


카네이션 우리 아이를 대상화하지 마!라고 할까봐 그랬나. (웃음) 사실 자기모순 없는 연구자가 어디 있겠어. 내 삶과 연구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힘든 것 같아. 그리고 그런 모순으로 인해 내 세상이 더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 나는 내가 가진 모순에 스스로 흐린 눈 하는 게 있거든?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런 흐린 눈이 힘들겠구나 싶어.


케이 나는 사실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간 건 아니고 예전부터 취업하고 출퇴근하는 삶이 너무 싫어서 대학원에 갔거든. 일하지 않는 삶에 관심이 있었고 그 후 활동도 그런 방향이었어. 그 주제로 수업도 하고.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까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웃음) 일하지 않고 잘 산다는 건 결혼 전에도 어려웠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어려웠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에 훨씬 더 어려워졌어. 예전에는 쉽게 했던 말들이 아이가 태어나니까 어려워. 내가 박사논문에서 했던 이야기를 내 삶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런 간극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잘 해소가 안 되는 것 같아.



#5 아이가 나와 내 연구에게 준 것들


모카라떼 그런데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존버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 건, 아이가 생기며 내 운신의 폭은 분명 좁아졌지만 오히려 내 세계는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야. 먼저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한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정말 진한 연대감 같은 걸 느꼈거든. 수많은 배려와 다정함을 받으면서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마음도 이제는 이해가 되는거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제는 몸으로 이해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


솔잎 나도 그런 건 있어. 사실 나는 내 세계가 바뀌는 경험을 강아지를 처음 길렀을 때 겪었거든. 내가 같이 지내는 생명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도 귀하고 예쁘게 여기게 되는 경험. 그걸 아이를 낳았을 때 한 번 더 느꼈어. 그렇게 인간에 대한 이해도 더 생기는 것 같아.


체리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 여성의 삶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진 것 같아. 그리고 아이는 정말 연약하잖아. 아기는 어른이 키워주지 않으면 정말 아무 것도 못해. 그러니 더 많은 다양한 조건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는 거지. 그래서 나도 그런 마음을 연구와 연결 지어서 더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어지기도 해. 내 세상이 좁아지면서도 넓어지는, 그런 양가성이 있는 것 같아.


솔잎 나는 내 연구가 아이가 사는 미래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 내가 연구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거지. 그렇다고 막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때로는 내가 공부하는 학문이나 내 연구가 이 세상에서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런데 아이를 통해 내 연구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아.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져야 할 텐데, 내가 하는 학문이 무언가 조금은 할 수 있겠지.


모카라떼 가장 가깝게는 젠더 스테레오타입 같은 거. 최대한 아이한테 많은 선택지를 주면서 키워야겠다 싶어. 나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영역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체리 육아 산업 자체가 엄청 젠더화되어 있지. 그리고 아이가 크는 과정에서 엄마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이나 선생님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접하게 되잖아. 그래서 나 혼자 의식적으로 뭔가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 게다가 부모 마음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가 관성적으로 세상의 관념을 재생산하는 쪽으로 가기 쉬우니까. 


카네이션 아이를 올바른 시민으로 키운다는 게 참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사회화시킨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기존 사회 규범에 맞게 성장시키는 것이기도 하잖아. 지금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개인으로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고민이 많을 것 같아.



#6 더 많은 이야기로 이어지길


솔잎 사실 육아와 관련해서는 기능적인 이야기만 하기 쉬운 것 같아. 발달 단계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고 등등.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내 가치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지 않았어. 남편과의 대화 주제도 이제는 거의 다 아이 양육이거든? 그런데 주로 몇 시에 뭘 해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다수야.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정체성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오늘 처음 이렇게 언어화를 해보려니까 되게 재밌으면서도 나 정말 변했구나, 라는 정체성 혼동도 같이 온 것 같아.


체리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게 정말 처음이야. 내가 품고 있는 어떤 분열이나 모순을 나 혼자서 부끄럽게 처리해야 하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모순 자체를 수용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용기를 오히려 얻은 것 같아. 이런 기회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모카라떼 나도 이제 막 아이를 키우게 된 입장에서 재밌었어. 평소에 육아 이야기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랑 하게 되는데 그럴 땐 항상 열심히 말하다가도 벽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었거든. 그리고 내 자존감이 깎여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어. 근데 오늘은 그런 벽을 별로 못 느꼈던 것 같아. 이렇게 육아에 대해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으면 좋겠다.


케이 나도 마찬가지야. 사실 연구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과 만날 일이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스스로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밖으로 나오는 말이 좀 어긋나는 지점도 있는 것 같고.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건 참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 내 삶의 방향과 아이를 키우는 일을 조화시킨다는 게 뭘까.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런 생각을 여러모로 하게 되어서 좋았어.


카네이션 나도 내 어려움에 대해 말을 안 해버릇 하다가 갑자기 누가 물어보면 말을 잘 못하겠더라.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언어화하는 건 까다로운 일 같아. 그래서 더 이런 자리가 많아져야 하고. 이번엔 익명이지만 나중에는 익명이 아닌 자리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글. 카네이션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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